[탈북자 증언] 쫓기고 숨는 삶이 끝나기를 -5

[탈북자 증언] 쫓기고 숨는 삶이 끝나기를-5

 

전 영 미
탈북여성, 2004.2.3 한국입국

 

다시 보위부 감옥으로, 집결소로

한 여자애가 살기 힘들어 중국에 가서 살게 도와 달라고 하여 보내주었는데 그것이 인신매매가 되여 감옥살이를 하게 된 한 아주머니와 나를 보위부 감옥에 데리고 갔다. 한국으로 가려했기 때문에 두말없이 감옥에 넣는다는 것이다. 나를 맡은 예심원이 한번 봐 주자고 하였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부장은 안 된다고 하면서 당장 처넣으라고 하는데, 다시 우리를 어디로 보낼지 협의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기간 20여 일 순간순간 마다 심장이 얼어들고 숨이 막혀 버리는 것 같았고 정신적으로 지칠대로 지쳐있던 가장 어려운 시간들이였다. 국수 둬 젓가락 넘기고 나서 꼼짝 않고 있노라면 어떤 결론이 떨어져 어찌될지 생각하면서 낮이면 철창 넘어 햇빛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고 밤이면 기도하다 얼핏 잠들었고 자다가 정신 들면 또 기도하였다. 아이들은 몇 달 동안 굶주림에 지쳐서 앙상해졌고 미칠 것만 같아 있었다. 그러다 기도의 도움인지 우리는 다시 집결소로 가게 되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나와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 중에 집이 없는 사람들은 모아 놓은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다시 중국에 가지 않도록 직업을 주어 내 보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한 농촌구역을 내고 그곳에서 합숙생활을 하면서 일 시키게 된다고 했다. 서리 낀 벽과 창문에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장 써늘한 방안은 이불 속에 들어가면 머리와 코가 시려나고 이불을 뒤집어쓰려면 무거운 솜과 이불 속에서 참기 어려운 냄새가 난다. 얼굴이 시려 손으로 얼굴을 가리 우면 손이 시리고 찬방에 있으니 계속 배탈이 났다. 여위다 못해 이빨과 광대뼈만 두드러지고 뼈에 가죽만 남은 몸은 일어서면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애써도 자꾸 휘청거려 넘어진다.

아이들은 가느다란 목을 뒤로 젖히고 맥없이 앉아 배고파서 힘들어했다. 우리에게 언제 다시 어떤 위험이 닥쳐올지 모르니 중국으로 돌아와야겠으나 군대들에게 돈을 주고 오려니 돈이 없고 그냥 가려고 하니 중앙에서 연선을 강화하라고 검열대가 나려왔고 경비대, 보위부, 사회순찰대까지 네 겹으로 진을 쳤으니 어쩔 수 없었다.

또다시 두만강을 건너서-딸아이가 중국공안에 잡히다

겨우 밖에 나가 군을 피해 신발까지 다 팔아서 몰래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남편에게 전화하였는데 자기에겐 지금 1전도 없으니 기다려 보라고 하였고 내가 알고 있는 집사님도 구할 수 없다 하였다. 날마다 차 소리만 나도 잡으러 오는 것 같아서 속이 바질바질 타는 듯 하였다. 남편이 집사님에게 이런 사연을 말하여 그 집사님이 중국돈 500원을 보내주었다. 그 돈으로 그곳에서 몰래 빠져나와 그 날로 강을 건넜다.

강은 불기 시작해서 얼음이 떠가는 차가운 물, 허약해 질대로 약해진 몸, 떨리는 가슴과 심장은 금방 멎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죽지 않을 수 있었는지부터가 기적이다. 밤새 부추기다 못해 몸을 끌다시피 개산툰이라는 마을까지 왔는데 그곳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하여 데리러 나오게 하려하였는데 전화할 곳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그곳은 조선 사람만 보면 고발하는 곳이라는 말들이 도는 곳이다. 날이 밝으면 사람들에게 발각되겠는데 나는 아픔으로 딸을 끌며 기여 다녔고 아이들은 울며 “어머니 조금만 참으세요” 하면서 나를 붙잡고 울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여기까지 와서 들어가 숨길 곳 없고 전화할 곳 없어 이러고 있다가 이제 잡혀나가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힘을 내려고 있는 정신을 다 모았으나 아픈 심장으로 인해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딸아이 지향이가 나를 붙잡고 울다가는 또 뛰며 택시라도 보이면 부르려 하였으나 차도 하나 없었으니 울며 다니던 지향이가 컴퓨터 방에 들어가 도움을 청해 보겠다고 하면서 들어갔다. 잠시 후 남자들이 셋이 함께 나오더니 “너 조선아이지?” 하는 것이다. 인젠 잡혔구나 하는데 지향이가 “오빠들 좀 도와주세요, 우리 어머니가 앓아서 죽을 것만 같은데 전화 좀 할 수 있게 해 주세요”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자 그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나를 보더니 핸드폰으로 전화해 주었다. 그때 남편은 몇 달 동안 속이 상해 있다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는데 그때는 정신도 못 차리고 있었다. 아무 아는 사람도 없는 우리는 할 수 없이 교회의 집사님에게 상황을 이야기하여 더 어디 도움 청할 곳이 없으니 꼭 우리를 도와 달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 집사님이 그 곳에 도착할 동안 다행히도 전화기를 빌려준 사람들이 우리를 꼬장할까봐 속이 한 줌만 해 있었는데 다행히 그런 사람은 없었다. 동이 트고 집사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일행은 우리 가족 말고 다른 가족이 있어 모두 6명이다. 모두 한차에 앉을 수 없어 다른 택시 하나를 더 청했는데 그 택시 운전수가 집에 들어가 제꺽 밥을 먹고 나오겠다 했다. 인차 그 운전사가 내려왔기에 두 차 에 앉아서 떠났는데 앞에 차에 집사님과 나와 이쪽 아주머니와 작은 아이가 탔고 그 뒤차에 지향이와 그 집 아들이 타 있었다. 우리 차가 마을을 벗어나서 뒤를 돌아보니 뒤차가 오다가 서 있기에 손님 더 태우는 줄 알았는데 한참 후에 다시 돌아보니 뒤차가 보이지도 않았다. 곧 따라 오겠지 하고 검문소를 무사히 거쳐 집에 도착하자 나는 침대에 쓰러졌다. 집사님이 뒤차를 기다리느라 밖에 서 있더니 뛰어 들어와서 지향이가 잡혔다는 것이다. 나는 맥이 탁 풀리면서 땅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힘든 길을 지금껏 어떻게 돌아 왔는데 여기까지 와서 잡히다니 무슨 말인가? 마구 엎디어 울며 딸아이가 무사히 나에게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돈밖에 모르는 이 운전사는 돈을 벌기 위해 처음부터 고발하였고 도중에 차를 세워 놓고 지금 마을을 벗어나고 있다고 전화하고 머뭇거리면서 시간을 끌어 잡히게 하였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집사님에게 전화로 자기차도 뺏겼는데 벌금 500원을 내라고 하니 그 돈을 좀 대달라고 하였고 절대 자기는 고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목숨이 코끝에 붙은 사람들이 살길 찾아 헤매는데 아무런 주저 없이 고발하면 받게 될 돈 때문에 고발하였고 또 거짓말하여 300원을 빼냈던 것이다. 더욱이 운전사는 한족이고 그 아내는 조선족이였다. 그 전날 그의 부모들도 살 길 찾아 중국으로 들어왔고 그래서 태어난 사람들인데 쉽게 그럴 수 있었는지. 가슴허비며 날을 보내던 3일째 되는 날 남편을 알고 있는 한국의 어떤 분이 연길에 볼일 때문에 왔다가 고기를 사가지고 들어와서 그것을 끓이고 있는데 오후쯤 되어서부터 이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들면 아무 말도 않고 전화기를 놔버리곤 하는 전화가 몇 번 왔었다. 그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던 려명이가 갑자기 “누나 어디 있니”하면서 부르고 있었다. 그 소리에 나는 전화기를 빼앗아 쥐고 “지향아 너 어데 있니, 왜 그러냐” 하고 물었더니 울면서 내 목소리를 막아 버리느라고 소리쳐 려명이를 부르면서 우는데 전화 속에 웬 남자들의 목소리가 나는데 “일없다 말해라”하는 것이었다. 지향이는 야-하 큰소리를 질렀고 나는 순간 경찰들이 지향이를 끌고 다니는구나 하고 전화기를 놓으며, 경찰이다 빨리들 나가라 하며 차비할 돈을 좀 주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마침 그날 오신 그분이 남편에게 옷을 파는 일에 도와주었다고 준 돈이 있었다.

공안을 피해서

나는 신발이 없어 맨 나중에 나가려는데 아래층에서 요 새끼 어디가나 서라 하는 소리가 들렸고 다시 뛰여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올라온 아이들 들여놓고 문을 닫으려는데 시꺼먼 복도에서 한 사람이 헐떡이며 올라오는 것을 얼핏 보면서 경찰일 것이다 하고 문을 닫았다가 만약 우리 사람이라면 잡히겠구나 하여 문을 여니 순철의 어머니였다. 그를 끄당겨 들이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경찰들의 소리는 앞서 나간 려명이와 그 집 막내아들 진철이였다. 아이들이 잡혔구나 생각하여 앞이 캄캄했다.

무작정 베란다고 나갔는데 뛰어 내리려니 잘못하다 영원히 병신 될 것 같아 베란다에 있는 장안에 들어갔다. 아래 칸과 웃 칸이 있었고 웃 칸은 높아서 올라설 수조차 없고 아래 칸에 순철이 어머니와 둘이 들어갔고 순철이는 창문을 열고 텔레비전들이 있는 것을 손으로 잡고 작은 턱을 딛고 섰다. 이어 남편을 데리고 들어온 경찰들이 집을 수색하였고 이어 베란다로 들어왔다. 구두발로 뚜걱거리며 곧장 장안으로 왔다. 사람이 새처럼 날아오르지도 못하는 높은 위층을 문을 열어보고 나서 이번엔 아래층 문을 열겠구나 하고 있는데 3초가량 서있더니 돌아서서 창문이 열린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누구나 쉽게 아래도 열어보고 웃칸을 볼 것인데, 무슨 새라고 웃칸을 열어보았는지 창밖을 내려다보며 누가 나갔는가 남편에게 묻자 누구도 나간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그때 창문에 붙어서있는 순철이와 경찰의 얼굴은 유리 하나 사이에 두고 마주섰는데 음식을 지으면서 김이 유리에 서려있어서 밖에선 순철이는 경찰을 보고 있는데 경찰은 밖에 있는 순철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들은 옆방에 있는 한국 분을 보더니 큰 단서나 잡은 듯이 옷장사 때문에 왔다고 하는데도 어쨌든 가자고 하여 데리고 나갔다. 나가려다 다시 들어와 이방 저방 불을 다 켜놓고 나가는 것을 보아서는 밖에 감시가 있든지 아니면 다시 오려는 것일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차 소리가 나더니 다시 잠잠해 졌다. 우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밖으로 나와 집도 전화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사람뿐인 그 집사님의 집으로 갔다. 두 아이가 잡혔고 우리는 이렇게 도망쳐왔다고 하자. 집사님이 려명이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자기는 도망을 쳤는데 어머니와 그 모든 사람은 다 잡혔을 것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 집사님도 택시 운전사에게 전화를 걸었기에 전화번호가 공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위험해서 컴퓨터방 같은데 가서 밤을 자고 오지 말라고 하였다. 진철이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구원해 보겠는데 자기가 알고 있는 법관 하나 있는데 필요한 돈만 좀 구해서 보내달라고 하고 떠나겠다 하여 강가로 차에 태워 데려다 주었다.

딸아이는 조선으로, 다시 중국으로

룡정 변방에서 십여일 있는 동안 지향이는 너무 얼이막혀 처음에는 그냥 울었고 그러다 조선으로 끌려 나가게 되었다. 지향이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불쌍해하며 인차 구호소로 넘겼고 그곳에서 진철이 어머니가 돈을 밀어놓고 꺼내왔다. 그 집 두 아들도 아는 사람을 통해 돈을 좀 밀어놓고 데려 내왔다. 오랫동안 다시 돌아올 길이 열리지 않아 적지 않은 5식구가 이곳저곳에서 숨어 피해다니면서 중국에서 보낸 돈으로 먹고 살다가 연선의 경계가 너무 심해서 지향이만 먼저 중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교회의 한 집사와 남편이 강가에 와서 데리고 연선에 있는 한 집에 들어가 산길로 걸어올 것인지 뻐스를 탈것인지를 토의 하다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군대 초소를 통과할 때 군대들이 싸이나 먹은 듯이 너부러져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는데, 그렇게 살벌하던 초소의 군대들의 버스가 섰는데도 올라갈 생각도 없이 취한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때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굶는 날도 적지 않았고 새벽에 남새시장에 가서 배추잎을 많이 주어다가 절구어 먹고 그냥 볶아먹기도 했는데 어떤땐 기름이 없으면 소금이라도 있어야겠는데 소금 살돈 1원도 없어 배추를 썩히면서도 굶을 때도 있었다. 전기세를 내지 못해서 배추국도 못 먹고 있노라면 자기 힘자라는 데로 마음 놓고 일 해가며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했다.

지향이는 오자마자 어려운 생활형편을 보고나서 일자리를 구하느라 애쓰고 다녔고, 신분증이 없는 조건에서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에 쉽지 않았으나 일자리를 얻어 일을 시작하였고, 우리 식구와 순철이는 아무 일 못하고 있는데 진철의 어머니가 아이들 셋을 이끌고 밤에 도착하였다. 산길로 꼭 한주일 만에 도착하였는데 산속에서 비를 맞아 옷은 다 젖었고 모기에게 뜯기운 데다 나무에 찢겨 온통 상처투성이고 눈은 푹 꺼져 들어간 것이 많은 고생한 자욱이 뚜렷했다. 지향이 말고도 8식구 살려고 들어는 왔지만 살길이 너무 어려웠다. 1달가량 참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굶기도 하고 국만 먹기도 하고 시장에 나가 참외, 복숭아 같은 것들을 썩어 버린 것을 주워다가 씻고 닦아 버리고 먹기도 했고, 불도 없는 캄캄한 데서 있으면서 서로 제 살림 하면 식구가 줄어서 좀 낫겠는데. 집을 얻어 나갈만한 돈도 없었다.

다시 잡혀 조선으로

이때 교회 한 집사님의 6촌 동생되는 조선 여자가 세를 맡아 혼자 살고 있던 집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며 아직 세달 분이 남았으니 이 세집에 있으라 했다. 진철이네는 그 집에 그냥 있는 것이 좋다하여 우리식구가 그 집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 집에 이사나간 지 20일되는 날 밤에 자고 있을 때 밖에서 누가 려명이를 부르며 문을 두드렸는데 그 집에서 살고 있었다는 조선녀자의 목소리인 것 같았다. 다른 때에는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었는데 그 여자가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고 문을 열었는데 변방대들이 달려 들어왔다. 나는 남편에게 이번에 나가면 올 것 같지 못하니 나를 기다리지 말고 좋은 길을 택하고 잊어버리라고 했다.

옷을 입고 시계를 쳐다보니 밤 2시 반이였다. 려명이는 어데 나가고 없었고 지향이는 자다가 잡혔다. 너무 기가 막혔다. 심장병으로 헐떡이던 나는 연길에서 도문까지 가는 도중에서부터 호흡장애로 고통이 심했고 도문 변방대에 도착하여 남편이 차에서 안아서 내리고 지향이와 둘이서 손발을 주물러주면서 좀 간호해주고 가게 해 달라했으나 남편을 재촉하여 차에 태우고 가버렸다.

먼저 지향이의 몸 검사를 해서 데리고 들어갔고 운신도 못하는 나를 병사들을 시켜 데리고 올라가라하니 2층에 있는 감방으로 그들은 팔을 하나씩 잡고 끌고 올라가는데 층계를 하나씩 오를 때마다 다리가 부딪히면서 두 다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감방 안에서 많은 시간이 지나서 겨우 정신을 회복했다. 지향이가 부추겨 심문 받으려 나갔다 들어오면서 나는 옆 감방에 있는 경찰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왔던 미란이를 보게 되었는데 그에게 오른 손을 들어 승리하라는 표시를 했다. 다음 날 운동을 시킨다고 마당에 모두 모이게 하여 미란이를 만나게 되였는데 그는 참 미안하다고 하면서 너무 당황했고 겁이 나기도 해서 아무 말이나 다 하게 되였는데 결국 지향이네 까지 말하게 되어 정말 미안해서 어쩌냐고 했다. 그러는 그에게 우리는 실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곁길로 갈 때도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고 우리 실수까지도 용서하셔서 뜻을 분명 이루어 가시니까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만 바라보자고 했고 가야할 리유가 있으면 어떤 식으로 해서라도 가게 하실 것이고 아니면 아니게 하신다고 하자 힘이 난다고 하였다.

알고 보니 미란이는 한국으로 가려다가 일행 셋과 한국 사람까지 모두 잡히게 되였는데 하얗게 질려 있는 얼굴, 새파랗게 되여 떨리고 있는 초들초들한 입술, 이 연약한 여자에게 이제 어떻게 견뎌낼까 하고 생각하니 미란이가 무척 걱정스러워졌다. 며칠 후 누워 앓고 있는데 남편을 심문하던 사람이 와서 나를 만났는데 몸도 많이 아프고 해서 내보내자고 한다면서 나가서 치료를 받으면서 있으라고 하였다. 남편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제 데려다 주겠으니 어데서 기다리라고 하였고 나는 감사하다고 하면서 그러면 딸은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 먼저 나가서 다음날 딸도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1층까지 내려갔는데 딸 지향이 생각 때문에 가슴이 떨리고 아파나더니 손발이 저려나고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차안에서 도중에 사고 나면 어쩌느냐고 하면서 정 바쁘면 들어갔다가 안정하고 래일 다시 오겠다고 했다. 내 절로 차에 일어나 앉지 못하니,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하며 그들은 안정 잘하고 있으라며 떠나갔다. 병사들이 나를 팔을 당겨 2층으로 끌어 올리는데 잡아 밀어 살갗이 찢어졌고 겨우 나아가던 다리도 멍이 들었다.

사실 남편을 심문하던 공안이 남편에게서 우리가 만난 것과 살아온 사연들을 들으면서 힘든 생활 속에서도 의지하여 애써 살아 온 것과 눈이 점점 더 나빠져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여 가족을 먹여 살리기 힘들어 배추랑 주어먹던 일들이며 심장병이 심한 안해는 이제 조선으로 나가면 살아 돌아오긴 힘들며 자기는 이젠 어데 갈 데도 없는데 안해와 가정이 자기에게 전부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다 잘되게 해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를 데려 내가려는 눈치를 알고 변방 소장이라는 한족 사람은 다음날 아침을 먹이고 나서 인차 조선으로 호송해 갔다. 어머니 정신차리시오 조선에 왔습니다. 하는 지향이의 소리를 들으며 애써 몸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고 호흡장애가 생길 때마다 앞이 캄캄해 졌다. 거기서 차에 실려 군 보위부로 갔는데 어둡고 침침하여 변소냄새와 희박한 공기로 하여 가슴은 눌리우는데 몸 검사라며 욕하는 소리, 심문하며 소리치고 때리는 소리, 비명소리에 정신가지 혼란해지며 병세는 더 심해갔다. 감방 안에 차고 넘쳐서 복도에까지 빼곡히 앉았는데 그래도 나는 누워있을 수 있게 하여 복도에 누워있었다.

심문하려고 몇호 몇번을 부르면 1분 안에 문을 열고 달려 나와 무릎 꿇고 두 손을 머리에 얹고 벽에 마주 엎드려있어야 하는데 1분 안에 못하면 몇 번이나 반복시키면서 때리고 차고 했으며 심문하면서 때리는 일이 많은데 여럿이 알고지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에게서 교회에 다닌 일과 목회자들 혹은 한국 사람만난 일들이 실토되면 그것을 가지고 해당되는 사람들이 그 말들이 맞지 않다고 사정없이 때렸다.

심문받으려 나갔던 사람들은 거의다가 절룩거리며 들어왔고 퍼렇게 된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하늘이라고도 불리고 종교라고도 불리는 한 청년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탄로되었는데 안 믿겠다고 하면 되는데 끝까지 믿겠다고 하니 낮이고 밤이고 불러내다 조롱하고 때렸다. 일찍 부모 잃고 중국에 가서 교회의 사랑 안에서 자란 청년이었는데 “하나님은 없다. 개새끼 죽어라”하고 말하면 용서하겠다 해도 절대 “하나님은 인간모두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하면서 안 된다고 했고 그들이 묻는 말에 성경의 말씀을 말해주었다. 한참 듣고 난 후에는 하나님을 저주하라 하였으나 안 된다고 했다. 다시 안 믿겠다고 하라고 했으나 안 된다고 하자 상급의 사람들을 불러다가 어느 날엔가는 이놈이 그놈이냐고 하면서 오른 뺨때리면 왼뺨 돌려대라고 했다니 맞아보고 하나님이 너를 정말 도와주는 가보라면서 귀뺨을 이쪽저쪽 수십 번 때리고 발로차고 머리를 짓찧으면서 마구 때렸다. 비트는 듯한 비명소리-아버지-하나님 나를 죽게 해 주세요-한참 때리고 나니 저들까지도 힘이 들어 헐떡이며 혀를 내밀라 하고는 항복하라면서 혀를 내밀라고 했다. 혀 바닥에 찬 쇠관을 갖다 대였다.

매 맞고 먼지투성이 되여 감방에 들어간 그 청년은 두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이 기도하고 있는 듯싶었다. 터진 입술사이로 목이 말라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린다. 밖에서 일하고 난 작업조들이 들어왔는데 철문 밑에 손바닥만한 작은 문 뚜껑이 열리더니 한 청년이 손에 누룽지 쪼각 세 개를 내밀며 지향에게 이걸 물에 담그었다가 어머니를 주라고 하면서 먹고 힘내라고 하였다. 작업 나갔던 사람들에게 몇 쪼각씩 나눠주었다는데, 그 배고픈 속에서 먹지 않고 남겨서 내게 준 것이다. 웬 청년이냐고 지향에게 물으니 조선으로 나오는 날 같이 나온 사람들 중의 한사람인데 교두에서 어머니가 몹시 앓을 때 말없이 눈물 흘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밥그릇은 작은 알루미늄 그릇인데다 뭉텅뭉텅 세 군데씩이나 잘라있어서 멀건 국물이라도 더 담을 수도 없다. 이런 그릇에 담긴 죽을 둬 모금이 식사의 전부인데 얼마나 배가 고픈 것을 참기 어려운데 누룽지 세 쪼각은 그것은 밖에서 쌀 백석보다 더 큰 것 이였다.

늘 내 옆에서 지향이와 함께 나를 간호해 주던 26살 난 처녀가 있었는데 조선에서 중국으로 갔다가 한국으로 가서 살던 한 남자가 부모형제생각으로 중국에 나왔다가 이 처녀와 서로 사랑하게 되었는데 둘이 함께 그 남자의 남동생과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해서 한국으로 가려다 위급한일이 생겨 뛰기 시작했는데 이 처녀만 잡혀 나왔다. 남자에 대한 후회 없는 사랑으로 죽어도 원이 없다며 말하는 담담해 보이는 얼굴과 눈빛, 입. 한국으로 가려했으니 그 처녀는 또 이제 어떻게 되겠는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