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증언] 새 삶을 찾아서 ④

[탈북자 증언]

 

 

새 삶을 찾아서 ④
 

 

양 ㅇ ㅇ(탈 북 여 성)

<질의응답-속>

저는 1조 하연지라고 합니다. 항상 아저씨 탈북자 분들만 뵙다가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을 만나서, 그리고 너무 강해보여서 뵙는 것만으로도 떨립니다. 저는 세 가지 정도의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우선 저희가 수련회에 온 목적이 자원봉사를 위한 것인데, 저희가 대하는 대상자들이 사춘기에 있거나, 아니면 저희와 같은 또래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 나이 또래의 북한 소녀들의 심리가 대단히 궁금해요. 또 탈북을 하게 된 첫 번째 동기가 생활하시다가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라고 하셨잖아요. 다른 북한의 고등학교를 졸업할 정도의 나이가 된 소녀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희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이나 다른 여러 가지 꿈들을 갖고 사는데 북한에서는 제 또래의 소녀들이 어떤 꿈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언니께서 지금 한국에 오셔서 대학에 입학하시려고 준비를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꿈을 하나 정하시고서는 대학을 생각하고 계신건지가 궁금하거든요. 그리고 꿈을 만약에 정하셨다면 그 꿈을 어떻게 찾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세 번째는 지금 저희 조가 역할극에서 맡은 사례가 어떤 북한 분께서 같은 탈북자 동포를 굉장히 싫어하시는 사례에요. 언니께서도 지금 남한에서 다른 탈북자들을 보실 때, ‘사람들이 싫고 난 북한에서의 모든 기억을 떠올리기 싫다’ 이런 느낌을 받으신 적이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탈북자가 탈북자를 싫어한다’는 말은 조금은 맞는 말씀이에요. 북한 사람들끼리 서로 안만나려고 하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대전에서 살면서 만나는 사람이 제 나이 또래 딱 3명밖에 없거든요. 저희 교회 집사님이 탈북자들끼리 다 모여서 같이 식사도 하고, 같이 소개도 하고 의지도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탈북자들 만나기가 조금은 싫어요. 특별히 모든 탈북자가 다 싫은게 아니라 같이 지냈던 사람이라던가 힘들 때 같이 했던 사람들이 더 만나기 싫어지더라구요. 그 이유는 저도 긍금해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봤는데 서로 어려운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는 무슨 일들 같은 것이 떠오를까봐 그러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자연히 싫어지고. 그리고 잘못 하는거 보면은 괜히 내 잘못이 될 수도 있다라는 선입견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것도 아닐지. 그리고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누구 이야기 또 하게 되고 또 하게 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이 싫어서 안만나기도 할 것 같구요. 또 자유를 잘 모르고 또 자유를 어떻게 누릴지 모르는 부분 때문에 자유 하면은 모든 것이 다 이루어 지는줄 아는 그런 부분 때문에 혹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예를 들면은 자유에도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고 또 지켜야 할 질서가 있는데 자유 세상이니까 내가 이렇게 생긴 사람이니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라는 배짱으로 질서를 잘못 느끼는 분들 때문에 안타깝고 미워질 때도 있을거구요. 탈북자 하면 한사람 때문에 대부분이 말 들을 수 있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어쩌면은 미워하기 마련이죠. 질문하실 때, 대학교를 가는데 어떤 꿈이 있는지 물으셨잖아요. 저는 꿈이라고 하면은 교원이 되고 싶어요. 교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릴 때 꿈이었는데 한국 들어와서부터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가지고 있는 정말 힘들고 외로운 기억이 어린 애들하고 같이 뛰놀다 보면 사라지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고 내가 행복해요. 너무 깊이까지 생각하고 조심해야 하고 하는 어른들보다 그리고 항상 부담감을 느끼는 또래 친구들보다 내가 행복한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과 휩쓸리다 보면 행복하단걸 느껴요. 이건 누구나 다 느끼는 건가요? 이 나이 먹고도 어린 애들하고 같이 풀밭에서 뒹굴고 놀기도 해요. 친하거든요. 저는 그게 정말 행복해요. 그래서 교원이 돼서 거기서 행복을 찾고 싶어요. 어쩌면은 정말 한참 재미있을 20살 그때에 제일 힘들었으니까 그걸 한번 느껴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구요. 암튼 저는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해요. 이런 행복이 항상 있는 건 아니겠지만, 어차피 먹는 나이잖아요. 그래서 교원이 되면 항상 같이 할 수 있어서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같은 나이 또래의 생각을 물어보셨죠.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셨어요?(질문자:19살이요) 19살이요? 여기하고 다른 점이 이곳 사람들은 19살, 심지어는 제 나이가 돼도 아기처럼 응석부리는 사람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다들 어른스러워요. 19살이면 벌써 어른이라고 생각하죠. 그만큼 애들이 다 성장이 되어 있어요. 저처럼 환경이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여기 같은 나이 또래보다 엄청 빠를 거예요. 애들이 노는 것을 보면 아직 애구나 싶은데,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어른이에요. 그러니까 애들이 이곳 사람들 보다 조금 무게가 있어요. 여기 분들은 나는 아직 어리다라고 생각하시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북한에서는 벌써 19살쯤 되면 앞으로 결혼까지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성숙되어 있어요. 그 이유가 그쪽에서 성장 과정이 대부분 15살 쯤 되면 군사훈련도 시키고, “어른이다 너는 이제는 군사훈련도 배워라” 이런 식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아마 그런 과정 때문에 이곳과는 다르게 성장하는 것 같아요. 또 제일 민감한 나이잖아요. 받아 들이는게 엄청 빠르죠.

그러면 어른이 앞으로 할일이 뭔지도 생각할거 아니예요. 물론 사람 사람마다 틀리지만요.

여기 한국분들하고 같이 대화를 해보면, 저 같은 탈북자들하고 나이 어리신 분들하고 많이 만나잖아요, 그러면 재미있게 말을 하려고 많이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어떤 심각한 말을 하거나 분위기가 무거워지면 재미있는 말을 하려고 많이 노력하시는데 그럴 때는, 그냥 같이 망가져 주세요. 북한에서 살아온 과정이 과정이니만치 조금은 과격한 면이 있어요. 정말 친해지다 보면 받아들이기 어색한 부분도 있을거예요. 그냥 같이 망가져 주시면 굉장히 빨리 친해질걸요? 물론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이 그럴걸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이고은이라고 합니다. 저 앉아서 할께요.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모르고 있다가(울음)…… 제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거란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나네요.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제 생각에는 언니가 한국으로 오실 수 있게 된 것도 하나의 혜택이라고 감히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북한내에서 어떤 특수한 경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가 궁금한 것은 그런 특수한 경우가 언니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언니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할텐데 아니면 어려움을 겪고 있을 텐데, 언니에게 기회가 주어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 이유는 탈북하게 된 동기에 가까워요.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도 많아요. 알다시피 정말 탈북하고 싶어도 국가적인 처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서 못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제가 탈북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일단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는 어려웠을 당시 ‘두만강 건너가서 식량을 구해온다더라. 그리고 중국에 가면 돈 벌 수 있다더라.’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누가 어떻게 건너갔다 왔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북한에 들어와서 사는 중국 사람들이 있어요. 화교들이 있거든요. 화교들이 사람을 구해요. 왜냐면은 아까도 말씀하셨다시피, 북한 사람들을 중국으로 데려가서 팔아서 돈벌이를 하는 거예요. 인신매매를 하는 거죠. 그런 이유로 사람을 구해요. 누구 좀 예쁘다 싶으면 ‘너 가지 않을래?’ 하면서 꼬셔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저희 언니가 그것을 알았어요. 언니가 그것을 알았고 언니가 저한테 말을 해서 언니가 먼저 탈북을 했고, 그 다음날 저한테 편지를 써서 보냈어요. 언니 글씨로 여기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건너오라고, 자기 잘있다고 편지를 썼어요. 글씨를 보니까 언니 글씨가 맞아요. 저도 그래서 어떻게 보면 팔렸죠. 결국에는 팔린 사람이 된 거죠. 다들 넘어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이런 방법으로 오시는 거예요.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도망쳐서 오시는 분들도 있긴 한데, 저 같은 케이스는 팔린 거지요. 화교 할머니가 사람을 구하면서 ‘내가 너 간 다음에 너희 집에다 보태줄게.’ 이런 약속을 하고 가고, 집에는 중국 가서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고 가는 거예요. 중국에 가서 언니를 다시 만나기는 했는데, 언니하고 그 자리에서 헤어졌어요. 두만강을 건너와서 헤어졌어요 저는 할빈으로 갔고 언니는 용정으로 간다는 얘기만 들었을뿐 다시 연락은 못했어요.

남자 분들이 적응 과정은 더 어렵다고 해요. 여자들은 그래도 결혼이라도 하면 그나마 어딘가 은신할 곳이라도 있는데, 남자들은 산에도 숨어 있고, 움막 같은 곳에 있다고 해요. 어떤 사람은 농촌으로 가서 일해주고 삯을 받고, 어떤 분들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많이 가신다고 해요.

북한에서 다 탈북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탈북하게 된 동기가 중요하죠. 제가 아까도 제가 탈북하게 된 동기를 말씀드렸지만 여러 가지예요. 저도 그 때만해도 하루 한끼 먹기 운동이라는 걸 벌일 정도로 정말 배고팠을 때도 있고, 더 이상 참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탈북을 했습니다.

저는 사회복지학과 김새암이라고 합니다. 문화적으로 적응하는데 많이 힘든 점도 있었었지만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 잘 적응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같은 탈북자끼리 만나는 걸 서로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들이 자유를 올바르게 누리지 못하는 모습이 보기가 싫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탈북동포돕기운동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같은 한민족이라고 생각을 하고, 또 탈북해서 오신 분들도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증을 가진 한분의 우리나라 국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국민으로서의 권리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주장할 수도 있어야 되는데, 예를 들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정규적인 교육을 받아서 자유나 권리에 대해서 생각하고 찾을 줄 알지만,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그런 것들을 알지 못해서 그것을 올바르게 누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모습을 단지 보기 싫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탈북한 사람들 대상으로 어느 정도 교육을 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하고 싶은 것은 처음 내려왔을 때, 어떤 문화적인 차이가 있었고, 직업에 대한 교육을 얼마나 받으셨으며, 그것이 얼마나 필요, 충족이 되셨는지 그리고 만약에 더 필요하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그걸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북한에 대해서, 탈북자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가실 거예요. 그런데 제가 말 하는 것은, 제가 보는 부분입니다. 그게 정확히 그렇다라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가 겪은 안에서만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모든 탈북자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 그렇게 살아온 것도 아니에요. 저는 솔직히 탈북자를 싫어하는 이유를, 개인적으로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것도 일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계속 탈북한 사람들하고 있기보다 나가서 여기 사람들하고 어울려야 빨리 적응이 되니까 그런 것도 있고, 또 그 감정은 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만나면 반가우면서, 반가움과 동시에 서로가 마음을 안보이려고 하고 감추려고 하는 것이 있어요. 문화적인 차이는 딱히 어느 것이다 라고 말씀은 못드리겠어요. 어느 순간 그리고 어느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다라는 답은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남한에서는 자기주장을 언제든지 얘기할 수 있는 것을 배웠지만 북한 사람들은 항상 복종하는 것만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누가 대놓고 뭐라고 하면 굉장히 상처받는 것도 일종의 문화 차이죠. 그리고 저는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직업에 대한 교육은 전혀 받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어떤 직업훈련 과정이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직업훈련을 이미 받아도 북한 사람들에 대한 남한사람들 즉 사장님들의 편견이 있는 한에는 직업을 구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다들 선호하는 직업훈련 과정은 컴퓨터 다루는 것이라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