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수기] 나의 북한생활 30년 ⑧

[탈북자 수기]

 

나의 북한생활 30년 ⑧

다음은 납북어부 출신 이재근시가 월간조선사에서 간행한 <엽기공화국 30년 체험>을
간추린 글로, 필자의 출판사의 허가를 받아 싣는다.

 

이 재 근 (납북어부 출신 탈북자)

낚시질

1990년 7월.
양수기 운전공 일은 참으로 편했다. 하루 6시간동안 물만 보내 주면 그것으로 나의 하루 임무는 끝이 났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뭔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유천에 가서 고기를 잡기로 했다. 낚시를 하려면 우선 그물망이 있어야겠기에 0.5mm 나이론사를 구해 투망을 뜨기 시작했다. 약 3개월만에 그물이 완성되었다. 그물에다 돼지피를 묻혀서 그럴듯하게 물도 들였다.

지난번 가스 중독에서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약 6개월이 걸렸다. 그 후에는 다시 출근하여 정상적으로 일을 했는데 그때부터 시간만 있으면 주유천에 가서 낚시질을 했다. 고기 잡는 재미도 쏠쏠했다. 격주로 낮 근무와 밤 근무를 번갈아 했는데 밤일 할 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기를 잡았다. 낮 근무일 때도 오후 5시 이후에는 투망을 자전거 뒤에 싣고 주유천에 가서 한시간만 잡으면 우리 식구 반찬거리로는 충분히 먹고도 남았다. 남은 것을 돼지에게 먹였더니 4~5개월 후에 돼지 몸무게가 100kg은 너끈히 나갔다. 그러니 돈벌이도 괜찮은 편이었다.

100kg짜리 돼지를 잡으면 지육이 약 70kg이 나오는데, 그것을 장터에 내다 팔면 1kg에 200원씩 받으니 1만 4000원이란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만약 돼지를 농장과 연계하여 알곡으로 받으면 돼지 100kg은 강냉이 300kg과 맞바꿀 수 있다. 결국 돈을 받고 팔아도 1만 4000원이고, 알곡과 교환해도 1만 4000원이란 돈이 되는 셈이다.

노력한 만큼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일을 하면 재미도 나고, 또 계속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1993년 3월.

함주군과 정평군 사이에 광포라는 넓은 호수가 있다. 식량난을 해결하려고 나는 광포 호수 지선(支線)에서 게잡이를 했다. 이 지선은 함주군에서 시작하여 읍을 통과하면서 인근의 논과 밭에 물을 대주는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는 강이다.

대개 3월 15일부터 4월 30일 경까지는 게가 굴 속에서 나와 기어다니는데 잘 잡히는 날은 하루 저녁에 보통 200~400마리는 너끈히 잡을 수 있으며, 잡은 게를 장에 내다 팔면 1600원 이상은 벌 수 있다. 마리당 3~4원을 받으면 하루 저녁에 2년간 죽자고 일한 노임과 맞먹는 돈을 손에 쥘 수 있으므로 이 일은 상당히 수입이 좋다고 봐야 한다.

게를 잡으려면 게두레박을 만들어야 한다. 먼저 게가 빠지지 못할 정도의 그물을 구한 다음 둥글게 만 철사와 연결해 두레박 모양으로 만든다. 게두레박이 완성되면 그 가운데에다 가자미 반토막이나 붕어 한마리를 매달아 물속에 드리워 놓는다.

보통 두레박을 30~40개 정도 만들어서 10m 간격으로 물 속에 드리워 놓는다. 그리고는 20분마다 두레박을 끌어올려 게가 들어 있으면 꺼내어 그물주머니에 담고, 미끼가 없어졌으면 다시 미끼를 매달아 강에 던져 놓는다. 칸델라를 켜놓고 두레박을 끌어올려 그 속을 털어 보면 많이 잡힐 때는 한 두레박에 네댓 마리 이상 나올 때도 있다. 밤새도록 한숨도 자지 않고 계속 그 일을 반복해도 게가 잘 잡히면 지루한 줄도 모르고 밤을 보낸다. 혼자 있을 때는 좀 무섭기는 하지만 내가 사람 때리는 기술이 좀 있는지라 큰 걱정은 없다.

정평 광포 호수에서 게를 잡아 수입을 올린다는 소문이 퍼지자 수백명의 사람들이 게를 잡겠다고 떼거지로 광포로 몰려들었다. 그때부터 게도 잘 잡히지 않고 밤새 잡아봤자 70~100마리 정도밖에 소득이 없었다. 100마리만 잡아도 장에 내다 팔면 300~350원은 벌 수 있고, 그만한 돈이면 뒷거래로 식량을 사와도 우리 세 식구 정도는 5일분의 식량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죽자고 광포로 몰려들었다.

1993년 4월 20일.

나는 미끼에 쓰려고 붕어와 가자미를 각각 100원어치씩 도합 200원어치를 마련해서 광포로 게를 잡으러 갔다. 밤 10시경까지 부지런히 두레박을 끌어올렸는데도 겨우 40마리 밖에 잡지 못했다. 그때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군인 두명이 다가왔다.

“여기서 뭘 하오?”
“보다시피 게를 잡고 있어요.”
“구경 좀 합시다.”
“얼마 잡지 못했소이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보자고 하면서 전깃불로 그물주머니를 비쳐보는 것이었다.

“이 게는 우리들이 먹어야겠다.”

“지금껏 잡은 것이 40마리인데 다 가져가면 어떻게 합니까? 절반만 가져가시오.”

그러자 놈들은 자동보총(자동소총)에 탄알을 재어 넣으면서 협박을 했다.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가? 장군님의 전사들이 먹고 싶어하는데 절반이란 말이 어데서 나오는가? 이놈의 영감, 콩알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그들은 공포를 한방 쏘았다. 그래도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놈들은 잡아 놓은 게 40마리와 미끼로 가져왔던 가자미까지 몽땅 들고 가버렸다. 목에 전선줄을 감은 꼴을 보니 행색이 통신병 같았다. 통신기를 멘 놈과 자동보총을 멘 놈 둘뿐이니 마음만 먹으면 저 두 놈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처치해 버릴 수도 있지만,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고 그들에게 뛰어가서 사정을 했다.

“당신네들이 먹는 것은 좋은데 게를 잡겠다고 온 사람이니 게는 가져가더라도 미끼는 남겨놓고 가야 할 것 아니오? 또 잡아야 빼앗아 먹을 수 있지 않겠소? 그러니 가자미는 돌려 주시오.”

그놈들도 어쩔 수 없었던지 가져간 가자미의 절반인 다섯 마리만 주고 나머지는 모두 가져가 버렸다. 영락없이 죽 쑤어 개 준 셈이 되었다. 분통이 터져 더이상 잡고 싶지도 않아서 새벽 3시에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향해 발길을 돌렸다. 중간쯤 왔을까. 한개 분대 가량의 군대가 나타났다.

“어디에 갔다 오는 거요?”

“게잡이 하러 광포에 갔다 오는데 잡은 게는 몽땅 털리고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래? 우리들은 이 부근을 순찰하는 군대인데 확인할게 있으니 모두 검열해야겠다.”

“하겠으면 하시오.”

나는 게두레박을 조였던 짐바(필자 注:짐을 묶을 때 쓰는 줄)를 풀어 주었다. 다 털렸는데 네놈들이 조사해 봤자 먼지밖에 더 나오겠는가. 아무 것도 나오지 않자 그놈들은 작당을 하여 내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놈의 영감, 간첩 아닌가?”

그들은 다시 자건거 앞에 매달아 놓은 도시락과 마대를 뒤졌다. 마대 속에서 입도 대지 않은 저녁 도시락과 게 여덟 마리가 나오자 공탕(허탕)은 아니라면서 모두 약탈해 갔다.

“밥은 먹어도 곽(도시락)은 돌려줘야 되지 않겠소?”

내가 따라가면서 항의하자 놈들은 공포를 쏘며 행패를 부렸다. 정말 치사하고 더럽게 놀고 있는 인민군, 김정일 군대는 어디에 가도 확실히 티가 났다.

몽땅 빼앗기고 힘없이 자전거를 끌고 주유천 다리에 이르자 그 곳에서도 나와 마찬가지로 군인들에게 잡은 게를 몽땅 털린 게잡이꾼 셋이 빈 자전거만 세워놓고 내일 끼니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 저녁에 보통 80마리 이상은 올리는 낚시꾼들이었다.

“게를 약탈해 간 놈들이 그 많은 게를 다 먹을 수는 없을 터이니 내일 아침 일찍 장터에 가면 틀림없이 그놈들이 게를 팔러 올 것이다. 그때 놈들의 덜미를 잡자.”

피해자 넷이서 합의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기가 무섭게 장에 갔더니 아줌마들 몇이서 게를 팔고 있었다. 피해자들은 게장수에게 물어 보았다.

“이 게들은 어데서 구했습니까?”

“오늘 아침에 군인들에게서 넘겨 받았어요.”

“그 군인들은 어데로 갔는지 아시오?”

“돈을 받더니 술집 골목으로 밀려갑디다.”

우리들은 술집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군인 여섯 놈이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잠시 후 경무원(필자 注:부대 밖에서 행동하는 군인의 규율을 단속하는 임무를 맡아 수행하는 군인) 두명과 피해자 한명이 함께 왔다. 경무원이 군인들에게 다가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