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수기]나의 북한생활 30년 ⑮

[탈북자 수기]

 

나의 북한생활 30년 ⑮

다음은 납북어부 출신 이재근시가 월간조선사에서 간행한 <엽기공화국 30년 체험>을
간추린 글로, 필자의 출판사의 허가를 받아 싣는다.

 

이 재 근 (납북어부 출신 탈북자)

두 모자의 피눈물 나는 대탈출, 그 두번째(속)

한편, 그 당시 나는 손가락 골수염 때문에 함흥의대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치료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어찌나 쑤시고 아픈지 참지 못할 정도였다. 함주에 가서 전에 하던 것처럼 뽕나무 잿물 뜸질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픈 손을 어깨에 고정시키고 남은 한손으로 뽕나무를 해서 혼자서 낑낑대며 집으로 끌고 와서 이전에 하던 방식대로 뽕나무 잿물을 만들어서 그 물에다 손을 담그고 있었더니 한결 시원하고 통증이 좀 멎는 것 같았다.

이튿날 새벽녘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에 문을 열어 보았더니 처와 아들이 몰골이 몰라볼 정도가 되어 눈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굶어서 누렇게 뜬 얼굴에 배는 등에 붙어 있고 옷이며 신발은 때에 절어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얼른 둘을 방으로 데리고 와서 자초지종을 물어 보니 또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그 산삼과 고서를 구하느라 갖은 애를 다 쓰고 돈도 무척이나 많이 들였는데 또 실패를 하다니!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산삼만 중국에 무사히 가져가서 팔았어도 중국돈 1000원(元)은 손에 쥘 수 있었을 것이고, 그 돈이면 중국 어디에도 갈 수 있는 차비와 식비는 충분했을 터인데 그냥 실패해 버리다니…….

가슴을 치고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번 실패를 거울 삼아 다음에는 혜산으로 가지 말고 도문(圖們:중국 길림성 동쪽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도시) 앞 남양으로 가라고 아내에게 일러 주었다. 차비는 손이 낫는대로 구해 주겠으니 그 동안 집에서 몸이나 추스리라고 두 모자에게 당부를 했다.

간부용이 된 구호약품

1998년 4월.

아침 일찍 뽕나무 잿물이 든 방통을 들고 함흥의대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낮잠을 자려고 누워 있는데 손이 너무 아파서 계속 펴고 있었더니 팔이 몹시 저렸다. 2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저려서 팔을 보았더니 수술한 부위의 실밥 옆에서 피가 실오리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어나서 침대 밑을 들여다 보니 병실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피가 나와요!”

내 고함소리를 듣고 침대 저쪽에서 주패(트럼프)를 치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내 손목을 고무줄로 힘껏 동여맸다. 그 즉시 의사실에 알리고 과장실에도 알려 과장이 와서 세 바늘 꿰매고 나서야 피가 멎었다. 그 날 흘린 피는 약 2kg 이상은 될 것이라고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말했다.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지 오한도 나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몹시 숨이 찼다. 병원에서 집까지는 30리 길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 열번도 더 쉬어야 했다. 문득 함주에 가서 군당책임비서를 만나 대책을 강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군당청사에 가서 6과 지도원을 만났다.

“책임비서를 만나려고 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만나려는지 그 이유를 나에게 말하시오. 들어보고 전할만하면 전하고, 또 전달이 되어도 책임비서가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만날 수 있어요.”

“책임비서를 만날 이유가 세 가지 있는데, 첫째는 손이 심하게 아프니 손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좀 해결해 달라는것이고, 두번째는 남양 국경까지 갈 수 있는 처의 증명서를 한장 떼어 주고, 셋째는 나의 조선은행 함주지점 통장에 있는 5000원 중에서 절반만이라도 찾게 해달라고 만나려는 것이오.”

그 날은 책임비서를 만나지 못하고 다음날에야 면회가 허락되어 나는 책임비서실로 들어갔다.

“왜 날찾아왔는지 말해 보오.”

“나는 고향이 남조선 울산입니다. 그런데 지금 손에 골수염이 와서 병원에서는 손목을 잘라야 한다고 하니 손목을 자르면 앞으로 고향 가서 형제들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약만 있으면 손목을 자르지 않고도 치료를 할 수 있다니 약을 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방조(傍助)를 받아서 고생 않고 잘살고 있으나 내 처는 친정집도 중국에 있고 직계 형제들도 그곳에 많이 살고 있는데도 증명서를 내주지 않아서 가지 못하고 있어요.

또, 은행에 돈이 없다고 하지만 안면 있는 사람들 네댓명 정도는 4000~5000원씩 매일 찾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5000원 뿐인 내 통장에서 3000원만 찾게 해주면 그 돈으로 차비를 해서 중국에 가서 친척의 방조를 받아 오려는 것입니다.”

“그것 뿐이오?”

“예.”

그러자 책임비서는 그 자리에서 함주군 약국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쪽에서 약이 있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약 문제가 해결되자 다음은 안전부 2부에도 전화를 하여 증명서 건도 해결이 잘 되었다. 그 다음은 은행 지배인(은행장)에게 연락을 하니까 돈이 없다고 하는지 그 사람의 통장에서 우선 3000원만 주라는 지시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 요구사항을 앉은 자리에서 시원하게 해결해 준 다음 그는 내게 한마디 주의 주는 걸 잊지 않았다.

“국경에 가서 배고프다고 월경을 해서는 안 되오. 조선 사람은 죽어도 주체를 지키다가 죽어야 합니다. 절대 중국에 넘어가지 말고 친척에게 연락해서 꼭 방조를 받아 오도록 힘쓰시오.”

그 길로 나는 곧장 함주약국으로 달려 갔다. 약국장을 만나 책임비서가 보내서 왔다고 하니까 함께 약이 있는 창고로 가자는 것이었다. 창고문을 열자 그 안에는 포장이 잘 된 약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상표를 들여다보니 독일제, 미국제, 프랑스제 등 세계 각국의 고급 약들이 수두룩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약은 세계보건기구에서 북에 지원한 약품이라고 했다.

몇년 전부터 계속 지원을 받아 왔으나 이 사실을 홍보도 하지 않고 신문이나 방송에도 보도되지 않았으니 담당자들만 이 사실을 알고 있을뿐 그 외의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도 시장에 외제 약품이 많이 나온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세계적인 기구가 도와 준다는 사실은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그 날 나는 독일제 항생제 한달분을 타와서 오후에 두알을 먹었다. 먹고 일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숨이 차고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무언가 목구멍을 틀어막는 것 같았다. 부작용 때문에 항생제 주사를 맞지 못하다 보니 먹는 항생제도 듣지 않았던 것이다. 버리려니 아깝고 해서 장마당에 가져갔더니 장사꾼들이 서로 사겠다고 야단들이었다. 350원에 넘겨 주고 그 돈으로 입쌀 두되와 부식물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국장이 잘 사는 이유도, 병원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군병원 약을 빼돌린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니 외국에서 보내준 약은 일반 평민들은 구경도 못하고 오직 간부들만 쓸 수 있는 간부용이 되고 만 것이다.

다음날 은행에 갔는데 1000원밖에 내주지 않았다. 돈을 받아 쥐고 지배인실에 가서 따졌다.

“책임비서는 3000원을 주라고 했는데 왜 1000원만 주는 겁니까?”

“그것도 보위부와 토론하여 생각해서 준 것이니 잔말 말고 돌아가시오.”

다음은 안전부 2부에 가서 지난번에 신청한 남양행 증명서 건(件) 때문에 왔다고 하자 보위부에서 부결시켰다는 것이었다.

“책임비서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까?”

“받긴 받았는데 보위부에서 부결시키니 우리로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힘없이 집으로 돌아오다가 공장 정문 앞을 지나려는데 보위부 지도원이 나를 불러 세우더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치 나를 죄인 취급하듯 몰아 붙이는 것이었다.

“당신은 북조선에 와서 한 것이 뭐가 있다고 책임비서를 찾아가서 돈을 달라는 둥 여행증도 해달라는 둥 성화를 부리는가? 당신은 조국을 건설하는데 피 한방울 흘린게 있어? 염치도 없이 왜 계속 달라는 거야?”

지도원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생각할수록 꽤씸했다. 나도 질세라 기세등등하게 대들었다.

“나는 조국을 위해 피 한방울 흘린 것이 없소. 그러는 당신은 조국을 위해 피를 몇동이나 흘렸소? 당신이 군대에서 땀을 흘릴 때 나도 통일을 위해 피를 흘렸소이다. 당신과 다른 점이 뭐란 말이오?”

“감히 당신이 나와 맞서도 되는 거야?”

“그래, 맞서도 되지 않고. 당신은 칼자루를 쥐고 오만데 가서 인민들의 피땀을 짜먹지만 나는 칼자루도 쥐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는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차이점일 뿐이오.”

내 말에 그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펄펄 뛰며 당장 영창에 집어 넣겠다고 악을 썼다.

“집어넣겠으면 집어넣으시오. 내가 만약 들어가는 날에는 당신은 보위부 지도원 노릇을 더는 못해 먹을 것이오. 왜냐면 내 머리 속에 당신의 비행이 모두 다 녹화되어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당신과 나는 부모 때려 죽인 원수도 아니면서 우리 가족이 중국에 가서 친척들의 방조를 받아와서 굶지 않고 살겠다는데 왜 방해를 놓는가 말이오. 도대체 그 까닭이 무엇이오?”

오히려 내가 그를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정 나를 집어넣겠으면 여기서 각을 떠서 먹으시오. 그러면 더 속이 후련하지 않겠소?”

바짝 약을 올렸더니 놈은 길길이 뛰면서 권총에 탄알까지 재어 넣고 위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