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의 삶 – 3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의 삶

 

관리소에서는 항상 먹을 것이 부족했다. 굶어 죽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 시체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 무섭지도 않았다. 특히, 1990년대 말이 가장 심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훔쳐 먹을 것도 특별히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다른 이주민의 집으로 들어가 무엇이든 훔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4월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는데 사람들은 주변에 널려있는 풀뿌리를 먹거나 강냉이를 갈아 죽을 쑤는데, 7-9kg강냉이를 집에서 말리면 2-4kg정도는 건질 수 있기 때문에 그걸로 1개월 정도는 버틴다. 도토리나무 잎사귀도 부드러워서 먹기 좋다. 그걸 다 뜯어다가 삶으면 진한 물이 우러나는데 소금물만 있으면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봄과 가을의 상황이 겨울보다는 낫다. 왜냐하면 겨울에는 강냉이 가루와 물을 섞은 죽 밖에 먹지 못한 채로 탄광에서 일해야 되기 때문이다. 식량은 몇 달에 한 번씩 주는 소금, 된장이 전부였다. 된장은 약 5개월에 한 번씩 3kg을 준다. 양이 너무 적다 보니 된장국을 끓여먹어 본 적이 없다. 이주민들은 소금을 거의 못 먹기 때문에 모두 기운이 없다. 항상 소금기가 모자랐기 때문에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부족한 소금 대신 된장을 핥아 먹었다.

돼지도 길러야 했는데, 변소에서 인분을 끓여서 돼지를 먹였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키운 돼지를 한 점도 먹어보지 못하고 모두 관리일꾼들에게 갖다 바쳐야 했다. 돼지 6마리, 12마리, 토끼 60마리를 모조리 바쳤다.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사실상 태어나자 마자부터수령님, 김정일 장군님 고맙습니다!’하는 말부터 배우는데,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관리소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저 강냉이 밥이라도 한 번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다. 우리 아이들도 9~10살 정도였는데 내가 밥 하는 방법을 알려주면 직접 밥을 해 먹곤 했다. 나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리 힘들어도 곧장 눕지 않고 돌멩이로 1~2시간 동안 강냉이를 갈았다. 방앗간에 강냉이를 빻아달라고 맡기면 돌려받는 양이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돌멩이로 강냉이를 빻았다. 딸이 밥상을 차릴 때면, 이건 어머니 밥, 이건 내 밥하면서 그릇을 내놓았다. 하지만 딸이 너무 빨리 밥을 먹는 것이 이상하다 싶어서 하루는 내가 내 밥그릇과 딸의 밥그릇과 바꿔보았다. 그러고 보았더니 딸의 밥의 양이 상당히 적었던 것이었다. 그 동안 내가 모르게 자기 밥 그릇 속에는 작은 그릇을 하나 더 얹어 그 위에 얼마 안 되는 밥만 살짝 올려놓고 태연한 척했던 것이었다. 우리 아이 마음씨가 그렇게 고왔다. 목이 메어서 음식이 차마 넘어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화병이 오는 것도 같았다.

 

 

 

 

학교생활

 

관리소에서는 아이들이 배움보다 노동을 훨씬 더 많이 한다.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을 때는 무조건 일해야 한다.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잡아가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잡아간다. 아이들은 행정일꾼들이 사는 마을에 나무를 해주고 강냉이를 조금 받을 수 있었다. 조금의 자유 시간이라도 주면 관리소를 도주할 궁리를 한다고 해서 자유 시간도 주지 않는다.

관리소 청사 옆에 학교가 하나 있었고, 그 안에 인민학교, 중학교가 있었다. 보안원 자녀, 이주민 자녀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시간을 구분해 따로따로 다니게 했다. 간부 자녀들을 위해서는 교원들도 배치되고 좋은 교육을 받아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고, 해제민 자녀들은 간부집 아이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이주민의 아이들에게는 대학을 졸업한 교원들은 배치되지 않았고, 관리원들이 가르쳤기 때문에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는 것은 별로 없다. 인민학교 1학년 때부터 대충 기초를 배우는데, 김일성 수령 혁명사상을 제일 처음 배우고, 글자를 알게 한 다음에는 셈법과 그림 그리기를 배운다. 인민학교는 4학년까지 다니고, 중학교는 5학년까지였는데, 최근에는 중학교를 6학년까지 다니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주민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무조건 탄광으로 보내진다.

학생들에게 교복을 주는 것은 인민학교 4, 중학교 5년 전체 기간에 각각 한 번씩 뿐이었다. 내가 관리소로 끌려가 그곳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열 세 살이었는데 아이들이 다 헤진 교복을 꿰매어 입고 있었다. 아이들은 따로 신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맨발로 등교하다가 겨울에 동상에 걸려 발을 잘라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맨발로 다니는 것이 모두 단련된 모양인지 아프지도 않은 듯했다. 나는 겨울에는 이불솜을 뜯어서 발을 싸매고 새끼줄로 여며서 다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