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의 삶 – 2

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의 삶

 

(편집자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어린 시절, 13살에 영문도 모른 채 들어간 18호 관리소에서 처참한 삶을 보낸 김혜숙씨정치범 수용소인 18호 관리소에서 사람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28년간 힘겨운 탄광노동잔혹한 고문과 기근에 시달렸다그러나 결국 해제민(형을 마친 상태이지만 관리소 지역 외에는 다른 살 곳이 없어서 그냥 남아있는 사람들)이 된 그녀는 사회에 나와서야 할아버지가 오래 전 월남했다는 이유 때문에 28년간 그 지옥같은 곳에서 지내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해제민이 된 후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던 그녀는 중국에서도 기구한 삶을 살고서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갖은 고생 끝에 한국에 도착해 이제껏 꽃피는 봄이 이렇게 예쁜지 몰랐다는 그녀지금은 국내·외에서 참혹한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생활을 고발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김혜숙씨의 이야기를 전한다.

 

 

 

18호 정치범수용소(관리소), 인권의 사각지대

 

내가 관리소에서 나오던 2001년 당시관리소 총 인원은 약 2만 명 정도였다이주민들은 대략 1만 7천에서 8천 명이었고관리일꾼보위부안전부 가족들은 약 3천명 정도였다수용소는 대동강 하나를 두고 한 쪽은 보위부다른 쪽은 관리소로 나뉘어져 있었다.

처음 관리소로 보내졌을 때에는 경비초소 가까이(지도상의 왼쪽)에서 살았고어머니가 농장일 하면서 옮겨간 곳이 심산이다나는 1975년 2월부터 1989년 9월까지 심산에서 살았다. 1989년 봉창리 12호 관리소가 어디론가 이전했고 18호 관리소 구역이 되었다. 18호 관리소 이주민들은 이곳으로 이주되었고예전 18호 관리소가 있었던 자리는 해제민 구역으로 바뀌었다우리는 2001년 2월 16일 해제될 때까지는더 정확히 말하면 2002년 813일에 관리소 지역을 완전히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갈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관리소의 이주민들은 인권이라는 말은 모르고개보다도 못한 삶을 산다관리소는 4m 높이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고사람들은 보위부의 통제를 받으면서 생활한다일주일에 한번 씩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외우면서 생활총화도 했다관리소는 산골이고포장된 도로는 없었다악독한 보위부 지도원이나 안전원들은 저 멀리서 이주민(이주민수용소 수감자를 일컫는 북한 말)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이면 미리부터 가래를 입 안에 문 상태에서 자신들 앞으로 오라고 손짓한다이주민이 그 앞으로 뛰어가서 무릎 꿇고 앉으면, “벌리라” 라고 한 뒤에 입 안으로 가래침을 뱉는다나도 28년 동안 관리소에 살면서 세 번이나 그런 일을 당했는데그 순간에는 도저히 가래침을 넘기기 어렵다하지만 삼키지 않으면 일생 동안 맞을 매를 한 번에 다 맞는다고 할 정도로 심하게 팬다넘기면 목으로 며칠 동안 그 역겨운 냄새가 올라오기 때문에당할 때마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관리소 내에서는 누구든 일거수일투족을 서로 감시하게 한다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도 수없이 많이 들었지만 차마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는 없었다보위원이 때리면 때리는 대로아프면 아픈 대로 그렇게 끈질기게 버텼다.

나도 하루 16~18시간동안 탄광소에서 일하다 탄가루를 많이 마셔서 기관지가 약해졌고폐종양에 걸리게 되었다작업반 15명 중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