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10대 소녀 순이의 탈북기

[증언]10대 소녀 순이의 탈북기

오 순
탈북여성

저는 1984년 함경북도 무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북한에서 식량난이 심해지자 어머니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1997년 8월에 탈북했고, 한 달 후 어머니가 저와 동생 철이를 데리러 다시 북으로 들어왔습니다. 9월 어머니를 따라 동생 철이와 함께 중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연길, 왕청, 광주에서 살았었습니다. 이곳에서 살면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에 취직해 한달 2,000원의 월급을 받았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취직해 돈을 벌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조금씩 쌓여가는 돈 모으는 재미가 아주 좋았습니다.

모은 돈으로 한국으로 가려고 이주를 도와주는 사람을 통해 2003년 9월 4일 곤명으로 이동했습니다. 곤명에 가보니 한국으로 가려고 모인 사람은 13명이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곤명의 한 여관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한국에 가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중국 공안이 들이 닥쳐 모두 잡혔습니다. 이때 어머니와 철이가 잠깐 여관을 비운 사이에 발생한 일이라 어머니와 철이는 무사했습니다. 하늘이 도운 것이지요.

탈북자 11명이 중국 공안에게 무릎 꿇고 빌면서 조사 받을 때 한국으로 가려고 했다는 문건을 고쳐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애원하는 우리가 불쌍했던지 중국 공안이 조서를 다시 작성하는데 어떤 사람은 일하는 곳에서, 어떤 사람은 여행하다가 붙잡힌 것으로 해 주었습니다.

중국에서 9월 한 달 동안을 조사한 뒤 단동을 거쳐 북송되어 신의주 보위부로 넘겨졌습니다. 북송되는 차안에서는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보위부에 도착부터 옷을 다 벗겨 알몸으로 만든 뒤 숨긴 돈을 찾기 위해 온 몸을 뒤지고 다음은 손을 머리에 올리고 앉았다 일어났다는 수십 번씩 시키는 뽐뿌질을 시킵니다. 벗어 놓은 옷의 솔기는 일일이 다 뒤져 숨긴 것이 있는지를 샅샅이 뒤집니다. 이런 검사를 일주일에 한번씩 반복합니다. 2개월 동안 보위부에서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게 했습니다. 조금만 움직이면 사정없이 때리고 욕설을 합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손들고 몇 번 변소에 가야 된다고 하면, 몇 번 가라하고 간수가 명령합니다. 화장실은 감옥 안에 있으며 밖에서 다 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볼일을 보고 난 후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이 들면 즉시 들어와 때리고,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려고 합니다. 변을 보고 난 후에 화장지가 없어 옷을 찢어 사용하거나, 물로 씻기도 합니다.

2개월 후(12월 30일) 집결소로 넘겨졌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나이가 어려보이고 잘 자라지 않아 16살이라고 속여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집결소에서의 일은 집짓는 일, 나무하는 일, 벽돌 만드는 일 등 다양합니다. 노동단련대와 같다고 봅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저녁시간에는 학습을 합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일은 하지 않지만 보위부에서 앉아 있던 식으로 책상다리하고 두줄로 나란히 앉혀놓고 아무 일도 시키지 않습니다. 식사는 강냉이 밥인데 아주 조금 주고 멀건 소금국입니다. 여름에 잡혀 북으로 송환되었기에 입은 옷이 여름옷 그대로 이기 때문에 추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20명이 넘는 사람이 한방에서 자야하는 데 좁은데다 담요 두장을 가지고 자야 합니다. 어찌 추운지 정말 힘들었습니다.

2004년 2월 집결소에서 2개월이 지나자 무산안전부에서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기차를 타고 무산까지 갔지만 미성년자인 저는 집으로 보내져야 하는데 집이 없었고, 가족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9.27 꽃제비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집과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수용한 곳입니다. 저는 하루 만에 그곳을 탈출해 중국으로 이주해 주는 아주머니에게 500원을 주기로 하고 중국 화룡으로 넘어왔습니다. 중국도착 즉시 훗아버지(어머니가 재혼)에게 전화, 훗아버지가 찾아와 500원을 지불하고 저를 광주로 데리고 내려갔습니다. 북한으로 송환당해 얼마나 혼났는지 다시는 한국으로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중국에서는 신분도 없고, 동생도 공부를 할 수 없어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불안해 다시 한국으로의 길을 택해 2004년 10월 초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곤명에 도착해 탈북여성 한명과 합류해 동남아시아 국가를 거쳐 2004년 10월 30일 시민연합 도움으로 태국에 도착했습니다.

(이 증언은 2004년 12월 태국에서 증언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