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희망을 찾기까지의 힘겨운 여정 – 2

                 희망을 찾기까지의 힘겨운 여정 ➁

 

 

(편집자) ‘희망을 찾기까지의 힘겨운 여정’은 북한에서 태어나 극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어머니를 잃고 중국으로 넘어간 임철 학생이 힘겹게 한국으로 넘어오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임철 학생의 수기를 편집해서 이야기를 전한다.

 

중국에서의 삶

친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이제 곧 아빠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알고 보니 아빠는 집을 떠나 식량을 구하러 갔으나 그 방법을 찾지 못하자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으로 넘어온 아빠를 도와준 이 아주머니를 만났고 아빠는 이 아주머니를 나의 후(後) 엄마라고 생각하라 하시며 우리를 낳아 주고 길러준 친 엄마를 죽어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셨다. 이렇게 중국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중국 엄마에게 중국어도 배우고 어느 정도 정착을 하게 되었을 무렵 우리는 우리 생활실태를 녹음해서 한국에 보내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이 손님은 우리 집에 며칠간 머무르며 지난번에 보낸 녹음 테이프의 내용과 우리의 실제 생활을 확인했다. 그 후 나는 조선족 소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전을 위해 원하지 않는 이사를 다니게 되었다. 아빠는 이러한 위험이 계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고 중국에서는 말도 모르며 한국은 우리와 한 민족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하시고 조선족으로 위장하여 한국으로 가셨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아빠에게 연락이 왔고 아빠는 일본에서 기자들이 우리를 만나러 온다고 했다. 일본기자들은 일전의 한국 손님처럼 우리의 생활실태에 대해 물어봤고 우리는 전에 대답했던 것처럼 그대로 대답했다. 얼마 후 또 아빠에게 연락이 왔고 이번엔 한 10일 후에 한국 선생님이 우리를 데리러 온다고 했고 이번엔 사정상 떨어져서 살던 고모의 딸 윤미와 할머니도 오신다고 했다. 우리가 떠난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기뻐하고 또 아쉬워했던 분은 중국 엄마였다. 비록 친 엄마는 아니지만 우리의 심정을 다 이해하고 친 자식같이 따뜻이 대해주던 중국 엄마였기에 나와 소연이도 가슴이 아팠다.

 

천국으로 가는 험난한 길

우리는 도문역에서 중국 조선족 사람을 만나 안내를 받게 되었고 우리를 포함해 15명의 탈북자가 한국으로 향하게 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기차를 타고 우리는 한참을 달리다가 베이징에서 잠시 내렸다가 다시 내몽골 지방으로 향했다. 목적지에서 내린 이후에 버스를 타고 또 한참을 가고 있는데 이제는 국경을 넘어야 한다며 몇 가지 주의 사항들을 알려줬다. 인가가 없는 곳까지 달리고 보니 옆에는 글쎄 철조망이 쭉 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것을 넘어야 된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어느덧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매졌고 우리는 행동을 개시하였다. 남자들이 짐들을 모두 철조망 위로 던져 건너가게 한 다음 철조망을 들어주면 우리는 그 사이로 기어서 빠져 나갔다. 이렇게 우리는 중국 땅을 넘어 다른 나라 땅에 들어섰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철탑을 향해 걸어가자 곧 이어 군인들이 소리치며 총을 들고 우리를 둥그렇게 포위했다. 우리는 본부로 이송됐고 곧 감방에 갇혔다. 우리는 감방에서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화장실에 갈 때는 총을 쥔 군인들과 함께 갔어야 했다. 몇 일 후 군인들이 우리를 차에 싣고 어디론가 보냈다. 도착한 곳은 중국과 맞닿아 있는 국경이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 뛰어 도망가려 했으나 이내 군인들에게 잡혔고 한 부대쯤 되는 군대들이 총을 메고 우리들에게 달라붙어 막 떼놓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땅에 꿇어앉아서 통곡하며 울었다. 이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장교들도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되자 군인들은 우리를 다시 차에 태워 본부로 갔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다음날 새벽, 갑자기 군인들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손을 묶어서 차에 태웠다. 할머니들은 다시 “주여! 주여! 우리를 왜 버리십니까?” 하며 통곡했다. 한 할머니가 중국말로 울먹이면서 “그래요. 우리를 지금 조선으로 보내는 거죠?”하고 묻자 장교는 “마음 놓으세요. 우리는 지금 조선으로 보내는 것도 아니고 경찰한테 넘기는 것도 아닙니다. 조선에 가면 죽는다는 걸 아는데 왜 조선으로 보내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아무데도 알리지 않고 그저 당신들이 가고 싶다는 곳에 가서 내려놓고 오겠으니 거기서 잘 살아나시오.” 라면서 뜻밖의 말을 하였다. 중국 장교는 우리에게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었고 우리는 장춘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중국 장교는 알았다며 곧 장춘행 차표를 살 돈을 주었다. 우리는 그 군인들이 대단히 고마웠다. 그들은 우리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장춘에 도착하는 즉시 장춘에 있는 교회 사람에게 연락했다. 조금 지나 교회 선생님 한 분이 오셨고 그분이 안내해준 집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한숨 잤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얼마 후 지난번에 그랬듯이 다시 철조망들을 넘어가서 군인들한테 잡힌 뒤 본부로 호송되었다. 나는 엎드려서도 “하나님! 하나님! 우리를 한국으로 가도록 도아주소서!”하는 마음으로 빌었다. 갑자기 군대 차들이 오더니 우리를 차에 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묶지도 않고 눈도 싸매지 않았다. 우리는 저번에 갔었던 본부로 이동했고 그곳에 몇 일을 지낸 후에 다시 기차역으로 보내졌다. 그 군인들은 우리에게 이 나라의 수도로 향한다고 말했고 우리는 이때서야 한국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를 잃고 북한과 중국을 떠돌기 3년, 먼 길을 돌아서 아버지가 있는 남한에 도착한 것은 매섭게 추운 겨울날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