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희망을 찾기까지의 힘겨운 여정 – 1

                      희망을 찾기까지의 힘겨운 여정 ➀

(편집자) '희망을 찾기까지의 힘겨운 여정'은 북한에서 태어나 극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어머니를 잃고 중국으로 넘어간 임철 학생이 함겹게 한국으로 넘어오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임철 학생의 수기를 편집해서 이야기를 전한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다는 것

나는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탄광 출신이다. 아빠는 탄광에서 일했고 엄마는 집에서 내 동생인 소연이를 돌보셨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집에도 행복한 순간들은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살벌한 식량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우리 집에 피었던 웃음의 꽃은 한 순간에 시들었다. 아빠와 엄마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신발 수리 일을 시작했다. 신발 수리를 통해 번 돈으로 옥수수 떡을 먹으며 간간히 살고 있을 무렵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같이 살게 되시면서 식량은 언제나 부족했다. 아빠는 이대로는 다 굶어 죽게 될 것이라 판단하고 식량을 구하러 떠나셨다. 아빠가 떠난 이후 아빠의 빈자리는 식량난과는 또 다른 난관을 가져왔다. 바로 석탄이다. 전에는 아빠가 탄광에서 퇴근할 때마다 석탄을 가져왔지만 이제는 아빠를 대신해서 석탄을 가져올 사람이 없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미 많이 늙으셨고 굶주림으로 건강이 좋지 않으셨기 때문에 석탄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바쁜 신발 수선 일을 하시면서도 매일 2~3시간에 걸쳐 석탄을 가지러 탄광에 가셨다. 이렇게 고되고 바쁘게 살며 정신 없이 살아가던 우리 가족에게 또 큰 슬픔이 찾아왔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우리 가족 모두 너무 슬펐지만 현실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하루하루 급급하게 살아가야 했기에 엄마는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에도 쉴 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 했다. 엄마는 결국 늑막염에 걸렸다. 너무 무거운 것을 지셔서 늑막에 물이 찬찬 것이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나 어머니께서 쉬시면 우리 가족은 굶어 죽기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아픈 몸을 이끄시고 계속 일을 하셨다. 엄마에게 유일하게 힘을 주시던 외할머니께서도 불현듯 돌아가시자 엄마의 병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그리고 비극은 찾아왔다. 어느 날 엄마의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나와 소연이에게 엄마의 병실로 가보라고 하셨다. 엄마는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 쉬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 왜 그래요?” 라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엄마는 숨을 가쁘게 몰아 쉬실 뿐 아무 대답도 없이 손만 내 저으셨다. 이러던 엄마는 갑자기 맥없이 손을 떨구셨다. 내가 웬일인가 손을 들어 엄마의 심장에 대보니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심장은 뛰지 않았다. 갑작스레 놀란 나는 “엄마! 엄마!” 하고 계속 불러보았으나 엄마는 그렇게 눈을 뜬 채로 나와 소연이의 곁을 떠나셨다. 이렇게 나는 사랑하는 가족을 다 잃었고 1학년인 동생과 함께 험한 세상에 남겨졌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을 향해

나와 소연이는 텅 빈 집에서 탄광 노동자 합숙소에서 먹을 것을 조금씩 얻어먹으며 살게 되었다. 배는 고픈데 돈이 없다 보니 우리는 그저 장마당의 먹을 것들이나 구경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우리를 불쌍히 여겼지만 자기들도 먹고 살기 힘들었기에 아무도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나를 동정해 주고 불쌍히 여겨주는 옆집 아저씨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아저씨는 우리에게 막막하기만 했던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바로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가 살아계시니 그 곳에 가서 살 것을 추천해주신 것이다. 그 아저씨는 친할머니께 전보를 보낼 수 있게 도와주셨다. 전보를 보내고 친할머니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아빠가 다니던 직장 사람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 사람은 집은 국가의 집이기 때문에 집을 국가에 바쳐야 하며 이는 군당(郡黨)의 지시이기 때문에 지금 집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을 잃고 집까지 잃게 되면 마지막 희망인 친할머니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그 사람에게 친할머니의 연락이 올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다. 다행히 친할머니께서는 늦지 않게 우리를 찾아 오셨다. 우리는 곧바로 친할머니께서 계신 곳으로 갔지만 친할머니 집에는 친할아버지,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 그리고 고모의 아이 윤미에 사촌동생들까지 대가족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형편은 같았다. 친할머니는 중국에 방문하시며 중국으로 갈 준비를 하셨고 중국에 갈 시기가 다가오자 집에 있는 가구를 다 팔았다. 그렇게 집을 나서는 날이 왔다. 우리는 모두 같이 나오면 누가 알아볼 까봐 따로따로 나와서 한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의 1차적 목적지는 삼봉이었다. 삼봉까지 가는 길 내내 누군가가 우리를 알아볼 까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삼봉에는 친할머니 지인의 집이 있었고 우리는 거기에 며칠을 지내며 두만강을 건널 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때가 되어 친할머니 지인의 인도에 따라 두만강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총을 메고 줄을 서서 가는 군대들도 많이 보였다. 그러다가 한 철길 옆에서 멈추고는 그 지인이 우리에게 “이제 강을 넘어갈 때 소리를 치거나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꼭 손을 잡고 건너가야 합니다. 그리고 저 건너편에 도착하여서는 머물러 있지 말고 빨리 뛰어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았다간 중국 변방대한테 잡히고 말겁니다. 그러니 주의하십시오.” 라고 말했다. 숲을 헤치고 가다 보니 아주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때는 겨울이 시작된 11월 말이었기 때문에 강에 들어서자마자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강에 중간쯤 들어서니 물 높이는 내 배까지 찼고 몸이 당장이라도 얼어 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너무 긴장하여 추운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강둑에 도착하기 직전에 물이 너무 깊어지면서 물이 내 목까지 올라왔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소리를 쳤다간 중국 변방대에 잡히기 때문에 크게 소리치지도 못했다. 우리는 강을 넘은 후에도 쉬지 않고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날이 질 때가지 기다렸다가 할머니의 먼 친척이 있는 마을로 향했다. 가는 길에 사람 인기척이 나거나 불빛이 보이면 엎드리곤 했는데 이 모습은 완전히 적후(敵後)에 나가는 정찰병들이었다. 목숨을 건 ‘두만강 건너기’가 드디어 끝나고 할머니의 친척 집에 도착하자 꿈에서도 보지 못한 화려한 반찬들이 우리를 반겨줬다. 또 우리는 그 집에서 주는 멋있는 중국 옷들로 모두 갈아입었다.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친할머니께서는 오랜만에 맛보는 행복함에 즐거워하고 있는 내게 믿을 수 없는 말을 하셨다. (계속)

편집: 김관민<고려대학교 국제학부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