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해외 노동 수출에 희생되는 북한 주민들

해외 노동 수출에 희생되는 북한 주민들

김 태 산
탈북동포, 2002년 한국입국

1970년대부터 시작한 북한당국의 노동인력 수출은 1990년대 경제난이 발생한 이래로 북한정부가 해외에서 외화를 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 미국 국무부는 2006년 연례 국제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북한정부가 자국 국민들을 ‘비숙련 계약 노동자’로 수출하고 있다고 거론하며 이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착취와 인권 문제를 지적했다. 북한은 현재 중국, 러시아, 동유럽국가, 중동 등으로 노동인력을 파견하고 있고 그 수는 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체코는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착취로 국제사회의 지적을 받아 온 나라 중 하나다. 현재 400명이 넘는 여성 노동자들이 체코에 파견되어 피혁공장 등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래는 2000년대 초반 북한체코 신발 기술 합작 회사 사장으로 체코에서 2년여 간 근무한 뒤 남한으로 망명한 탈북자 김태산씨의 체코 내 북한 여성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 실태에 관한 증언이다.  

탈북자의 한 사람으로서 북한사람들을 안아주고 보살펴주는 북한인권시민연합 외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혼자 먹고 살기 바빴는데 이러한 정성을 쏟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경제정책을 잘못 쓰고 다 무너진 사회주의 정책을 쓰면서 많은 탈북자들이 생겨났습니다. 한반도가 생긴 이래 이렇게 큰 죽음과 탈북, 아니 나라를 벗어나는 현 실이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사명감이 있기에 남한에서 이렇게 보람 있게 살고 있습니다. 무고한 탈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무 차별대우 없이 받아주고 정착금을 제공해준 정부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1951년에 태어나 1999년 평양 인민경제대학에서 무역경제학을 배웠습니다. 내각에서 국가 외화벌이 사업을 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녔습니다. 북한에서는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아 체코 프라하에서 2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망명하였습니다. 그만하면 북한에서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왜 한국으로 왔는가 하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선 1951년에 태어나서 군수공장에서 10년 동안 무기를 생산했습니다. 그 후 대학에서 경제를 배워 경공업에 필요한 물자를 수입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정말 굶어죽었느냐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12%가 죽었냐 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입니다. 북한의 1인당 생산량은 국가계획에 의해 정해져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북한 인구수를 잘 압니다. 90년대 초만 해도 인구는 2천 300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2월 상반기 배급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은 식량을 가지고 사람들을 통제했습니다. 장마당에서 쌀을 팔면 무조건 잡아갔습니다. 북한 사람들 집에는 쌀이 1그램도 여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레이시아 무역대표부에 있다가 들어갔을 때 300만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경제숫자만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300만이 굶어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엔에서 인구조사를 했을 때 2천 3백 89만명이라고 나왔습니다. 신발켤레 수를 봤을 때 남한 햇볕정책을 통해 인구수가 늘었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살아있는 증인들이 탈북자입니다.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탈북자들입니다. 탈북자들의 입이 열림으로써 김정일의 비리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시간상 북한의 인권, 북한이 인력수출을 어떻게 하고 있으며 그들의 인권이 어떻게 보장되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나가있는 나라는 러시아입니다. 거의 5만명에 이릅니다. 원목, 탄광 등이 70%이상이 러시아에서 가져오는 것입니다. 러시아, 쿠웨이트, 리비아에도 많은 건설 인력이 나가있습니다. 동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비아에 의사들도 나가있습니다.

저는 체코에서 현대판 인권유린을 폭로하면서 북한 여성 노동자들을 쫓아냈습니다. 공적이긴 하지만 죄스럽습니다. 체코에 북한 여성 노동자들은 신발공장, 가방공장, 피복, 천 등에 300명이 나가있었습니다. 제가 폭로지 않았으면 이탈리아 등지에 내보내려 했었지만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체코에 나가있는 여성들은 그나마 북한보다 대우를 받는 편이었습니다. 가족 배경 조사 (자본가, 배반자 등등 확인) 후 뽑아서 외국에 나갈 수 있습니다. 원래 하루 8시간 노동이지만 12시간 이상씩 일하고 한 달 150달러를 받았습니다. 체코사람들보다 더 못 받는 것입니다. 이들은 받으면 100% 국가에 바쳐야 합니다. 바로 착취인 셈입니다. 사회주의 사회는 국가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해외 나간 노동자들이 번 돈은 국가가 100% 회수합니다. 해외 노동자들은 순수 사냥꾼이 가지고 있는 매인 셈입니다. 개성공단 노동자들 한 달 65달러 받지만 국가가 회수해서 북한돈 6000원만 받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3000원 받지만 개성공단 노동자들이 그나마 많이 받는 편입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개성공단으로 나가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뇌물을 줍니다. 이들은 초코파이, 화장지, 화장비누를 받아 다시 장마당에 내다 팝니다. 해외 나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러므로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것은 비교적 쉬우므로 개성공단에 나가기 위해 줄서서 재산을 팔아 뇌물을 주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북한을 돕는다고 하지만 이로 인해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착취당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국가가 개성공단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여건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남자들은 좀 낫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해외에 있으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말 못할 사정도 많고 돈 쓸 일도 많고 입을 것도 많습니다. 70달러 받으면 30달러가 숙박비이며 40달러가지고 외국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사관에서 김일성 주석 사망 등 명절 때마다 꽃바구니 값으로 2달러 가져가고 노동신문 비행기로 보여주면서 1달러 가져가고 디비디 못 보게 하는 대신 북한 비디오 수송비 한 달에 2달러 가져가고 김일성화, 김정일화 키우는데 1달러 가져가고 조국 자료가 필요해서 3달러 가져갑니다. 많이 남는 사람은 30달러 정도 남는 셈입니다. 못 받는 사람들은 10달러로 한 달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성들은 생활용품비가 더 듭니다. 샴푸, 비누, 화장품, 의복 등등에 써야 합니다. 많이 남으면 12-15달러로 생활해야 합니다. 그나마 내가 있었던 동안에는 물가가 쌌습니다. 그래도 10달러 가지고 한 달을 먹고 사는 것은 힘듭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북한에 다시 들어갈 때 대비해 절약해서 200-400달러 가지고 들어갑니다.

식사는 안남미 (베트남 쌀) 가져가서 쌀을 불려 먹었습니다. 체코에는 간장, 된장이 없어서 소금, 야채로 먹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마카로니를 삶아서 기름, 소름으로 간해 불려서 먹었습니다. 여성들은 매일 일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습니다. 제 와이프가 6개월 있다 체코로 나왔는데 와이프가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생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귀한 자식들을 데리고 자기가 어떤 일을 한 것인지 죄책감이 느껴졌습니다. 저렇게 먹고 살다가는 힘들다고 체코측 사장이 경고했다. 그리고 저는 회의 후 실태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후 집단 식사를 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300달러 모아서 가지고 가면 북한에서 결혼준비를 할 수 있으므로 아이들은 집단식사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나는 고집했습니다. 아이들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달에 무조건 10달러씩 먹으라고 하며 상점 전표를 다 확인까지 했으나, 후에 알고 보니 노동자들은 상점에서 남들이 버린 전표를 주워오며 마카로니만 먹었습니다. 평양에 가져갈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돈을 모아야 한다고 아이들이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포기했지만 평양에 보고는 하지 못했습니다. 보고하면 무조건 집단식사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밤에는 유채밭에 가서 가져오고 콩 삶아 된장을 만들어 겨우 먹고 살았습니다.

노동자들이 체코 3년 있었으면 외국땅을 밟아봤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외국인과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외출증을 받아야 상점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3명 이상이 1개조로 이루어져 나갔습니다. 3년 동안 활동범위라고는 상점밖에 없었습니다. 울타리 안에서 갇혀 있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러시아, 쿠웨이트 등으로 건설 나가는 사람들은 건설 현장이 바뀌므로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체코 공장의 경우는 지정된 공장, 숙소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전혀 외국 영화관, 호텔 등 어느 곳도 갈 수 없습니다. 체코에서 같이 일하는 체코 노동자들은 돈을 받고 마음껏 놀고 구경하고 영화보지만 북한 노동자들은 토요일, 일요일에도 숙소에만 있어야 합니다.

나는 브뤼셀 국제회의에서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체코의 인권유린을 보고 체코를 EU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유럽 의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노동자들을 내쫓지 말아달라 했지만 노동자들은 쫓겨났습니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북한인권이 북한에 얼마의 영향을 미치는가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알 수 있습니다. 김일성은 탈북자들을 두려워했습니다. 밖에서 북한 인권을 얘기하면 북한 내부에서는 좋아합니다. 남한에서 북한인권 여론을 만들어서 내 자식들을 살렸습니다. 저도 북한에서 간부였습니다. 제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브로커를 시켜 중국을 통해 다 데리고 왔습니다. 김성민, 강철환에게 물어보니 가족들은 다 평양에 있다 했습니다. 제가 밖에서 떠들어야 평양에서 잡아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일본, 브뤼셀에서 3시간 기자회견을 한 후 공개적으로 알린 뒤 자식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작년 6월 12일 브로커가 자식들이 중국에 있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3년을 북한에서 추적을 한 뒤 무산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당시 맏아들, 딸은 나올 수 있었지만 맏딸은 군대에 있었습니다. 돈 1000만원을 준 뒤 군대에 있는 딸을 빼낼 수 있었습니다. 잡아가지 않았냐고 물어봤더니 서울에서 떠들던 김태산의 자식들은 잡아가지 못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평양외국어대학 졸업했으며 보위원에서 아버지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꼭 보고하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한마디 한마디가 북한 사람들을 살리는데 더 큰 값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더 힘써주기 바라며 통일이 되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들과 정교가 들어가서 그들을 치유하며 사랑으로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이산가족, 탈북자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상점 하나만 차려도 북한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개혁, 개방과 같이 일어나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과 함께 인권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중국 공산당이 해체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5년 내에 약해질 것입니다. 일국일당제가 해체되고 다당제가 되면 중국은 붕괴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힘들게 일한 것이 몇 년 안에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바마 정부는 자국 경제정책으로 북한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5년만 힘내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질문:
강연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았습니다. 군대 있는 자녀를 빼내왔다고 했는데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김일성의 선군주의 안에서 어떻게 빼내왔는지,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군대 기강이 약해진 것을 의미합니까?

답변:
딸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시 주변 군대에서 일했습니다. 당시 중학교를 졸업하면 1년씩 군대 가고 공장을 갑니다. 500만원을 먼저 브로커에게 주고 데리고 왔습니다. 브로커가 돈을 가지고 가서 딸이 있는 부대에 가서 면회를 신청했습니다. 여성 소대장이 나오니 아주머니(브로커)가 ‘친척이 아프니 오늘 외출 시켜달라’며 돈을 찔러주었습니다. 평양시이니까 가능했으나 지금은 모든 지역에서 가능한 것으로 압니다. 하루 외박이 가능했습니다. 군대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통행증도 돈만 주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브로커들끼리 무전기를 가지고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아이들을 데려오는데 4천 3백만원이 들었습니다. 이 돈이 김정일에게 갔으면 핵 개발에 썼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