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한국까지의 길

이 글은 제1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1999. 12. 1)에서 발표한 증언입니다.

 

김 은 철
제3국 경유 북한난민

 

이제 시간이 지나면 제 얼굴이 TV에 나오겠는데, 그러면 내일 저 북한에 계시는 우리 누님들은 다 수용소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제 얼굴은 TV에 나오지 않게 해주기를 먼저 말씀드립니다.
저는 97년 3월 북한을 탈출해 가지고 올해 6월 대한민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경로는 중국 대륙에서 1년 동안 방황하다가 제3국을 거쳐서 여기에 왔습니다. 북한인권실태와 탈북자들이 겪고 있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양해해 주십시오. 이런 자리가 처음이다 보니 좀 떨리는데...(격려의 박수)

제가 말하고픈 건 지금도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 탈북자들이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만나본 사람들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수십 명이나 됩니다. 저 요 가까운 산동성 등에서만도 우리 북한 의 아름다운 여자 분들 수십명이 지금 술집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그들 중 일부가 내가 한국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같이 가자고 따라섰던 여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합니다. 남자분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저는 이 한국 땅에 들어설 때는 김포공항 에 비행기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는 제가 근 두 달 동안 4천리를 걸어 가지고 갖은 고생을 하면서 한국 대사관에 도착해서 비행기타고 여기 왔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갈 것을 결심하고 중국 운남성 곤명시에 도착했을 때에는 운이 나쁘게도 몸에 돈 한푼 없었습니다. 돌아설 땅은 없고 앞에는 알 수도 없는 저 대한민국밖에 없기에 저는 지도 한 장을 들고 무작정 수도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습니다. 건너오면서 도시인 만 지리 지방까지는 2천리가 넘습니다. 저는 그 2천리를 걸어서 도착했는데, 그 운남 성에는 한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데, 인심이 얼마나 나쁜지 밥을 주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거 의 하루에 한끼인가 두끼를 어떻게 구해서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어떤 날은 양파와 물만 가지고 먹을 때도 있었고, 좌우지간 죽 을 고비를 넘기며, 잠자리를 소나 말이 들어가서 자는 그런 우리 에 들어가 잡초더미에서 자면서 그렇게 해서 20여 일 간에 2천리를 걸어서 중국- 국경지역에 도달했습니다. 그 국경지역에 흐르는 난카강이라고 하는 큰 강이 있는데, 물살이 얼마나 센 지 그 걸 헤엄쳐 건너다가, 압록강을 헤엄쳐 건널 때는 무사히 성공해서 중국으로 들어왔는데, 중국과 흐르는 그 강을 넘을 때는 물살에 떠밀려서 하마터면 거기서 죽을 뻔했어요. (웃음) 땅에 들어서니까 거기는 내가 지금까지 보지도 못한 열대의 정글이었습니다. 정글이라는 거는 당신들은 잘 모르지만 정글 속으로 돈을 주고 10미터를 올라가라고 해도 헤쳐나가지 못합니다. 가지덤불로 얽혀있기 때문에 정글 속을 빠져나가지를 못합니다. 그 정글 속을 헤쳐서 불빛이 보이는 국경도시 방산 시라고 있는데, 그 도시를 향하기 위해서 온 하루저녁을 헤매고 있는데, 다음날 아침 얼굴을 보니 몽땅 찢기고 옷은 다 찢어져 나가고...

제가 넘은 국경지역은 덜 발달된 지역이기 때문에 도로가 없습니다. 도로가 없고 중부지방에 나있는 도로까지 약 천리가 됩니다. 거기는 보통 1000 미터 이상의 그런 산들로 되어있 기 때문에 저는 지역도 모르고 말도 모르고 무작정 그 산길로 엄청 고생하면서 걸어갔습니다. 그 천 오백리를 거의 한달 동안 걸으면서 그저 길가에 나있는 오이도 따먹고 바나나도 따먹고 그러면서 걸어왔는데 그 기간에 본 것도 많습니다. 산꼭대기에서 사는 벌거벗은 소수 민족들도 보고 또 어떤 강에서는 제가 목욕을 하다가 악어가 물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질겁해서 뛰쳐나간 적도 있고... 지금 생각해보면 다 옛날일 같이 즐겁지만, 그때는 얼마 나 힘들고 죽자고 자살할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도 더했지만, 제가 왜 자살을 못했는지 압니까? 우 선 내가 이렇게 죽는 것이 너무 악에 바쳤고, 두 번째는 탈북후에 제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 고 우리 고향친구들과 사람들이 결국 니가 선택한 길이 잘된 것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가질까봐 꼭 살아서 통일이 될 때까지 준비를 해야 되갔다, 나 때문에 지금 고생하고 있을 우리 부모님과 형제들 우리 친구들한테 내가 꼭 보상해주어야 한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서 대사관에 도착해서 대한민국에 도착했습니다.

끝으로 지금 중국과 러시아에서 지금 방황하고 있는 우리 탈북자들의 지위자체가 지금 정확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의 생명과 권리를 꼭 여러분들 이 힘을 합쳐서 찾아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자리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