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충성을 다했다는 죄 – 1


2012년 생명과 인권 봄호에 실린 장영걸 씨의 수기 "충성을 다했다는 죄" 첫 번째 편입니다.

충성을 다했다는 죄 - 1


장영걸 (가명)

2008년 탈북, 2009년 남한 입국

나는 년 전 한국에 와서야 이런 세상이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하고 깨닫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가장 선진적이고 좋은 세상이고, 미국을 비롯한 다른 자본주의 사회는 나쁘다고만 교양 받았다. 그런 내가 어떻게 어떤 모순점들을 깨닫고 여기 한국에까지 왔으며,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참된 인간으로서 살게 됐는지 간단하게 적으려고 한다.

 

해방 이후 북한 

 

내가 태어났던 1940년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얄타회담에서 승전국의 3국 수반들이 모여서 영토를 나누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한반도는 38선으로 분할되어 북조선은 소련이, 남조선은 미국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이 서로 세계를 나누어 가지는 첨예한 투쟁 속에서 내가 태어난 것이다.

 

이 시기 스탈린은 해방된 북한을 사회주의 체하에 철저히 묶어두기 위해서 직접 자신이 키우고 충성을 다 해오던 당시 소련 붉은 군대 국제여단의 대대장이었던 김일성을 북한의 수반으로 보냈다. 그리고 소련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정한 직위에 있던 조선 사람들을 김일성에게 보냈다. 당시 북한에는 젊고 싸움을 잘하는 항일빨치산들이 많았지만 이들에게는 나라를 세우거나 인민경제계획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소련에서 온 조선 사람들이 항일빨치산들을 대상으로 소련식의 교육을 실시했고, 북한을 사회주의 체제에 맞게 건설하였다.

 

한편 김일성은 많은 북한청년들을 소련으로 유학을 보내서 민족 간부 양성을 진행하였다. 김일성은 스탈린의 말이라면 그대로 복종했으며, 그의 정치를 그대로 계승하여 북한을 철저히 소련식으로 건설하였고, 남한까지 사회주의 진영에 끌어들이려고 스탈린과 공모하여 6.25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으로 인해 한반도는 폐허가 되고 수백만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6.25전쟁은 이승만 정권이 미국과 결탁해서 일으킨 것으로 배웠고, 그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전쟁기념관을 참관하고, 거기에 전시된 스탈린과 김일성 사이의 비밀 회담들의 자료들과 스탈린이 크렘린에서 보낸 전쟁개시 날짜가 적힌 문건을 보고는 철저히 북조선이 먼저 공격하고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50년대는 북한 내 계급투쟁이 매우 첨예했던 시기였다. 1953년에 스탈린이 사망한 후, 흐루시초프가 소련의 수반이 되면서, 그는 스탈린의 독재체제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비판하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정치적 스승이자 든든한 배후였던 스탈린을 비판하는 흐루시초프를 수정주의분자로 낙인

 

찍고, 자기와 항일빨치산을 내세우면서 소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소련은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김일성을 없애기 위해 쿠데타까지 준비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김일성은 19568월 종파사건으로 소련파를 다 숙청했다. 이때부터 김일성은 항일빨치산들을 주축으로 수령 중심의 독재정치를 본격화하고 강화했다.

 


유복했던 유년 시절

김일성의 총애를 받으며 고위직에서 일을 하던 아버지 덕에 나는 부러울 것도, 걱정도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에는 제인민학교, 후에는 남산중학교1)라고 불리는, ‘부상급 이상, 한국으로 치면 차관 이상 급, 군대는 장성, 장령 이상 간부들의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가 따로 있었다. 나는 김정일, 김경희, 김평일, 김영일과 같은 김일성의 자제들과 함께 이 학교에 다녔고, 이들을 다 알았을 뿐 아니라, 교제도 하고,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김정일의 초청으로 김일성의 저택인 5호 댁에 여러 번 놀러 간 일도 있었다. 김정일은 우리에게 맛있는 간식도 먹였고, 직접 피아노도 쳤고, 개인 영사기까지 직접 돌리면서 우리에게 각종 영화도 보여주곤 하였다 (김정일은 어릴 때부터 음악도 잘하였고, 영사기와 자동차는 그의 취미였다).

 

내가 인민학교 1, 2학년이었을 때만 해도 소련 교원들이 와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나는 러시아어를 배웠고, 러시아 춤과 노래도 많이 배웠다. 그러나 김일성이 소련 수정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하자, 김정일은 남산학교에서 소련 교원들을 다 내보내고 소련의 춤과 노래를 금지시켰다. 또한 러시아어로 된 일체 도서들(전국적인 범위에서 정치, 경제, 과학 등 모든 서적과 유학을 가서 쓴 유학생의 노트까지)을 다 불태우게 하였다.

 

이렇게 엘리트 간부들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지만, 정작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매우 제한된 것이었다. 북한에서 엘리트 학교에 다닌 사람이라고 해도 상식적인 것도 모른다. 가령 정치, 경제, 과학, 문화, 음악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누구인지, 차이코프스키와 쇼팽은 누구인지, 다 모른다. 현재 북한에서는 오로지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것, 그리고

 

김일성 일가를 위주로 왜곡된 조선역사와, 김일성이 일제의 100만 대군을멸망시키고 조선반도를 해방시킨 것으로 꾸민 조선혁명역사를 유치원에서부터 가르친다.

 

김정일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아예 외국 유학이 사라졌다. 최근에는 소수의 수재들과 엘리트층의 몇몇 자제들만 특수학과에 보내고 있고, 외국에 주재한 북한의 외교관들을 자제들 중 한 명만을 데리고 가서 자기의 비용으로 공부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외국인으로부터 직접 북한에서 외국으로 유학 간 대학생들은 그 나라의 중학생들보다도 일반 지식이 못 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뇌물과 선군 정책


북쪽의 경제사정은 해방 초반까지는 괜찮았다. 해방직후,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이 북한을 상당부분 지원했고 남아있던 일본 공장들도 가동되어 생산량을 맞추고도 남았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농업상황도 좋아서 쌀도 남아돌았다. 비록 한국전쟁 이후에 남쪽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인프라도많이 파괴가 됐지만(북한은 그 때 남한의 자료를 가지고 제일 못 사는 남조선이렇게 선전한다) 쎄브2)의 돈을 지원을 받아서 빠른 시간 안에 전후 복구를 이뤄냈다. 이러한 추세는 6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소련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김일성에게 후르시쵸프는 소련의 쎄브에 들지 않으면 원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한편 김일성은 북한이 쎄브에 가입하게 되면 북한이 다른 나라들에 의존하게 되고, 소련 수정주의를 받아들여 혁명은 수포로 돌아가고, 남한과 미국에게 점령당한다고 선전하였다. 이렇게 북한은 쎄브에 가입하지 않고, 항일의 혁명정신, 불굴의 자력갱생의 혁명정신 등의 구호들을 제시하며 우리 식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내놓았다. 이때부터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했고, 정치, 경제, 과학과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하강선을 긋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은 북한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고수해야만 사람들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양단 옷을 입고 기와집을 만들어 살 수 있게 된다며 사람들을 속였다. 따라서 그는 경공업보다 중공업을 우선시하고, 이를 기초로 군수공업을 발전시켜야 남한과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나라를 굳건히 지킬 수 있다고 선전하며, 모든 국가 자원을 중공업과 군수공업에 집중했다. 반면, 인민이 풍족하게 살 수 있게 하 는 경공업은 가볍게 여긴 결과, 인민은 날이 갈수록 더 헐벗고 굶주리면서 거지처럼 사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또한 항일빨치산들이 당과 내각 복지관을 독식하면서 뇌물이 만연하게 되었고 이들이 당, 혁명 자금이다 하면서 자기 주머니를 챙겼다. 이렇게 해서 당, 특히 복지관들이 세도를 쓰게 되고, 인민들은 종이 되고 말았다. 특히 김정일이 주체사상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더욱 심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김일성의 사돈의 팔촌 되는 사람까지도 다 한 자리씩을 차지했고, 인민들은 지칠 대로 지쳤다. 아마 북한만큼 뇌물 많은 데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실태는 김정일 대에 와서 더 심각해졌다. 김정일은 우선 자신의 권력을 튼튼히 다지기 위하여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 빛나는 태양으로 우상화 시키는데 모든 자원과 노력을 총동원하였다. 그러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자, 공산주의란 말을 다 빼고,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백방으로 강화하고 선군정치를 내놓았다. 이로써 나라의 경제와 중공업을 다 망하고 인민들이 다 굶어 죽어가도, 군수공업을 발전시키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모든 자원을 사용하였다. 세상이 다 아는 바와 같이 북한의 일반 공장들은 자재와, 원료, 전기와 기름 난으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직 군수공장들만이 가동되고 있다.

 

뇌물에 대한 실례를 들겠다. 북한의 외화벌이 일꾼은 외국으로 나가기 전과 후에 중앙당, 내각, 외무성, 무역성, 국가안전보위부 등 관계기관의 간부들과 담당일군들, 자기단위의 간부들에게 무조건 뇌물을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결함과 단서를 잡히어 다시는 외국으로 못 가게 된다. 이 상황이 오죽 부담스러우면 어떤 사람들은 아예 포기하고 외국에 나가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에도 돈이 개입된다. 북한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김일성종합대학은 뇌물을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다음은 김책공업종합대학 그리고 평양외국어대학, 평양의학대학, 평양사범대학, 평성이과대학 등의 순이며, 뇌물도 다 각이하다. 오죽하면 2007년 대학입학시험이 끝난 후, 뇌물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보고된 김일성 종합대학보위부에 대하여 김정일은 보위부 전체를 해산시키고, 보위부장을 비롯한 보위원들을 철직, 제대, 출당, 혹은 지방으로 추방시켰다.

 

무역으로 외화벌이를 하던 내 친구도 교체가 시급한 김일성종합대학의 엘리베이터 와이어 만 미터를 중국에서 구입해서 대학에 바쳤더니 아들이 입학시험도 없이 무사히 김일성종합대학에 합격했다고 자랑했다. 이러한 실례들은 너무나 많으니 더 언급을 하지 않겠다.

 

이렇듯, 북한에서는 아무리 결함을 크더라도 돈을 바치면 그 어떤 문제도 제기 되지 않는다. 법이든 권력이든 돈으로 팔고, 살 수 있는 나라이다. 내가 아는 재일동포도 말하기를, 외화만 좀 있으면 북한에서 살기 제일 편하고 물가도 싸다는 것이다. 자기는 통행증이나 자동차 장거리운행증도 떼지 않고 평양에서 신의주, 원산, 함흥 등, 고급담배 한 막대기면 어디든 다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북한에서는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만 고생하고,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을 비롯한 간첩들은 북한 땅 어느 곳이든 다 갈 수가 있다.

 

여기 한국으로 온 탈북자들 대다수가 국경경비대에 돈을 주고 중국으로 넘어 갔다가 온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돈이 있으면 국경을 넘을 수가 있고, 돈이 없는 자는 국경경비대원과 의논하여 두만강을 건너 이들을 중국에 직접 파는 행위들을 하는 것이다.


무너지는 북한의 경제
: 어업, 농업, 전력

김일성과 김정일은 우리식 주체조선의 사회주의건설정신”, “수령결사옹위의 혁명정신등 당과 수령의 지시대로 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여 왔지만, 해방 후 60년 이상이 지난 지금, 노년층들의 이야기 들어보면, 지금이 오히려 일제 식민지 때보다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 실례를 들자면 끝이 없지만 몇 가지만 알려 드리려고 한다.

1. 어업

북한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선의 90%는 다 중국의 어선이다. 총참모부에서는 매 해마다 공동 어로의 면목으로 중국 어선들에게 영해를 내 주며 그 대가로 외화를 벌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북한 어선들이 바다에 나가는 절차가 매우 복잡할 뿐 아니라, 넣을 기름도 없고 수리를 할 수도 없어 수산물을 잡지 못한다. 그러니 평양을 비롯한 큰 도시들에 있던 수산물 전문상점들은 다 없어지고 말았다. 내가 2008년에 탈북할 때에도 수산물은 시장에서만 비싼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또한, 북한의 동해와 서해의 해안가는 매우 길지만, 고기잡이는 둘째 치고, 파도에 밀려오는 미역이나 곰포까지도 해안가에서 주워 먹지도 못한다. 이는 나라 해안을 미국과 남한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한다며, 철조망과 2-3m의 모래보호선으로 막아 놓아서 경비대 외에는 그 누구도 바닷가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수력 및 화력

해방 직후 김일성은 레닌의 본을 따서 전기는 곧 공산주의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수력과 화력 발전소들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건설된 수력발전소들은 물을 채우지 못하여 자기마력을 내지 못했으며, 압록강의 수풍수력 발전소는 중국의 투자로 정기적인 수리와 보수가 이뤄지기 때문에 생산된 전기의 대부분은 중국이 가져간다. 평양화력발전소와 북창화력발전소들은 소련의 50년대 방식으로 건설하여 낡은데다가, 가동을 시키기는 하지만 설비들을 제때에 보수·수리를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설비들의 수명이 다 지나서 가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