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이 글은 제2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2000. 12. 8)에서 발표한 증언의 원고입니다.

 

김 군 일

 

저는 김군일이라고 합니다. 이런 귀한 자리에 서게 되어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오전에 비디오를 보셨겠지만 그 비디오에 나왔던 그 생활들은 제가 북한을 떠나기 전 겪었던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저는 그 비디오를 보면서 제가 겪었던 그 힘들었던 순간들이, 생각하기 싫었던 그런 순간들이 다시 생각났지만, 왠지 친근함마저도 느껴지더군요. 그러면서 눈물도 나고……. 저는 그런 생활을 한 3년간 했습니다. 제가 북한을 탈출할 때는 고등중학교 3학년 아니 고등중학교 6학년이었는데요, 그때는 고등중학교 6학년이라는 그 나이에 있었지만 학교에는 나가지 못하고 아까 여러분들이 나오는 비디오에 보신 것처럼 그렇게 주워먹으면서 북한에서 생활을 했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저 네 명이었는데, 아버지가 96년도 6월경, 제가 북한을 탈출하기 1년 전에 굶주림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직접 손으로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우연히 중국을 다녀온 사람장사꾼이라고 할까 인신매매단에 속한 그런 예전에 부모님 친구였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통하여서 중국으로 가면 잘살 수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고 그리고 기회를 얻어서 그분과 함께 가족을 속이고 저는 혼자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왔습니다.

중국으로 와서 정말 제가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생활들을 직접 목격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3일간 중국에서 머무는 과정에 직접 체험을 하고 식량을 한 배낭 얻어서 갔습니다. 한 배낭에 한 30㎏ 정도 되는 식량을 얻어 가지고 북한으로 돌아가서 가족을 먹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서너 차례 정도 두만강을 넘나들다가 결국에는 가족과 함께 형과 어머니와 저와 다같이 북한을 탈출하여서 중국으로 왔습니다.
저희는 중국에 친척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쉽게 탈출을 결심할 수 있었고 중국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중국에 온지 2개월만에 친척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중국 친척이 저희에게 마련해준 숙소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친척들이 마련해준 그 숙소에서 생활을 시작한지 20일만에 어느 날 저희들이 묵고 있는 그 거처로 북한 보위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북한 보위부에서 중국 연길시에 지부 형태로 갖고 있는 자그마한 연락소가 있는데 거기에 간첩들을 두고, 자기들 스파이들 그런 사람들을 두고 있는 사무실이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저희 친척집으로 연락 와서 저희들을 체포해 가야한다는 그런 통첩장을 보내오면서 당신들은 그들을 보호할 수 없다 이런 말을 저희 친척에게 남겼습니다.

친척들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저희는 도망가려고 했으나 그때 저희는 도망갈 수 있는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우선 친척들이 경제적인 어떤 도움이나 최소한 차비조차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고 우리들을 보호하다가는 자기들이 중국법에 따라 벌을 받기 때문에 보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말랐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몹시도 야위었고 그리고 저희 가족 모두가 그랬기 때문에 일단 중국 거리에 나가서 나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들의 외모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이 표시가 났기 때문에 그 소식을 듣고도 도망을 못 가고 있다가 정말 기적 같이 한국인권단체에서 일하는 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도움을 받아서 그분이 모든 생활비랑 숨을 수 있는 그런 거처를 마련해 주겠다는 그런 약속을 받고 친척집을 떠났습니다. 친척집을 떠나 가지고 많은 날짜가 흐른 후에 친척집에 우연히 전화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더니 저희가 떠나자마자 북한 보위부에서 마을로 들이닥쳐 저희들의 사진과 모든 자료를 뿌리고 수배를 시키고 돌아갔다고 하면서 언제든지 우리가 그곳에 돌아올 경우 체포될 수 있다고 하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가 97년 8월경이었습니다.

그 연락을 받고 그때부터 인권단체에서 제공하는 쌀과 그리고 모든 도움을 받으면서 숨어 지냈는데 한곳에서 한달 이상을 못 넘겼습니다. 제일 오래 있는 곳이 3개월이었는데 대부분이 한달 정도 있다가 거처를 옮기고 또 옮기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저희들이 있는 곳이 어떻게 신고가 들어가는지 집주인이 신고한다든지 사람들이 이상하다 혹은 밖에 나다니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것 같지만 출입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신고가 들어가면서 경찰 검문이 오고 그러니까 계속해서 옮겨다니다가 한 4개월 동안 중국을 거의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옮겨 다녔습니다.

그렇게 옮겨다니다가 결국은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한국 정부로부터 중국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으나 제3국으로 오면 받아주겠다는 연락을 받고 저희가 베트남에 있는 주 베트남 한국대사관에 갔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갔었는데 약속을 다짐을 받고 갔었는데 거기서 처음 10일간 대사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 다시 저희들이 외교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하여서 베트남 정부와 한국 정부와의 이런 은밀한 무엇이 있었나 봅니다. 저희는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결과적으로 대사관에서 버려졌습니다.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 있는 국경의 지뢰밭에 버려진 것입니다. 그때 한국의 많은 언론이나 매스컴에 보도되었던 사실이구요. 버려진 곳, 정말 그곳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안 죽고 살아날 수 있었는지……. 아무튼 저희는 그때 모두 살아날 수 있었구요 그때 저희와 함께 있던 탈북자가 13명이었습니다. 그 13명이 모두 지뢰밭에서 다시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구조되어서 중국땅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여권을 위조하는 방법으로 한 명씩 두 명씩 10명이 한국으로 무사히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들어오고 나머지 세 명이 중국땅에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그 중에는 저희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었고 한 부부가 있었는데요 그 부부는 임신중이었습니다. 버려진 이후에 애를 낳았기 때문에 지금 세 명이 되었고 저희 어머니는 얼마 전에 한국으로 들어오셨지만, 그 세 사람이 아직도 못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가 얼핏 들었지만 그 사람들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있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분들을 데리고 올 수 없을지 그러한 소망을 가져봅니다. 이러한 모임들을 통해서 제가 많은 사람들을 부탁할 수는 없지만 그 한사람이라도 아이를 가진 그 부부와 가족 세 명을 데리고 올 수는 없는지 부탁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우선 말씀드리기 앞서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인권과 생명을 보장 못 받는 그들을 위해 머나먼 길을 찾아와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