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정치범 수용소에서 겪은 일

[증언]

이 글은 제4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2003.3.2〜4)에서 증언한 내용이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겪은 일

김 태 진 (북한이탈주민, 요덕 수용소 체험자)

저는 2001년 6월 한국에 입국하여 자유롭게 살고 있는 김태진입니다. 북한에서 꿈으로만 그려보던 학업의 자유, 일터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세계 여행의 자유, 법적 보호, 선거의 자유와 그리고 북한에서는 헌법에만 있고 행하면 탄압하는 신앙과 시위, 결사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을 분에 넘치게 받고 혼자 누리기에는 괴로움이 너무 많아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인권이 무참히도 유린되고 있는 저 북한의 실상을 알리려 합니다.

나는 중국 연고자로서 출신성분 때문에 조선노동당 입당이 불가능했고 대학입학도 불가능한 상태여서 북한사회에 환멸을 느끼던 중 1986년 3월 24일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1987년 7월 25일 중국 생활 일년 반 만에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으며 그후 20여일 감금되어 있다가 북송되어 북한 보위부에 수감되었습니다. 북한은 평범하던 나에게 “정치범”이라는 거창한 모자를 씌웠습니다. 그 모자를 쓰기까지 정말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북한 보위원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렸으며 때로는 밥을 안주고 대소변도 마음대로 보이지 않아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들은 하루종일 꼼짝할 수 없게 앉혀두어 나는 지금도 다리를 제대로 못써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또 구류장 시설이 너무 열악하여 한 수감자는(함경북도 무산군 사람) 혹심한 추위로 동상을 입어 한쪽 다리를 잘렸으며 별명이 “개구리”란 수감자가 있는데 간수들이 그를 발가벗겨놓고 밤을 샌 일도 있습니다. 감방 안은 한여름에도 추운 곳인데 겨울이다 보니 체감온도가 아마 영하 20도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추위에 시달리며 내는 신음소리는 잠 못 이룬 전체 감방을 지옥으로 만들고 남았습니다. 그후 “개구리”는 감방 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워 견디지 못하고 벽에 머리를 박고 자살하였습니다. 감방 안에서 세면과 칫솔질도 못하게 하여 온 몸에서는 이가 득실득실하여 대낮에도 얼굴에서 기어다니는 정도였고 밤에는 다 해진 모포 한장으로 막기에는 어림도 없는 추위로, 벼룩이와 이의 성화로 밤을 새워야 하는데 정말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8개월간 감금되어 수사를 받은 후 저는 1988년 3월 31일 함경남도 요덕군 대덕리에 위치한 15호 정치범관리소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는 비밀리에 수많은 수용소가 있고 시기에 따라 다른 곳에 수용이 됩니다. 북한에서는 반정부 활동뿐 아니라 조그만 아이가 김일성 초상화를 찢거나 실수로 낙서를 해도 혹은 실수로 위대한이라는 말만 빼먹어도 본인 뿐 아니라 가족도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에 끌려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시 요덕수용소는 영구적으로 나올 수 없는 완전 통제구역과 차단소로 구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완전 통제 구역에는 일체의 출판물, 방송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요덕수용소에 있을 당시 나는 심한 영양실조로 먹으면 그대로 설사하여 탈수상태에 빠져 눈을 뜰 힘도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왜냐하면 밥은 오직 옥수수로 만든 밥을 먹었고 채소 섭취량도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부 수감자들은 쥐, 뱀, 개구리 심지어 개구리 알까지 몰래 잡아먹었고 머루 잎, 각종 꽃잎, 산나물들을 뜯어 먹었습니다. 내가 그곳에 있는 4년 6개월 동안 영양실조와 관련된 질병으로 매주 한 명씩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했었습니다. 구타와 무릎 굽히고 앉기와 같은 고문으로 다리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나의 몸 상태는 조금만 걷거나 앉아있어도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고통을 받고있는 상태였습니다. 북에서는 형기 중에 있는 사람들은 적대관계에 놓고 대하였으며 눈에 거슬리면 직성이 풀리도록 마구 때렸습니다.

한번은 경비대 방탄벽 건설공사에 동원되었는데 평안북도에서 온 어느 죄수가 경비대 채소밭에서 토마토 몇알 따먹었다고 경비대원 여러 명이 달려들어 마구 때린 후 옷을 벗기고 수갑을 채운 후 아침까지 방치하여 둔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움직일 수 없는 그를 업어 내왔습니다. 토마토와 오이가 달리는 한달 동안 그는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어디에 호소할 곳도 없고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모두 들어온 박상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항일 유격대의 군의관이었던 할아버지가 사상이 변했다고 잡혀 들어온 사람들인데 그곳에서 15년 정도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농사철에 옥수수를 김일성이 만들어놓은 방법대로 심지 않았다고 담당 보위원이 마구 때려 허리를 다쳐 오랜 기간을 문밖 출입도 못하였습니다.

협의 위원장을 하던 박익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수용소에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수용소 생활을 하는 중인 15년 전에 김일성의 사진이 있는 신문을 찢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모진 고문을 당했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너무 말도 안되는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인권 유린인 것입니다.

함경도에서 들어온 최모씨는 배가 고파 힘이 없어 일을 못하니 반장직무를 맡은 수감자가 그를 몹시 때렸습니다. 그러나 매를 맞고도 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친 척을 하며 개밥도 훔쳐먹고 침을 흘리며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도끼로 자기 손가락을 찍기까지 하였습니다.

1989년 여름에는 김홍암, 김홍철 등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성경과 세익스피어에 대해서 논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김홍철이 보안기관에 밀고하여 김홍암과 1명은 완전 통제구역에 넘어갔고 밀고자는 6개월 조기 퇴소하였습니다. 그들은 성경은 우상이고 외국작품은 수정주의라 하여 처벌된 것입니다.

수용소 내의 대부분의 질서는 같은 수감자에 의하여 지켜지는데 이것은 사람의 숨을 막히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탈옥수는 모두 무조건 총살합니다. 내가 있을 때 5~6명이 도주하였는데 한명도 성공하지 못하고 다 체포되었습니다. 사형집행 때는 수용자 전부를 끌어내고 주위에 경비대가 완전 중무장하고 포위한 가운데 시행됩니다. 그리고 사형수의 입에 자갈을 물리고 그 위에 마스크를 씌운 후 무릎을 꿇리고 사격수 세명이 세발씩 쏘고 다음에 심장이나 머리에 확인 사살을 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사형집행이 끝난 다음 수감자들이 줄을 지어 지나가면서 시체에 돌을 던지게 한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옥 같은 곳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다가 92년 4월 10일 만기를 채우고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가족과 처자들은 정치범이었던 저와 함께 살 수 없다고 이혼을 제기하여 갈라섰으며 나의 어머니조차도 나를 데려다 키운 자식이라고 고백하며 나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나는 더이상 북에 살 희망을 잃고 97년 4월 7일 다시 탈북을 결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중국에 다시 들어가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2001년 6월 남한에 들어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북한이 신의 진노 밑에 있다는 것을 빨리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에 노동당 출판사를 통하여 김일성은 하늘이 낸 인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나라를 위해 오랜 세월을 일해온 사람들을 김일성 부자의 마음에 안맞는다고 산골로 보내고 유능한 기술자, 학자들을 가정이 혁명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배척하였습니다. 이것도 북한이 발전할 수 없는 한가지 이유라고 봅니다. 국민을 공장과 농장의 주인이라고 기만하고 지령대로만 일하게 하였으며 폐쇄체계 속에서 세계를 알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버렸습니다. 북한의 곳곳에 건설된 김부자의 우상화 작업으로 국고는 바닥이 났으며 그들의 산업 설비들은 노후화 되었습니다. 또한 몇십년 전에 채택한 “주체농법”의 방법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나라의 쌀독은 바닥이 나고 결국 북한은 300만의 아사자를 남기고 세계에 구걸의 내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자신들은 없는 자들의 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 탈북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 그곳에 간 사람들이 아니고 살길을 찾아 사랑하는 모든 것을 뒤에 두고 떠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중국 당국은 여러 가지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여 붙잡아 북송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공산권국가의 국민은 정권유지의 소모품일뿐 다른 아무것도 아님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모인 분들과 세계의 양심 앞에 호소합니다. 나는 공산주의를 가장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많이 하고 파렴치하기 때문입니다. 이들로부터 피해를 입는 북한의 주민을 보호하는 대책을 세워 주시고 중국을 비롯한 3국에 있는 북한 이탈주민들을 지켜주세요.

또한 북한은 핵을 가지고 세계를 위협하는 광신자의 모습보다는 인권을 옹호하고 세계와 함께 할 때 북한의 미래가 있음을 괴롭더라도 한시 바쁘게 깨닫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북한과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지구상의 인권유린을 반대하여 모든 힘을 다할 의지를 밝히며, 지금까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