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잘못된 꿈 ③

잘못된 꿈 ③

증언자: 김정우

어린 시절 밀수를 하며 보안원의 꿈을 키운 김정우님. 갖은 노력 끝에 보안원이 되었지만, 다른 이들의 자유를 도와주다 발각되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하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김정우님의 이야기입니다.

군 생활

경찰학교에 들어가는 전까지 어머니의 노력으로 나름 고향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소방대 전투원으로 1년 있었습니다. 북한은 여기처럼 소방서가 따로 없고, 보안서 안에 소방대가 따로 있습니다. 소방대원들도 다 보안원과 같은 제복을 입습니다. 소방대원들은 대부분 의경을 쓰기 때문에 제가 거기서 근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소방대원으로 1년 정도 근무를 한 뒤 보안서 구류장으로 근무지를 옮겨 4년을 더 복무했습니다.

구류장에서 복무를 하다보니까 죄를 지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봤습니다. 농촌 지역이다 보니까 소를 몰래 도둑질하거나 잡아먹어서 구류장으로 잡혀 온 사람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북한은 다 국가 재산이니까 소도 당연히 국가 재산입니다. 국가 재산을 훔친 죄는 엄벌로 다스렸기 때문에 불임 소를 잡아먹은 것도 최소 5년에서 부터 8년까지 형을 줬습니다. 죄가 무거운 경우에는 10년 이상에서 사형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무거운 죄라는 것이 살인, 강간, 절도 등과 같은 범죄라기 보다는 구리로 된 통신선을 몰래 도둑질해서 잡혀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통신선이 구리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구리로 만든 통신선이 음성이 조금 더 잘 들리니까 구리선 통신선은 중앙당이나 중앙당 관련된 기관에서 직접 내려오는 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리를 팔겠다고 그 선을 자르니까, 통신선 자르는 사람들이 보이기만 해도 총을 쏴댔습니다. 듣기로는 통신선 절단은 김정일이가 위협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죽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제가 있을 때만 해도 이것 때문에 사형당하는 사람 3명을 봤습니다. 사실 한국 같으면 죽을 일도 아닌데 북한에서는 죽여버리는 것이지요.

밀수를 도와주다

저의 최종 목표는 경찰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경찰대학에 꼭 가야 했습니다.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엄마가 경찰학교 식당에서 일하면서, 제 추천서를 받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 주셨지만 추가적으로 뇌물을 고이기 위해 돈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호송을 다니면서 제 살 궁리를 좀 했습니다. 범인 호송을 할 때 범인들을 기차에 태우러 가면 제 안전 좌석에는 검열을 못하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검열을 못하니까 구리라던가 마약과 같은 불법 물건들을 싣고 갔습니다. 보통 장사꾼들이 제게 부탁했고, 제가 그 물건을 무사히 혜산까지만 가지고 가면 보통 한 300달러 정도 벌 수 있었습니다. 300달러면 북한에서는 굉장히 큰돈입니다. 이렇게 돈을 벌어 경찰학교에 가기 위해 돈을 계속 고였고, 저는 남들보다 빠른 26살에 경찰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