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일본에서 북으로 간 이야기 – 9

일본에서 북으로 간 이야기⑨

  (편집자) 이제까지 일본에서 북으로 간 가와사키 에이코(경희)님이 왜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북한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 후 왜 다시 북한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녀의 삶에 대해 전했다. 또한 일본에서 북으로 간 여러 귀국자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번 호를 끝으로 '일본에서 북으로 간 이야기'를 마친다.

제8장 부유한 자

성규의 부친은 한국전쟁 때 고철 등을 거래하여 일확천금의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는 그 돈을 밑천으로 부동산업을 시작했는데 경기의 상승에 편승하어 이것도 멋지게 성공했다. 그는 조선인부락을 떠나 요코하마의 고급주택가에 멋진 집을 짓고 자식인 성규에게 호화를 누리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성규가 조선으로 가겠다는 말을 했다. 부친은 어리둥절하였으나 이미 구청에 신청해 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성규는 무슨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바다를 건넜다.

성규는 북한에 간 후, 지방의 공과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대학시절 돼지먹이 같은 음식물과 매일 같이 없어지는 소지품에 얼이 나갔다. 대학을 졸업 한 후에는 운송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으나 비포장도로가 많은 북한에서는 운전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야근은 사실상 필수였지만 일을 더 한다고 해서 돈을 더 주지도 않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근본이 선량하고, 명랑하고, 우스개소리 잘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천부의 재능을 갖고 있어 언제나 웃음에 쌓여있던 성규의 마음도 조금씩 변해갔다. 점차 일하는데 흥미를 잃고, 꾀병을 부리며 술 마시기를 즐기게 되었다.

5년 후, 성규의 친구들은 더욱 깊은 시골로 배치되어 가버렸다. 마음의 지탱점을 잃은 성규는 외로움에 빠져들었고, 그 때 성규와 직장에 같이 다니던 젊은 사내가 찾아왔다. 그는 술안주를 가져와 꼬시며 재밌는 곳을 데려다 준다 하더니 간 곳은 한 귀국자의 집이였다. 왜 이런 곳으로 데려왔는가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데 한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알고 보니 그녀는 북한에 온 후에 천생고아가 되어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매춘을 하는 여자였다.

처음엔 그런 곳에는 다시 안 가려 마음먹었던 성규이지만 현실에 낙담하여 술마시기를 즐기던 성규는 결국 자주 드나들다 그녀의 동생인 혜옥을 만나게 되었고,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성규의 행동을 나라에서 알게 되었고 결국 북한의 법에 따라 성규는 혜옥과 결혼한 후 탄광으로 추방당하게 되었다. 운전수였던 성규였지만 추방지에서는 차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탄광에 들어가서 무연탄을 캐야만 했다. 성규는 이만한 급여를 받고 일하는 것은 노예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다가 사고로 사람이 죽어도 장례가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죽은 사람의 가족들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없었다. 일하다 사고가 나면 죽은 사람과 그 가족이 손해를 볼 뿐 이었다.

추방자에게 주어진 집이란 비바람도 가리지 못할 찌그러져가는 단칸집이었다. 그러나 혜옥이 열심히 살고, 성규 또한 아버지의 돈으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현재 상황에 절망한 성규가 항상 술을 마시고 혜옥에게 손찌검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성규는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1990년대가 되어 나라의 경제가 더욱더 어려워지고, 공장이 가동을 못하게 되자 돈 있는 귀국자에게 붙어서 어부지리로 먹고사는 인간들도 나타났다. 성규의 주변에는 그런 인간들로 언제나 우글거렸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버블경제가 터지고 부동산이 망하자 조선에 너무나도 많은 돈을 쏟아 부은 성규의 아버지는 파산하게 되었다.

성규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내에게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말을 하였다. 혜옥은 성규의 입에서 뉘우침의 말을 처음 듣고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해 돈은 없지만 평온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겨울의 어느 날 성규의 아내에게서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신고가 안전부에 접수되었다. 처음에는 안전부에서 성규가 유흥을 즐기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기에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성규가 돌아오지 않자 안전부보다도 보위부가 들끓기 시작했다. 우선, 국경선들이 폐쇄되고, 38도선 연선 군부대들에까지 성규의 사진이 배포되었다. 성규가 탈북을 시도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점에서 성규의 가족은 유폐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혜옥이 아무리 남편은 가족을 두고 그런 일을 할리가 없다 하여도 막무가내였다. 그러던 어느 추운 날, 바다에서 한 남자 시신이 발견되었다. 바로 성규였다. 시신 발견 이후 차차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성규의 담당안전원은 성규에게 이러저러한 트집을 잡아서 조금씩 돈이나 물건들을 요구했었다. 이럴 때 마다 성규는 언제나 요구한 물건들을 내주고는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성규의 아버지가 파산해 더 이상은 요구한 물건들을 못 주겠다고 하자 안전원은 자기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이전에 있었던 일로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였다. 성규는 법에 정해진 벌금보다도 더 많은 뇌물을 요구하는 것이 어이가 없어 거절하자 안전원은 주먹을 휘둘렀고 성규는 그대로 기절하였다. 이런 일이 상부에 보고되면 자신이 직업을 잃을 것이 우려된 안전원은 그대로 기절한 상규를 목 졸라 죽였다.

이리하여 성규는 남보다 좀 돈이 있어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혜옥은 남편이 죽은 것을 슬퍼하기에 앞서 시신이라도 발견된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고 그냥 탈북자로 치부되어 처리 되었더라면 남은 가족들은 강제수용소로 직행하고 말았을 것이니까.(끝)

※ 『북한인권』 195호. 2015년 1. pp. 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