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일본에서 북으로 간 이야기 – 7

일본에서 북으로 간 이야기⑦

 

(편집자) 이 글은 일본에서 북으로 간 가와사키 에이코(경희)님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왜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북한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 후 왜 다시 북한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녀의 삶을 통해서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얽히고설킨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의 강인한 성품으로 다시 자유를 찾기까지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편집: 강지훈<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의학과 2년>

 

제6장 선이의 장례식 가는 길

선이의 딸에게서 모친의 부고를 알리는 전보가 오자, 북한으로 귀국 후에도 연이 있었던 박씨의 아들은 그의 딸과 장례를 가기로 했다.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는 데는 사망통지서가 있어도 일주일이 걸렸고 차표는 암거래로 사는데도 이틀이나 걸려서 겨우 손에 쥘 수 있었다. 딸은 기차 칸에서 먹을 식사를 위해서 주먹밥을 사흘 분과 나머지 사흘 분은 비싼 외화상점에 가서 건빵과 같은 것을 샀다. 그냥 간다면 24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기차가 달리는 도중에 언제 설지,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랐기에 미리 충분한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기차가 도착한다는 방송 후, 2시간 후에야 기차는 들어왔다. 기차에는 사람들이 새까맣게 매달려 있었다. 기차 안 뿐 만 아니라 지붕 위에도 사람이 빼곡히 타고 있었다.

기차에는 유리창도 없었다. 기차가 멈추면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먼저 기차에 오르려고 승강구로 몰려들었다. 안에 탄 사람들은 문으로 내릴 수가 없어 창문으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승강구에서 이제 더는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입구를 막아버렸다. 기차를 탈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중국제 담배를 들어 흔들면서 안에 있는 사람의 협력으로 창문으로 기여 들어가기 위해 창문마다 사람들이 가득 매달렸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 그림이었다. 다행히도 박씨의 아들은 사위의 중학교 동무인 열차 안전원(경찰)을 소개받고 그에게 뇌물을 약속해 안전원 전용 차량에 탈 수 있었다.

기차가 30분 가고는2∼3시간, 2시간 달리고는 반나절 서 있는 식으로 가다 보니 이 여행이 언제 끝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기차가 역으로 들어설 때마다, 내리고 타는 소동은 반복 되었다. 사람들에게 깔려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조차 있었으나 기차는 그런 것에는 상관없이 전기가 오면 달리고 정전이 되면 몇 시간 혹은 몇 일 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꾸물꾸물 기차는 전진하여 8일만의 오전 3시 쯤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전기에 감전되고, 지붕에서 떨어지고, 철교에서 떨어지고, 밀쳐져 화물차에서 떨어지게 되어 차 밑으로 감기어 들어가고, 먹을 것이 떨어져서 굶어 죽는 식으로 12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다. 그렇게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는 동안 안전원들은 위반승객들에게 뇌물로 담배를 뜯어내고 있었다. 박씨의 아들과 그의 딸은 이러한 엄청난 광경을 보고 공포에 몸을 떨었고, 여행길을 떠난 것을 후회했다.

사위의 안전원 친구는 선이의 집이 기차에서 내려서 트럭을 타고 3시간은 가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큰 거리로 나가서 한참 있으니 초라한 트럭이 한대 왔고 자욱하게 먼지가 이는 시골길을 달려 목적지에 당도했다. 선이의 집에는 막내딸이 살고 있었다. 막내딸은 박씨의 아들과 처음으로 만났는데 친 오빠를 만난 것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오후 4시 쯤 박씨의 아들과 그의 딸은 준비해 온 것을 가지고 선이의 유족들과 함께 선이의 묘소로 갔다. 나무도 없는 벌거숭이 산중턱에 외롭게 그의 묘가 있었다. 묘 앞에 비닐보자기를 펴놓고 음식들을 차려 제사를 지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먼 곳에 있는 선이의 나머지 자녀들도 모두 와있었다. 그들은 밤새껏 자지 않고 맷돌을 돌려 두부를 만들었고, 고구마도 삶아놓았다. 가난한 속에서도 자녀들의 따뜻한 대접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선이가 죽은 전말을 들은 박씨의 아들은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 들어보니 선이가 그 강냉이를 몰수당할 아무런 근거도 없었던 것이다. 형제들이 하는 말을 종합해 본 결과 박씨의 아들은 그것이 분주소소장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평양에서 온 학생들에게는 강냉이를 몰수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있지 않았으므로 소장의 승인 없이는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없었다. 박씨의 아들은 격노하며 당장 소장에게 가겠다고 했으나 막내딸이 그런 식으로 따지면 보복을 부를 뿐이라 말렸다. 그러면서 오히려 소장을 찾아가서 은근슬쩍 협박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제안했고, 이 말에는 박씨의 아들뿐만 아니라 선이의 자녀들도 찬성했다.

박씨의 아들은 소장에게 가서 조총련 간부들이 일본에서 와 선이가 죽은 사유를 조사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소장은 겁에 질려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다. 이런 소장에게 박씨의 아들이 부드러운 말투로 앞으로의 일을 잘 부탁한다고 하니 소장의 얼굴이 환해지며 그것은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장담을 했다. 소장과의 일이 해결된 다음, 올 때 쓴 돈을 고려하여 그것보다 조금만 더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선이의 자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오는 길에 내렸던 작은 역에서는 기차를 탈수가 없다고 하기에 트럭으로 국경도시 신의주로 갔다. 역에 도착하니 곧 기차가 들어온다고 했다. 개찰구로 가본 그들은 깜짝 놀랐다. 개찰구에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밀려와 남자들은 사람의 머리를 짓밟고 개찰구를 뛰어넘고 있었다. 도저히 개찰구를 통해서는 홈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박씨의 아들은 서둘러 딸을 데리고 차들이 지나다니는 문을 여닫는 사내에게 중국제 담배 2곽을 주고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기차가 어디에 있을까 찾는데 승무원인 젊은 아가씨 2명이 지나갔다. 박씨의 아들은 그들에게 뇌물을 주어 열차에 탑승 할 수 있었다.

열차 승무원을 따라간 곳은 화물차량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박씨 일행 외에 남자가 3명 더 들어왔다. 기차가 떠나고, 밤이 깊어지자 열차 승무원들은 서로 소곤거리며 화물칸의 짐들을 훔치기 시작했다. 박씨의 아들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아버지의 범상치 않은 기세를 눈치 챈 딸은 열차의 구석으로 그를 끌고 가서 눈물로 살아서 집에 가려면 못 본 척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런 딸의 모습에 그는 입을 다물게 될 수밖에 없었다. 기차는 갈 때는 8일이나 걸렸는데 돌아 올 때는 닷새 밖에 걸리지 않았다. 박씨의 아들은 이 여행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이 나라의 또 하나의 현실을 본 마음이었다.(계속)

 

※ 『북한인권』 193호. 2014년 11. pp.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