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일본에서 북으로 간 이야기 – 6

일본에서 북으로 간 이야기⑥

(편집자) 이 글은 일본에서 북으로 간 가와사키 에이코(경희)님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왜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북한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 후 왜 다시 북한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녀의 삶을 통해서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얽히고설킨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의 강인한 성품으로 다시 자유를 찾기까지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편집: 강지훈<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의학과 2년>

제5장  선이

  선이가 살고 있는 곳은 판자집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조선인 부락이었다. 아무리 가난뱅이들만 모여 사는 조선인부락이라도 이런 집은 없었다. 양식이 언제나 부족해 선이는 농가 에 가서 무나 배추, 고구마줄기 같은 것을 얻어다가 그것을 소량의 낱알에 섞어서 먹었다. 이에 더해 선이 남편이 도박에 빠지면서 가계는 더욱 기울게 되었다.

  그 무렵 재일조선인의 귀국사업이 시작되었다. 선이는 자식들의 공부까지 시켜준다니까, 자기가 죽을 각오로 일한다면 지금보다는 형편이 낫아 질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 초, 아직 추위가 한창일 무렵, 선이는 남편 없이 자식들을 데리고 귀국선에 올랐다. 이름난 도박꾼이고, 주먹을 가볍게 휘두르는 사내이기는 했지만 남편만을 믿고 살아온 선이는, 외로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릴 것 만 같았다. 그러나 다섯 자식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만이 선이가 꺼꾸러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북한에 도착하여 받은 집은 일본의 집에 너무 초라했다. 더욱이 한창 자라는 선이의 자식들은 식욕이 왕성하였다. 쌀독의 쌀을 계산해본 선이는 그 쌀로는 한 달도 충분히 먹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선이는 더 이상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직업을 구한 다음 날부터 선이는 오전 4시에 일어나 무 잎과 강냉이 죽을 끓여서 아이들을 먹이고, 큰애들 셋을 학교로 보낸 다음, 어린 자식 둘을 데리고 각각 유치원과 탁아소로 데려다 준 다음 자기 작업장으로 일을 하러 가는 생활을 시작했다. 선이는 정말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직장에서도, 이웃들도 누구도 선이와 가까이 지내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더한 쓰라림을 겪고 있었다. 자식들이 밖으로 나가면 돌을 던지는 애마저 있었다. 일본에서 가져온 옷을 입고 다니다 오물을 뒤집어쓰고 울면서 돌아올 때도 있었다. 선이는 어린 자식들이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선이는 일본에서 들은 말과 현실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나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선이 남편은 자식들을 특별히 귀여워했다. 돈을 모두 잃어버려도 자식들에게 과자 한 봉지 쯤은 사가지고 와서, 그것을 입에 넣어주고는 눈을 가느다랗게 하고 좋아하던 사내였다. 그는 결국 자신도 가족을 따라 북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가족에게로 돌아온 남편은 자식들이 자란 것이 기뻤으나, 모두 새까맣게 볕에 타고 몹시 여위어 뼈만 앙상한 데에 놀랐고, 10년도 더 늙은 것 같은 아내를 보니 가슴이 저렸다. 그 후 남편도 힘을 합쳐 열심히 일하였으나 아무리 열심히 일하여도 살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10년이 지났다. 맏딸은 예쁘고 부지런했으나 재일동포 출신이었기에 가난한 집에 시집가서 극빈에 허덕이고 있었다. 선이의 아들은 인간의 생활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난 속에서도 훌륭히 자라났다. 키는180cm를 넘고 어릴 때부터 계속 일해서 근육은 울퉁불퉁하였고 힘도 굉장히 세었다. 그러나 건설 일을 하던 중 전신95%에 3도 화상을 입고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남편은 아들의 묘에 가서 통곡하더니 3달 후 아들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러던 선이에게 뜻밖의 일본에서 알던 지인이 방문하여 2만 엔이나 되는 큰 돈을 전해주었다. 선이는 그것을 밑천으로 돈을 벌기로 결정했다. 다행스럽게도 선이는 오랫동안 식료 가공공장에서 일했었기 때문에 소주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선이는 2만 엔으로 가을에 강냉이가 쌀 때에 사놓았다가 일 년 내내 조금씩 소주를 만들어 팔 계획을 세웠다. 선이는 1.8톤이나 되는 강냉이를 사들였다. 이를 알게 된 소장은 선이가 사들인 식량에 욕심이 났다.

소장은 졸업실습 나온 간부학교(경찰학교)의 학생 두 명과 강냉이를 뺏어 나눠가지기로 모의했다. 두 젊은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좋아했다. 그 둘은 선이의 집을 습격하여 선이를 끌고 갔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위압적으로 선이를 마치 중범죄인을 취급하는 것 같은 태도로 공포를 조성했다. 선이는 그것만으로도 얼이 빠지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앉아 떨기만 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국가서 장사를 하는 것은 죄가 된다며 강냉이는 국가가 몰수한다고 한 다음, 삼분의 일은 소장에게 넘기고 나머지는 자기들이 암시장에 가져다 팔아버렸다.

  이렇게 하여 선이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손에 쥔 귀한 2만 엔을 모두 잃어버렸다. 자식들에게도 일 원도 나누어 주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그 돈을 밑천으로 일가가 굶주림을 면하려고 한 것이 이런 결과가 되어 버렸다. 선이는 무슨 말을 해도, 무엇을 물어보아도 한마디도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딸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온 선이는 방안에 멍하게 서 있다가 갑자기 푹 꼬꾸라졌다. 간신히 눈을 뜨고 딸의 손을 잡으려고 했으나 채 잡지 못하고 목을 떨구었다. 이렇게 선이는 너무나도 서글프게 산 63년의 인생을 마감했다.

※ 『북한인권』192호. 2014년 10. pp.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