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인도적지원과 개발지원, 오늘날 북한의 현실

인도적지원과 개발지원, 오늘날 북한의 현실

 

 

 

박 명 호 

<북한 함북 청진 출생, 함남 및 황해도 거주, 前 북한 인민군 대위, 공군 수산기지․군수동원총국․호위사령부 근무, 입국일자: 2006년 5월 가족과 함께 목선을 타고 탈북, 서해안 경유 입국>

 

먼저 북한사람들의 생명과 인권을 위해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회의에서 발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북한의 특권층이나 국가의 각별한 배려를 받는 평양사람들이 아닌 북한 일반주민들의 목소리를 미력하나마 대변하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북한속담에 ‘비는 하늘이 주고, 절은 부처가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운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감사를 받고 이익을 본다는 뜻입니다. 지난 10년이 넘도록 한국과 전 세계의 많은 분들께서 극심한 식량난과 어려움을 겪는 북한주민들을 돕기 위해 귀한 정성을 모아 보내주셨습니다만, 힘없고 평범한 대부분의 일반주민들의 생활은 거의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국제사회가 보내준 순수한 정성을 악용해 이익을 본 사람들은 따로 있고, 평양․개성 등 일부 특별지역들과 나머지 대부분의 지방간의 생활격차나 특권층과 일반주민간의 갈등의 골은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심각해지고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사회와 북한주민들의 의식은 매일매일 변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변화가 좋은 변화인지, 나쁜 변화인지, 숨 막히는 북한체제나 경직되어 있던 북한사회가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국제사회의 많은 분들께서 진정으로 북한의 인권개선과 개혁․개방을 바라신다면, 막연한 낙관이나 이상적인 희망에 집착하기 보다는 실제 북한 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봐주셨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북한당국의 거짓된 약속이나 선전보다는 힘없고 평범한 일반주민들의 입장에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러 노력이 과연 도움이 되는 것인지 진지하게 돌아보고 평가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저는 2006년 5월에 나무배를 만들어 타고 가족들과 함께 탈북해서 서해안을 따라 NLL을 건너 한국으로 왔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북한군에 있었고, 제대한 뒤에도 군수물자를 담당하는 여러 곳에서 일하면서 국제사회의 지원이 왜 일반주민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심지어 군인들조차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분명히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제가 탈북하기 전까지의 북한군대와 사회의 최근 상황과 주민들의 변화되는 의식, 사회분위기 등을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군대가 먹고, 군대가 내다파는 식량

이제 북한주민들은 외부로부터 원조받은 식량을 애초에 받을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2003년 즈음부터는 협동농장원이 아니라도 공장, 기업소에서 일하거나 장사하는 사람들도 애국미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군량미로 쓰일 쌀15kg씩을 국가에 바쳐야 하고, 외부지원품을 받을 경우에는 지원 받았다고 오히려 쌀40-50kg을 낼 것을 요구받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정이 안 되는 사람은 바치지 못하고 버텨보지만, 조금 받아보겠다고 하다가 더 많이 빼앗길 수도 있으니, 차라리 안 받고 안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원 1순위는 물론 군대입니다. 인민군대에 물자를 공급하는 것을 ‘후방공급’이라고 하는데, 서해안지구의 부대들은 중부지구나 동해안지구보다 나은 편입니다. 서해안지구는 곡창지대라서 근처에서 쌀을 접수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야채 같은 것에나 신경을 씁니다.

 

반면에 중부나 동부에서는 군대가 쌀 접수사업에 동원되는 형편이라, 12월부터 3월까지는 국가에서 쌀을 받고, 그 이후에는 근처에서 접수해 먹어야 합니다. 접수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황해도 평산에 있는 부대가 쌀 1천 톤이 필요하면 지역 협동농장에서 조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북한에는 인민군 량식국, 소위 '514'라는 식량담당기관이 있고, 그 곳에서 각급 군부대마다 ‘어느 지역, 어느 협동농장에 가서 식량을 가져가라’고 정해줍니다. 그러면 챙길 몫을 할당받은 부대가 직접 협동농장에 가서 받거나, 논밭에 있는 것을 직접 챙겨가기는 식입니다.

 

또 ‘514’에서는 각 부대에 ‘어느 항구로 원조식량이 올 것이니 들어온 쌀을 부대로 챙겨가라’는 식으로 할당량을 정해줍니다. 한국이나 국제사회에서 항구를 통해 쌀을 보내도 가장 먼저 군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항구에 쌓인 식량을 운반할 때는 군인들이 민간인 복장을 하고 군용차량을 민간차량으로 위장해서 군대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군에서는 다른 물자를 구하려고 그 일부를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결국 주민들은 돈 없이는 원조식량은 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원조입니까? 왜 주민들이 원조식량을 비싼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합니까?

 

저는 북한에서 군생활을 계속하면서 하급병사가 아닌 군관이었고, 제대하고 나서도 간부로 일했기 때문에 밥을 굶거나 그런 적은 없습니다. 배고파서 탈북한 것이 아니라, 라디오를 많이 듣고 바깥세상 돌아가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북한을 떠나왔습니다. 한국에 와보니 먼저 한국으로 오신 분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인터넷에서라도 북한실상을 알리고 있고, 북한정권만 돕는 분위기 아래에서도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며 다행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주민들은 차라리 일하지 않는 태업과 사보타지 등으로 북한체제가 붕괴되길 바라면서 눈물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남쪽에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 북한체제를 자꾸 살려주는 게 못마땅할 따름입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한동안 언론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았는데 한국 정부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북한당국에 쌀 갖다 주면서 북한주민들을 돕는다고 선전하는 것을 보면서 도저히 이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에는 나서서 북한실상을 주변에 알리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인도적 지원인가?

사실 북한은 길어도 5년 정도만 국제사회의 지원이 끊기면 정권이 도저히 버틸 수 없게 됩니다. 연형묵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장군님! 고난의 행군 한 번만 더하면 장군님 따라갈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일반주민들 흔히 알고 있습니다. 2천만 북한 인구 가운데에는 배급 없이도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 때는 국가만 바라보고 앉아서 굶어죽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각자 살아남는 요령을 터득했습니다. 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공무원들의 생활수준이 일반주민들보다 더 떨어질 정도로 비교적 안정이 되어 있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핵문제로 북한을 달래기 위해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다시 지원이 들어오니까 당국이 배짱이 생겨서 주민들에게 이것 해라, 저건 하지 마라 합니다. 북한을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주민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변화하려면 먼저 국가가 힘이 없어져야 합니다. 국가공무원들이 편하게 앉아서 배급을 받지 못하게 되면 됩니다. 1994년에는 한 부대에서 대대장이 부대원들을 밥을 못 먹이게 되니까 중대장을 부르고, 중대장은 소대장을 부르고, 소대장은 다시 분대장들을 불러서 3일 동안 바깥에 나가서 각자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오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탈영을 합법적으로 승인 받는 상황이 되고 보니, 누가 다시 부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수많은 병사들이 몇 개월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그런 상황은 무려 6개월 정도나 계속되었습니다. 사실상 부대가 다 해체된 상황이었지만, 탈영병이 생겨도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았고, 상부에서도 하급부대 상황에는 별로 신경도 안 썼습니다.

 

많은 부대들에서 탈영병이 늘어나고 있어도 다들 관심이 없고, 중앙으로까지 보고도 잘 안 됩니다. 중대장들이 모이면 ‘우리가 중대장인가? 분대장이지’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중대에서 병력동원을 해도 한개 분대 규모밖에 안 될 정도입니다. 빈 인원이 많아도 그냥 그렇게 놔두고 보충할 생각도 하기 힘듭니다. 쌀 지원한 것들 대부분이 군대로 간다고 해도, 제가 군 생활을 20년 했는데 ‘주려면 콱 주고 안 주려면 그냥 주질 말지’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래서 ‘부대가 해산하면 나야 차라리 좋지’하는 심리가 만연해 있습니다.

 

군대가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분위기에 있을 때에는 당국이 주민들을 억누르기도 힘들었습니다. 북한이 개방과 개혁의 길로 들어서려면 국가공무원이 배급을 잘 받지 못하고 그들도 먹고 살기 위해 생계에 나서야 합니다. 북한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지난 정권에서는 정부가 북한인권문제를 거론하거나 북한에 쌀을 보내주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마치 조공을 안 바치면 전쟁 난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50년간 북한이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없었던 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무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주민들에게 북한이 강국이기 때문에 남조선도 미국도 모두 갖다 바친다고 선전합니다. ‘남조선은 곡창지대가 많은데, 우리가 군사력이 막강해지니까 겁을 내고 갖다 바친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잠깐은 싸울 수 있어도 오랫동안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199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는 전쟁이 나면 당장 북한의 장사포 공격을 받아 서울이 쑥대밭 된다고 겁을 먹었다고 하는데, 휴전선 근처의 북한 무기들은 지하갱도 안에 있고, 갱도 안에는 습기가 많습니다. 한국에 와서 군부대를 가보니 북한과 다르게 아주 잘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아무리 지하갱도에 무기들을 숨겨놓고 준비를 한다고 해도 방수가 안 되면 소용이 없습니다. 갱도 안의 온도는 6도 정도이고, 습도는 85도 이상이나 됩니다. 장비들은 일주일 이상 갱도에 두면 안 되기 때문에 수시로 끌어내 햇볕에 말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름이 없어서 많은 장비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심지어 개인화기인 AK 소총을 닦을 기름도 부족했습니다. 당연히 대포 같은 큰 무기를 소제(정비)할 기름도 부족했습니다. 몇 년 전 북한에서 기동훈련을 했을 때는 오랫동안 물자를 비축하고 모아서 겨우 한 것이었습니다. 대외과시용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상시에 전투기술을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시로 정비하기도 힘들도 제대로 보관하기도 힘든 상태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인권사각지대, 북한 군대

북한은 만 16세의 어린 나이에 한창 성장기로 뼈도 제대로 굳지 않은 청소년들이 군대에 나가 고생하는데, 사실 인권문제로 말하자면 가장 처참한 곳이 군대입니다. 군대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있어도 여론화도 되지도 않습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에는 인원보충하려고 어린 학생들이 졸업장도 못 받고 군대로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북한의 졸업식은 원래 8월인데, 4월에 징집되어 나가니 졸업도 못하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대부터는 편법적으로 3월에 조기졸업시켜 군대로 데려가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군대에 나간 청소년들은 곧 부적응으로 탈영하거나 영양실조에 걸려 다시 사회로 쫓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북한에서 통제구역(정치범수용소) 다음의 인권 사각지대는 군대입니다. 일상적인 구타와 영양실조 등으로 탈영병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10년 전쯤 인민군대 내에 교화소가 생겼습니다. 평안남도 회창군에 ‘606소’, 함경남도 정평군 왕장리에 ‘607소’라는 군대감옥이 만들어졌는데, 그곳에는 강제로 입을 벌려 고통을 줌으로써 죄를 인정하게 하는 ‘입쟈끼’라는 고문장치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자끼’라는 것은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해 땅에서 차를 들어올리는 기구를 가리키는 말인데, 강제로 입을 벌리는 기계라고 해서 ‘입쟈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군대 교화소에 끌려가면 일반주민들이 가는 사회 교양소보다 훨씬 강도 높은 노동을 시키기 때문에 1년짜리 감옥인데도 힘들어서 많이 죽어나갑니다. ‘606소’, ‘607소’에 갇힌 사람들의 소원은 하루 빨리 민간 감옥으로 넘겨지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긴급구호지원의 허실

최근 한국에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으려고 일부러 둑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었는데, 아마도 둑을 개보수해야될 시기가 되었는데 폭우로 홍수가 나서 국제사회가 지원에 나서기 시작하는 시기에 무너뜨린 것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오해를 살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유엔이나 외국에서 긴급구호지원을 위해 현장조사를 나오면 아예 조직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합니다. 예를 들어, 도시락은 일부러 강냉이로 조금만 가져오라고 해서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서 이런저런 지원을 얻어내려고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북한당국의 이러한 놀음에 이용만 될 뿐 정작 제대로 도움을 받거나 지원품을 받지도 못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이제 주민들은 아무리 집이 떠내려 간다고 해도 크게 좌절하지도 않고 국가에 큰 기대도 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공식적으로 북한에서는 집이 국가소유라고 하지만, 살기 힘들어지다보니 공공연히 싼 값에 집까지 사고팔기 때문에, 집을 다시 복구하느니 돈을 벌어 다른 집을 구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모니카 주택(주민 집단거주지역)’도 1990년대에 300만명에 이르는 엄청난 아사의 핵심원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의 아사자들도 산골로 들어가 먹을 것이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음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의 주민통제정책으로 보위부 사택과 같은 당군간부들의 집을 제외한 모든 집들을 집단부락화한 결과 옥수수라도 심어먹을 몇 십 평의 땅이 없어서 국가만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당국의 집단부락화와 주민통제정책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북지원단체들에서는 북한에 식량이 절대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이 보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동안 북한주민들 가운데 외부의 지원과 도움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보내주는 쌀로 일반주민들에게 배급을 준다는 것은 북한현실과는 거리가 먼 억지주장입니다. 북한당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도 국가명절인 김정일 위원장 생일 때마다 아이들한테 주는 몇 알의 사탕조차 주민들에게 재료를 걷어서 만들어주면서 생색낼 정도로 양심이 없습니다. 이것이 북한당국이 ‘어린이들의 지상낙원, 세상에 부러움 없어라’고 외부에 선전하는 북한의 현실입니다.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는 지금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고, 그러한 지원을 중단하면 일반주민들이 더 힘들어질까봐 전전긍긍하면서 보내주고 있지만, 북한주민들은 국가로부터 양말 하나 받지 않고, 나름의 방법대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결국 인도적 지원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권력자들과 특권층들일 뿐입니다.

 

개성공단과 남북교류 뒤의 어두운 그림자

한국에는 2006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잘되어서 곧 한반도에 평화가 오고, 통일준비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듣기에는 그럴 듯한 선전으로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북한에도 모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북한사회에서 오랫동안 그리고 최근까지 살다가 온 저 자신을 포함하여 한국에 와 있는 많은 탈북자들은 일방적이고 현실과 거리가 먼 낙관적인 전망만 앞세운 북한에 대한 지원은 무슨 수를 써서도 막고 싶습니다. 그래도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고, 가족, 친척, 친구들이 모두 있는데 어떻게 북한에 대한 지원을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는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신중하지 않은 지원은 결코 북한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쁜 권력자들의 힘만 키워주고, 인권과 정의를 유린하는 정권만을 연장시켜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주민들은 오히려 지금과 같은 체제와 사회가 차라리 망해버리고 새로 시작하길 바라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힘없고 평범한 일반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북한에는 요즘 ‘닫긴 구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제특구, 특별지구 같은 것은 들어보셨겠지만, 닫긴 구역이라는 말은 잘 못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지난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동영 후보자가 제시한 선거 공약을 보면서 탈북자들이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모르실 것입니다. 그는 개성공단이 북한의 일반노동자들과 주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강조하고, 더 많은 북한 지역에 이러한 남북경협과 철도사업을 벌이겠다고 선전하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주민들에게는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큰 변화와 고통을 낳고 특권층과 일반주민간의 빈부격차와 갈등을 높이는지 진지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신포시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경수로를 건설한다고 주변을 지나가는 길을 아예 막아버리고 닫긴 구역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철도망이 신포시를 관통하고 있었는데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으로 막아버렸으니, 트럭, 리어카 같은 일반주민들의 거의 유일한 생계운송수단은 그 닫힌 구역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신포지역을 지나자면 도질령이라는 산을 넘어 100리길을 돌아가야 하게 되었습니다. 돈이 있어서 기차를 탄다고 하더라도 달리던 기차를 신포공사지역 앞에서 몇 시간씩 세워놓고, 남조선 사람이나 외국인들이 볼까봐 기차 위에 겨우 올라타거나 자리가 없어 창문에 매달린 사람들을 몽땅 끌어내리거나 화차 안으로 쑤셔넣습니다. 기차로 신포를 통과하자면 숨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야 합니다. 북한의 권력자들과 당국에는 이익이 될지 몰라도 정작 그 곳에 사는 힘없는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산간벽지로 추방되거나 격리되어 고통 받고 불편하게 만드는 격입니다.

 

개성공단에도 2만 명 정도의 북한사람들이 일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이 아닙니다. 한국이나 외국사람들이 보면 그냥 보통 노동자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권력자들과 언제나 당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고 일반주민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혜택을 누리는 특권층의 자식, 친척들입니다. 북한사회가 흉흉해지고 어디가나 분위기가 드세어지고 보니, 특권층이나 당 간부들은 자신의 아들, 딸들을 아무데나 일하러 보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안심하고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일을 시키고 싶은데, 가장 선호하는 곳이 개성공단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신의 힘으로 가족들에게 자리를 주고, 친척 중에 사람이 있으면 힘을 써주고, 돈이 많은 사람은 뇌물을 바쳐서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등 결국 북한의 특권층들만 호위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최고권력자에 대한 충성심을 높여 국가권력만 더욱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지역 개발의 유혹과 실상

한국에서는 북한경제가 어려우니까 북한 생필품의 70%가 중국에서 수입되고, 북한지역 광산 채굴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점을 두고 경제적으로 중국의 식민지화가 되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따라서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한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자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로 북한실정에는 어둡고 대충 겉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만 보고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북한은 그렇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나라가 아닙니다. 광산에 대해서 말하자면, 북한 광산들은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이미 다 멈춰버렸습니다. 오랫동안 내버려둬 물이 차서 대부분의 광산이 폐광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번 폐광이 된 광산은 전기를 끌어다 써도 살리기 어렵습니다.

 

무려 1억톤이 넘는 무연탄이 묻혀있는 것으로 알려진 함경남도 고원탄광의 실태도 어이가 없습니다. 전기사정으로 갱도시설이 멈춰 생산이 불가능해지자 수직으로 땅을 파서 탄을 끌어올리는 위험한 방법을 써야할 지경입니다. 지하 20M까지 내려가면 공기가 희박해서 지상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이 수동펌프로 공기를 지하로 내려 보내주고 남편은 바께쓰(양동이)로 탄을 담아 위에서 줄을 당겨 끌어올리는 식입니다. 많은 탄부들이 하루 종일 일해도 겨우 1~2톤을 파낼 수 있는데 그마저 당국에서 헐값으로 가져가버리는 것이 오늘날 북한탄광의 현실입니다. 그래도 그렇게나마 사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이 지금 북한사람들의 딱한 현실입니다.

 

실상은 이렇기 때문에 중국이 채굴권을 얻는다고 해도 광산을 살리기 어려워서 새롭게 파야하는데, 실제 이익이 남는 생산을 하기까지는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도 딱히 손을 쓰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 당국은 이미 손쓸 수 없는 고철덩어리를 내놓고 중국과 한국 사이에서 경쟁을 붙이고, 그럴듯한 대외적 명분이나 맞춰주면서 눈먼 지원을 받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원되지 않는 주민, 태업

원래 경제공황 같은 것은 10년 정도가 지나면 어떻게든 회복되거나 새로운 길을 찾지 않습니까? 한국도 1990년대 말에 IMF 위기가 닥친 이후 10년 정도 지나니까 어느 정도 회복된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10년이 지나도, 한국과 국제사회가 계속 많은 지원을 해도 회복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사회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누구보다 일반주민들부터 북한이라는 조국과 생활터전인 사회를 발전시키기보다 퇴보시키는 방향으로 가게끔 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국가를 위해 일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이 사회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국가가 망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이 사실상 태업상태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없습니다. 식량난이 한창이었을 때는 직장에 나가지 않고 장마당 등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는 무결(무단결근)이 심각했지만, 이제는 마지못해 직장에 나가더라도 열성을 갖고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자리만 지키고 일을 안 하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변화를 선택하도록 하는 추동력은 북한사회를 오히려 퇴보시켜서 차라리 망해버리기를 바라는 일반대중 속에서 나오고 있는 듯합니다. 북한주민들의 대세가 일을 안 하고 보이콧하는 분위기입니다. 보이콧이라는 말이 1880년 영국의 한 귀족영지의 보이콧이라는 관리인이 소작료를 내지 못한 소작인들을 쫓아내려다가 단합한 소작인들이 저항을 받아 오히려 자신이 쫓겨난 데서 생겨났다고 하는데,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하는 북한에서 노동자 보이콧 운동이 일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입니다. 전체 나라 지향이 일 안하고, 중간 간부들도 일 안하고, 사회 밑바닥에도 빨리 국가가 망해버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의식이 있어서 태업을 하는 것입니다. 북한주민들이 무지몽매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거나 당국의 말을 잘 들을수록 국가가 주민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빼앗고, 못살게 군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태업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