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이 글은 제1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1999. 12. 1)에서 발표한 증언입니다.

 

안 명 철
전 북한수용소 경비병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과 많은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는 북한에 살면서 앞전에 계신 분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저분들은 정치범수용소에 피해자로 들어왔고 저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정치범수용소에 갔습니다. 제가 1987년에 들어간 곳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7국 소속의 정치범수용 소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정치범수용소라는 용어를 쓰지 않습니다. ○○호 관리소 아니면 그 지역의 특성이나 이름을 따 가지고 백산구 보위부라든지 금산구 보위부 등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정치범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정치범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이주자 또는 이주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 서 국제사회에서 북한정치범수용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북한당국이 북한에는 정치범이 없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정치범수용소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북한사회 에 정치범수용소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처음 군입대한 곳이 함경북도 경성에 있는 11호 정치범수용소였는데 신입병인 저희가 호송차에 타고 가는 동안 호송감이 저희보고 앞으로 들어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웃거나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저희가 처음 수용소를 들어갔을 때 수용소 양쪽에 기관총이 걸려있었고 정치범들을 보았습니다. 북한에서는 남한을 비방하는 영화를 많이 찍고 있습니다. 저는 거기가 그 영화에 나오는 남조선 거지들을 모아놓은 그런 곳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여기 갇혀있는 사람들은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을 반대했고 우리가 끝까지 죽여야할 사람들이라고 교육받았습니다. 그들이 도주하거나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다, 도망가는 정치범을 잡으면 입당시키고 대학도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89년경에 제가 13호 정치범수용 소에 발령을 받아서 잠복근무를 부분대장하고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겨울 초기였는데 지금 이때쯤이었습니다. 새벽 5시경에 정치범수용자들이 모여 있는 마을주변에서 잠복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한 150m 앞에서 사람이 얼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분대장한테 정황을 보고하니까 부분대장이 나와서 무조건 사격을 했습니다. 사격하고 나서 가보니까 한 50대되는 정치범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는데 총소리가 나니까 부대에서 전화가 오고 문의를 했습니다. 문의를 해서 도망가는 정치범 을 잡았다고 보고를 했는데 실제로 그 사람은 도망가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에 무엇이 들려있었는가 하면 쥐덫하고 호미가 들려있었습니다. 정치범수용소 에서는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배가 고프니까 산에 와서 남들이 일하기 전에 5시전에 쥐라도 좀 잡아먹고 일하려 나가려고 하다가 참변을 당한 것입니다. 저의 부분대장은 도주하는 정치범을 잡았다고 표창을 받고 그 다음 해에 대학에 갔습니다.

수용소 병영 안을 보면 김일성과 김정일의 교시가 붙어있는데, 저희 경비병들은 정치범은 3대를 멸하라고 교육받습니다. 교시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 '계급적 원수들은 우리 인민들의 철천지원수이다. 동무들은 계급적 원수들에 대해서 동정하거나 동의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계급적 원수들이란 바로 정치범들입니다. 저희 국가 안전보위부 소속 경비대는 군대 가 아니라 도주하는 정치범을 죽이거나 정치범들이 폭동을 일으킬 때 동원되는 쉽게 말해서 살인 부대였었습니다. 각 부대에는 비행기를 잡는 '고사기관총'이 있는데 한 개 수용소에 4개씩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고사기관총이 원래는 비행기를 잡는데 쓰는 무기인데, 북한에서는 정치범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도주하거나 할 때 살상하는 무기로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북한정치범수용소에는 굉장한 경비무력이 한 개 수용소 당 한 개 대대나 리당 정도 배치되어 있고 외곽에 높이 1m 50 의 전기철조망과 깊이 5m 이상의 함정을 파놓고 함정 안에 대못과 죽창을 박아서 도주하다가 빠지면 살아서 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삼엄한 경비 속에서 북한정치범수용소를 관리하고 있는데 수용소 내에서 근무했던 군인들도 나오면 그 수용소에 대한 비밀을 지켜야 된다는 서약서 를 쓰고 나오고 근무를 했던 사람들은 북한에서 최대한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수용소를 나오면 평양에 살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주고 대학에 갈 수 있는 혜택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북한정부는 정치범수용소 경비병들이나 보위원들에게는 최대의 특권을 주면서 정치범에게는 무지막지한 탄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해자로 있다가 한국에 왔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안혁씨와 강철환씨가 탈출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92년에 우리 수용소 소장이 하는 말이 15호에서 출송한 정치범 두 명이 한국으로 갔으니 수용소에 대한 비밀이 나갈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비밀보장을 잘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그분들을 만나기 전에 상당한 갈등을 느꼈습니다. 수용소에 있을 때는 정말로 철천지원수 같은 사이였으니 그분들을 만나기가 굉장히 꺼려졌습니다. 그러나 막상 만나서 '북한체제가 그렇게 만들었지 내 자신이 원해서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립니다. 저 같은 북한체제의 수용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 있는 경비병들이나 보위원들이 하루빨리 인류역사상 얼마나 큰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명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현재 제가 알고 있기로는 북한에 정치범수용소가 12개 가 있고 그 안에 20만 명이 갇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빨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