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음울한 계곡 ①

[증 언]

 

다음은 외부인으로서 북한 관리소를 방문한 한 탈북자의 목격담이다.
 

음울한 계곡 ①
 

김 승 철
(탈북자·월간 북한 기자)

산 속의 관리소

꽤-액! 증기기관차는 힘겹게 기적을 울리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연통에서 쏟아져 나온 탄재가 목덜미며 어깨위에 떨어졌다. 머리를 옹송그리며 뒤짚어쓴 탄재를 털어버리며 잠시 플랫홈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열차가 들어오던 방향으로 스적스적 발걸음을 옮겼다. 차표가 있음에도 연신 역전쪽을 살펴보는 나를 보고 심사원은 피식 웃는다. 전번 봄에 홍원 출장에서 한번 단속을 당한 후로는 항상 단속을 당할까봐 내심 걱정이었다.

철길을 따라 역전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곳에 「23호 관리소」의 사람과 화물을 취급하는 출장소가 있었다. 「23호 관리소」는 덕성읍에서 30여리(12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곳에 있어 차량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23호 관리소」란 죄수들이 복역하는 감옥으로서 남한의 구치소와 같은 곳이다. 원래 북한에서 관리소란 특정한 서비스를 실현시키는 기관을 말하는 것으로서 상업(商業)관리소, 의약품 관리소 등 국가의 특정기관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하지만 관리소라는 명칭 앞에 아무것도 붙지 않거나 숫자가 붙으면 그것은 감옥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관리소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필자도 잘 모르지만 북한에는 감옥을 가리키는 단어가 여럿인데 교화소, 관리소, 집결소 등이 있으며 각각의 기능은 서로 다르다. 집결소란 철도역 주변에 있는 곳으로 임시 수용소 같은 곳이다. 그리고 원래 감옥으로는 「로동 교화소」가 있었으나 죄인들을 수용하는 관리소는 그 후에 생겨난 것 같다. 북한의 모든 감옥으로서의 관리소는 앞에 숫자가 붙어있다. 17호 관리소는 북창, 21호 관리소는 함경남도 대흥에(1987년경에 죄인들을 다른 곳에 이주시키고 해산됨), 15관리소는 함남 요덕 등 관리소의 호수에 따라 위치와 기능을 구별한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관리소도 경제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공식적으로는 「사회안전부(지금은 보안성) 제7국 「23호 관리소」였다. 안전부 관리소는 정치범과 경제범을 따로 취급하는데 「23호 관리소」는 경제범만을 수용하며 수인들의 대부분은 재범들로 형기가 보통 7∼8년 이상이이였다. 북한 관리소의 특징은 거의 대부분이 깊은 산중의 골짜기를 전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인데 「23호 관리소」 또한 산골에 위치해있는 것이다.

「23호 관리소」는 덕성읍에서 함경남도 덕성군 신태리(남한의 면과 같은 기능의 행정단위)와 상돌리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감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수차에 걸치는 출장 기간에 관리소의 직원들에게서 들은바에 의하면 「23호 관리소」가 생겨난 것은 1976년경이었다고 했다. 당시 신태리와 상돌리 주민들을 그 아래의 중돌리와 임자동리 등 인접 리들로 강제로 이주시키고 「23호 관리소」를 만들었다 한다.

산골역이어서 그런지 개찰구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설계사업소의 심사원과 나 단 두 명이었다. 관리소로 가기 위해 새벽에 함흥에서 떠난 것이 신북청에서 간선 열차로 갈아타고 덕성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가 넘어서 였다. 신북청에서 덕성역을 지나 삼기까지 가는 증기기관차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대로 낡은 것이여서 약간한 비탈에서도 힘이 딸려 헐떡거리는 통에 출장소에 늦으면 차를 놓칠까봐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용케 언덕을 올라와 주었다. 철로를 따라 걷는 우리 앞으로 장삿군 배낭과 보따리를 이고 지고 가는 사람들이 저 멀리 앞서 가고 있었다.

1986년 설계사업소에 입하한 나는 3년간 발전소 설계와 관련한 출장으로 함남도내 대부분의 군들을 돌아다녔다. 이곳 「23호 관리소」도 발전소 설계 때문에 드나들기 시작하여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특별한 출장

「23호 관리소」의 발전소 건설은 관리소측의 요청으로 시작된 것인데 내가 설계사업소에 들어와 맨 처음 맡은 설계작업이기도 했다. 함흥에서 나서 자란 나는 함흥수리대학을 졸업하고 3대혁명소조로 나갔다가 온 후 배치 받은 곳이 함경남도 중소수력발전 련합회사 산하기관인 「중소형수력발전소 설계사업소」였다.

내가 배치 받아 일한지 몇 달 되지 않은 1986년 가을 어느날 설계사업소에 안전원 복장차림의 낯선 사람들이 지프차를 타고 찾아왔다. 그들은 「23호 관리소」의 간부들이었다. 기사장과 간부 2명이 왔는데 우리 설계사업소에서 관리소 경내를 흐르는 거서천에 수력 발전소를 짓겠으니 설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8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북한의 경제난이 급속히 표면화되던 시기였다. 전력난이 아주 심각해서 매일같이 지방 송배전소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의무적으로 정전을 시켰다. 모든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은 국가에서 극히 제한된 전력량을 배정받았고 사용량을 초과하면 단전까지 시켰다.

북한 정부에서는 긴장한 전력사정을 해결하기 위하여 1986년 중소발전소 건설 장려정책을 실시했다. 86년 이전에는 중소발전소가 건설되면 국가 전력계통망에 투입되었었는데 지방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중·소 수력발전소 건설에 노력과 자재를 투입하여 건설할 경우 사용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전력난으로 허덕이던 각 지방의 공장, 기업소와 지방 당, 행정기관들에서는 너도 나도 발전소 건설에 뛰어들었다.

관리소도 전력사정이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자체로 발전소를 건설하여 전력난을 해결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함경남도 요덕군의 15호 관리소(정치범 수용소)도 1980년대 초에 벌써 자체로 소형수력발전소를 지어 전기문제를 해결했었다.

우리 회사와의 협의 끝에 발전소 건설 설계에 합의하고 나서 내가 맡은 설계대상은 「23호 관리소」 발전소 구조물 설계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23호 관리소」의 발전소 설계 대상책임을 맡으며 관리소에 출장으로 드나들게 되었던 것이다. 관리소 측의 사정으로 86년에는 설계에 착수하지 못하고 연기되다 87년도에 현지조사로 관리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올해(88년) 봄에 다시 발전소 구조물 위치의 세부 측량 및 조사작업을 하려 왔다가 이번 가을에 다시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출장은 좀 이색적인 것이였다. 명색은 발전소 건설부지 조사였지만 설계사업소 직원들의 김장용 고추를 해결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였기 때문이다.

「23호 관리소」는 죄수들을 동원하여 농사와 채굴업을 주로 하고 있었는데 주요 농산물 중의 하나가 바로 고추였다. 「23호 관리소」가 있는 지역은 고추농사를 하기에 알맞는 기후로 고추를 많이 심었는데 이곳의 고추는 중앙의 사회안전부에서도 많이 가져갔다. 설계사업소에서는 여름에 설계사업소 소장이 함흥으로 출장나온 관리소 기사장에게 부탁을 해서 「알아보자」는 반승낙을 얻어놓은 상태였다.

북한사회는 공급제로 유지되는 사회이지만 국영상점에서 공급하는 식품, 채소 및 과일 등과 무연탄, 술 등은 공급량이 적거나 아예 공급되지 않는 품목이 많다. 때문에 이와 같은 주민생활과 밀접히 연관된 식품이나 고기, 무연탄 등은 해당 공장 기업소들에서 「명절 부식물 공급」의 형태로 단위별로 해결하게 된다. 이 부식물 공급은 기업들의 중요도에 따라 국가에서 특별 공급하던가 아니면 생산품의 맞교환 형태로 이루어진다. 설계사업소에서는 고원군의 수력발전소를 설계해주는 대가로 무연탄을 배정받아 직원들의 월동준비를 하고 다른 농장들에서는 부식물을 공급받기도 했다. 이번에도 관리소의 발전소 건설에 대한 열성을 대가로 고추를 해결하자고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떠날 때 소장은 다른 곳에서 고추를 해결할 가망이 없으니 관리소에서 꼭 고추를 해결해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철로를 따라 얼마쯤 걸어서 석탄 하차장이 있는 옆에 있는 우중충한 「23호 관리소」 출장소 건물에 도착했다. 들어가면서 보니 건물 앞 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심사원과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사무실 안에는 몇 개의 책상이 놓여있고 정복을 입은 안전원 두명과 사복을 입은 남자들 2명이 책상과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연기를 피워올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가운데 책상에는 출장소 직원인듯한 처녀가 창문으로 비쳐드는 햇볕에 파르스름한 연기속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상위견장을(북한군 및 안전원 계급에서 소위와 대위사이의 계급) 단 안전원이 그들 특유의 깔보는 듯한 시선으로 우리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