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원철이가 겪은 집결소 생활

[증언]

 

 

다음은 1998년 3월 탈북하여 중국에서 잡혀 북한으로 송환당해
집결소(구금시설)에 갇힌 경험을 가진 탈북자의 증언이다.
 

원철이가 겪은 집결소 생활 

 

강 원 철 (탈북 청소년, 1982년생, 2001년 입국)

집결소 이름 및 수용기간?

내가 있던 집결소는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 농포동에 있었구요. 북한 사람들은 농포집결소라고 말합니다.
수용기간은 딱 정해진 것이 없고 나는 3개월 있었는데 함경북도 사람들은 자기군 안전부에서 데리러 올 때까지 집결소에 있어야 하거든요. 다른 지방 사람들은 열차가 잘 다니지 않아서 최고 8개월까지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농포 집결소는 함경북도 청진에 있다보니 함북도내 군안전부에서 제일 빨리 사람 데리러왔구요. 제일 안 오는 곳은 양강도였던 것 같습니다. 산골이기도 하고 워낙 차가 안다니니까 못온다고 합니다.

언제 중국공안에 잡혔으며 그곳에서 처우는 어떠한지?

1999년 여름 더이상 중국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해 한국으로 가기 위해 상해 한국 영사관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영사관에 갔다가 안받아준다고 하기에 그 길로 한인교회에 가서 도움을 요청해 보려고 한인교회에 들어갔다가 주위의 신고가 들어가 공안에게 잡혔습니다.
그날로 상해에서 단동까지 비행기로 호송됐구요. 단동 변방 부대로 끌려갔습니다. 중국 변방부대는 정말 한심합니다. 중국 변방부대에서 북한 사람들에게는 족쇄와 수갑을 채우고 밥 먹을 때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북한 사람들을 너무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중국 조선족들과 같은 방에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대하는 것과 저희를 대하는 것이 너무 다른 겁니다. 변방부대에서 일주일 후 북한으로 송환되었습니다.

북으로 송환되어 어떤 절차를 거쳐 집결소까지 가게되는지?

일단 중국 변방부대에서 사전에 북한측에 통보하는 것 같습니다.
날짜가 정해지면 봉고차에 북한 사람들을 수갑을 채워서 세관 다리를 통해 북한으로 송환하거든요. 북한 세관 보위부까지 중국차 타고 가서 북한 보위부에 넘겨져요. 수갑은 풀어가지고 중국 측이 가지고 가고, 저희는 쭈그리고 앉아 얼굴 숙이고 벽쪽에 붙어 있게 합니다.
저희가 북측에 넘겨지자 처음 받은 조사는 집 주소랑 나이, 중국 들어간 날짜랑 중국에서 잡힌 장소를 보위부 사람이 물어봤어요. 고맙게도 중국 측에서 저희들 문건들을 하나도 북측에 넘기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교회에서 잡힌걸 알면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잖아요. 다행히도 보위부에서 모르는 것 같아 조사한 모든 것을 거짓말로 댔습니다. 다음에 한 것은 한 여자가 와서 간단한 진료 같은 걸 하는 것 보았습니다. 피도 뽑았구요. 말로는 중국에서 에이즈나 질병 같은 것 달고 오지 않았나 검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형식적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준비시킨 승용차에 옮겨져서 신의주 보위부에 들어갔어요. 보위부에 들어가면 감방을 지정해줍니다. 감방에 들어갔더니 다 중국에서 잡혀 나온 사람들이었는데 여섯명 있었습니다. 말도 안하고 모두 한 방향으로 앉아 있기에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좀 있으니까 그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아침 5시에 기상해서 하루종일 앉아서 반성하고 있으라고 보위부에서 시키는 것이고 만일 말하다 들키면 한방 맞게 되는 겁니다. 그 방에서 대소변 다 봐야하고 냄새 땜에 죽을 뻔했습니다. 한 이틀 지나니까 불러내더니 다시 한번 집 주소랑 나이 재확인하고 다시 들어가 집결소로 넘겨질 때까지 한번도 감방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1주일 되니까 보위부에 있던 일명 “도강자”들을 신의주 집결소로 보내더군요. 2명이 한조로 수갑을 채워 한 30분 걸어서 집결소로 갔습니다. 집결소에 도착하니까 서류 재검토한다고 다시 집 주소, 나이 등 여러 가지 다른 조사가 있었습니다. 또 거기선 혁대와 철로 된 물건들을 모두 압수하더군요. 그리고 방을 배정해주는데 여기에는 사람이 하도 많아 가지고 20평 남짓한 방에 40~50명이 생활하는 거예요. 그리고 벼룩과 이가 하도 많아서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운이 좋게 신의주 집결소 들어간 날에 함경북도 안전부에서 함경북도 사람들 호송하러 온 날이라 그날로 방 배정도 받지 않고 함경북도 청진에 있는 농포 집결소로 호송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농포 집결소에서도 마찬가지로 집 주소 학교 나이 아빠 엄마 등 좀 자세한 것들을 조사 받고 방을 배정 받아서 그날부터 무산 안전부에서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기간이 3개월이였습니다.

재외탈북자구호기금을 조성합시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재외 탈북자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집결소 내의 연령대 및 성별, 범죄유형은 어떻게 되는가?

갓난애기부터 늙은이들까지 있었구요. 특히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중국에서 잡혀 나온 사람들이었고 극히 소수였지만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재판받기 전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집결소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죄를 묻는다면 소 잡아먹은 사람들, 전기선을 잘라 팔다가 잡힌 사람, 절도 등 다양한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형을 받고 교화소로 가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정치범 수용소라고 불리는 22호, 오로, 11호 등 다 북한에서 교화소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요. 그속에 정치범들을 따로 관리한다고 들었습니다.

집결소에서의 하루 일과는?

아침 5시에 기상해서 밖으로 나와서 인원 점검을 합니다.
그리고 간단한 체조를 시키고 세수를 하게 합니다. 농포 집결소 안 마당 한가운데 우물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세수만 하게 하는데 줄을 서서 차례로 시키는데 1분을 초과하면 안되거든요. 시간이 초과하면 맞습니다. 간단히 얼굴에 물만 묻히고 그리고 밥을 먹게 해요.

저희가 있을 땐 옥수수를 주었는데 보통 한줌 정도입니다. 그리고 국 같은 건 전혀 주지 않습니다. 내가 농포 집결소에 있을 때 소금을 보름동안 못먹었어요. 소금도 엄청 귀하고 집결소에선 안주거든요. 그때 한 5분동안 앞이 안보여서 영영 앞 못보는 줄 알고 울었던 생각이 납니다. 식사가 끝나면 다시 인원점검 하고 호실로 들어보내거든요.
그리고 좀 힘이 있고 일 잘할 수 있는 사람들로 골라서 일하러 나가거든요.
우리 같은 나이 어린 학생(그때 당시 학생)들은 하루종일 호실에 앉아서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도 감시하는 사람이 있는데 말도 제대로 못하게 하고, 앉아 있기만 해야 되거든요.
점심도 12시에 주긴 하는데 먹고 나면 배고프고 영양가도 없고 그래도 먹지 않으면 죽으니까 꼬박꼬박 챙겨 먹었는데 너무 배고팠습니다.
그리고 저녁 6시에 인원 점검하거든요. 인원이 확인되면 바로 밥 먹고, 밥 먹고 나면 다시 인원 점검합니다. 그리고 11시에 취침시키는데 이 취침 시간이 너무 힘들었어요. 인원이 많다보니 한방에 사람들이 앉아 있어도 좁은데 거기서 자라고 하니 어떻게 잠을 잡니까. 또 우린 나이가 어리다고 이리 쫓기고 저리 쫓겨 밤새 잠을 자지 못할 때도 있거든요. 어떤 때는 서서 벽에 기대 잔 적도 있구요. 운이 좋아 않아서 자면 아침에 상쾌함을 느꼈습니다.

사상개조, 교양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일할만한 사람들은 강제로 일 시켰구요. 일 갔다 오면 너무 힘들어 하거든요.
또 와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하니까 하루하루 몸이 망가지고 사람들이 쓰러졌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다시는 중국 가지 못하게 고생시키고 사상개조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솔직히 말해 제가 있는 3개월 동안 11명의 사람들이 죽었거든요. 맞아 죽은 사람 한사람 빼곤 다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인원 점검 나가려고 하는데 제 옆에 사람이 일어나지 않는거예요.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기에 어른들이 와서 보더니 죽었다고 하는거예요. 언제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죽은 사람 옆에서 하루 밤 잤다는게 참.
그리고 더 심한 건 이 죽은 사람들을 처리하는 과정입니다. 이 사람들은 사람 몇명이 동원돼서 어느 야산에다 묻는다는데 그냥 옷 입은 채로 묘비도 없고 아예 땅팠다는 표지가 나지 않게 땅과 수평 만들어 버리거든요. 죽은 사람 가족들은 제사도 지내지 말란건지. 참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의 경우 어떤 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주로 어떤 처벌을 받는가?

주변 애들이 크게 범죄를 지은 사례가 없어서 잘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아마 절도나 도강 뭐 이런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북한에서 청소년 다루는 법이 좀 약한 것 같아요. 미성년자면 어른들보다 훨씬 벌이 약해지거든요. 저를 예로 들어보면 농포 집결소에서 무산으로 호송되어서 군 안전부에 들어갔거든요. 거기서 간단한 조사를 받고 미성년자라고 하니까 일명 구호소라고 청소년들을 다루는 곳이 있습니다. 지금은 꽃제비들만 있지만. 거기는 경비도 애들이 서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거든요. 일을 시킨다곤 하지만 학교에 연락해서 데리러 오면 바로 내보내거든요. 학교 가봤자 매 좀 맞고 비판서 몇장 쓰고 청소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엄마가 오셔서 구호소 직원들에게 중국담배 몇갑 주니까 바로 내보내 주었습니다. 그래서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여성 수용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있는가?

여성 수용자라고 특별하게 대하는 것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남자보다 더 구박하고 괴롭히는 것 같았어요. 일단 남자라면 중국에 가서 일해서 돈벌어다 집안식구 먹여 살릴려고 갔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만, 여자는 중국 가서 중국사람들과 살다 나온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안전원들도 점검 시간에 “중국남자가 그렇게 좋아” 이런 얘기라던가.
임신해서 온 아줌마가 있었는데 “넌 중국 팔로군 하나 데려 왔구나” 이러면서 조사할 때 배를 때려서 낙태라고 하나, 애가 없어지고 그 아줌마도 엄청 몸이 상했다는 얘길 집결소 안에서 들었습니다. 이런걸 볼때 여자라고 특별하게 대하긴 하지만 이건 완전 괴롭히는 것이라고 볼 수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