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우리 가족의 고난 2 – 이미란

“위생지, 화장지, 화장실 사용은?”

화장지는 생각도 못했고, 이런 것은 볼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것은 아마 중앙당 그런 간부들이나 쓸까. 학생들이 학습장을 쓴다면 그것으로 휴지하고, 농촌에선 강냉이 깐 속청으로 휴지를 대신해서 씁니다. 북한에서는 제일 큰 신문이 로동신문인데 그것도 종이가 없어 발간 못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많아야 되는데 나무도 다 없으니까 종이를 오사리 껍질로 생산하는데 그것도 생산이 잘안되고, 그 오사리가 맥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쓰다 보면 투덜투덜해가지고 흡수도 잘 안되고.

“사리원에는 식량이 많습니까?”

그 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사리원 사람들도 식량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무산에서 쌀이 100원 정도 한다고 하고 거기 가면 50원 한다고 합니다. 무산에서 중국물품을 사가지고 거기 와서 비싼 값에 판단 말입니다. 그러니깐 북쪽에서 그곳으로 물품을 가지고 가서 팔고 쌀을 사서 배낭에다 지고 옵니다.

“농사가 안되는 이유를 아십니까”

땅은 많은데 땅이 척박해서 농사가 안되고, 비료도 없습니다. 그런 땅에다가 곡식을 심으니깐 곡식도 안되고, 그 땅에서 350만 톤만 생산하면 북한 사람들은 먹는다 하는데 100만 톤도 못생산하고, 여기처럼 경제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수출도 하고 그래서 쌀도 사오고 그래야 되는데, 기본 돈이 없으니까 쌀도 사오지 못하고, 식량이 거의 다 바닥난 것 같은데, 제 생각입니다.

“김정일 정권이 언제 망할 것 같아요?”

망하긴 망할 텐데. 김정일이가 죽는다 해도 또 김정일 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북한 정권이 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는게 일반 시민들은 못먹고 굶주리지만 군대나 지배층에 있는 사람들, 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들처럼 그렇게 굶주려 보지 않았으니깐 정권이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이 없죠. 평백성만 빨리 통일되어야지 잘 산다고 그러지, 높은데 올라앉은 사람들은 그런거 바라지 않습니다. 다 지위가 있지, 그럭저럭 지내지 하니깐 굶주리는 그런 사람들이나 통일을 바라고 그러지, 간부들 그런 사람들은 당에서 시키는 일이나 하면 되는거니까.

“총 쏴본 적이 있나요? 언제 어떻게 쏴봤어요?”

예. 붉은 청년 근위대라고 있습니다. 고등중학교 5학년이 되면 의무적으로 보름씩 붉은 청년 근위대가 돼서 훈련하는데 훈련 마지막 때 실탄 쏴봤습니다.

“경제난 이후 여성에게 주는 부담은? 사회주의체제에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한 것은?”

식량공급이 중단되면서부터 남자들은 직장에 출근했다가 일하고 내려오고. 직장에 가도 돈도 안타오지, 배급표를 타와도 식량도 배급소에서 안주지. 그러니깐 그 다음부터 여자들이 집안을 먹여 살리는 겁니다. 북한에서 말하는 모계 씨족 사회가 돌아왔다고 말하면서 남자들은 집을 지키는 멍멍이, 낮 전등, 풍경화 이렇게 부릅니다. 그러니깐 남자들이 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성들이 장사일이든 뭐든 좇아 나섭니다. 국가에서 배급을 조금 줄때에는 장사를 정말 못하게 했습니다. 장사하면 붙잡아서 수용소에 보내고, 감옥에 보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굶어 죽고 그러니깐 조치를 취해가지고 그러면 농산물만 팔라. 그러니깐 일체 공업품은 팔지 못하고 농산물만 팔라고 이렇게 지시 내렸었는데, 국가에서 가만히 놓고 보니깐 사람들이 장마당을 운영해서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란 말입니다. 국가에서 배급을 안줘도. 이거구나, 장마당을 운영해야지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낫겠다. 장마당에서 대대적으로 중국 물건 팝니다. 예전에는 중국 물건이란게 놓고 팔면 싹 회수했습니다. 상무가 나와 가지고 다 회수하고 그랬는데. 몇년 전부터는 다 팔게 한다 말입니다. 그러니깐 너도 나도 북한에서 여자들이 남자들은 편안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직장으로 출근하면 되는 거고. 장마당에 남자들은 하나도 못나옵니다. 다 여자들이 장사하고 가정 먹여살리고 이런다 말입니다. 그전에는 국가에서 주는 것만 먹던게 장사해야 살겠구나. 이런 인식이 솟아나니깐 개인이기주의라 할까 그런게 움트고, 장사가 좀 잘돼서 돈이 들어오면 ‘장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하여간 의식이 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돈을 벌어서 잘살아야 되겠다. 이런 의욕이 강해지고 말하자면 자본주의 그런게 머리에 움트기도 하구요. 80%가 아주머니들이 장사하고 노력해서 가족들 먹여 살리고, 가정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여맹활동은 어떻게 하나요.”

그날은 꼭 참가해야 돼요. 일주일에 두번이에요. 여맹활동은 생활총화, 학습강연회 이런 것인데 오전에만 하니깐 오전에 참석하고 오후에 장마당에 나가 장사합니다. 조직생활에 꼭 참가해야지 참가안하면 여맹단련대 그런데다 보내고 그러니깐 조직생활은 꼭 참가하고 그 다음에 장사를 해야 됩니다.

“북한사정이 앞으로 나아질 전망이 있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공장도 안돌아가고 생산하는게 없고, 원료가 없지, 전기가 없지 하니깐 돌아가는 건 무산광산 하나만 돌아가고 소기업들이 많은데 소기업들은 다 닫아버리고. 나아지는 그런 게 없고 군대만 계속 강화하는데 군대만 강화해서 어떻게 하겠는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보낸 각 종교단체나 사회단체의 구호물품을 받아본 적 있는지?”

한번도 없습니다. 공업품은 하나도 못보고, 약품도 감기약 하나 받아본 적 없습니다.

“정주영씨 소 방북에 대해서 보거나 들어본 적 있는지?”

정주영씨가 소하고 쌀하고 한번 보낸다고 해서 TV뉴스에 났는데, 그 전에는 일체 남한에서 뭐 보냈다는 소리는 요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남한에서 쌀 보냈다는데, 타먹은 적은 딱 한번, 정주영씨가 보냈다는 거 그것도 배급으로 돈 내고 보름치 한번 타먹고. 그 다음에 이내 일반인한테는 쌀 보냈다는 소리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깐 모릅니다. 남한이 잘살아서 보낸다 하면 거기 사람들이 의식이 다 바뀝니다. 미군들, 여기에 대해서는 계속 나쁘게 선전하고 있으니까 TV도 못보고, TV도 중앙통로 하나만 딱 연결해서 보니깐 국제 돌아가는 시세 하나도 모르고 하니깐 철창 없는 감옥과 같습니다. 정해진 틀에 박혀서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하고 ‘예예’하고 수긍 안하면 정치범수용소 그런 대로 끌려가고. 그러니깐 시키는 데로만 하면 됩니다. 굶어도 시키는 데로 하고 죽어도 시키는 데로 하고, 공산당이니까. 북한에서는 체제가 그러니까. 남한에 와서 알았는데 쌀이나 보내 준다는거 그런 건 하나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관광지 건설한다” “정주영 씨가 금강산 관광을 꾸린다”그 정도입니다.

“남쪽 사람들이 관광을 간다는 것을 몰랐습니까?”

예. 못 들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한다는 얘기는 TV에 몇번 나오기는 했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편지를 왕래하는 그런 경험이 있는지?”

92년 그 전에는 편지도 넘어가고 전보도 오고가고 했는데, 식량이 절단되고 나선 우편 그런거 다 마비되고 편지도 몇달씩 걸립니다.

“북한에서 편지 쓸 때 받는 사람한테 반드시 초장하고 종장에 친애하는 xxx 그런 것을 꼭 써야 됩니까?”

사사로운 편지에다가는 그렇게 안씁니다.

“저는 고향이 북입니다. 14년 전부터 3국을 통해서 편지가 오고가고. 편지 중에 어떤 것에는 철저하게 초장과 종장에 ‘친애하는 xxx’가 꼭 나와요. 검열을 하는지?”

가족끼리는 북한에서 북한으로 가는 것은 검열이 없는데, 만약에 중국에 친척이 있어서 중국에 보낸다던가. 미국에 보낸다던가. 그런 것은 꼭 검열하는 기관이 있습니다.

“북한은 57년부터 호적을 없앴다고 합니다. 자원봉사하면서 물어보니 10명 중 반은 호적이 뭔지, 족보가 뭔지 모른다고 합니다. 호적과 족보가 뭔지 아십니까?”

호적이라는 것은 주민대장입니까. 족보라는 것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