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어느 평범한 사람의 비범한 이야기 – 4

[증언]

어느 평범한 사람의 비범한 이야기

[편집자] ‘운명은 만들어 가는 것일까? 주어지는 것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에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말을 할 수 있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북한에서 평범하게 태어난 지성호씨. 그가 사회적,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으며 운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역경을 딛고 이사회에서 자리매김하는 지성호씨의 북한에서, 그리고 탈북해서 한국까지의 긴 여정을 소개한다.

대학생활에서 꿈을 키우다

서울에 올라와 대학에 입학하면서 저는 빨리 대학교를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서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회에 잘 정착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남한에서 태어난 청년이 꿈꿀만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제게 그런 삶의 기회조차 없었기에 그러한 평범한 꿈만으로도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기뻤습니다.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제가 북한에서 와서 성공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목표가 정해져 있고, 평범하면서도 평화로운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저였기에 대학교에서의 시간은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여 공부를 했기 때문에 은행 쪽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은행에서 일하는 것은 직업도 안정되어 있어서 평범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자 했던 제 바람과 잘 맞아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의 꿈에 우열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저는 북한에서 어여쁜 각시를 만나 행복하게 한 평생을 살고 싶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정말 세계평화 같은 거창한 꿈보다 수준 낮은 꿈인 것일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꿈을 자신이 주도적으로 결정하였고 그것에서 만족하면서 행복을 느낀다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닐까요? 이런 생각에서 전 그저 평범하고 행복한 대한민국 청년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의 질보다 다른 이들의 삶의 질을 신경 쓰는 이들을 만나면서 꿈에 대한 제 생각은 조금 변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류전체의 공통된 염원일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과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자신의 과거와 엮이게 되는 것은 운명의 장난일까요? 어쩌면 이런 것들을 옛날 사람들은 숙명이라고 표현했는지도 모릅니다. 평범하고 안락한 삶을 찾던 저에게 숙명 같은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첫 번째로는 대학생활 자체에서 제 생각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많은 토론도 하고 많은 사람들도 보면서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저와 같이 소소한 삶의 목표를 꿈으로 삼는 사람도 있었으나, 정말 너무나 원대한, 그래서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영광이나 삶의 질은 신경 쓰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행복해지면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보았던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친구들은 그런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동경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불 꺼진 교회에 자애롭게 퍼져나가는 촛불의 은은함과 같은 사람 냄새가 낫던 이들이었습니다.

북한인권활동에 뛰어들다

마냥 졸업과 취직만을 바라며 대학생이었던 제가 이런 사람냄새 나는 존경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을 만나 사회 문제들을 하나 둘 깨우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북한에서 탈출했기에 북한 인권에 많은 관심이 갔는데, 그렇게 된 데에는 이 사람을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 친구는 북한 인권 활동을 할 때 눈빛부터 달랐습니다. 물론 제가 북한 인권에 완전히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었고, 북한주민들이 자유롭게 되기를 누구보다 바랐지만, 그 친구의 눈에서 제게 없는 불타는 열망을 느꼈을 때 전 너무나 편하게 내 앞길만을 생각하는 것에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그 친구와 그의 주변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북한 인권 활동을 하면서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의 마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는 그들이 내걸은 플래카드를 굳이 읽지 않아도 그들의 눈빛에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며 점차 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그렇게 자신의 일도 아니면서 간절히 휴전선 북쪽 주민들의 자유를 염원하는 마음을 보면서 이것이 누구 한 사람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인권, 이것을 제가 꼭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영웅같이 멋있는, 정의감이 넘치고 옳은 일을 하려는 사명감이 넘치는 그런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더욱더 수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내어 실현해야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북한인권활동을 대단한 이유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북한사람들을 위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응하여 시작하게 된 일입니다. 특히, 한반도에서 태어나지 않아 분단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할 리가 없는 외국인들이 북한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낼 때는 제 마음이 아팠고 부끄러웠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관련 없는 이들도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정작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지금 이 북한인권활동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