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새 삶을 찾아서 ②

[탈북자 증언]

 

 

새 삶을 찾아서 ②
 

 

양 ㅇ ㅇ(탈 북 여 성)
<질의응답>

안녕하세요. 들으면서 너무 눈물이 났습니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건 너무 식상한 것 같지만, 정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말씀하실 때, 내가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하셨고, 그곳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이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탈북을 결심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으셨을 텐데요, 구체적인 도움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그것 외에 더 필요한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부에서 도와주는 것이요? 지금 저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어요.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것은 처음 들어왔던 분들보다 차이는 굉장히 심해졌다고 하는데, 저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없어요.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탈북자들이 정말 많이 들어오시는데, 탈북자들에 대한 물질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적응토록 돕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사회 적응을 잘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일부의 사람들이 말썽을 일으키곤 합니다. 제가 가끔씩 어린 사람들한테 탈북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냐고 물어볼 때가 있어요. 정말로 솔직하게 대답을 하겠다고 하면서 말씀을 하시는 분이 있었어요. 탈북자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탈북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굉장히 안좋게 생각을 한다고 하셨어요. “왜 들어오냐? 우리 세금내고 들어와서 나쁜 짓만 하는데……” 그분은 사회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일부의 사람들을 신문이랑 TV에서 많이 접하신 것 같아요. 벌써 이런 말 들으면 자연히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제 주변에는 21살 이상이 되는 사람이 고등학교 들어가서 공부도 해요. 정말 용기가 필요한 거잖아요. 그래도 다녀요. 하지만 신문과 TV에서는 적응을 잘 못하는 분들만 집중적으로 조명을 하니까, 저는 잘살고 있음에도, 그 때문에 제가 한국 분들에게 굉장히 미안할 때가 있고, 또 정말로 선입견이 생길 때가 있어요. 정말, 제 생각인데, 신문에 보도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 때문에 적응 잘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압박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저는 좀 불만이에요. 물질적인 것보다 그런 것에 대해서 저는 좀 불만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정말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질문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많은데요, 첫 번째가 북한이 90년대 후반에 굉장히 어려웠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붕괴하지 않은 이유가 주체사상 때문이라고,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배자에 대한 계층철학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북한에 살다오셨으니까, 그러한 철학의 어떠한 점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용을 하고 있고, 어떠한 교육을 받으셨는지 그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는 중국에 계실 때, 주변에서 보셨던 탈북자들의 사례가 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그분들이 어떻게 생활하시고 어떠한 상황에 계신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조선족들과의 관계가 궁금해요. 그 분들이 분명히 동포이기는 동포인데, 제가 알기에도 탈북자들과 조선족 사이에 약간의 문제가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과연 정말 그러한지 그것을 증언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세 번째 마지막 질문입니다. 제가 아는 학교에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 가운데 적응을 못하시는 분들도 봤습니다. 그 중요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이상의 세 가지에 대해서 답변해 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제 주변에도 적응을 잘하는 사람보다 적응을 못하시는 분들이 더 많아요. 그리고 저도 잘하는 건 아니에요. 조금 전에도 제가 교수님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회사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사람들이 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저에 대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고, 정말 평범한 사람으로 봐주고 싶다고 생각을 하시겠죠. 그렇지만 저는 그런 점에서도 사람들이 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되죠. 나도 이제 똑같은 한국 사람이고, 같은 취급을 받고 싶은데, 나만 빼고 다른 사람에게 일거리를 더 준다던가, 다른 사람만 회의에 자주 불러서 지시를 하는데 나한테는 전혀 시키지 않는다던가, 그런 것들에서 편견이 느껴져요. ‘저 사람이 날 무시하는구나!’ ‘쟤는 북한에서 온 애니까 시켜도 잘 모를거야’ 뭐 은근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고 그 사람에 대한 안좋은 감정이 생기게 되요. 또 실질적으로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도 없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분들은 저를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지도 몰라요. 나를 시켰다가 내가 난감해 하면 본인이 더 미안하니까 그러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런 점에서 내가 만약 북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일처리를 잘못하면 그런 고통을 당해야 된다고 생각이 들지않고 무조건 내가 북한 사람이라서 편견을 가지고 보는구나라고 느꼈던거죠.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정말로 많았어요. 무시당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런 편견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그것은 누구나 다 똑같아요. 제가 경험을 해봐서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때를 넘겨야 합니다. 잘해줘도 불만이 생기고 못해줘도 불만이고,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왜냐하면 서로 다른 곳에서 살다가 왔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거든요. 탈북자들을 다르게 대하시는 분들이 탈북자들이 미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잖아요. 잘해 주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일하다 그만두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재수없어!’ 그러고 나오세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무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저처럼요. 상대방이 무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못이겨서 나오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은 한국 사회에 대해서 많이 알고, 사회생활을 많이 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북한 사람이나 남한 사람이나 새로운 생활에 생소한건 마찬가질 거예요.

지금까지 서로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남한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남한사람들하고 대화를 하려해도 말이 통하질 않아요. 여기 젊은 사람들 제 나이 또래 사람들이 말을 굉장히 조리 있게 잘하잖아요. 농담도 잘하고. 그렇지만 제가 얘기하기 싫어서 그런게 아니라 얘기 맞장구를 못치겠더라구요. 무슨 말인지 멍하니 앉아서 듣기만 할 때도 있구요. 뭐 외국말 듣는 것 같아요. 암튼 말을 어떻게나 비꼬아서 얘기를 잘하는지. 그러니까 저는 자연히 밖으로 밀리게 되더라구요. 거기서도 외로움을 느끼고 선입견을 가지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도 아마 다는 아니겠지만 괜히 신경쓰이고 더 이상 못견디고 나오시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 같기는 한데요. 일단은 그런 것들이 제가 겪은 것 중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또 질문 중에 중국 조선족들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는데요, 그 문제에 대해서 제가 많이 들어본 건 아니에요. 그런데 중국에 있으면서 조선족들의 도움으로 잘지냈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이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요. 시골 같은데 가면 탈북자들을 사옵니다. 그냥 사와서 일만 시켜요. 일에 대한 보수 없이 그냥 일만 시키는 거예요. 만약에 보수를 원하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협박을 한데요. 또는 돈을 얼마만큼 주기로 계약을 하고서는 그 때가 돼서 돈을 달라고 하면 경찰서에서 네가 여기 있는 걸 알아버렸다고 빨리 도망치라고 그런 식으로 말을 한데요.

저도 조선족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 쪽에선 집안에서 저를 때려죽여도 아무도 몰라요. 제가 밖에 10분 나가는 것도 10분 조금 넘으면 들어와서 맞을까봐 정말 얼마나 무서워했었는데요. 제가 태국을 거쳐서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태국에서 8개월 지내면서 걷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거였구나 라고 생각해 보긴 처음이었어요. 아마 평생 처음일지도 모르죠. 2년 동안을 갇혀 지내다 보니까 태국에서 지내면서 다섯 정거장 여섯 정거장 걸어다니는 것은 걸어다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할 정도로 그렇게 걷고 싶었어요.

조선족들은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북한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기네 일거리를 시키려고, 일꾼으로만 삼는 안좋은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아마 다는 아니지만 일부분 그럴 꺼예요. 개인적으로 저는 조선족에 대해서 굉장히 안좋게 생각을 해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 분들이 들으면 굉장히 기분 나빠 하겠지만 제가 2년 동안 당한 고통입니다.

아까 북한이 붕괴되지 않은 이유가 주체 사상 때문이냐고 물어보셨는데요. 붕괴 같은건 상상도 못할겁니다. 제가 남한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물어보는 것 중에 하나가 북한 진짜 굶냐? 이거 하구요 북한에 정말 5호 담당제 있냐는 거였어요.

북한에 살면서도 저는 그런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그런 식으로 서로를 감시하는 것은 맞는 말이거든요.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틈이 없잖아요. 말 한번 잘못하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수난을 당해야 해요. 남한처럼 대통령 욕 한번 했다가는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맞길게요. 저두 남한에 들어와서 그런 부분이 굉장히 생소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을 욕하는 건 정말 할 짓이 아니다. 속으로 이렇게도 생각했죠. 또 남한은 자신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박탈당했다고 생각하면 상소해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조건도 마련되어 있어요. 북한 사람들은 어디 가서 말도 못해요. 그런 상황에서 붕괴? 여기처럼 데모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벌써 50년 넘게 세뇌 교육만 받으신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북한에는 배급제가 있고, 봉급은 회사에 다니면서 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배급제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봉급을 받아서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그리고 주택에 대해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에 말에 중국에서 라오스, 태국의 메콩강을 거쳐서 한국까지 오는 과정에서 4명이 물과 과자만 먹고 지내는 과정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인도해줄 사람의 끈을 놓쳤다고 했는데 그곳에서 다시 누구를 만났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됐으리라 생각되는데, 그 부분이 생략이 되었습니다. 그 부분을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메콩강에서 연락이 끊겼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후에 그 분과 연락이 되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있던 곳까지 보트를 타고 오셨더라구요. 다들 왕왕 울고 싶었죠.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물론 저는 막 울었어요. 그때 일행 중에 제가 제일 어렸었거든요. 굉장히 경계가 심해서 좀 있다가 오신 거라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그 분이 어떤 분인지는 저도 잘 몰라요. 한국분이긴 한데 누구라고 말씀은 안하셨어요. 어느 교회 장로님이라는 얘기만 들었던 것 같아요. 물어보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물어보면 안되는 줄 알고 안물어 봤죠. 그 분이 저희하고 항상 같이 가는 것이 아니에요. 물론 같이 다닐때도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서 연락해라. 아니면은 어디까지 가서 기다려라 이런 식으로 안내를 했었죠. 그러니까 같이 가는게 아니라, 연락이 끊긴채 저희는 시키는 대로 가기만 하는 거예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라, 가서 거기서 기다려라 ’하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후에 도착해서 만나기로 했던 그날까지 못만난 거죠. 연락도 할 수 없고, 끊긴거죠. 그 사람이 붙잡혔으면 저희도 죽어요. 그러니까 저희는 혹시 잡히는 것은 아닐까 굉장히 불안했어요. 그리고 같이 간 일행 중에 한 분이 임신 8개월이라 몸이 불편하신 분이 있었고, 어디서 들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일행이 남자 둘, 여자 둘인 탈북자를 잡는다는 소문이 떠돈다고, 뒤에서 경찰들이 따라온다는 말이 떠돌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불안했었어요. 어렵게 겨우 연락을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가다가 잡히면 그걸로 끝이에요. 저희들이 혹시나 잡히면 그분들이 어떤 방법으로 빼낼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그 말만 믿고 그냥 가는 거예요. 그냥 앞만 보고 뒤는 어떻든 간에 그냥 잡히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면서 가는 거죠. 그런 연락과정이었어요.

배급은 원래는 한달에 두 번씩 나눠서 줘요. 가정주부는 300g, 일하시는 노동자는 700g, 고등학생은 500g 이런식으로 급수가 정해져 있어요. 한달에 계산된 그람수가 700그람 내지는 300그람 이렇게 계산을 해서 나눠주는 겁니다. 배급표라고 있거든요. 배급표는 일 하시는 분을 통해서 나와요. 그래서 아빠가 일을 다니시면 아빠의 직장에서 배급표가 나와요. 그럼 그걸 가지고 1달에 한번 있는 정해진 배급 일자에 가서 그 표를 주면서 쌀을 받아오는 겁니다. 일을 안하면 배급이 없어요. 그리고 내가 보름 동안에 하루 일을 못하고 빠지면, 하루치의 배급을 한 눈이라고 하는데, 15일 계산한 것 중에 한 눈이 빠지는 거예요. 일 한만큼 먹고 살라는 거지요. 그런데 일 안나오신 분들, 아파서 못나오시는 분들은 배급표가 네모 반듯해야 하는데, 배급표의 눈이 짤려 가지고 배급표에 구멍이 뚫려 있어요. 이만큼 일 안했으니까 이만큼 덜먹어라 그런 뜻이에요. 그런 표를 가지고 가서 배급을 타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일 안나오면 월급이 깎이는 거랑 비슷하죠?

그리고 일반노동자들의 월급은 정확한건 잘 모르겠지만 한 60~70원 정도입니다. 당 간부들, 그런 분들은 120원 정도 된다고 해요. 60원이면, 요즘 같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배급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때는 배급소에서 옥수수쌀은 1kg을 6전에 팔아주고, 백미는 1kg에 8전씩 팔아줘요. 그러니까 60원 가지고 가면 솔직히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또 공장에서 부식물 공급카드도 나와요. 한달에 기름을 1인당 몇g씩 배급하는데, 그것도 표가 있어요. 그것을 타서 먹게끔 되어 있거든요. 모든 것이 다 배급제예요. 심지어는 옷이나 신발 같은 것들도 배급제로 되어 있어요. 지금은 그 배급이 다 중단됐어요. 한번도 안줄 뿐만 아니라, 월급 60원을 받아서 시장에 가면, 쌀 1kg의 시장 가격이 100원이예요. 100원에서 150원 정도 해요. 그러면 60원가지고 쌀 0.5kg을 사면 끝이에요. 그걸 가지고 한달 동안 살아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고, 정말 살 길이 없는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는 겁니다. 탄광마을 같은 곳에 가면 거의 집이 비어있다고 해요. 대부분이 더 이상 살아갈 방법이 없으니까, 자살하거나 굶어 죽는 거예요. 왜냐하면 거기는 농사지을 땅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땅도 뚫을 곳도 없고 그냥 그렇게 살면서 더 이상 바라 볼 것도 없으니까 자살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해요. 주택에 대해서 물어 보셨는데요. 주택은 개인의 소유가 없습니다. 북한의 모든 것이 개인소유로 되어 있는게 하나도 없듯이 주택도 마찬가지예요. 주택의 분배는 어떻게 되는지 잘모르겠지만 지금 집이 없어서 동거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제가 어릴 때 저의 집에서 동거하는 가족이 있었어요. 결혼한지 얼마 안된 것 같아요. 후에 애기도 생기고 그랬지만 저희 집에서 일년 정도를 윗방에서 보내셨어요. 주택도 많이 모자란가 봐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