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북한 : 기아와 공포가 지배하는 땅

[증언]

 

북한 : 기아와 공포가 지배하는 땅
이 글은 현재 동남아 모처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늘날을 기다리고
있는 한 탈북자(난이 오빠)와의 대화를 녹취한 것이다.

 

이 기 찬 (기획훈련부 간사)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서 들어보셨는지?

‘일단 들어가게 되면 영 나오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들었거든요. 그곳에 들어가면 허약 걸려서 죽든가 병 걸려서 죽든가 하여튼 살아서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정치범 수용소를 내가 만약 부모로써 들어가면 자식까지. 자식은 발전 못해요. 아버지 딱지가 붙었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무슨 거기서 공부를 한다던가 잘한다 해도…….

대학 진학도 못하는가요?

낮은 대학 같은 거는 붙을 수 있는데 김일성대학이라던가 우수한 대학 그런데는 못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까?

그런 거는 없습니다. ‘일단 들어가면 자식까지 발전 못한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못가도 사회 진출해서 노동당에 들 수 있단 말입니다. 근데 이것 자체를 보류시켜요. 그러니까 자식이 타락부터 한단 말입니다.

공개처형은 보신 적은 있는지?

우리 탄광에서 둘이 총살하고, 다음에 온성군에서 둘이 총살하고. 내가 사는게 풍인이거든. 온성군 풍인에서 데려다가 일을 다 중단시키고 집합해놓고 넷 끌어다가……. 둘이는 분임탄광에서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사람들이 무엇을 범죄했는가. 우리 탄광에서는 광차라고 끌고다니는게 있어요. 전차라고 하는데, 도르레가 있어요. 동으로 만든건데 이걸 형제가 50m 끊어다 말입니다. 50m 구간을 끊었으니까 대단히 많죠. 요만큼씩 토막토막 잘라서 쌀자루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치웠단 말입니다. 성공해갔고 팔러가는데 술 바꾸는 집 갔단 말입니다. 우리 개인이 술하는 집 많아요. 술 바꾸는 집 가서 그걸 집 앞에다 놓고 들어갔단 말입니다. 주인집에서 나와서 보니까 구리거든, 동이거든. 신고를 했단 말입니다. 갱에서는 50m 끊어갔다, 누가 그랬나? 그 동네 사람이니까 이름 빤히 아니까. 안전부에 가서 조사하니까 형제가 들어갔는데 형은 아니 그랬다고 했는데 형제가 둘이 공모를 해서 한거니까 형은 ‘자기 안했다. 동생이 했다’ 이렇게 해서 동생이 들어가게 됐거든. 동생이 끊은 걸로 됐지. 동생 혼자 들어갔단 말입니다. 동생 혼자 들어갔는데 며칠 신문한 뒤에 다음날 7시면 군으로 호송할 준비한단 말입니다. 우리 구에서 신문조사 받았으면 온성군에다 넘기죠. 근데 형이 알았단 말입니다. ‘이제 올라가면 총살이다. 뛰어라’ 아침마다 밥을 날라준다 말입니다. 근데 밥 날라주면서 뺀찌를 갔다줬단 말입니다. 형이 동생한테 갔다줬는데 뛰었죠. 근데 멀리도 못뛰었죠. 부락에서 또 붙들렸는데 그래서 다시 또 신문하게 됐지. 뺀찌 누가 갖다줬나? 형이 갔다줬다 해서 같이 총살당했는데……. 온성군에서 둘이 붙들린게 담밴지 무슨 장사를 하다가 붙들렸다 하더라 말입니다. 그 사람 둘 해서 너이 데려다가 총살합디다.

일을 다 중단시키고 ‘총살한다. 다 보라’ 다 집합시켜 놓고, 말뚝 좀 박아놓고 사람을 세웁디다. 그때 보니까 무슨 군에서 내려왔더란 말입니다. 그때, 12명인가 나왔습디다. 벌써 범죄자들 묶었습디다. 묶고 그저 나오는거 보니까 둘이서 하나씩 끌고나온다 말입니다. 이미 다 병신 만들다시피 했죠. 눈은 아니 가렸습니다. 입에다는 천으로 뭘 물렸습니다. 묶어놓고 그 담에 입까지 막고 세 부분 묶습디다, 다리까지. 그담에 풍채를 칩디다, 앞에다. 보지를 못하게. 뒤에다 어떻게 하는지 또 어떻게 한 다음에 보지를 못하게 풍채를 치더라 말입니다.

병풍 같은 걸 쳐서 가린다구요?

전면 다 가린다 말입니다. 아니 보이지. 안에 들어가서 군인들이 뭐 하더란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열더란 말입니다. 여는데 보니까 나중에 들어보니까 뒤에다가 벽돌장을 끼운다던지 기왓장을 끼운다던지 총을 맞으면 막 이렇게 되니까 기왓장을 끼운단 말입니다. 보지는 않았는데 커텐 벗긴 다음에 12명 나오더란 말입니다. 사격 쏘는데 한 사람당 세 명식 세 발씩. 근데 거리상 보면 그저 7미터, 7,8미터 그 정도. 사격 끝났는데 다 꼬꾸라졌는데 한 명이 사격 끝났는데도 꿈틀거리더란 말입니다. 쏜 사람들이 욕먹습디다. 자기 목표수가 다 있지. 쏜 사람들이 지휘관한테 가서 소리치고 욕먹더란 말입니다. 훈련받은 사람들이 사격 못한다고. 소리 막 지르고. 그 다음에 자동차가 와서 가마니에다 군인들이 와서 차에다가 싣더란 말입니다.

그런 일이 자주 있었나요?

자주는 없어요. 이건 94년도인가 95년도인가 합니다. 온성군에서 자주 총살해요. 온성군이 온성군만 들어간게 아니니까 풍인구도 온성군에 속하고 상화탄광 뭐 한군데로 다 모으니까 군 안전부에 그렇게 해서 범죄자들은 범죄 큰거 살인치고……. 범죄가 큰건 온성군 안에서 총살시키고. 근데 그저 우리 풍인구에서 온성군까지 가려면 한 10리를……. ‘총살한다. 올라오라’ 그러면 일 끝나고 언제나 공개를 한단 말입니다. 마을 사람들 다 오라 그러고, 오늘은 어떤 사람 총살한다 공개를 합니다. 인민반별로 통보를 할 때도 있고 직장별로 통보를 할 때도 있고 ‘다 오라’ 이 소리죠. 우리 직장 같으면 거리상 머니까, 생각 있어도 잘 아니갑니다.

먹고 사는게 언제가 제일 힘들었어요?

제일 힘들었던게……. 90년도 들어와서는 타격 받았습니다. 식량타격 받았는데 완전히 곯지는 않았죠. 그때는 내 동생까지 탄광에서 일했으니까. 국가에서 우리는 한달에 두번씩 줘요. 탄광에서도 배급 급수가 차이가 있어요. 힘든데서 일하면 급수가 높고 입쌀로 주고, 헐한 부분에서 일하면 7:3이라던가 급수가 차이가 있는데 급수라는게 우리는 ‘내가 젤 힘든데서 한다’ 그러면 900이라고 쳐요. 하루에 900그램이죠. 그저 ‘당의 배려’라는게 200그램 더 나와요. 영양제 식단이라고 해서. 당자금으로 해서 탄광부들한테 무상이죠. 그렇게 해서 한 키로 100그램이예요. 한키로 100그램이라고 해도 우리는 배급 다줘도 집에서 정말 밥 안먹고 나와요. 근데 90년 이전에는 그렇게 됐어요. 내가 원래 87년도 탄광 배치 받았거든. 그때는 정말 집에서 밥 아니 먹었어요. 그때는 그저 아침……. 세 교대니까 한주일에 한번씩 바꾼단 말입니다. 이번주는 아침반이고 다음주는 저녁반이고 다음주는…… 이렇게 돌아가죠. 아침반 같으면 이렇게 아침도 아니먹고 나가요. 식권 받고 나가서 식당에서 밥먹고 집에서는 벤또만 싸갖고 나간단 말입니다. 아침 거기서 먹고 배급쌀로 점심 들어가 먹고 그 다음에 퇴근해서 집에와 먹고. 영양제라는 것 자체가 밥만 주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부식물도 많죠. 사탕가루, 고기 이렇게 해서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가 원래 구호가 그렇죠. ‘탄광부도 병사대우를 해줘라’ 그때 배급 좋았습니다. 내가 영양제 200그램이라고 해도 내가 다 못먹는단 말입니다. 하다못해 마른음식 나오는 것 같으면 싸갖고 들여보낸다던가. 여자들 탄광들어가는데 운전하는 애들 갔다주기도 하고. 근데 90년대 들어와서는 조금씩 타격 받아요. 계속 주다가 몇달씩 아니주고 또 모아서 한번에 팍 주고 이렇게 하니까 배급제 부모들 같으면 생활유지를 못해요. 그래서 94년도 들어와서 김일성 서거해서부터 많이 안좋아졌지. 그때는 정말 들어가서 석탄 캔다는게 힘들었습니다. 이전에는 강차로 7,80대씩 막 했단 말입니다. 여덟시간 동안. 그때는 열대도 하나마나지. 열대도 하면 잘하는게지. 그리고 또 사람 출근 못하고. 식량구하러 다른데 가는 바람에 출근을 못했지. 94년도부터 배급제가 그렇게 되니가 우리 풍인구에서 탈북자가 생기기 시작하고. 96년도부터 지금처럼 탈북자가……. 97년도부터 완전히……. 지금 집 빈데 많아요. 그렇게 하고 자고 일어나면 누구 집에서 어느 사람 죽었다.…… 다 굶어 죽었지. 병원에 가도 영양실조로 죽은게 없어요. 무슨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해요. 다 영양실조 때문에 병이 왔지. 아니 그렇습니까? 병이라는게.

또 어느 집에서는 우리 탄광부 아바이지, 여자애 아버진데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니 탁 자빠졌는데 이마가 닿았단 말입니다. 그래 숨도 못쉬고 죽었습니다. 그저 먹지 못하는데서부터 죽는데 별난게 다 있어. 시골에서 자빠지면 일어 못나고, 어디 부딪히면 그래갖고 죽는거지.

내가 97년 넘어오기 전에는 한달에 그저 100명씩 죽는다고 그렇게 소문이 났었어요. 구에서 어른이고 애들이고 다 합쳐서. 어른들이 그정도 같으면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지. 그렇게 하니까 내가 앉아서 죽겠나. 나무 캐러도 못가지, 산에도 못가지, 일은 못하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탈북했어요.

국경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40분. 강 자체가 좁아서 헤엄쳐서 건넜습니다.
탈북할 때 군인들이 안잡습니까?
잡지, 어찌 안잡겠는가? 말이 50미터 구간에 하나씩 선다는데 규정이야 그렇죠. 그렇게 하는데 있고 그렇게 안하는데 있죠. 운이 아니되는 사람은 잡히고 운 좋으면 통과하고. 대다수는 다 통과합니다. 건너가는데 건너오는데 잡힙니다.

잡히면 어떻게 됩니까?

노동단련대라는게 있습니다. 보통 한두달 거기에 갇혀있게 됩니다.

첨에 잡히면 안봐줘요? 봐준다고 하던데…….

봐줘요. 김정일 방침에 의해서. 그러니까 식량 때문에 잠시 곤란해서 넘어간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새출발 하게끔 만들어주고 직장 다시 다 해주고 했지만 폐지시켰댔어요.

한명 내보내면 두서넛씩 더 달아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서 요즘은 옛날보다 더 높고 노동단련대보다 도에 넘길 수도 있어요. 도에 넘긴단 말입니다. 원래는 군이라던가 그런데서 노동단련대나 했지. 도에 올라가면 집에 부모나 직장에서 데리러와도 안내보내요. 도에 올라가면 바빠요.

여러 번 잡히면 어떻게 됩니까?

달 수로 조절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아는 사람 있으면 나오고, 뇌물 고이면 나오고 해요. 조선도 그래요.

노동단련대를 들어가서 허약 걸려 나오는게 많단 말입니다. 비록 기간은 한달이지만 우선 노동단련대 자체 명칭이 노동단련대니까 11년제 의무교육 다 받았으니까 교육이 필요없다. 전부 순 노동이지. 날이 밝아서부터 해 지기까지 시켜요. 개 잡아죽이기 시키지 않나. ‘내가 소변보겠다. 대변보겠다’ 혼자갑니까? 다 보고한단 말입니다. 반장이라던가 무슨 지도원이라던가 보고를 하지. 가라면 가는게고, 말라면 못가는 거지. 제 마음대로 했다간 절반 죽어요. 제 혼자 죽는게 아니고 집체적으로 야 하나 때문에 집체적으로 훈련시킨다고나 할까? 고통을 주죠. 그러니까 그 숱한 사람들이 반발심에 의해서 야는 절반 죽죠. 때리라고 해서 때리는게 아니고 이 사람들이 야 하나 때문에 고생하니까 반발심에 때리지 말라고 해도 절반 죽이지. 병신되는 사람도 많고 갈비뼈 부러지는 사람도 많고.

치료도 안해 줄게 아니에요?

치료라는게 그렇지. 주사나 몇대 놓고 또 잡아 일 시켜요. 심지어 뭐 손가락 부러져서 노동단련대 너무 힘들다, 손가락 끊어놓으면 퇴소시키겠지 하고 손가락 끊는 놈도 있는데요.

자기 손가락을 자기가 끊어요?

자기가 이렇게 내려놓고 손가락을 돌로 딱 끊었단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보낼줄 알았겠지. 그런데 다시 약을 먹이고 주사나 한대 놓고 다시 끌고와서 단가 새끼줄에 매어놓고 한손으로 단가 들려요. 원래 노동단련대는 그렇단 말입니다. 노동단련대 들어갔다 오느니 몇년씩 감옥에 갔다오는게 낫다고 이렇게 얘기한다고요. 오직 바빴으면 이런 소리 하겠어요. 일이 그렇게 힘들단 말입니다.

뭘 시키나요?

일 시킬게 없으면, 하다못해 집 지은 것도 허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