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북에서 한국으로의 길 3

아래의 글은 2004년 7월 제6회 탈북동포돕기 대학(원)생 수련회에서 증언한 내용입니다.

 

북에서 한국으로의 길 3

 

김 지 은
탈북여성/2002. 3 한국입국

한국 사람을 만나다

제가 처음 그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분한테 지금도 상당히 감사하게 생각하는데 지금이라고 만날 수가 있다면 인사라도 하고 싶어요. 북한에서는 한국이 아시아권에서는 그래도 경제력이 괜찮다더라, 우리보다 조금 잘사는 것 같은 그런 정도로 알고 있었어요. 중국에 오니까 남한이 잘 산다고 소문이 대단하더라고요. 며칠 후 한국분이 북한에서 온 사람이 있단다, 한번 만나보고 싶다. 이런 연락이 왔었어요. 북한사람들이 자존심은 강하거든요. 저도 자존심이 굉장히 강했어요. 그러면서 못사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치, 저희들이 잘살면 잘 살고, 나 절대 안 만나.’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 남한분이 상당히 인내성이 있었어요. 인내성 있게 계속 만나려고 그랬어요. 좋다 그럼 만난다. 만나는데 절대 정치에 관한 얘기는 안한다. 그런 식으로 얘기를 했었어요. 그러니까 그 분이 좋다. 당신요구대로 해주겠다. 만나자.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집에서 만났어요. 한 두 마디 인사 나누고 대화 나누는 순간에 제 마음이 봄날에 눈 녹듯이 확 녹아 버리는 거예요. 그 때 이래서 서 동포인 모양이구나, 이래서 5000년 역사를 함께했었던 사람인 모양이구나, 이래서 우리가 한 혈육인 모양이구나.를 느꼈습니다. 아! 남한사람 우리가 생각하던 사람이 아니네! 똑같네! 말 한 마디 한 마디 한번도 제가 못사는 곳에서 왔다고, 저를 무시하거나 북한 그렇게 못 삽니까? 그런 것도 물어보지 않고 제 자존심 세워주려고 노력하시고 제가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질문은 극히 삼가시고 안하시고, 일상적인 이런 대화만 하시더라고요. 아! 남한사람 대화를 해 볼만한 상대구나. 남한사람들이 다 이 사람만 같으면, 그래 대화해 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마지막까지 그 분은 저한테 감사해 했습니다. 한 1시간 만나고 헤어졌는데, 그 분이 저한테 돈을 주면 자존심 상해할까봐 저를 그쪽으로 소개시켜주신 옷이라도 한 벌 사 입히라고 우리 이모한테 중국돈으로 몇 백만 원을 주셨나봐요. 그래서 후에 제가 아니, 아니 하면서 돈을 받아서 옷을 한 벌 사 입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 분의 모습을 보면서, 아! 내가 모르던 남한의 모습이구나! 우리 북한에서 다는 모르는 남한의 모습들이 있구나를 느끼면서 제가 남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의 길을 선택

중국 변방에 살다 북경으로 옮겨 한 3년을 살았는데 제가 그쪽에서 살면서 했던 일이 한국 유학생들한테 도시락 장사를 했었습니다. 그 학생들은 제가 그냥 중국의 조선족 아줌마라고 생각을 했었겠죠?
내 마음으로는 북한 사람으로서 내 동생 같은 어린 친구들한테 내가 정성을 다해서 밥을 해서 팔고, 돈이 없다고 어떤 한국 학생들은 1원 가지고 와서 밥 주세요 하는 젊은 총각들도 있어요. 그대로 줬어요. 그냥 내 동생 같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너무 따뜻하고 너무 가깝게 지내고 싶은 거에요. 내 마음을 다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렇게 해서 저한테서 밥을 받아서 먹은 학생들 사실 지금도 만나고 싶어요. 이름도 알고 있지만 그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만나지 못했어요. 그 때 제가 어느 교수님 댁에서 파출부 했던 l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제가 북한사람인거 모르죠. 후에 한국 와서 제가 전화를 했었어요.. “제가 사실 탈북자였습니다.” 그 분 지금도 부산에 계세요. 교수님이 너무 놀래 전화기를 딱 떨궜다고 했습니다. 신분을 숨기고 있었지만 제가 그런 교수님들이나 또는 학생들이나 처음에 제가 만났던 한국분들 이런 분들을 통해서 아! 한국의 모르는 부분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힘든 부분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사실 많은 탈북자들이 다 그랬어요. 여러 나라를 거쳐 오지 않았습니까? 중국을 통해서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한국 저도 그렇게 거쳐 왔어요. 그 동안 감옥에도 갔었고, 많이 힘들었던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한국에 오는 것을 결심하면서 내가 가서 살 수 있는 나랄까? 밖에서 보는 것만 이렇지 않을까? 내가 살았던 곳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많은 탈북자들이 아마 그러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중국에 살 때 까지만 해도 저희 같은 사람 북한에 가자면 도로 갈 수도 있어요. 지금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 살다가도 정 힘들면 북한에서 살기 힘들어서 중국에서 몇 년 살다가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북한에 간다면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있을 수가 있어요. 가족이 보고 싶거나, 친구들이 보고 싶거나, 부모님이 보고 싶을때 다시 돌아 갈 수도 있었거든요? 그러나 한국행을 결심을 한 다음부터는 차원이 달라지는 거죠. 한국에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의 마음은 중국에서 외롭다 힘들다 그런 생각은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조선은 중국에 있을 때는 내가 갈 수도 있었던 땅이었는데 한국에 오게 되면 정말 언제 갈지 모르는 땅이구나! 어쩌면 평생 못 갈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자라났고, 현재 우리 선조의 무덤이 있고, 내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고, 내가 언제 다시 저 땅을 밟을 수 있을까? 과연 다시 내가 돌아갈 날 언제쯤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게 힘든 결정을 하며 거의 모든 탈북자들이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에 와서 인천공항에 내리니까 정말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제가 30년을 북한에서 살아왔지만, 한번도 공항도, 비행기도 못 봤고, 영화로만, 그림으로만, 사진으로만 그렇게 봤었습니다. 그래서 아! 대한민국의 모습이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남한에서의 생활

한국도착 후 국정원 조사를 마치고, 하나원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나원 교육을 받을 때도, 아! 한국에 또 이런 좋은 부분이 있었구나! 그 때도 자원봉사 하는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정말 그때 진짜로 충격을 받았어요. 오? 이 사람들이 우리한테 하루 봉사를 하고 얼마나 받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안받는다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다 돈 이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돈도 안받고 할 일 없어서 토요일, 일요일 밖에 나가면 볼 것도 많고, 놀 것도 많은데 또 탈북자들은 쉽게 마음을 못 열지도 않고, 또 여러분들은 진심으로 우리를 대해주려고 하는데 우리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잘 대해주지도 않는데 이 사람들이 돈도 안받고 이렇게 해줄까? 그런 생각을 사실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 진심이구나. 그런 모습들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탈북자들 가끔 모여서 자원봉사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저 자신도 봉사활동 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 곳에 서강대 다니는 학생이 있는데 21살이에요. 아무리 힘들고, 비 오고, 바람불고 해도 빠지지 않고 꼭 참가해요. 그런 모습들 보면서, 아! 그래 힘든 부분들이 있지만 이런 모습들 때문에 그래도 살 만한 사회구나, 잘 선택 했구나. 처음에 한국에 와서 보니까 정말 휘황 찬란하더라구요. 한마디로 너무 멋있었어요. 처음에는 전라도 광주에서 살았는데, 하나원 교육 마치고 경찰과 같이 고속도로를 따라 광주로 내려가면서 여주휴게소에서 밥을 먹었어요. 평일이었는데 휴게소에 사람도, 차도 새까맣게 많고, 화장실도 줄을 길게 서있고 그리고 제일 충격 먹었던 부분이 내려가면서, 도로가 그렇게 잘 되어있더라고요. 도로모습을 보면서 한국경제가 어느 정도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실감을 했었어요.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내가 선택한 삶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놀라고 충격 받은 일들

한국에 온 탈북자들은 어떤 부분들이 힘들까, 또 어떤 것이 충격으로 다가올까 이런 부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제가 놀라고 충격 받았던 부분들에 대해 몇 가지 말씀드릴께요. 첫 째로 제가 한국에 와서 가장 충격 받았던 것은 한국에 자살이 그렇게 많아요. 지금도 남한 사회에 대해 헷갈려요. 이곳이 정말 좋은 나란가? 살기 힘든 나란가? 어느 달인가, 이유를 불문하고, 원인이든 불문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세어봤더니 몇 명이나 자살 했을까요? 한 달에 37명이 자살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렇게 자살을 할까? 이런 부분이 놀라웠어요.

두 번째로 놀라웠던 부분은요. 학생들에 대해섭니다. 학생들이 예절이 좀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가끔 대학에도 나가보면요. 학생들이 교수님에게 인사를 안 하더라고요. 복도를 교수님하고 저하고 복도를 올라오는데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내려가요. 폭이 이만하던 폭을 꽉 채워서 내려가요. 교수님은 구석에 서 계시고, 인사하는 것은 둘째 치고, 교수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교수님이 있든 말든 자기네 얘기하고, 마실 것 마시고 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후에 어떤 기회가 있어서 한 학생에게 물어봤어요.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교수님에게 인사를 안 하나? 그러니까 아주 충격 받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학생의 모습이 대한민국 모든 대학생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끔 비춰지는 그런 모습들 때문에 저희가 충격을 받는다 그런 말이니까 여러분들 오해 없이 들어주십시오. 그 학생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고 누구나 다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는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나 나나 똑같다. 그 말에 제가 너무 놀랐어요. 정답일까요? 저도 한국에 와서 한국은 동등한 권리,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은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반드시 해야 될 말, 반드시 옳은 말, 원칙적인 말도 분명히 해야 될 선이 있다고 생각해요. 도덕도 분명히 있고 예절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이것은 권한이나 자유나 권위에 대한 문제보다도 내가 교수님에게 지켜야 될 내 자신의 수양, 교양, 도덕, 예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정치판에서 보여주는 모습들.... 서로 싸우잖아요. 한나라당이 어쩌고하면... 나만 그랬냐! 저쪽도 그랬지! 이런 식으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옳은 비판도 비판은 비판에서 끝나야지 그런데 가끔 그 비판이 인신공격처럼 보일 때 그런 부분들이 너무 놀랍습니다.

한국은 옷을 자유롭게 입기 때문에 대학생인 교수님인지 분간이 잘 안가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북한의 대학생들은 다 똑같은 교복을 입기 때문에 아! 학생이구나, 교복을 안 입은 사람은 교수님이구나! 또는 교수님이 아니더라도 외부사람일 수가 있구나! 하고 꼭 인사를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쪽도 다 사람 사는 사회이기 때문에 인사하는 사람도 있고, 인사 안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인사는 누구나 다 해요. 거의 안하는 사람이 없어요. 누가 혹시 길을 물어보면, 저기요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겠죠. 그리고 복도나 계단에서는 꼭 우측통행을 해요. 올라오는 사람은 우측으로 올라오고, 내려가는 사람은 우측으로 내려가고, 가운데 통로는 항상 비어있기 때문에 항상 바쁘신 교수님들 또는 선생님들, 우리 대학에 오신 손님들 이런 분들이 갈 수 있게끔 되어 있거든요? 통제로 그렇게 할 수도 있고, 통제가 아니라도 누구나 그 정도는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한국에 와서 두 번째로 놀랐던 부분이고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