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살려주시오! (하)

우리를 살려주시오! (하)

 

리동성

 

범죄자의 누명

북조선 안전부에서는 이들을 붙잡기 위하여 묘한 수법을 썼다. 로씨야 경찰이 적극적으로 협력하도록 하기 위하여 도주자가 큰 살인자, 강도, 마약범이라고 자료를 꾸며서 제시하였다. 자기 나라, 자기 도시에 살인자 마약범이 있다고 하니 가만있을 수 없어 로씨야 경찰도 눈을 밝히었다.
그래도 탈출자들은 모두 한국으로 가는 것을 선뜻 결심하지 않았다. 한국행은 그들에게 있어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제일 좋은 길이였으나 로씨야의 한지에서 떨고 구걸할지언정 가려하지 않았다. 한국에 가면 같은 동포가 고생하다 왔다면서 귀순용사로써 반갑게 맞아주고 생활보장도 다 해 주는 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이 피해 다니면서도 자주 자문 하는 것은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피해 다녀야 하고, 안전원들은 어째서 도적 잡듯이 따라 다니는가."하는 것이였다. 무슨 죄가 있는가 도대체 무슨 죄가..... 무엇 때문에 한국으로까지 가야하는가.

아무리 안타깝고 답답하여도 뛰지 않으면 붙잡히고 붙잡히면 그들이 붙이는 대로 위집어 쓸 판이어서 억울해도 줄행랑을 놓아야 하였다. 한국에 가면 자기 하나는 잘 입고 잘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북에 남은 가족들은 무사치 못하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어느 한국 신문에 벌목로동자들이 귀순한 사진이 실렸는데 그 중 한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한국에 온 것이 너무도 감격하여 울고 있군요."라고 하였다.
본인의 말을 들어보면 잘 알겠지만 그것은 정확한 말이 아니다. 그의 눈물은 결코 기쁨에 겨운 눈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별로 죄도 없는 자기가 가족들을 죽이는 한국땅에 발을 들여 놓는 일을 저지른 것이 너무 기가 막혀 나오는 눈물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자식들의 앞날에 그늘이 져야하고 늘 앓아서 밖에 나가기도 저어하던 마음 약한 안해는 장차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로씨야에 주재하고 있는 북조선 안전원들이 공을 다투면서 끈질기게 추격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으로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힘들어도 로씨야에서 모두 재생의 기회를 찾았을 것이다.

의지가 없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사람들과 손잡고 돈을 벌던 사람들이였다. 중국녀자들과 동거생활을 하다가 자기 정부를 따라서 중국으로 간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돈도 벌었다.
사업소의 간부들이 뒤를 보아주었고 그 덕에 외화벌이는 제껴놓고 간부들 주머니를 불궈주던 중 검열과 관련하여 들어오라는 지시가 내리자 추잡한 자기의 위생활이 들짱나도 그렇고 사상 생활에서 문제가 있다고 볼 것 같으니까 중국으로 가는 용단을 내린 것이다. 로씨야에는 진짜 돈 한 푼 없는 외화벌이 성원들이 남아서 탈출자의 행군을 계속하는 것이다.
일부 탈출자들 중에는 동무들 호상간 돈거래나 한국방송을 몰래 듣다가 들짱나 도망한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 극히 일부라고 본다. 하여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별치 않은 문제인데 북조선측에서는 으름장을 놓으면서 굉장한 사건의 주동인물이기라도 한 듯이 체포,수사 소동을 벌리는 것이였다. 그들은 평소에 "로씨야에 들어온 로동자들을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틈만 있으면 도망치고 사상변질을 가져온다"하고 말하는데, 그것을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해서인 듯 하기도 하였다. 또 이런 불순분자. 역적들을 잡아내기 위해서라도 안전원들이 앞으로도 계속 로씨야에 와 있어야 하며 로동자들에 대한 단속사업을 강화해야한다는 것을 상급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려는 듯하였다.

로씨야에서 헤메 다니는 탈출자들이 수십명이라는데 실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몇 명이나 되는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로씨야에는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조선상주 동포들인 고려사람들과 페레스트로아카 이후 들어온 한국인 목사들 . 기업가 . 해외동포들이 많이 있다.
의지 가지 없는 탈출자들이 떠다니면서 대문을 두드리면 제대로 열어주지도 않고 외면하는 실례가 드문하였다. 고려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럴 듯 하기도 하다. 그들이 탈출자들을 외면하는 데는 떠돌고 있는 소문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탈출자들이 제일 잘 찾아가는 고려사람들에게 그들을 내쫓도록 하여야 쉽게 체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북조선 안전원들은 이리부러 그럴듯한 소문을 많이 만들어 내돌렸다. 탈출자 어떠 어떠한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쳤다느니, 고려사람의 집에 숨어 있다가 그집 딸을 간통하고 도망쳤다느니, 또 숨어 있던 집 물건을 훔쳐가지고 갔다느니 하고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여도 북조선 사람들의 망신이기 때문에 숨겨야 하겠는데 누워 침 뱉는 격으로 제 얼굴 뜨거운 줄 모르고 소문을 퍼치는 것이였다. 수사 협력을 위해 로씨야 경찰에 허위 자료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장마당에 하루종일 앉아있는 동포 녀인들은 이런 소문을 서로서로 재미있는 새소식처럼 줌고 받으며 점차 하나가 열, 스물이 되게 보태는 것이였다. 탈출자들이 장마당에 찾아가서 위험을 무릎쓰고 도와달라고 간청하면 텁수룩한 수염과 피곤이 실린 충혈된 눈동자에서 자기들이 상상하던 모습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서로 수군거리는 것이였다. 도시들에서 탈출자들이 장마당에 가다가 어김없이 붙잡히는 것은 이런 리유 때문이였다.
큰 도적이나 강도를 잡는다면서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 북조선 안전원에게 고발하여 족쇄를 채우게 하는 실례도 있었다. 그러니 탈출자들은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어떻게 살 아가랴.

누가 우리를 도와 줄 것인가

탈출자들을 고발하여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 붙잡혀 정치범으로 엄벌을 당하면 잡힌 사람의 원한과 저주만이 남아 고발. 밀고자들을 꿈에라도 괴롭힐 것이다. 탈출자들을 도와야 한다.
그가 어제날의 당원 로동자였건 오늘의 어떤 탈출자이건 그것을 상관하지 말고 인간 대 인간으로써 성의를 표해야 한다. 그들을 어떻게 돕는가 하는 것은 지각있고 량심있는 인간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죄 없이 탈출자 아닌 탈출자가 된 그들에게서 기막힌 사연을 끝까지 들어주고 래해와 공감을 표해주어야 한다. 그들은 대다수 로씨야에 정착하여 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이 자기 희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지금 삶과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탈출자의 일부는 한국공관들에 한국귀순을 신청하였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1년이 넘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국 귀순 신청 자체를 역적행위로 간주하고 있는 북조선측의 립장을 고려할 때 이 신청자들의 신변에 더욱 큰 위험과 시련이 겹칠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신청자들에 대하여 이렇쿵 저러쿵하면서 한국행을 허용하지 않거나 실무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현상은 무책임하다기보다, 그들을 죽이는 죽이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탈출자들 속에서 자살하는 현상은 올 데 갈 데 없고 막막한 나머지 그들이 죽음의 길을 택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였다.
한국 신문과 방송에서 "지금 탈출자가 얼마이고 귀순 신청자가 로씨야에 얼마다"하면서 말하고 있는 것은 탈출자들을 돕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이 정치적 선전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몰라도 진심으로 실무적으로 말없이 돕지 않는 탓에 지금 이 시각도 탈출자들이 붙잡혀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통일한국> 잡지에 어느 교수가 "귀순자 . 북한 탈출자들을 통일의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썼는데 매우 심금을 울리는 말이다.

그러나 높은 명예와 대우보다 그저 평범한 국민으로 조용히 생업에 종사알 수 있도록 신청자들을 받아들여 준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월내 벌목공 한국에 온다"는 제목의 글이 <새고려 신문>에 실려 탈출자들의 기대를 모았던 때로부터 퍼그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월내는 못간다 하더래도 년중이라도 실현된다면 원동의 도시들에서 구원을 청하는 문두드리는 소리가 훨씬 작아질 것이다. 탈출자들을 그야말로 내용있게 도와야 한다. 그들도 사람이고 더욱이는 한 피줄을 나눈 동포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들을 돕는데서 사람과 부대조건 없어야 한다. 진시미으로 혈육의 정으로 방조를 줌으로써 그들이 인생의 다음장을 새롭게 적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억울한 눈물과 곡절 많은 사연으로 얼룩져 있는 탈출자의 가슴 속에 더 이상 랭대와 외면으로 아품을 보태주지 말자. 생각할수록 불행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