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살려주시오! (중)

우리를 살려주시오! (중)

리동성

 

돈이 충성의 척도

외화벌이 나왔던 사람들에게 돌아오라는 기한을 정해 주었는데 거의 모두 제날자에 갈 수 없었다. 특히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돈거래 상품처리를 하루 이틀에 마감지을 수 없어서 차일 피일 미루다가 한 두달을 얼른 지나치고야 큰일났다고 서두르는 것이 보통이였다. 날자를 지키고 제 기일에 들어오는 것은 힘내기와 기술로 돈을 벌던 사람들이였다.
기한이 지나도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제일 속상하여 뛰는 사람은 단위책임자들과 그를 믿을 수 있다고 보증한 담당 안전원이였다. 나갈 때는 간부들이 선전을 하고 쫓아 보내다 싶이 하여 나갔더라도 일이 불거지면 그것이 마치도 말단 단위의 책임자나 안전원이 사람을 잘못 골랐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떠드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흔히 보는 현상일 것이다.
즉 잘되면 제 탓이고, 잘 안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에도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담당 안전원이 찾아 떠나게 된다. 그들은 만나 외부에서의 생활을 검토하고 데리고 들어오게 되는데 대체로 이러저러한 사정을 빗대고 날을 연장하였으며 번 돈만 주어서 보내는 것이 일수였었다.
일종의 신사협정같이 담당 안전원과 타협이 이루어진 후 도리대로 하면 새로 정한 기한을 지켜야 하는데 장사와 다른 청부업도 마찬가지로 그것도 조절하여 지키지 못하는 경우, 그때는 문제가 달라지는 것이다. 많이 벌어서 충성시미을 시위하자는 단순한 욕망에 사로잡혀 세월가는 줄 모르던 외화벌이 인원들에게 의문표가 붙기 시작하는 것이였다.
그래도 돈을 벌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돈이 그의 흘린 땀, 눈비를 맞으며 장마당에서 고생한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타기 같은 장사에서 본전도 못건진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실 장사에서 망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보다 정신적으로나 생활적으로 고통과 괴로움은 더 겪는 것이지만 그것은 상급에게는 절대로 통하지 않았다.

빈 손으로 실패한, 고뇌를 안고 돌아온 사람을 북조선에서 곧잘 말하는 것처럼,<어머니다운 심정>으로 리해하고 맞아주는 것이 아니라 냉대,외면 그리고 시비중상으로 더욱 그를 괴롭히는 것이였다.
"돈 벌러 갔다가 사람이 달라졌다."
"자본주의 물을 단당히 먹었다."
"어디에 파묻어 놓았을 것이다."
그밖에도 별아별 억측을 다하였으며 그것은 그대로 소문이 되어 안전부에 자료로 들어가는 것이였다.
사업소에서는 이 사람들에게 외화벌이 기간중 지불하게 되어 있는 월급을 중단하였고 안전부에 데려다 며칠씩 가두어 놓고 심문하였다.
처음 시작할 때 남의 돈을 꾼 것이 있다면 더 야단이였다. 치니구지간이였다 하더라도 돈을 받지 못하면 야수처럼 되어 얼마 안되는 물건을 털어갔고 외딴곳에 데려가 죽도록 때리기도 하였다. 간부들과 안전부에서는 모르는체 하였고 오히려 고소하게 여기였다. 어떤 사업소에서는 외화벌이에서 졸딱 망하고 돌아온 당원 로동자들을 여러 가지 루명을 씌여 출당시키여 감옥에 쳐넣었었다.
외화벌이 기간에 돈 벌이는 하지 않고 한국 방송이나 듣고 색정적인 중국 잡지, 남조선 책들을 보았다거나 한국이니들과 여러번 만났고 무슨 과업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등 어처구니 없고 황당무계한 별아별 죄명을 다 씌웠다. 안전원들은 이들을 역적처럼 만들어 공을 세우려 하였다. 이 사람들은 공을 세워 훈장도 타고 표창도 받겠지만 중죄인이 된 사람과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돈을 못벌면 이렇게 못쓰게 되고 말군 하였었다.

돈 못 벌었으면 줄행랑

그래서 장사가 망하거나 어찌 어찌하여 빈털털이가 되면 사업소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더 벌기 위하여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날자에 개의치 않고 아글타글 하는 것이였다. 벌써 그때는 안전부에서 점을 찍어 놓은 사람이 되고 찾는 사람, 수사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석달이나 늦어졌는데 홍콩으로 도망쳤다는 소문이 났었다. 그 사람은 별아별 고생을 다하면서 맡겨진 계획을 하려고 애쓰다가 빈손으로 오게 되었었다.
그 사업소에서는 어떻게 처리했던가. 그 사람은 몇 달을 감옥에 갇히여 고생하다가 종시 홍콩인지, 어디로인지 도주하려 했다는 루명을 쓰고 북조선으로 호송되었다. 그후 어떻게 탈출하여 서구라파쪽으로 갔다고 한다.

1년 나마 늦어져 한국으로 도망쳤다는 말이 돌던 어떤 사람은 후에 돈을 많이 벌어 바치고 무사하였다. 결구구 돈이 사람의 명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최고 법관이 되고 임금이 되고 있는 판이였다.
누가 어떤 량심으로, 어떻게 고생하였고 자신의 순결한 마음에 때가 낄까봐 당성단련을 어떤 방법으로 진행하였다는 것은 이제와서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념불처럼 되어 버렸다. 탈출자가 언제부터 탈출자이고 언제까지는 충성의 외화벌이 나온 사람이라는 경계도 명백치 않았다.

그들은 포로수용소를 도망친 전쟁시기의병사도 아니고 북조선에 가기 싫어서도 아닌, 또 선서하고 들아간 당에서 나가고 싶은 사람도 아닌 괴이한 형태의 탈출자 아닌 탈출자들이였다.
수사 선포가 되고 자기를 붙잡으려 한다는 말이 귀에 들어오면 그때야 비로써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고 아차, 잘못하였다고 느끼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였다. 찾아 가든, 붙잡혀 가든 매 일반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의 실례를 보고 이미 알고 있는 터여서 이때는 자리를 옮기는 것이 상책이였다.

이제부터는 완전한 탈출자로써 조심스러운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였다. 날이 갈수록 죄는 더 엄중하게 되고 나중에는 로씨야 경찰까지 수사협력을 요구하게 된다. 추격의 회오리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보니 장마당에도 못나가고 돈벌이는커녕 숨는데 더 신경을 써야만 하였다.
지난날의, 제딴에는 충실한 당원이라고 자부하던 그들이 충성심을 보여주려고 하다가 숨어 돌아가고 바람소리에도 놀라서 벌벌 떨어야 하는 불쌍하고 가련한 신세에 굴러 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