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살려주시오! (상)

우리를 살려주시오! (상)

 

리동성

 

다음은 현재 러시아에서 은신중인 전 북한 임업노동자 李東成 씨가 日 저널리스트를 통해 보내온 호소문이다. 본회는 지난 10월부터 그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있으며, 그가 합법적으로 러시아에 체류할 수 있는 방안을 이 日 저널리스트와 함께 강구중이다.

머 리 말

"나는 북조선 사람이다. 좀 도와 달라. 빵 한쪼각 더운 차 한 고뿌만 줄 수 없는가. 몸이라도 좀 녹일 수 있게 해 달라."

추위에 떠는 초췌한 사람이 당신의 집 대문을 두드리고 있다. 눈물이 글썽하여 애원하는 그룰 당신은 문을 열고 집안에 들여 놓은 적 있는가. 인도주의나 자선 같은 말은 그만두고라도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사는 사람으로써 기꺼이 그에게 의자를 권한 적 있는가.
동정어린 음식과 휴식의 한때나마 제공하였다면 당신은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인간이다. 그들이 떠나간 후 어떻게 되어 바람세찬 씨비리(시베리아)의 여기 저기를 헤메 다니는지,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들의 람루한 차림새를 보고 거지나 정신병원을 뛰쳐나온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지도 아니고 정신병자는 더욱 아니다. 그들은 건전한 정신과 사고력을 지니고 있고 사랑과 증오로 가슴 불태울 줄 아는 열렬한 사람들이다. 머저리가 아닌 탓에, 자신이 남보다 못하지 않은 사고력을 가진 탓에, 로씨야의 도시와 농촌을 더돌아 다녀아 하는 사람들, - 이들이 탈출자, 망명자로 불리우고 있는 북조선의 림업노동자, 탄광개발.건설 로동자들이다.
로씨야에 주재하고 있는 북조선 안전원들이 집요하게 붙잡으려고 추격작전을 벌리고 있는 <사상적으로 변질된><역적>이 다름 아닌 이들이다.
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게 되었는지, 원동의 깊은 산골에서나마 마음 놓지 못하고 숨어 피해 다녀야 하고 추운 겨울 동냥과 구걸의 문을 두드려 야 하는가.

탈출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본래 탈출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사람들이였다. 북조선의 고향에 두고온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꿈에도 대렬에서의 리탈은 생각지 않았었다. 탈출자들은 지난날 모두 성실한 당원들이였고, 상급에서 지시하고 포치(제시)하는 문제에 대하여 시비하거나 흥정할 줄 모르고 수걱수걱 땀응 흘려온 고지식한 사람들이였다.
북조선에 있을 때 생활이 어려워 조반 석죽의 곤난도 겪었고, 앓는 사람이 집에 있어서 약을 구하려 한다든가 남의 집 TV를 부러워 하는 자식들의 소원을 풀어주고 싶어서 로씨야 땅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부족한 것 많고 안타까운 것 많은 생활을 아무런 불평없이 감수하여 왔었다. 남들이 애국미를 낸다면 당장 래일 끼니꺼리가 없어도 털어 바쳤고, 외화벌이가 시작되면 선참 으로 산속으로 달려가 버섯을 땄었다. 나라가 매우 어려운 때, 아직 조국통일도 되지 못한 때 우리는 헐;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사람들이였다. 로씨야에 와서 그들은 술 도 마시지 않았고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휴식일에 쉬지 않고 들쭉을 따서 판 돈으로 처자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군 하였다. 만약 로씨야에 있는 북조선 림산 사업소들에서 충성의 외화벌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아무런 인생의 풍파도 겪지 않고 무난히 그리운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 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당원으로써 살았을 것이다. 93년부터 소리가 나기 시작한 외화벌이는 <충성의 외화벌이>로 이름을 달고 로씨야에 있는 모든 림산 사업소들과 조직들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때 당시 각 림산 사업소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감이 없어서 빈둥거려야 했다. 새로운 림업협정 체결을 전후하여 로씨야 측에서는 림지를 잘 주지 않았고 기계도 잘 보장해 주 지 않았였다. 어떤 중대들에서는 네 개 소대 중에서 한 개 소대가 겨우 일감이 있고 나머지는 일년 내내 실업상태였다. 일감이 없으니 돈을 못벌고 식비조차 빚지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나라에 도움을 주어야겠는데 밥값도 물지 못하는 처지에 빠졌으니 무슨 대책이 있어야만 하였다. 이때 일감 - 림지를 받기 위해 뢰물을 찔러주는 현상들이 많이 생겼다. 이러한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두들 나라에 충성심을 발휘하여 외화 - 루불을 바치자는 호소가 나왔다. 상급에서는 매 사람당 3만루불이라는 액수까지 정해 주었으며 그것의 수집을 위해 사업소, 중대, 소대로 내려가 담화도 하고 강연도 하였다. 어떤 사람은 10만 루불도 바쳤고 혹은 20만, 50만루불 이상 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실례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돈이 없었다. 사업소에 떨어진 외화벌이 목표는 도무지 승산이 없어 보이였다.

비극의 시초 - 충성의 외화벌이

그러자 상급에서는 어떻게 마음을 먹었는지 보통 로동자들도 리해하기 힘든 조치를 취하였다. 상급에서는 외부에 나가서 벌어올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나가서 벌라고 허락하고 그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외국인 증명서까지 발급하여 주었다.

로씨야에 와 있는 로동자들은 려권을 안전부에 보관해 두었고 장마당과 상점에 나가려면 안전부와 사업소에서 수표해주는 림시 통행증을 가져야만 하였었다. 사업소 가까운 장마당 과 거리들에는 림시 통행증 없이 나와 다니는외출자들을 단속하는 <단속조> 사람들이 구역으로 분할하여 지키고 있었다.
그들에게 단속되면 무조건 영창에 들어가야 하였다. 그런데 외화를 벌라면서 증명서까지 내주기 때문에 제가끔 나가겠다고 안달아 하였다.

사람들은 그때 이런 조치를 매우 대담한 혁명적 조치로 여기였고 이제는 우리 북조선도 수십년 동안 사람들을<교양>하여 왔기 때문에 믿고 자기 사람을 당원들을 외화벌이에 동원하려는 것으로 알았다. 지배인을 비롯하여 간부들은 일꺼리가 없어 빈둥거리는 사람들에게 <량심없이> 그렇게 놀지만 말고 충성심을 발휘하여 모두 외화벌이를 난가자고 붙잡고 독촉하는 정도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그들 중에는 협잡군들도 있었지만 대다수 진심으로 한푼이라도 벌어서 나라에 바치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떠나들 갈 때 아직 누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