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쫓기고 숨는 삶이 끝나기를 -4

[탈북자증언]

 

쫓기고 숨는 삶이 끝나기를
 

전 영 미(탈북여성 2004.2.3 한국입국)

쫓기고 숨는 삶이 끝나기를.

중국공안에 붙잡혀 조선으로

우리는 여러 민족들이 갇힌 감방에 들어갔고 그곳에는 우리 같은 조선사람들도 많이 들어왔었다는 자취를 보았다. 벽에 쓰여진 많은 조선 글들, 특히 그중에 하나님을 향한 기도도 있었다. 그 글속에서 락망되는 마음은 읽을 수 있었고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5일이 지난 아침 우리를 불러나가니 우리를 조선으로 내보내지 말아 달라는 요구에 아랑 곳 없이 쇠고랑을 채우고 줄로 연결시켜 역전에 데리고 가서 북경에서 단동으로 가는 차에 태웠다. 대사관으로 갈 때 간편한 옷차림을 하라하여 얇은 옷을 입고 잡힌 우리들은 11월의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너무 춥고 떨렸다. 단동에 도착하여 변방대에 들어가서 우리를 인계해주었는데 우리의 소비품들인 손시계, 장갑, 혁띠 같은 것들 중에 글이 적힌 종이장들도 함께 들어있었다. 그것이 따라 나가면 끝장인데 모두가 질려서 떨고 섰다가 경찰들이 서서 지켜보는데도 주머니에서 종이장을 꺼내려하니 뭘 하느냐고 소리를 질러 저 종이장이 나가면 우리는 죽는다고 하였더니 못된 경찰들은 다치지 말라고 소리쳤고 어떤 경찰들은 못 본 체 하였다.

종이장을 꺼내서 버렸으니 한국으로 가려 했다는 건 말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였고 이어 조선으로 나가는 뻐스에 앉게 되였다.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 있고 자기 나라로 가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떨리고 불안하여 공포에 떨리는지 뻐스에 앉아 떠나자 여기저기서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터졌고 서로 부둥켜안고 하고 싶은 말은 다 같은 심정이나 아무 말이나 함부로 했다간 후과가 두려워 말도 못하고 심정만 느낌으로 나누며 울었다. 남자들은 각오한 눈빛으로 얼굴 표정은 굳어있었고 눈물고인 눈으로 창밖만 내다보았다. 조선 땅으로 거의 도착하자 울었다고 봉변을 당할까봐 울음을 그쳤고 곧 차에서 내렸다.

치욕스런 보위부 생활

조선 보위원들의 차거운 눈빛에 질려 그들이 가지고 온 차에 실려 평안북도 보위부로 갔다. 보위부 문안으로 들어서자 욕질을 하고 몸 검사를 하면서 괜히 때리면서 공포에 질리게 했다. 도보위부장이라는 나이든 사람이 여기 가족이 누군가고 하면서 자기 땅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니 독기어린 서늘한 눈길로 쏘아보면서 너희들 한국가려다 못가서 참 분하겠구나 하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고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떨려났으나 참으려고 애썼고 그 문건이 따라 나올 줄을 몰랐었는데 나온 것을 알게 되자 눈앞이 캄캄했다.

거짓말할 생각은 말고 솔직히 다 비판서에 고백할 준비를 잘하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어떤 놈이 어디로 어떻게 가라했는지를 다 말해야 그런 나쁜 놈들을 잡을 수 있다고 하면서 거짓말을 했다간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몸검사와 피검사와 항문검사까지 마치고 감방으로 들어가 절컥하는 쇠문 닫는 소리와 함께 갇힌 몸이 된 순간부터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라며 어떻게 될 지 가슴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꿈인지 생시인지조차도 모르겠고 전화 받고 다음날 떠나 하루 만에 북경에 도착하여 다음날 한국으로 가는 길에 나섰다 잡힌 3일간의 일이 조선에 나와 감옥에 앉아있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심문이 시작되었는데 나라를 배반하고 또 한국으로 가려한 역적죄를 지었으니 무조건 죽어야 한다고 했다. 순간마다 공포에 떨게 하는 말로 주는 심리적 고통과 살벌한 분위기 여기저기서 매질하는 소리 비명소리 심장이 얼어드는 것만 같았다. 며칠이 안되어 함께 가려했던 남자는 어디론가 실어갔다. 뻔하게 인간의 도살장 같은 곳으로 끌어갔을 것이다. 한국으로 가려했다는 것이 그렇게도 중한 죄가되여 심리로도 육체적으로도 중한 죄 값을 치루어야 했다. 한나라 한 동족이 둘로 나누여 원쑤 아닌 원쑤가 되여 말도 하지 않고 어울리지도 말아야 하며 함께 살지도 말라는 것이 아니 원쑤가 되라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였다.

감방 안은 좁고 곰팡이 냄새와 변소 냄새로 숨 막힐 것 같은데, 다리를 굽힌 채 앉아 머리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어야 한다. 변소 보는 것도 보고해서 허락 받아야 하는데 오빠시라고 불리 우는 간수와 심술 사나운 간수들은 너무 악착히 굴었다. 오빠시라는 자는 여자들이 변소 보겠다면 보지 말라고 심술부리기도하고 보라고 하는 경우에는 바지 벗고 앉아 다 본 후에 일어나 옷을 입고 제자리에 서서 보고할 때까지 헛눈 한번 안 팔고 들여다보았다. 머리를 기울여 찬찬히 들여다보았고 그것이 너무 역겹고 싫어서 가기를 기다려 바지를 내리지 않고 서있으면 쌍욕을 퍼부으면서 소리 질렀다.

한번은 21살 된 여자인데 16살에 중국에 가서 한족에게 시집을 가서 지금은 5살 된 아이가 있다는데 그 여자에게 일어서라고 하더니 바지를 벗으라고 했고 또 쇠고랑을 채워 때릴 것이 무서워 바지를 벗은 그에게 팬티까지 내리라고 강요했고 팬티를 내리자 엉덩이와 살이 드러나니 그 안의 모든 여자들은 목을 움츠리고 모욕을 다함께 받는 느낌이였는데 다리 사이를 벌리라고 소리치고 두 손으로 그것을 벌리라고 했고 으르렁대는 강요에 다리를 벌리고 그것을 벌려 보이는 순간 우리는 얼굴이 달아올랐고 설사 매를 맞더라도 그런 짐승 같은 놈이 시키는 대로 하는 그 애가 증오스러웠다. 철창앞에 세워놓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옆에 있는 우리는 숨도 크게 못 쉬었다. 그것으로 만족이였는지 옷을 입으라 했다. 한주일에 2번씩 옷검사를 하는데 모두 세워놓고 선 자리에서 자기옷을 벗어 앞에 뭉쳐놓게 했고 가슴띠와 팬티를 벗을 때엔 좀 비켜주었으면 하고 꾸물대면 듣지 못할 욕을 해댔고 동물 구경하듯 했다.

다 벗고 나서는 담요 한장을 가지고 한쪽에 모여 앉아 뒤집어 써야하는데 그 한장으로 몸을 다 가리울 수 없어 서로 당기다보니 이쪽에서 당기면 저쪽 사람들이 벗을 몸이 드러나고 저쪽에서 당기면 이쪽이 드러난다. 너무 조여서 가운데 들어간 사람은 숨이 막힐 지경이고 땀이 비오듯 했고 벌거벗은 몸뚱이들이 달라붙어 있으라니 새끼 돼지들을 련상케했고 드러난 엉덩이들은 간수들이 발로 툭툭하면서 옷을 신발로 밟고 다니면서 팬티에서 냄새가 난다고 욕을 하면서도 옷깃을 샅샅이 뒤지고 나서 나가버렸다. 살과 살이 부딪혀 땀투성이 되여 언제 끝날지를 기다리다가 모두 그 속에서 하나같이 기여나와서 자기 옷을 찾아입느라고 법석이는데 앉으면 아래가 보이고 무릅끓고 기면 젖이 드러난다. 좀더 지나니 그런 것보다도 배고픔을 참기 제일 힘들어했다. 통강냉이에 콩 몇알씩 섞어주는데 한줌 되는 것을 먹고 며칠만 지나면 견디기 힘들어 진다. 지옥보다 조금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도집결소 생활

20여일의 고통의 날들을 보내고 도집결소에 끌려갔다. 그곳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하여 보았는데 며칠 전 우리 앞서 이 곳에 온 낯익은 얼굴들이 퉁퉁 붓기고 앙상해진데다가 남루한 옷차림의 거지떼들이였다. 이제 곧 나도 저들처럼 되겠구나. 낮에는 눈 속에 묻힌 볏단을 끌어내서 등짐으로 져나르고 밤에는 새끼를 꼬면서 고된 일하는데다 먹는 건 통 강냉이를 삶아서 또 물에 오래도록 담그어서 불어터진 것 한줌씩을 준다. 너무 배고픈 그들은 걸치고 온 옷 하나에 한 입에 들어가는 떡 몇 개나 사탕 몇 알에라도 바꾸어 먹어야 했으니 옷은 다 바꾸어먹고 헌옷을 바꿔 입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곳은 군견개를 넣어 키우던 곳인데 개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집결소를 만들었는데 군견개의 벼룩이는 여느 벼룩이와 달라서 삽시에 쏘는 듯이 물어 놓는데 온몸에 성한 곳이 없이 되어버리고 헌데 투성이가 된다. 손, 발가락 사이까지 성한 곳이 없고 이까지 득실거려 머리카락은 써캐로 하얗고 너무 긁어서 터지고 벼룩이가 텨져서 옷이 피투성이가 되였으며 추워서 떨며 꼬부라뜨리고 자려다가 너무 가려워서 옷을 들추고 긁느라면 찬바람에 몸은 떨리고 잠도 잘 수없다. 한사람을 한 시간씩 보초근무를 세우는데 보고하는 말을 조금만 떠듬거려도 반복시키기도 하고 전체를 깨워 추운 밖에 줄을 지어 세워 놓는다. 얇은 옷을 입고 있는데다 이빨을 맞쪼으며 떨고 서 있다가 조금만 움직이거나 추워서 저도 모르게 응하고 신음소리내면 모두 달라붙어 때리게 했는데 때리지 않으면 자기가 맞아야 하니 맥이 없어 헐떡거리며 때려야 했고 모두 비칠거린다.

일 나갈 때 밥 먹을 때 잠잘 때 줄을 세울 때마다 1분간에 정렬로 집합하지 않으면 몇 수십 번 반복시키니 맥이 다 빠져 버린다. 거의 모든 사람이 병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서 자기들의 집이 있는 곳까지 가지 못한 채 죽기도 하는데 본고장 보위부에서 데리러 왔다는 소식을 알리면 울음 마당이 되는데, 가는 사람은 끝내 죽지 않고 가게 되여 기뻐 울고 남은 사람들은 거기서 살아나가지 못할까봐 운다. 이제 본고장에서 데려다 죽이겠는지 살리겠는지 어떤 처벌이 내릴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한걸음씩 소망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이다. 사실 보위부에서도 한번씩 데리러 가려면 차들이 가다가 한번씩 서면 며칠씩 서있으니 그들도 생활이 넉넉지 않은데 도중에 추위와 굶주림에 고생해야 된다. 10일<1/4>~<1/4>15일씩이나 걸릴 때도 있으니 다시 돌아가기까지 하려면 거의 한달이 걸리는 때도 많으니 고생이 얼마일지 모른다. 그러니 언제 데리러 올지 알 수 없으니 그 속에서 견뎌내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밖에 일하러 나가면 무우잎과 거기에 매달려 있는 무우 꽁지는 최고의 별식이다. 벼이삭은 몸을 수색하니 가지고 들어갈 수없고 껍질채 흩어먹고 맹장이 걸려 배를 끌어안고 딩구는 사람도 있다.

려명이는 길에 있는 개똥옆에 떨어진 배추잎을 보자 들킬가봐 눈을 피해 제꺽 주어서 입에 넣는다. 똥이 묻은 잎배추는 보이지 않고 배추만 보여졌을것이다. 설사 똥이 보여져도 대수가 아니다. 군대들도 무우시래기를 걸어놓은 것을 발견하면 차를 세워놓고 벗겨다 씹어 먹는데 죄인들이랴. 이런 끝에 고향에서 우리에게도 데리려 왔다.

고향의 집결소로, 다시 보위부로

고생하며 데리려 다닌다고 발로 차고 때렸지만 고향으로 가게되여 모두 기뻐했고 강냉이 닦은 것 서너되박은 식량으로 가지고 10여명이 떠났다. 역전에서 렬차를 기다리는 동안 족쇄를 채우고 한 줄로 묶어 놓은 채 눈이 녹아 질퍽한 땅에 꿇어 앉혔고 변소 볼 때에도 벗겨주지 않아 점점 더 조여들면서 아파한다. 가다가 도중에 내려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역전 앞에서 며칠씩이나 차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지치고 여윈 모습들은 민족이 당하고 있는 아픔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곳에 있느라니 음식을 사 먹는 것을 보니 그 음식 냄새와 함께 먹고 싶어 미칠 것 같다. 보지 않으려 해도 눈은 어느새 음식 먹는 것을 보고 있다. 한결같이 음식만 쳐다보니 본다고 때리던 호송원들도 구차스러웠는지 옷이라도 벗어 사먹으라고 하였다. 모두 있는 대로 내놓았고 나도 아무리 아이들이 배고파해도 그때까지 옷을 하나도 벗어 팔아먹지 않고 추위를 견뎌내자고 하였는데 할 수 없이 옷을 벗어 내놓았다.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팔고 음식을 사가지고 와서 나누어 주었는데 먹을 것이 손에 쥐는 순간 생각보다도 먼저 입으로 들어갔다. 씹으려 하는데 어느새 꿀꺽 넘어가버린다. 순간에 강낭이 떡을 먹어치우고 나서 어떻게 먹었던지 기억도 안 나서 맛을 더듬고 있는데 속에서 왈랑절랑 소리가 나더니 앞이 핑핑 돌고 메스꺼우며 뒤에서 쏟아져버릴 것 같아서 힘주어 참았지만 참을 수 없어 변소에 가게 해달라고 하자 시끄럽게 군다면서 포승줄을 푸는데 항문에서 막 나오는 것이다. 문밖을 채 나가지 못하고 입으로 막 나왔고 너무 급해 아무한쪽 마당에다 앉으려고 하니 서로 손을 련결해 족쇄를 채우고 포승줄을 매놓아 바지 벗는데 서로 당기면서 아프다고 소리치며 바지를 벗으니 물을 쏟는 것처럼 쏟아졌다. 배속이 다 잘못된 모양이다. 기다리던 렬차에 앉았는데 창문마다 유리 한 장 없이 바람이 날렸다. 렬차도 지치고 병든 사람들의 모습과 꼭 같았다. 덜커덩거리며 겨우 돌아가는 기차소리와 온전한 걸상 하나 없이 마사져 사람이 사는 세상을 건 갈지 않은 황폐함을 주었다. 바서진 의자사이에 구겨 박힌 우리는 발이 시리고 저려나도 편하게 할 수도 없고 묶어놓은 손들은 다 련결되여 있어서 손을 기리울 수도 없이 얼어들었고 옷깃을 여며 바람을 막으려고 해도 한 사람이 움직이려면 다같이 손이 한곳으로 움직여 주어야 하니 할 수없이 모진 추위를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으며 아이들은 추위도 못이겨 울고 차는 가다가서면 떠날 줄 모른다. 남자들은 팔을 뒤로 묶어놓아 다헤쳐진 가슴도 허리는 여미지 못하고 손은 얼었고 귀도 얼어서 불어났고 끼니로 주는 강냉이 한줌도 자기 손으로 못먹고 여자들이 입에다 넣어주면 세번 정도만 받아먹으면 식사가 끝이다.

이렇게 고문 아닌 고문의 시간들을 연장하며 먹을 것도 떨어졌고 호송원들의 식사비도 다 떨어졌고 다함께 굶으며 고생하던 끝에 본거주지로 도착했다. 또 그곳의 집결소에서 자기해당 보위부에서 데려갔는데 나의 문건을 보더니 두말없이 다음날 족쇄를 채워 시 보위부로 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