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쫓기고 숨는 삶이 끝나기를 – 2

[탈북자 증언]

 

쫓기고 숨는 삶이 끝나기를
 

전 영 미 <탈북여성>

북에 두고 온 아이들의 삶

바로 내가 이러고 있을 때 아이들에겐 정말 눈물겨운 일들이 남겨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떠난 후 무시래기를 삶아 먹던 것 마저 떨어졌고 밖에는 눈이 한길씩이나 덮였는데 도저히 어디서 낱알이라고는 주워 먹을 것이 없고 땔 것 없어 방안은 엄동설한의 추위로 땡땡 얼어들었다.

더운물 한그릇 끓여먹을 수 없고 굶주림에 여위어진 그들이 며칠동안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하고 헌 이불 하나를 셋이서 덮고 옹송그리고 누워 배고픔을 참다못해 눈두덩에 얼어붙은 얼음을 식칼과 도끼로 쪼개내서 한 조각씩 입에 넣고 다시 찬방에 이불속으로 들어가 얼음을 녹여 넘기고 하면서 돌아올 어머니, 자기들에게 먹을 것을 보내주마 약속한 어머니를 애타게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다. 모질게 긴 밤은 추위와 배고픔으로 그들에게 죽음의 적막처럼 공포로 엄습했고 기가 막히게 슬퍼졌다.

춥고 배고파 잠들 수 없어 셋이서 눈을 멀뚱하게 뜨고 있노라면 스산한 눈보라 소리 낼 뿐이고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도 어머니 발자국 소리 같아 벌떡 일어나 “어머니 온다”하고 소리치면서 “어머니”하고 문을 열면 외로운 겨울밤의 차디찬 눈바람이 아이들을 기다렸고, 다시 아이들은 절망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게 했다.

며칠동안 이렇게 굶은 채 울고 울다가 지쳐서 울 기력조차도 없어 꼼짝 못하고 있느라니 설날이 왔고 사람 기척 소리 하나 없는 이들을 옆집 할머니가 다 죽은 건 아닌가고 들여다보니 셋이서 꼼짝 않고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그 할머니가 울면서 모질고 기막힌 세월을 탄식하고 겨우 곡식을 얻어 지은 밥 한그릇을 가지고 와 어서 먹으라며 어머니 오기 전에 죽지 말고 살아야겠는데 하면 근심하며 나갔다.

며칠동안 굶은 빈창자에 먹을 것을 보니 눈앞에서 불씨 같은 것이 일면서 정신이 확 돌아가버리는 것 같았다. 아이들 셋이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어떻게 떠서 어떻게 먹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순간에 먹어 치웠다. 다 죽게 된 지경에 둘째 남자 아이가 말했다. 누나 이렇게 굶어죽기 보다 집이라도 팔아서 밖에서 자더라도 먹기라도 해서 살아있으면 봄이 올 것이고 어머니도 돌아올 수 있으니 앉아 죽지 말고 집을 팔자고 했다. 누나는 이 집을 팔면 어머니와 연계가 끊어져 만나기 어려우니 집을 팔지 말자며 어머니가 우리 헤어지지 말라 하였으니 안된다고 하였다. 남동생은 이렇게 죽기보다 사느라면 또 살길이 있을지 어찌 알겠느냐 하여 집을 팔기로 했다.

굶주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삶은 곧 투쟁으로 살아가는 조선의 현실이었다. 사람들은 도적, 강도, 협잡, 사기,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고, 어린 것들의 거래를 협잡하였다는 건 그때 그 나라 어려움의 시기로서는 당연하기도 했는지 모른다. 집을 팔아주겠다고 소개해주고 그 돈을 받아서 아이들에게는 500원을 주고 3천여 원을 가지고 달아나버린 한 낯익은 사람이 그지없이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셋이서 토의해서 그 돈 500원을 가지고 콩을 사가지고 콩 튀기를 해서 팔아 떨어지는 이윤으로만 조금씩 먹고 살아가자고 토의했다. 콩 튀기를 파노라니 널려있는 꽃제비떼들에게 덮쳐서 빼앗기기도 했고 잘 팔리지는 않고 배는 너무 고프고 음식 보면 미칠 듯이 먹고 싶은데 견딜 수 없어 콩 튀기 한줌씩이라도 셋이서 나누어 먹으면서 굶주림을 달랬다. 3일도 못되어 장사밑천은 거덜이 나고 말았다.

겨울이 되어도 바꾸어 입을 것도 없어 얇은 여름 옷차림으로 북방의 찬 겨울을 집도 없이 견딘다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있어 엄혹한 시련이다. 너무 배가 고파 꼬부라지고 밤에 눈보라치는 추위는 몸속으로 스며들 땐 집이 그리워지고 어느 누가 집에 조금만 들여놔 준다면 꼬부라뜨리고 누어 한잠 자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어머니가 있을 때 얼굴을 아는 집들을 찾아가는데 맞받아오는 추위는 가슴을 씽하게 숨이 막혀버리는 것 같으나 그 집까지 가면 들여놔 줄 수도 있다는 희망 안고 춥고 힘들어 울며 이를 악물고 걷는 작은 동생에게 조금만 참고 가자고 힘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되는 길을 소망 안고 눈물 흘리며 갔으나 그렇게 몇 시간만 들어가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해도 안 되고 제일 작은 막내 동생이라도 몇 시간만 들어가 있게 해달라고 애걸하며 눈물의 호소를 끝내 거절해버리는 것이다. 이젠 춥고 배고프고 힘들어서 걸을 수도 없는데 과연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 절망 뿐이다.

순간이 10년같고 하루가 백년같은 삶

아이들은 함께 다니자니 나누어 먹을 것이 없고 할 수 없이 헤어졌는데 추위 속에서 어디 추위를 막을 만한 곳에서 단잠 한번 자보지 못하고 늘 먹을 것을 찾아 정처 없이 울고 헤매고 있을 때 나는 일자리를 구하여 남편과 함께 한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조선족인 사장에게 사정 얘기를 하여 선금 1000원을 받았다. 그때 얼마나 기쁘던지. 우리 아이들은 지금 힘들게 살고 있지만 절대 무서운 일은 안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며 연변에 있는 친척에게 부쳐 보내면서 하루속히 아이들에게 보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내겐 순간이 10년 같고 하루가 백년 같은데 그 땅에서는 누구나 다 당하는 일이라면서 별로 급해하지 않는 주위의 사람들이 야속했다. 돈을 부친 지 한달이 지난 어느 날 돈을 빨리 조선에 보내달라고 전화하려는데 큰아들 려명(12살)이 중국으로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큰딸 지향(14)의 소식은 모르고, 막내 광명(10)이는 꽃제비 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좋겠느냐고 하는 물음에 아이들을 다 데려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싶었지만 당장 아이들을 데리고 올 길도 없고 데려다 어디서 어떻게 살지도 몰라 막연했다.

려명이에게 돈을 주어 보내서 지향이와 광명이를 찾아 한 칸짜리 집이라도 사고 살게 해달라고 하니 어린아이들에게 그 돈을 주어 보내면 어떤 사기꾼들에게 피해를 보게 될지 어찌 아느냐 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토의 끝에 려명이를 보내서 동생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여자애는 보이지 않는다니 어떤 나쁜 사람들이 어디로 데려다 팔아먹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속은 새까맣게 타는데 나는 도울 아무 힘도 없으니 입술을 깨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두 아들을 중국으로

누룽지를 좀 사가지고 북조선으로 넘어간 려명이가 모습조차 알아보기 힘들어버린 동생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꽃제비 동무들이 저애가 바로 네 동생이라 했다. 이름을 부르며 찬찬히 뜯어보니 동생을 알아보게 되었고, 형의 깨끗한 옷과 생기 도는 눈을 바라본 광명이 울며 형을 부르며 달려들었다. 광명이를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나를 누군가 데려다 키워주는데 잘사는 집이라고 함께 가자고 하여 데리고 길을 떠났다. 가지고 간 누룽지를 먹여주며 두만강을 건너자니 갑자기 동생 광명이가 겁에 질려 뒷걸음치며 안가겠다고 소리치는 것이다.

중국에는 큰 아버지랑 할머니랑 있는 곳에 어머니도 있으니 가자고 하자 반가운 기색이고 가고 싶어 간절한 눈빛이면서도 겁에 질려 있었다. 겨우 얼러가며 중국에는 먹을 것이 많아 실컷 배불리 먹어도 된다는 형의 말에 너무 기뻐하였다. 친척집에 도착하였는데 굶은 창자에 밥을 많이 먹이면 탈이 난다고 얼마 먹이지 않자 광명이는 실컷 먹고 싶어했다. 이어 내게 전화를 걸어 왔는데 나는 아이들이 무사히 왔다는 소리에 너무 기뻐 울음이 나왔고 광명이가 왔느냐고 물으니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하면서 그새 밥에 취해 잠들어 버린 광명이를 불렀다. 겨우 정신차린 광명에게 어머니 전화니 어서 불러라 하는 소리에 나는 “광명아, 어머니다”하고 불렀고 광명이가 “어머니 지금 어디에 있냐”하며 흐느끼며 울음을 참느라 꺽꺽소리냈다. 이렇게 두 아들은 그 날 돌아왔고 지향이는 만나지 못했다.

두 아들을 만난 기쁨으로 남편과 나는 집으로 들어가 부모들에게 말했더니 달가워 안하는 기색이였고 그 아이들은 절대 못 키운다고 말했다. 나는 속이 상해 남편에게 말했다. 그 험한 곳에서 저희들끼리 죽지 않고 살아 여기까지 저희들 발로 왔는데 이제 내가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어떤 것도 해야겠으니 집의 사정은 이러하니 부모들까지 반대하고 당신만 속을 태우고 있으니 이제 당신과 나로서는 아이들을 키울 집도 능력도 없으니 나를 어떤 사람이라도 좋으니 아이들만 키워주겠다는 사람한테로 보내달라고 진심으로 말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얼굴이 꺼멓게 질려 한숨짓고 있었다. 다음날 내가 오빠에게 전화로 부탁하기를 며칠만 더 아이들을 숨겨주고 먹여주면 아이들을 키워주겠다는 사람을 찾아 데려가겠다고 말하자 남편이 갑자기 전화기를 빼앗아 쥐고 이왕 나한테 맡겼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그때 우리에겐 아무 방법이 없었다.

시부모들과 친척들까지도 여자 하나는 되지만 아이들은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자녀를 낳아 키우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매정할 수 있는가 싶었다. 여자가 무엇 때문에 제입 하나 건지자고 외국에 와서 살 이유도 없고 아이들이 아니라면 이런 낯설고 언어가 다른 타국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선 여자들이라고 인성을 버리고 자기 배만 불리기 위한 짐승이 아니며 홀아비 구제하러 온 것은 아닌데, 억울하고 분했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무 상관없는 아이들이라도 그런 곳에서 살 길 찾아 여기까지 와서 헤맨다면 불쌍해서 먹여주고 입혀주지 않을까? 굶어 죽게 될 지경에 살 길 찾아 강을 건너와서 어머니가 돌보지 않으면 과연 누가 그 애들을 품어 줄 수 있단 말인가. 너무 억울하게 당하는 일도 배부르고 등 따시면 아무 말도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부모들의 말을 들으며 못사는 곳에서 왔다고 차별하며 아픔을 외면하는 그들이 섭섭해서 울었다. 다행한 것은 남편이 늘 대신 이해해 주었다. 우리가 아이들을 데려가지 못하고 있을 때 연변에서는 북조선 사람 잡아내가는 운동이 심해지고 아이들을 더 감춰둘 수 없어 고아원에 사정하여 잠시 두기로 하였다.

그때 광명이는 너무 먹지 못하던데다 음식을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뱃속에 밸이 들어가는 일루수에 걸렸고 수술해야 했는데 마침 용한 의사를 만나 침으로 구급했다. 음식을 조금씩 밖에 주지 않자 눈에 너무 희귀한 것이 많은데 보면서도 못 먹으니 중국에서도 실컷 못 먹고 배고프다 하였다. 고아원에 들어간 그날로 려명이가 지향이 데리러 북조선으로 가려고 뛰쳐나왔다. 광명이만 데리고 올 때 꽃제비들에게 아무날 아무장소에서 꼭 만나잔다고 지향이게게 일러달라고 하였는데 바로 그 정한 날이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그때 동생 광명이에게 지향이 데리러 가니 인차 올 때 까지 꼭 여기에 있으라고 말을 하였어야 했는데 말없이 가만히 나오다 보니 낯선 곳에서 형마저 없어졌으니 겁에 질려 형을 부르면 그곳에서 뛰쳐나왔는데, 그때 그렇게 되어 작은 아들 광명이는 지금까지 어디에 있는지 소식을 모르고 있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엄마 빨리 오시오 라고 하며 헤어졌는데 그동안 많은 고생 끝에 여기까지 왔건만 얼굴도 못보고 자식을 책임져주지 못한 못난 이 어머니 때문에 다시 헤어져 낯설고 언어다른 곳에서 겁에 질려 형과 누나 어머니를 부르며 어디론가 울며 헤매였을 광명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내리고 언제면 아들 광명이를 만날 수 있는지 모른다. 먹을 것도 마련해주지 못하고 떠나던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지향이를 데리러간 려명이는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지 못했고 두만강들 건널 때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쩡쩡 얼음 꺼지는 소리 위로 건너왔다. 친척집에 들어가자 이미 고아원에서 광명이도 형이 없어지고 나서 인차 없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난 뒤여서, 친척이 네놈 때문에 동생까지 잃어버렸다고 쫓아내었다. 려명이는 어머니 행처를 몰라 정처 없이 헤매다가 공안에 잡혀 조선에 붙잡혀 나가게 되었다.

려명이의 생활

북조선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며 다니다가 다시 깊은 두만강을 용케 무사히 건너 중국에 와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장사꾼들에게 걸려 하북성의 한 한족의 집에 팔리였는데 딸만 셋인 이 집에서 사위 삼으려 하였으나 그냥 떼를 쓰며 조선에 가겠다고 소리치니 둬달 가량 얼리다 못해 사왔던 사람에게 데려갔고 돈을 돌려주고 난 이 사람들은 다른 곳에 보내주겠으니 갔다가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치라고 일러주고 옷을 사 입히려는 기회를 타서 도망치게 되었고 빌어도 먹고 주어도 먹으면서 다니다가 잡혀서 조선으로 나가게 되었다.

꽃제비 아이들과 함께 쟁개비 한 개를 얻어가지고 바다가에 가서 미역도 주어 삶아 먹고 농촌에 가서 호박, 귤 같은 것도 훔쳐서 끓여 먹으며 살다가 추운 계절이 닥쳐오자 더 지탱할 수 없어 물이 깊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생가를 무릅쓰고 남양<1/4>-<1/4>도문행 기차밑에 붙어서 중국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먹는건 주어서라도 먹는데 잘 곳이 없어 추위를 견딜 수 없게 되자 큰 마음먹고 큰 아버지집(외사촌오빠)에 전화했다. 그렇게도 당부를 단단히 하며 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며칠만 있으면 어머니가 데리러 온다고 하였는데 도망쳐 나가는 통에 동생까지 잃어버렸다고 분김에 쫓아내고 난 뒤 이제다시 아무 때고 찾아오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려명이가 지향이를 데려오려고 도망쳐서 조선에 다녀온 줄을 친척들은 모르고 있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아마 사내애들은 이렇게 엉뚱한 데가 있고 속이 깊은 것 같다. 한편 꽃제비 동무들에게서 려명이가 만나자고 했다는 소식을 듣고 약속된 날짜에 그 장소를 향해 길을 가던 지향이는 경비대 군인들의 눈을 피해 산길로 가다가 길을 잃어 하루 밤을 산속에서 울며 애쓰고 헤매다가 다음날 산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나 길을 대여주고 약속된 장소에 가니 하루 늦어 도착한 길이어서 려명이는 없었고 지향이는 울며 다니다가 무작정 두반강 얼음위로 뛰어 중국으로 넘어왔다. 어느 사람이나 말을 물으려면 꼭 붙잡힐 것만 같아 울기 시작했다. 남루한 옷에 새까만 얼굴, 헌 신발, 대번에 조선아이인 것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길가던 할아버지가 “너 조선아이지”하자 겁에질려 “아닙니다”했고, “나는 좋은 사람이니 무서워 말라 이제 내 뒤로 몇 발자국 떨어져 따라 오너라”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한 대문으로 들어가 집에 들어가니 할머니와 함께 살고 계셨는데 할머니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혀주고 사연을 듣고 나서 친척집에 전화를 걸어주어 친척이 데리러 와서 네가 정말 진희 딸 맞느냐며, 이것저것 묻고 나서 집으로 데려갔다. 오빠의 기쁨어린 전화에 이어 딸 지향이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당장 가고 싶었으나 당장은 데리고 갈 곳이 없어 그냥 회사에서 일하면서 번 돈을 부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