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 4

이 영(가명, 탈북여성, 1960년생, 2005년 한국입국)

(전회에 이어서)
이젠 밥 먹으러 들어가겠구나 하고 줄을 섰는데, 이번에는 양어장에 물이 들어 올 수 있게 긴 수로를 파놓으라는 것이었다. 넓이는 2m, 깊이는 1.8m가 되는 곳으로 한 줄로 돌을 쥔 채로 내려서라고 했다. 뱃속에서는 이미 속이 쓰린지 오래고 땀까지 많이 흘리다보니 갈증까지 나는데다가 이미 돌을 쥐고 뛰어다니다 보니 다리가 흔들 흔들거렸고 떨리는 몸으로 돌을 쥐고 한 줄로 내려섰다. 반장이 하는 소리가 이제부터 돌을 쥐고 앉았다 일어섰다 펌프질을 100개씩 하라고 했다. 반장과 조장들 네 명은 회초리를 쥐고 뚝 위에 서서, 하라는대로 하지 않는 자들을 때렸다. 입안에서는 갈증이 나다못해 걸쭉한 침이 나왔고 입안이 다 말라들었지만 "하나! 둘! 셋!" 구령을 쳐가면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였다.

그때 그 광경을 어떻게 말해야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은 그런대로 겨우겨우 이겨나갔지만 제일 맥이 없는 나이 먹은 사람들은 엉엉 울면서 “반장동지 제발 잘못했으니 용서해주십시오” 하는 외침소리, 나이 어린 처녀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아수라장, 난장판이었다. 스무 개정도 했을 때 반장이 그 중에서 제일 제대로 잘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그만하라고 하였다. 나도 그 중에 속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돌을 놓고 일어서서 남들이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울음바다, 그때 울지 않은 사람은 반장과 조장 네 명뿐이었을 것이다. 나도 이를 사려 물고 했지만 돌을 내려놓고 나니 내 설움에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었다. 배가 고파서 죽기보다는 나을 것 같아 중국에 갔다 온 죄가 왜 이리 고달픈지 차라리 죽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반장의 구령소리에 뚝 위를 올라와야 되겠건만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은 올라서지 못하여 위에서 잡아 당겨서야 겨우 끌려올라왔다. 우리들의 몰골은 눈물과 땀범벅에 모래가 붙은 돌을 지고 뛰다보니 모래 범벅에 어느 누구하나 사람답다는 몰골이 전혀 없이 갈 곳 없는 원시인들이었다. 목구멍에서는 단김이 나와 입안에서 냄새가 나온다. 주린 배에 물이라도 실컷 먹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드디어 반장이 “이제부터 내려가 얼굴을 씻고 올라오라”고 하며 우리 대열 옆에 파놓은 양어장을 가리킨다. 그 양어장은 파놓은 지 오래다 보니 물이 뜨듯하였고 고인물이다 보니 개구리가 알을 쏟고 똥을 싸서 물 위에는 시퍼런 개구리 똥이 둥둥 떠다니는 물이였다. 반장과 조장 네 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명가량 되는 사람들이 동시에 그 양어장에 뛰어드는 모습이 한시라도 한 발자국이라도 빨리 뛰어내려서 타들어가는 목을 적시려는 너나 없는 생각으로 누구 사정 볼 겨량(상황)이 못되었다. 그래도 빠른 패는 젊은 남자들이었다. 제일 먼저 그들이 물을 헤가르며 지나가 앞쪽의 맑은 물을 들이 마신다. 물이 무릎 아래까지 젖도록 차이는 고인물이여서 뜨뜻한데다 젊은 패들이 앞쪽으로 지나가면서 흐려 놓으니 밑에 깡치(밑에 가라앉은 찌꺼기)가 둥둥 떠오르는 물을 힘이 없는 허약자들과 여자들이 마신다. 한 두 모금으로 해결보기 힘들어 쭉쭉 들이키는 소리가 황소가 물을 마시는 소리와 똑같았다. 정말이지 거짓말 보태지 않고, 황소가 물을 마시는 소리들이었다.

어떻게 그런 더러운 물을 먹고도 아무런 탈 없이 살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우리는 타들어가는 목을 축이고 세수를 하고 대열을 지어 숙소로 돌아오는데 발이 앞으로 걸으려고 해도 자꾸 옆으로든 분간 없이 걸어졌고 숙소까지 가는데 죽을힘을 다해서 걸어야만 했다.

그 날이 바로 내 생일이다 보니 죽을 때까지 잊혀질 것 같지 않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잊혀 지지 않는 일이 있다. 그래도 나는 가족이 있다 보니 3일에 한 번씩 식구들이 면회를 오는데 가족이 없는 독신들은 영양실조 걸리는 것이 많았다. 한참 먹을 나이인 젊은 남자 아이들이 제일 힘들어했다. 그들은 산에 가면 풀잎을 보는 대로 뜯어 입에 넣고 씹어 먹었고, 8월이다 보니 강냉이가 알이 들기 시작하였는데 강냉이 밭 옆을 지나갈 때면 언제 강냉이를 뜯을 새가 없어 강냉이대 채로 뽑아들고 강냉이 송치까지 다 씹어 먹었다. 면회를 자주 오는 나도 배가 고파 감자밭에 가서 생감자를 흙만 옷에다 닦아서 씹어 먹어보고, 생강냉이도 송치까지 씹어 보았다. 그때 감자 맛은 지금 무우를 먹는 것과 같았고, 알이 툭툭 터지는 생강냉이 맛은 지금 고급 빵을 먹는 맛이 났다.

이런 배고픈 고생을 이기지 못하고 25살 먹은 젊은 독신 남자 아이가 식전 나무하러 산에 갔을 때 기회를 노리다가 도망을 쳤다. 도망은 쳤어도 밥 먹기 전이다 보니 배가 고프면 맥이 없어 멀리도 못가고 2시간 만에 다시 잡혀 단련대로 돌아왔다. 100명이 되는 대열 앞에서 반장이 “너희들도 도망가면 이렇게 만들어 놓겠다”고 그의 팔을 뒤로 결박시켜놓고 젊은 남자 두 명에게 직경 1.2~2cm되는 참나무를 쥐어주면서, 다리를 부러 뜨려야 도망을 못 친다며 다리 복사뼈를 끊어놓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젊은 애들은 차마 손을 못 대고 반장 눈치만 살피는데 반장 아이가 그 때리지 않는 남자애들을 참나무 몽둥이로 머리를 내려치면서 “못 때리면 네가 맞아라”고 내리 친 것이 골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농장 선전실 바닥에 피범벅이 되자, 안 때리면 또 맞겠으니 도망치다 잡혀온 아이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팔은 뒤로 결박되었고 다리는 다리대로 결박하여 앉혀 놓고 때리는데 한번 때릴 때마다 그 애 다리가 10cm정도는 뛰어 오르는 듯싶었다. 양 옆에 둘이 서서 엇갈려가며 때리는데 한 사람이 세 네 번 정도 때리니깐 그의 무릎에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때 나이 어린 여자아이들은 손으로 눈을 막고 그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가 반장한테 귀뺨을 맞은 아이도 있었다. “이것을 보아야 너희들도 도망을 안친다”고... 진짜로 무릎 복사뼈를 부러뜨려 놓았는데 그는 그 후부터 배 걸음으로 무릎을 질질 끌고 다니며 단련대 생활을 15일 정도 하다가 골수염이 와서 다리가 팅팅 붓기 시작하더니 끝내 병원으로 호송하던 도중 길가에서 차도 없이 농촌 달구지에 실려 가다가 달구지 위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죽은 그 아이에게는 가족도 없다보니 단련생들이 모여 간단히 땅에 관도 없이 묻어 주었다.

최성재 깜지를 벗겨놔도 30리 띤다는 최가... 그도 같은 죄인인데 왜 그렇게 악착같게 놓았는지. 그때 단련생들 중에 단련생활을 다 하고 나가면 죽여 버리겠다고 벼르던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무사히 살아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단련대 생활 한 달을 끝내고 나와도 혼나기는커녕 악이 바친다. 집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고 국가에서는 아무런 대책 없이 통제만 하는 것이 죽으라는 건지 살라는 건지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니 사람들마다 버릇이 떨어지기는커녕 내놓으면 나와서 3일을 못 넘기고 또 중국으로 달아나 버린다. 나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