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죄수도 인간이다 – 3

[탈북자 수기]

이 글은 탈북청소년인 김혁 군이 북한에서의 생활 중 전거리 교화소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쓴 수기로써 사투리를 고치지 않고 원문 그대로 옮긴 것이다.

죄수도 인간이다 - 3
-인간 세상 속에서-

김 혁
전거리교화소 경험자
2001년 9월 20일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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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3월부터 2000년 7월 6일까지 7년 4개월동안 가장 힘들었고 미래와 인권까지도 박탈 당해야 했던 쓰디쓴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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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저주스런 그녀

거의 99%추측이 그녀인 것이었다. 내가 중국인과 함께 온 것도 그녀 외 누구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는 것 같아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러던 3월23일 아침, 뜻밖에 그녀가 보위부에 나타났다. 보위부 소장은 그녀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진술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나는 보위부 소장이 주는 나의 진술서를 보던 도중 그녀의 자백서를 보았다. 거기에는 자수 및 고소하는 글이 적혀있고 고소된 자의 이름은 내 이름으로 큼직하게 찍혀 있었다. 그 글을 보면서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 다음날 나는 온성군 안전부로 이관되었다. 아직도 보위부 소장이 그녀에게 욕한 말이 생각난다. 그때 보위부 소장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이 나쁜 년아! 네가 살기 위해 사회도 모르는 17살 짜리를 얼려 먹고 죽이려 드느냐 네 목숨을 건지자고 애를 고발해?> 나는 그때만큼 여자에 대한 실망이 커본 적은 없었다. 그때 나는 무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감옥에서 수치스러운 치욕을 당하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물러 설 수는 없었다. 그때 보위부 소장이 한말은 내가 알라는 뜻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던 4월 중순 나는 예심원에게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다른 곳으로 넘겨 갔다는 것이다. 나의 머리 속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잡히면 자신을 고발 할 까봐 먼저 자신이 고발하기로 했던 것이다 사실 분주소에 고발하려 하면 자신의 범죄권 증인을 내세우지 못하는지라 잘못하다가는 자수가 오히려 감옥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보위부에 고발하기로 했다. 보위부는 권위가 있으므로 자수인을 살려 줄 것이고 나는 잡히게 될 것이다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보위부에 고발하고 수사가 분주소에서 수옥이 사건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한 것 이다. 결국 보위부에서 조사하고 그녀를 놓아주면 분주소는 물론 누구도 감옥에 넣을 수 없다는 점에서 미리 나를 잡아 자신에게 다가올 것 같은 불행을 피하려고 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본적을 떼서 딴 곳에 옮겨놓고 본거주지 분주소에서 나의 동범으로 잡아 넣으려고 해도 자신들의 관할 구역이 아니기에 넣지 못하도록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구 분주소에서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적을 딴 곳으로 옮겼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무서운 그 무언가에 휩싸인 기분이었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해 내고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의 마음은 심한 갈등을 느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내고 나니 단 1%도 차이가 없는 현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믿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가 그런 음모를 꾸미다니 자신이 살기위해 자신들을 살려 준 나를 미끼로 던지고 자신의 인생을 찾으려 하다니 저주스러웠다. 나는 나의 생각을 예심원에게 이야기 하였다. 예심원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놀라워했다. 나는 예심원에게 거의 간청하다 싶이 했다. 그 악마 같은 년을 감옥에 함께 넣어달라고. 나는 복수하고 싶었다. 갈기갈기 찢어 놓고 싶었다 그때만큼 여자가 저주스럽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여자를 좋아했다. 누나가 없었던 탓인지 아니면 친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맛보지 못해서인지 나는 여자를 무척 존중해 주었다. 나는 학교 때도 여자들이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나에게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여자 애들은 나에게 못할 말이란 전혀 없을 정도로 나는 낙천적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해지곤 한다. 그런데 이 일이 있은 뒤 나는 여자를 멀리하게 되었다. 아직도 좋아하는 옛습관은 있지만 그때보다는 강렬하지 못했고 증오의 미련이 더욱 강렬해졌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남이 불어서 들어왔다 했지마는 나처럼 먹여주고 살려준 이를 고발한 일은 극히 드물었다. 너무나도 분통하고 억울한 노릇이었다. 나는 그녀를 감옥에 잡아넣고 싶었다. 네가 조작한 일에 너도 무사할 것 같으냐 하는 식이었다. 악한 놈은 악에 망하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 감방에는 이런 범죄 속담이 있었다. <누구든지 남을 잡으려면 자신도 한 발을 내밀어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어쩌면 악을 행하는 자는 물론 그 누구에게나 다 이해갈 수 있는 속답이었다. 나는 이 범죄 속담을 그녀에게 깨우쳐 주고 싶었다. 나는 학교에 다닐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 여학생이 해준 이야기는 <여인은 괴물이다>라는 책 이야기였다. 자신을 구해준 남자를 버리고 떠난 여자는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가 결혼식 날에 죽고야 말았다. 그 남자는 그런 여인들을 괴물로 생각했고 여자를 죽이는데 나섰고 마지막에는 결국 사형당한 이 이야기는 어찌 보면 내 현실을 거의 맞먹는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 3년이 거의 남아 되었지만 그때처럼 생생하게 떠오른 적도 업었다. 여자는 괴물이다라는 그 글이 그때 나의 마음 속에 현실로 느껴졌다. 저주스러운 그녀 복수하고 싶었다.

나의 감옥생활

1999. 3. 24 ~ 11.12경까지 9개월이라는 감옥생활을 했다. 누구나 감옥이라면 수치스러운 곳이라 생각할 뿐 그 외의 생각은 즉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누구나 생각을 하는 것처럼 수치스러운 감옥이라면 이 글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가 본 감옥생활을 인간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곳은 사람을 처량하고 힘들게 만드는 곳이고 인간의 심령을 파고드는 상십령의 인적 드문 곳이다. 현실에 맞닥뜨리고 보니 흔히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태에 부딪혔다. 죄란 이 사회에서 현실태의 죄는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은 사람까지도 죄를 모면해주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사람을 잡아 먹었다 도적질을 했다 살인을 쳤다 강간을 했다 비법월경을 했다 등을 놓고 보면 자유가 없다는 점과 백성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을 쥐어 주지 못한 상태에서 많이 일어난다. 지금 감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갇혀 예심을 받고 인권을 박탈당한 채 산지옥인 교화소로 가고 있다. 인권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 인권을 박탈당한 사람에게는 천대와 멸시가 뒤따랐다.

10월 말경 우리 감방에 사람을 잡아먹은 죄수가 잡혀 들어왔다. 나의 감방생활에서 가장 인상이 깊게 한 사건이다. 그는 정신이 반은 나간 사람 같았다. 노래도 부르고 사람고기는 맛있다라며 외쳐대는 그의 머리에는 인간에 대한 이상마저 잊은 듯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어질고 순한 송아지 같이 조용했다.

그는 가끔씩 살고 싶다는 말을 하며 자신의 과거를 얘기한다. 참으로 불쌍한 데도 있었다. 그는 온성읍에서 어느 한 탄광에서 일하였다. 아내와 아들애 (5살 정도)와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나 그것은 이제 전혀 다가올 수 없는 현실로 생각되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없어지고 그는 근 한 달을 애와 함께 남의 집 돼지죽물을 먹고 쌀물을 마시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아내가 집에 찾아와 중국돈 250원을 주고는 말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그의 아내는 중국인에게 시집갔던 것이다. 남편을 저 버린 채 중국인에게 시집갔고 그는 혼자서 살아야 했다. 쪼개고 한 돈이 한 달 만에 거덜이 났고 그는 아들 애 동무가 집에 온 틈에 그를 목졸라 죽였다. 다리 한 쪽을 끊어 끓여 먹었던 것이다. 나중에 죽은 아이의 부모들이 신고하고 죽은 아이와 잘 놀던 집들을 사택 수색하던 도중 그는 잡혔다. 죽은 애의 부모들이 대성통곡을 하는 도중 그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고기를 먹었다는 것을 깨닫고 죄책감으로 인해 정신병에 걸렸던 것이다.

사실 사람은 배고픔에 시달리다 보면 자주 허상이 생기는데 그때의 허상이란 살찐 사람을 보아도 짐승같이 여겨지고 결국 잡아먹고 만다. 결국 나라가 박해지고 식량난에 허덕인 백성들 속에서는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는 정신이 되돌아오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후회하기도 하고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자신을 죽음의 궁지로 몰아놓은 국가와 여자(아내)를 끝없이 저주했다.

그렇게도 어진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었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지만 그것은 죄다 사실이었고 감옥에서 내가 만난 죄수였다. 그도 인간이다. 국가에서 제대로 식량을 내주고 월급을 주고 했으면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겠는가? 지금 조선 사람들의 희망이라면 강낭이 밥이라도 먹으며 사는 것이 희망이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사람들은 범죄를 해가며 살아가고 그것마저도 두렵고 고정한 사람들은 다 죽어 버릴 것이다.

옛날 같으면 범죄인을 보고 침을 뱉거나 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정반대였다. 지금은 너무나도 퇴소자들이 많다 보니 누구나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며 동정의 눈빛을 보내고 먹을 것이라도 계호원들 몰래 건네 주곤 했다. 내가 재판을 오던 날 담배가 몹시도 피우고 싶어 17살 19살 짜리 형제들에게 담배를 좀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슬슬 피하며 담배가 없다고 했다. 그들의 경계심에 나는 울고 싶었다. 나는 사형수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죄수라는 표징이 있기에 일할 수도 없었다. 나 역시도 학생 때는 죄수들을 피했고 무엇이 없는가고 하여도 냉정하게 없다고 했다. 그들도 그때 내 심정이었을 것이다.

몇분 안지나 두 젊은 여인들이 차단봉 초소로 왔다. 자동차를 타려고 온 것이다. 그 여인들은 나를 보고 전혀 경계심 같은 것은 없고 오히려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나는 우리를 향한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 맞춘다. 동정의 눈빛을 보내며 음식도 몰래 건네주는 사람들은 그의 일가 친척들이 감옥에 갇혔거나 자신이 한번 감옥 생활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와 반대로 경계를 하고 흘겨보는 이들은 한갖 부화하게 살거나 전혀 감옥이라는 곳을 간 가까운 친척도 없고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가보지도 친척 중 간이도 없다는 자체는 간부급들이나 송충이 같은 중간다리 놈들이 국가 양식을 야금야금 파먹은 놈들이 거의 절대수를 차지했다. 나는 그런 좀벌레를 증오한다. 백성들이 죽어가는데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줄 그 자그마한 식량에서까지도 떼내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을 증오한다. 나라 백성은 어떻게 되건 자신들의 이속을 채우는 자들을 끝없이 저주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