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과연 어린이들의 천국이란 말인가?

북한은 과연 어린이들의
천국이란 말인가?

박 광 일 · 만 31세
북에서 교원생활·북한 함흥
입국일자: 2001년 3월

 

본인은 인권의 불모지인 북한체제에서 1974년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고등중학교 교원(교사)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함흥시 성천구역 룡흥인민학교와 성천강고등중학교(당시 신흥남자고등중학교)를 거쳐 평양 김형직사범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11월부터 1997년 3월까지 고향에 있는 성천강고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우연히 남쪽의 비디오를 본 것이 화근이 되어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아 1998년 10월에 중국으로 탈북하여 숨어살다가 중국공안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북한으로 강제북송 된 후 1999년 1월 다시 두만강을 넘어 탈북하여 중국에서 떠돌아다니던 탈북청소년 약 70여명과 1년 동안 생활도 했었습니다.

중국에서 2년 이상 떠도는 생활 끝에 2001년 3월 대한민국으로 귀순하여 지금은 북한의 인권회복과 민주화를 위하여 투쟁하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귀한 자리에 불러주시고 많은 귀빈여러분들 앞에서 ‘북한체제에서의 청소년들의 실상’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여 주신 북한인권시민연합의 관계자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현 북한체제 안에서 어린이들의 실상은 어떠한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나라의 왕’, ‘미래의 역군’이라고 역설하는 북한체제 하에서 그들의 운명은 지금 이 시각 과연 어떠한 운명일까요? 오늘 북한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고향에서 고등중학교 교원을 할 당시(1995년 11월-1997년 3월까지) 굶주림으로 인하여 학교에 출석하지 못하는 학생의 수가 보통 45-55%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고, 특히 1995년부터 극심한 북한의 식량난으로 인하여 수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림과 영향실조로 죽었으며, 지금 이 시각에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이들은 나라의 왕’이라고 떠들어대면서 마치 자신들의 체제가 어린이들에게는 천국과도 같다고 역설하고 있는 북한의 김정일 집단의 허위성인 것입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한참 마음껏 배워야 할 나이에도 불구하고 배우지 못하고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청소년들의 수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그들의 생활은 지옥 그 자체입니다. 한참 배워야 할 나이에 배고파 굶주림에 학교를 못가는 아이들, 공부할 연필 한 자루, 책 한권이 없어서 학교에 못가고 부모를 따라 장마당과 북한 전역과 그것도 모자라서 중국과 제 3국을 누비며 방황하고 있는 불쌍한 아이들이 바로 ‘어린이들은 나라의 왕’이라고 외쳐대고 있는 오늘날 북한체제 하에서의 청소년들의 실상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선생님들마저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회가 바로 오늘의 북한사회의 현실입니다. 온갖 교육이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니라, 오직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두 독재자들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도록 만드는 우상화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 바로 오늘의 북한체제 하에서의 교육의 본질입니다. 마치 이슬람의 테러분자들이 전 세계를 위협할 자살테러분자들을 키우기 위해 ‘알라신’의 성스러운 이름을 이용하여 이슬람국가들의 어린청소년들을 교육하여 ‘알라신’의 영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게 만드는 것처럼 북한의 김정일 집단도 북한의 청소년들이 앞으로 김정일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바치도록 우상화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북한의 김정일 집단은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우리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굶어 죽고, 얼어서 죽고, 병들어 죽게 만들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원시절의 이야기

제가 아마 대학을 졸업하고 함경남도 함흥시 성천구역당위원회 간부과로부터 성천강고등중학교 교원으로 임명을 받고 첫 교원생활을 시작했던 때가 1995년 11월 이었을 겁니다. 제가 배치 받은 학교는 이미 제가 고등학교시절의 모교라 많은 선생님들이 저를 반겨주었고 별로 어려움이 없이 학급도 배정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4학년 3반을 담임을 했는데, 인계를 받은 학급의 학생 재적수가 32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급을 담임하고 첫 출석을 체크할 때 출석한 학생들의 숫자가 25명에도 못 미치는 정도였습니다. 학교 청년동맹위원회와 소년단위원회, 교무부에서는 출석하지 않는 학생들을 모두 찾아 학교로 데리고 오라고 담임교원들을 상대로 독촉하곤 했습니다.

오전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무슨 회의가 그리도 많은지 이 회의, 저 회의에 참가하고, 학생들의 과외학습을 점검하고 5시에 퇴근하고 나면 그 이후시간부터는 학교에 출석하지 않는 학생들의 집들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학생들의 집집마다 방문을 한 결과 집이 텅텅 비어 있는 경우도 있었으며, 먹고살기 위해 부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