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북한 감옥 생활 -2- -이민복

내가 겪은 북한 감옥 생활 -2-

이민복
(전 북한 과학원 농업연구원)

『너는 사람이 아니다』

감옥 첫날 나는 『너는 이제부터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이름은 223번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이 아니다』라는 선언과 함께 인간적 예절은 없어지고, 「이 새끼」, 「개새끼」, 「개 종간나 새끼」, 「처 먹어」, 「자빠져」 등등 짐승에게도 못할 온갖 쌍말을 듣게 됐다. 그리고 나는 간수들(보위원)에게는 깍듯이 「선생님」으로 불러야 했고, 또 같은 인간이지만 그들을 마주볼 수 없게 됐다. 좁은 감방문을 나설때는 머리부터가 아니라 엉덩이부터 나가서 무조건 꿇어 앉았다가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처음 감옥 생활을 해보는 수인들은 제 정신이 아닌데다가 감옥 규정에도 익숙치 않아서 번번이 얻어 맞아 터지곤 한다.

간수들은 직접 또는 감방장으로 정한 수인 우두머리를 통해 「정신을 차리게」 해준다. 나 역시 코피가 터지도록 맞았다. 맞으면서도 얄미운 것은 간수보다 감방장이라는 수인의 행위이다. 같은 처지로서 위안해야 할 수인이 다른 수인을 마구 치는 것에 나도 모르게 격분한 나머지 감방장을 거꾸로 메치고 죽여 버릴듯 족치는 바람에 대소동이 벌어지고는 하였다. 이 통에 나는 완력자로 보여 감방장으로 천거 되었다. 약육강식 생활의 일단이라고 할까.

내가 갇혔던 4호 감방은 8평 미만의 콩크리트 방이다. 출입구는 1m 높이 가량의 낮은 철문인데, 철문 웃단에는 밥을 넣거나 수갑을 채우기 위해 두 손을 내미는 구멍이 철덮개로 가리워져 있다. 철문 맞은켠에는 굵은 쇠창살로 간벽이 돼 있고, 간벽 넘어 복도에는 간수들이 권총 차고 왔다 갔다 감시 한다. 바닥은 나무판자이고 감방 한구석에 변기 겸 세면통이 놓여 있다. 냄새가 나는 것은 수인 보다 간수들이 더 못 참아 깨끗이 닦으라고 호령치지만, 수도물이 중단 될 경우에는 대소변을 억제하므로 수인들의 고통은 가중된다. 간수가 허락을 해주지 않아 어떤 수인은 열흘째가 돼서야 대변을 보는 고통을 당했다. 배설이라는 생리적 현상도 감옥 안에서는 자유가 없는 것이다.

대변 본 후에도 위생지가 없으므로 손바닥만한 걸레쪼각을 이 사람 저 사람 맹물에 빨아 써야 한다. 그러니 세수수건, 치약, 치솔 등이 있을 리 없다. 단지 소금이 있을 뿐이어서 손가락 양치를 해야 한다.

북한 정치보위부 집결소의 특징의 하나는 한 감방안에 있는 수인 외에는 서로가 얼굴을 모르도록 격리 수용되고 또 관리된다는 점이다. 몇달이 지나도 옆 감방안의 수인 얼굴을 모르고 지낸다. 다만 간수의 질문에 대답하는 말을 통해 어떻게 잡혀왔으며 대략 몇살쯤 된다고 짐작할 뿐이다.

가장 참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

나는 평시 감옥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은 고문말고는 또 없는 줄로 믿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정치보위부 집결소에서 여지없이 깨어졌다. 사형 그 자체 보다 사형당하기까지의 과정이 더 고통스럽다는 말이 있듯이, 고문이라는 일정한 순간의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은 최소한 6개월 걸리는 수감기간 중 줄곧 돌부처처럼 꼼짝 못하게 정좌로 앉혀 놓는 일이다. 정좌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머리는 벽을 45도 각도로 바라보게 하고, 말할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다. 또 누울 수도 없고 팔, 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다. 앉는 것이 편안한 줄로만 알았던 나의 상식은 이렇게 깨어져 나갔다. 자유롭게 움직이던 사람을 갑자기 장기간 정좌시켜 놓으니 온몸이 쑤시며, 특히 관절 마디마디는 쑤시다 못해 마치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다. 무생물체가 아닌 이상 참다 못해 몸을 한번 펴려고 움직이면 어느새 간수가 나타난다. 감방 설계를 어떻게 했는지 그들은 바스락 소리도 다 감지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움직인 데 대한 처벌은 감옥에 처음 들어 온 사람에게 더욱 가혹하다. 감옥 맛을 처음부터 톡톡히 보여 준다는 것이다. 처벌 방법은 정좌보다 더 가혹한 무릎꿇고 팔을 높이 들고 몇십분간 있게 하는 일이다. 무릎 아픔을 참느라고, 또 천근같은 팔을 들고 있느라고 땀을 빨빨 흘리며 떨다가 마침내 쓰러지곤 한다. 이렇게 되면 반복동작시키며, 또 철창 밖에 손 내밀게 하고 손등을 쇠꼬챙이로 때리기도 한다. 황해도 신계 출신의 한 수인(227번)은 두 손을 수갑으로 철창에 고정당한 채 너무 많이 맞아 골병든 사람처럼 돼버렸다. 얼마나 가혹했으면 집결소 소장이 간수들에게 너무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줄 정도였다. 그가 말린 것은 그 수인을 예심하는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 예심기간 중에 수인이 죽어서는 안되도록 돼있다. 고통을 참다 못해 차라리 죽는편이 낮다고 수인 누구나 생각한다. 실제로 죽으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자살하지 못하게 모든 조치를 취해 놓았지만, 그래도 수인들은 단식 또는 밥숟갈 삼키는 것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실제로 나는 227번 수인의 이런 행동을 발견하고 제지시킨 일이 있다. 자살시도는 감시체제 하에서 성공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시도하는 것은 설사 죽지는 못해도 병원에 끌려가 치료받는 기간 만이라도 감옥생활의 고통을 모면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 못하였기 때문이다.

꼼짝 못하게 정좌시켜 놓는 북한 감옥에 비해 중국 감옥이나, 로씨야 감옥은 그야말로 별천지다. 일단 감방 안에 들어 가서는 눕거나 앉거나 마음대로다. (적어도 나의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정치보위부 집결소에서 겪는 정좌의 고통은 그런대로 보름만 지나면 한 고비 넘긴다. 마루 바닥에 앉혀 놓던 것도 이제는 요포를 깔고 앉게 허용한다. 이 고비 넘기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기면서 더 어려운 고통인 배고픔이 엄습한다.

배고픔은 최고의 고통


정좌가 단기적 첫 고통이라면 배고픔은 장기적이고 최고의 고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감옥 생활이 보름만 지나면 수인들은 벌써 피골이 상접해져서 간수들은 수갑도 채우지 않고 호송한다. 수인들은 맥을 추지 못해 도망가라고 해도 도망하지 못한다. 물론 반항할 힘도 없다.

한끼 한 줌 밖에 안되는 깔깔한 강냉이 밥에 소금국이나 다름 없는 멀건 염장국 밖에 못 먹으니 수인들은 각종 영양실조 증상에 시달린다. 생체에 필수적인 단백질과 기름, 채소류를 못 먹으니 야맹증·괴혈병·펠라그라병 증상이 생겨 눈앞에는 고기와 밥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허상이 생긴다.

해빛 쬐기를 시키지 않는 집결소 생활은 사람을 더욱 허약하게 만든다. 정상 체중에서 20kg 이하로 체중이 급감돼 말 그대로 뼈에 가죽을 씌워 놓은 것 같다. 강냉이 밥에 소금국만 먹으니 몸에서는 살내가 아닌 강냉이 냄새만 난다. 목욕과 세탁을 시키지 않아서 집결소 감방에는 이가 많다. 오래된 수인의 몸이 얼마나 맛없는지 그 숱한 이들은 새로 잡혀 온 사람에게 우르르 몰려간다. 감옥 밖에 있던 사람의 몸에는 상대적으로 영양분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감옥 생활하면 콩밥을 연상한다. 그러나 북한 집결소에서는 그런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콩밥 먹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힘든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닌 오랜 기간 음침한 감방에서 강냉이밥만 먹다가 보면 수인들은 말라 죽게 마련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수인에게 비록 소량이지만 콩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쌀보다 콩이 더 귀하기 때문에 간수들은 수인들에게 줄 소량의 콩마저 자기들이 착복하여 먹어 치운다. 이래저래 수인들만 죽어나는 것이다.

영양부족에서 오는 고통이 너무나 심해 콩밥을 먹게 해 달라고 사정하면 콩알을 세서 가끔 대여섯 알씩 주는게 고작이다. 콩밥을 제대로 먹으려면 수감 생활 두달 정도가 지냐야 겨우 해당된다.

이에 비해 내가 갇혔던 중국 감옥(길림성 장백현 장백시)에서의 식사는 강냉이 빵과 두부 조각 여러개가 떠 다니는 콩된장국을 주었으며, 더 달라고 하면 더 주기도 했다. 또 유랑시절 연길시의 거리에서 노역시키는 중국 수인들의 식사를 우연히 지나치다 보았는데, 건설 사업소에서 공급했는지 쌀밥에 고기국을 먹는 것을 보았다.

같은 공산국가라도 개혁 정치와 물질생활 수준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러시아 감옥에서 체험해 보면 식사는 검은 밀가루빵에 고기국물과 뻐터를 준다. 물론 중국, 러시아 감옥내에서 가혹행위와 위생이 불결하여 이와 바퀴벌레들이 득실거리기는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 감옥에 비해서 훨씬 자유롭고 영양있는 음식을 먹인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붙잡혀 북한에 이송 할 때 중국 경방대원들이 궤춤에 넣어 주었던 밀가루 빵을 못 먹고 북한 감방에 들어간 것이 허기진 감옥 생활 내내 그렇게도 후회스러웠다.

흔히 처음 감옥에 들어 온 사람들은 음식을 잘 못 먹는다. 감옥 밥이 조악한데 있지만 그보다도 심리적으로 불안하여 먹을 생각이 없으며 실제로 밥을 먹으면 입맛이 소태 씹듯 쓰다.

내가 갇혔던 감옥에 가끔 중국인(대체로 조선족)들이 수감되었을 때 보면 처음 며칠간은 식사를 잘 하지 않는다. 감옥 밥을 보고 그들은 중국에서 개, 돼지도 이런 것은 안 먹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이들도 2~5일 이후에는 먹지 않을 수 없으며 일주일 또는 열흘이 지나서는 우리와 별 차이 없이 잘 먹는다. 굶주림 앞에는 누구나 어쩔 수 없고 누구나 마찬가지로 된다.

북한 정치보위부 집결소 감옥에서 외국인(중국인)에 대한 특별 대우는 없어 보였다. 다만 중국 신원이 확인되면 우리보다 훨씬 먼저(약 15~20일간 체류)본국으로 송환시켰다. 비교적 자유롭게 살던 중국인들은 우리보다 북한 감옥 생활을 더 몹씨 힘들어 했다. 고통을 참지 못해 한 중국 교민은 감방 문을 발로 차며 항변하자 간수들은 무차별 구타세례로 기를 꺽어 놓는다. 북한 감옥에서 반항은 금물이다. 보다 가혹한 형벌과 형기가 차례지기 때문이며 또 죽여도 누가 나서 항변할 사회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식 역시 가장 어리석은 행위로 될 뿐이다. 감옥 안에서 밥 한끼 안 먹는 것은 평시에 독감기 한번 걸린 것과 같다.

가뜩이나 영양가 없고 소량인 감옥밥이 나마 안 먹으면 그것처럼 자기 학대는 없다. 감옥 안에서 감기를 비롯한 병에 걸리면 죽는다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 나는 마음이 어느정도 안정된 후로는 아침 세수시간에 젖은 걸레로 몸을 닦는 “냉수마찰”로 건강을 다졌다. 간수가 있는 복도에 화독(난로)이 한개 있을 뿐 모든 감방이 냉방인 조건에서 더구나 백두산 고지대 도시인 혜산의 겨울 기간에 수감되었던 때(11월<1/4>~<1/4>2월)라. 또 엷은 요포 한 두장 깔고 덮고 자야 하니 감옥 안의 추위는 잠을 제대로 못 이루게 한다. 아래도리가 냉기가 와서 설사하기도 한다. 얼마나 추운지 몸안에 이는 많아도 바퀴나 빈대 같은 몸외적 벌레는 한마리도 볼 수 없었다. 감방 안이 추우니 옷과 양말을 입은 채로 자게 내버려 둔다.

최고 진미 고기->쥐

정치보위부 집결소 생활은 정말 감옥살이 중에 감옥살이다.
야외 수용소 같으면 솔잎이나 풀잎, 벌레라도 잡아 먹으련만 단 한번도 야외에 내보내지 않는 집결소 콩크리트 감방 속에서는 주는 것 외에 어찌할 방법이 도무지 없다.

콩밥도 제대로 안 주는 북한 감옥 내에서 고기를 먹어 본다는 것은 참말로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도 감옥에서 고기를 먹어 보는 기적이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설날 때 간수들이 먹는 고기를 씻은 물로 국을 끓여 왔을 때이다. 고기 덩이는 비록 없지만 고기 냄새만 나도 그 국맛은 어디에 비길데 없이 구수했다.

단백질 부족증에 걸리니 수인들에게 고기 냄새만 피워도 눈이 번쩍 트이고 그 다음은 먹고 싶은 심리적 고문으로 전환된다. 실제로 어느 날 한 간수가 수인들 앞에서 불고기를 하는 통에 수인들은 「냄새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이 계기로 나는 자꾸 집에 기르는 돼지새끼를 잡아먹고야 만다는 집념을 털어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석방된 후에는 그 돼지를 잡아 먹게 되지 않았다. 이러한 「냄새 고문」으로부터 나타나는 증상은 옆 수인들도 마찬가지로서 혜산 출신의 한 젊은 수인은 자기집 개를 계속 잡아 먹는다는 집념에 빠져 있었다. 감옥에서 나는 진짜 고기 덩이를 먹어 보는 기적이 딱 한번 있었다. 나의 국 그릇에 엄지 손가락 만한 생쥐가 빠져 들어왔던 것이다. 아마 수인 밥을 훔쳐 먹으려 다가 발을 헛딛어 국그릇에 빠져 죽은 것같다. 평상시 같으면 메스커워 먹을 수 없었겠지만 감옥의 허기짐은 옆 수인에게 떼울세라 단숨에 씹어 먹게 하였다. 그 고기맛이 얼마나 좋은지 이때 나의 뇌리에 박힌 최고 진미의 고기맛은 쥐고기라고 느껴졌다. 한편 쥐고기를 먹어 배가 불렀다기 보다는 그후에도 항상 허기질 때마다 정신력을 주어 큰 위안이 되었다.
즉, 다른 수인에 비해 나는 쥐라도 먹었으니 괜찮은 편이 아니냐 라는 식으로 말이다.

굶주림의 자작시

감옥 안에서 장장 강냉이 밥만 먹다가 특별히 입팝(흰쌀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날은 김일성, 김정일 생일날과 설날이다. 강냉이 밥만 먹다가 오랜만에 입팝을 먹을 때는 입안에서 슬슬 녹아 넘어가는 것같다. 그러나 소화가 잘되어 인차 배고파 지므로 강냉이 밥이래도 많이만 주었으면 하는 것이 수인들의 심정이다.

차디 차고 모래알처럼 깔깔한 메강냉이 밥이지만 한알 한알 꼭꼭 씹으면 그것은 그야말로 깨처럼 고소하다. 또 굶주림은 짠 소금덩어리도 맛을 보면 사탕처럼 달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227번 수인은 양치용 소금을 몰래 건사했다가 짠 줄도 모르고 계속 입에 녹여 먹었다. 그가 소금이 달다고 해서 먹어 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평시 시를 좋아하지 않았고 더우기 시 지을줄도 모른다. 그러나 굶주림은 저도 모르게 시를 창조하고 속으로 계속 읊게 하였다.

「차디 찬 강낭 밥은
깨처럼 고소하고
짜디 짠 소금은
사탕처럼 달도다」

정치보위부 집결소 감옥 내에서 책을 읽거나, 글쓰기, 담배나 술은 절대 금지다. 감옥 생활이 장기화 되면서 배고픔과 함께 점차 대두되는 고통은 지성인들에게서 책과 글을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담배 피우던 수인들은 담배를 못피워 죽을 지경디. 담배 고질들은 그처럼 굶는 속에서도 밥을 한두끼 못 먹더라도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에 비해서 그들은 담배 고통이 가중되었다. 이 심리를 역리용하여 조사관들은 담배를 미끼로 조사를 유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