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전 북한 벌목노동자)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이틀이 지나갔다.
2월 25일. 이틀 동안 그 누구도 찾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매일 마야가 들여보내는 음식을 받으면 끝이다. 잠을 자지 못하게 해서인지 눈알이 쓰리고 어지럼증이 났다.
(이 사람들이 왜 찾지 않을까. 혹시 마야가 내 신분을 밝히고 이미 하바로프스크 북조선 안전원들에게 연락이 간 것이나 아닌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간수가 오더니 감방에서 나오라고 소리쳤다.
(심문이 시작되었구나.)
이제 신분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간수를 따라 1층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니 난데없이 마야가 음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간수가 옆에서 조선말은 못하고 러시아어로만 말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나는 그러거나 상관없이 그냥 조선말로 사진이야기부터 꺼냈다.
『마야, 사진 뒷면에 뭐라고 썼는지 그것부터 이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게 빨리 말해. 나는 지금까지 끝내 이해할 수 없었어.』

마야는 피식 웃으며 그것은 조선말을 러시아어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 그래 뭐라고 썼어, 빨리 말해봐.』

마야는 한참 우물쭈물하다 대답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게 다예요.』

『후-, 고맙소.』

(여자들이란 참으로 묘한 존재야. 마야가 내 처지를 안다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야, 마야는 북한의 세습적인 독재체제를 이해할 수 없어.)

『김호, 어떻게 하겠어요. 이젠 빨리 신분을 밝힐 때가 되지 않았어요. 이 사람들 말이 신분만 확인되면 바로 내놓는다고 해요. 그리고 내가 여기 공민이기 때문에 여기서 살겠다면 여기 공민권을 준대요.』
『마야, 나 역시 소련 땅에서 결혼하고 소련 공민권을 받을 수 있다는 법조항은 알고 있어. 그러나 이 세상엔 꼭 법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야. 마야가 간단히 이해하자면 우선 스탈린 시기의 소련의 정치와 그 당시 정치탄압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것부터 알아야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 우리가 사는 지구상에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계급간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리고 이 세상에는 독재주의도 있고 민주주의도 있고…, 독재주의 대표적인 표현으로서는 소련의 스탈린을 생각하면 마야가 이해할 수 있어. 바로 김일성이 스탈린의 독재체제를 그대로 모방하였고 현 시기에 맞게 독재방법과 체계를 더욱 계승발전시킨 현대독재주의 괴수이며 원흉이야.』

마야는 내 말을 듣더니 손을 내 저었다.

『아이 됐어요. 김일성이 무슨 상관이예요. 그러니 말하자는 것은 여기 공민권을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마야, 내가 바로 그걸 말하는 거야.』

마야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듯 까만 눈을 깜박거렸다.

『아니 소련 공민권이야 소련에서 주는 것이지 김일성이 주는 건 아니지 않아요. 정 안되면 내가 북조선에 따라가 살면 되지요. 우리 소련에서는 미국 공민과 결혼하면 미국에 가서 살 수 있고 그건 자유라고 생각해요.』

나는 아무리 말해도 마야를 이해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마야 여기 공민권은 소련에서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조선 사람들만은 김일성이 주는 거야. 왜냐하면 내가 여기서 살자면 북조선 대사관의 승인을 받아야 해결될 수 있어. 그런데 북조선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살겠다고 요청하면 허락은 고사하고 민족반역자라는 누명을 씌워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게 되어 있어. 그러나 정치망명객으로서 대우를 받을 때 소련측으로부터 공민권을 제공받을 수 있지만 지금 그건 힘든 일이야. 조소 공동목재생산에 관한 협정서에 우리 북조선 사람들의 러시아로의 망명을 허용하지 말 것에 대한 조항이 특별히 밝혀져 있어. 혹시 능력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어. 그러나 마야 혼자 힘으로 옐친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올 수 있겠어? 그건 힘든 일이고 또 이미 때가 늦었어.』

마야는 호-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제 북조선으로 가면 어떻게 돼요?』

『나는 정치범수용소로 온 가족과 함께 가야 해.』

마야의 두 눈에서는 또 다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망명 신청

이때 출입문이 열리며 사복차림의 두 사람이 들어섰다. 간수가 일어서며 그들에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면회중인데 한 3분이면 될 것 같아요.』

그러자 그들은 옆방에서 기다리겠다며 나갔다.

『저 사람들은 김호때문에 온 KGB(국가보위부) 사람들이예요. 한 5분 더 이야기하시오.』
간수는 노어로 이렇게 말하며 담배를 붙여 물었다.

『마야, 내 이제 저 사람들에게 신분을 밝히겠어. 그럼 아마 며칠 후면 북한으로 호송되게 될거야.』
마야는 안타까운 듯 내 손을 잡아 흔들었다.

『아니 그래 무슨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기 처지를 잘 알면서 여권을 하겠다고 경찰서에 찾아간 건 도대체 뭐예요? 죽자고… 죽자고 그랬어요? 아니면… 아니면 내가 미워가지고 도로 가려고 그랬어요?』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됐어. 마야 그러니 이제 차라리 나를 만나지 않았던 것처럼 생각해 줘. 그러면 내 마음도 편할 것 같아.』
이렇게 말한 나는 경찰원에게 그 사람들을 만나자고 하였다.

심문은 두 명이 하였는데 한 명은 국가보위부 요원이고 한 명은 중국말 통역원이었다.
통역원은 첫인사부터 중국말로 하였다.
중국말을 한 마디도 모르는 나는 그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라 북조선 사람입니다. 그러니 통역은 필요없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어안이 벙벙하여 쳐다보기만 했다.
『아니, 그런데 왜 중국 사람이라고 하였습니까?』
『바로 그걸 대답하려고 합니다. 나는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북조선 임업대표부 노동자입니다.』
이렇게 말을 시작한 나는 서툰 노어로 탈출동기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북조선에 끌려가면 정치범수용소에 간다는 것과 소련의 망명을 요청한다는 것까지 다 이야기했다.

전 향 서

나는 북조선의 정치탄압을 피하여 러시아로 탈출한 망명객이다. 정부에서 나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여 줄 것을 희망한다. 김호.

나는 그들이 나의 정치망명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지만 죽음을 각오한 나로서는 다만 몇 사람에게라도 김일성, 김정일 독재정치에 대하여 알려주는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북조선의 현실상까지 무려 두 시간이나 이야기했다.
심문이 끝나고 감방으로 돌아온 나는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 날처럼 피곤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단식

3월 10일이다.
그럭저럭 감방에서 20일이 지나갔다.
그동안 마야는 매일 음식을 날라왔고 2~3일에 한번씩 면회할 수 있는 혜택이 베풀어 졌다.
경찰측에서는 면회할 수 없는 날에도 마야의 정성에 감동되어 면회를 시켰고 3월 8일 국제여성명절에는 특별히 방한칸을 30분간 우리에게 마련해 주었다.
마야는 면회할 수 없는 날에는 음식을 넘겨주고 감옥소 담장 너머에서 내가 갇혀 있는 감방의 철창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다 가곤 하였고 나는 철창 틈으로 손을 흔들어 바래주곤 하였다.
그리고 그 기간 하바로프스크 러시아 경찰측으로부터 나를 데리러 온다는 전보문이 두번씩 날아왔고 바로 어제 3월 9일 북조선 경찰들로부터 나는 위험분자이며 잘 단속해 달라는 전보문이 날아 왔다.
나는 이 모든 정부를 조선인 경찰원과 마야를 통하여 즉시 알아내곤 하였다.
북조선 경찰측에서 전보문이 날아온 다음부터는 나를 특별히 감시하고 면회를 단절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물론 북조선 식대로 한다면 나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다.
북조선의 정치를 비방했고 그 정치에 반대하여 탈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경찰측에서는 나를 살인범이 아니면 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경찰측에 북조선의 정치테러 분자들에 대하여 똑똑히 알려주고 싶어 경찰책임자를 만나게 해줄 것과 마야와의 면회를 시켜줄 것을 요구하였다. 경찰책임자는 만나는 것을 거절하였고 마야와의 면회도 금지되었다면 딱 잡아뗐다.
나는 그들의 소행이 괘씸하여 단식으로 넘어갔다.
3월 16일이다. 5일간 음식을 한 그램도 입에 대지 않았다.
당황한 경찰측에서는 구급차를 불러 나를 검진하고 포도당 주사를 놓으려고 하였으나 나는 그것마저 거절하고 이렇게 말했다.
『주사보다도 경찰책임자와 마야를 만나게 해주면 나는 건강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어 나는 3월 17일 오전 경찰책임자와 마야를 같이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때 그들에게 북한의 정치테러에 대하여 똑똑히 말해 주었다.
그러자 경찰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역시 당신과 마야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각 방면으로 알아보았는데 북조선측에서 승인하지 않는다니 힘들 것 같다. 당신을 데리러 온다는 전보문은 온지 오래 되었는데 왜 아직 오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해주어 감사합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늦어지는지 나는 짐작이 갑니다. 외국인들은 비행기를 타려면 달러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달러가 없지요. 그렇다고 열차를 타려면 7일간, 왕복 15일간이 걸립니다. 그들은 나를 비행기로 호송하려 하는데 여비가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자 책임자는 웃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부라면 어느 나라나 그쯤의 자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신을 데리러 러시아 경찰들이 오게 되었다. 자, 그럼 나에게 제기할 문제가 있으며 제기하라.』
『고맙습니다. 나는 마야에게 이렇게 고생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마야가 이렇게 매일 찾아오니 죄송스럽습니다. 가능하다면 마야를 생각해서 면회금지를 취소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4일에 한번씩 면회시켜 주겠어.』
이렇게 되니 나는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대표부에서는 나 때문에 김정일한테 달러가 필요하다고 제의서를 올렸고 김정일은 나를 잡아오라고 1500달러를 보냈다.
그런데 달러가 바로 해결되지 않자 그들은 러시아 경찰들에게 값은 후에 치르기로 하고 나를 데리러 보냈다. 나는 그 날 오후 오래간만에 밥 몇 술 먹고 곤히 잠들었다.
세월은 봄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에게도 봄은 오리라.

탈출 준비

눈을 떠보니 생소한 곳에 누워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았는가?)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결박하여 놓았기 때문에 움직일 수는 없어도 분명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도 숨쉬기가 힘들어 가만히 보니 입에다 산소호흡기를 달아 놓고 목구멍에는 고무호스를 틀어박았다.
나는 너무 답답하여 묶어놓은 한쪽 팔을 뽑고 산소호흡기를 와락 잡아챘다.
간호사과 의사가 급히 달려와 내 손을 다시 묶어놓고 저들끼리 뭐라 수군거리더니 목구멍에서 고무호스를 꺼냈다.
그래도 목구멍에는 뭔가 걸려 있는지 숨쉬기가 힘들었다.
눈치 빠른 간호사이 재빨리 고무호스로 목구멍에 걸려 있는 가래를 빨아냈다.
그제서야 숨이 나갔다.
이렇게 정신을 차리자 간호사 두 명이 내가 누워있는 밀차식으로 된 수술대를 밀고 입원실에 와서는 침대에 옮겨 눕히느라고 덮었던 백포를 벗겼다.
놀랍게도 알몸통이었다.
나는 모진 아픔 속에서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덮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목이 콱 쉬었는지 말은 나가지 않고 입만 우물거렸다.
간호사들이 사라져 버렸다.
몹시 고통스러웠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도대체 제정신인지 아닌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입원실 간호사인 듯 한 처녀가 들어오더니 수면제 주사를 놓았다. 출입문으로 마야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그냥 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잠에서 깨보니 마야가 의자에 앉은 채로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머리를 푹 파묻고 잠들어 있었다.
잠에서 깨고 보니 또 고통스러웠으나 정신을 좀 맑아진 것 같았다.
의자에 앉은 채로 가엾게 잠든 마야를 쳐다보니 불쌍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순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간호사가 또 들어오더니 아픈가고 물었다.
나는 아프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간호사는 환자복 한 벌을 내 옆에 놓고는 약을 먹이려고 하였다.
나는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마야를 흔들어 깨웠다.
마야가 잠에서 깨자 간호사는 마야에게 약을 먹이라고 주고는 도로 나갔다.
마야는 정신이 든 나를 보더니 내 손을 꼭 잡고 오들오들 떨기만 했다.
마치 추운 겨울에 어미를 잃은 병아리 같았다.
나는 오늘이 며칠이고 지금 몇 시나 되었는가고 물었다. 마야는 목구멍에서 겨우 새나오는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여 내 입에 귀를 갖다 댔다.
『오늘이 며칠이고 지금 몇 시나 되었어?』
『오늘은 3월 18일 오전 10시. 수술은 어제 저녁에 끝나고 오 늘 새벽 5시경에 김호는 정신을 차렸어요.』

나는 다시 마야의 귀에 대고 말했다.
『살았으니 또 도망쳐야지….』
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마야는 두 눈이 금시 커지며 기겁하여 소리쳤다.
『정신 있어요?! 왜 그렇게 사람이 우둔해요. 김호가 다 나은 다음 보기 싫어서 같이 못살 것 같아요.』
나는 그러라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야는 또 눈물을 흘리며 약을 먹이려고 했다.
나는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 약이 수면제였던 것이다.
이제 다시 잠들면 언제 깰지 모른다. 때문에 약을 먹기 전에 마야에게 행동방향을 말해 주어야 했다.
나는 다시 마야를 손짓으로 가까이 오라고 부르고 귀에 대고 말했다.
『내가 정신을 완전히 차리면 경찰들이 입원실을 지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다시 북조선으로 가야해. 그러니 나는 오늘 저녁까지는 병원에서 탈출해야 해. 내 걱정은 말고 빨리 가서 택시 한 대와 임시 거처할 데를 알아보라구.』

나는 말하기가 너무 힘들어 진땀이 돋았고 긴장한 눈길로 간절하게 쳐다보았다.
마야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던지 한참 쳐다보며 그 어떤 비장한 결심을 내리는 것 같았다.
당시 나를 병원에서 빼낸다는 것은 실로 위험한 노릇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생명이 잘못될 수 있으며 내가 잘못되는 경우 나를 병원에서 빼돌린 마야가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마야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어 안심하라고 웃으며 눈을 껌벅거렸다.
결심이 선 듯 마야는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어딘가 숨어있던 그녀의 당돌한 성격이 살아난 것이다.
마야는 나에게 약을 먹이고 나는 다시 잠들었다.

오후 4시경 잠에서 깨보니 김와실리가 옆에 와 있었다.
나는 긴장했다.
(혹시 이 사람이 나를 지키려고 와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정신이 든걸 보자 그가 말했다.
『김 동무, 이게 뭐요. 조선사람들이 이렇게 악종이라니까.』
나는 그를 한참 쳐다보았다.
(조선사람의 핏줄을 타고 태어난 네가 조선사람이 악종이라는 걸 아직도 몰랐어? 조선사람의 가죽을 쓰고 넋은 러시아에 팔아먹은 너 같은 불행한 인간은 알 수도 없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김 동무, 방금 전에 북조선 대사관과 영사관에 전화를 걸고 하바로프스크에도 연락을 했어요. 이런 이야기는 안하고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지요. 그러니 마음을 푹 놓고 치료를 받고 한 열흘 후에 몸이 추스려지면 다시 탈출하던가 하세요.』
그는 은근히 두려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내가 눈을 감아 버리자 그는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며 나가버렸다.
그가 나간 다음 수술을 담당하였던 의사와 조선인 교포 몇 사람이 나를 방문하였다.
그들은 벌써 온 도시에 소문이 퍼졌다면서 자기네가 어떻게 하든 도와줄 테니 안심하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었다.
그들은 나가면서 며칠 후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김치랑 고추장이랑 가져다 주겠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