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전 북한 벌목노동자)

마야가 가져온 음식

경찰관이 소리쳤다.

『네가 왜 모르는가. 이 사람은 불법으로 여권을 발급 받으려던 외국인이야. 아직 국적도 밝히지 않고 있어.』

그들이 한참 다투고 있는 사이 마야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26살인 그녀는 겉보기에는 19~20세 나이 어린 처녀 같았다.
어리면서도 당돌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 그녀는 마치 자기가 잘못하여 일이 이렇게 된 것처럼 내 손을 꼭 잡고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 더러운 감방에서 식사랑 어떻게 하고 있어요. 김호. 경찰서 책임자가 말하는데 중국에서 신분을 확인하는 문건이 와야 내놓는다고 해요. 그런데 아직 자기 신분도 밝히지 않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왜 자기 신분을 속이세요. 왜 북조선에서 왔다고 말을 못해요.』

『마야 그건 괜찮아.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지?』

나는 황급히 화제를 딴 데로 돌렸다.
『아니 돌로 빚어낸 사람처럼 괜찮다는게 무슨 말이예요. 어머니는 당신 때문에 식사도 못하고 잠도 못자고 있어요. 당신 대신 내가 말하겠어요. 북조선에서 왔다고….』마야는 참으로 안타깝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한참 쳐다보았다.

『마야 심정은 알만한데 그건 말하면 안 돼. 며칠 후에 내가 스스로 얘기하겠어.』

『아니, 혹시 당신은 뭘 잘못하고 도망친 게 아니예요?』

『아니야, 내 신상엔 마야가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

나는 마야에게로 온 다음 같이 살면서도 북한에서 도망쳤고 잡히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야는 북한의 독재정치를 이해할 수 없는 여자였다. 마야는 안타까운 듯 내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어요.』

『거기선 무슨 말을 하는가.』

윅또르와 다투느라고 우리에게 관심을 돌리지 않고 있던 경찰관이 꽥 소리쳤다.

『우리가 무슨 죄인이라고 말도 못하겠는가.』

마야가 총알같이 내 쏘았다. 경찰관은 마야와 윅또르를 진정 시키고 의자에 앉힌 다음 마야에게 물었다.

『마야는 이 사람하고 살면서 어느 나라말로 통하오.』

『내가 조선말을 좀 알기 때문에 조선말로 통해요.』

『그럼 마야는 이 사람의 신분을 모를 수 없겠는데.』

『그래요. 신분을 몰라도 같이 살 수 있어요. 다만 중국에서 왔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좋아.』

경찰관은 간수를 불러 나를 감방으로 데려가라고 하였다. 마야가 발딱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아니 죄인도 아닌 사람을 왜 가둬요? 나는 당신에게 아무말도 할 수 없어요.』

『마야, 진정하라고. 이건 법이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이 사람을 하루라도 빨리 구하려면 신분을 확인하여야 해.』

그러자 마야는 황급히 음식꾸러미를 책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저 사람을 여기서 식사시키고 들여보내세요. 감방 안에서 저 사람은 식사를 제대로 못할 거예요.』

경찰관은 얼러서라도 나에 대한 문제를 빨리 마무리짓자고 생각했던지 나더러 식사를 하겠는가고 물었다. 나는 사양했다.

감방에 들어선 나는 딱딱한 철침대에 맥없이 드러누웠다. 길이 3m, 너비 2.5m 작은 감방에 네 명이 잘 수 있게 양옆으로 2층 침대를 설치한 감방인데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악취가 풍겼다. 특히 하수도 시설도 되어 있지 않고 한쪽 구석에 높이 50cm, 직경 25cm 정도의 소변통이 세워져 있는데 소변통을 열 때마다 얼마나 악취가 심했던지 눈이 쓰릴 정도였다.

나는 눈을 감고 이미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내 운명에 대해서는 더 신경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젠 죽는데는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죽는가. 북조선에 끌려가 일생을 정치범수용소에서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아니면 순간의 고통을 참고 자결해야 하는가 하는 두 길 중의 한길이 남았다.
오직 나의 생각은 나로 하여 고통을 겪어야 할 처와 어린 아들, 부모형제들에 대한 생각 뿐이다. 그리고 마야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하여 생각했다.

때늦은 후회

나는 뒤늦게야 마야에게 죄를 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즉 정치라는 두 글자가 빚어낸 온갖 전쟁과 테러, 탄압, 권력쟁탈전을 너무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여성, 오직 자기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어하고 상상의 훌륭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아들여 그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낭만적인 행복을 누려가고 싶다는 꿈속에서 살던 여성, 그러한 여성을 기약없는 파도에 밀려가는 운명의 쪽배에 태운 것이다. 나는 언젠가 마야와 주고받던 말들이 생각났다.

『마야, 소련이 자본주의 사회로 변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아이참, 친애하는 김호씨. 나에게는 그런 문제는 재미없어요. 그것보다도 언제면 당신이 좋은 집을 사고 차도 사고 나를 남보다 옷을 더 잘 입히고 놀러다니겠는지 그거나 말하세요.』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허 참, 남은 속이 까맣게 타는데….』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지금 뭐라고 했지요?』

『앞으로 잘 살게 될 거라고 말했어.』

나는 그로부터 그런 문제는 더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간수가 소리쳤다.

『김, 처녀가 음식을 가져왔는데 받아. 그리고 여기 사진도 한 장 들여보냈어. 애인인가? 참 곱게 생겼는데….』

음식으로는 밥, 국, 김치, 고추장 등 조선음식이다 보니 복잡하게 차려 들여왔다. 사진은 마야의 사진이고 사진 뒷면에 노어로 뭐라고 썼는데 나는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혹시 나를 빼돌리기 위한 작전을 하면서 나에게 무엇인가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의 뜻을 알아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내가 아는 노어 단어들을 모조리 생각해 보고 앞뒤로 맞추어 보았지만 종내 결론이 없었다. 혹시 서툰 조선말을 노어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맞추어 보았다. 그래도 알아낼 수 없었다. 나는 좀 자야 한다는 생각으로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미 날이 밝기 시작하여 감방의 자그마한 철창가로 밝은 빛이 스며들었다.

나는 밝아오기 시작한 공기창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슬픈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 어머니의 사랑과 꾸지람이 얼마나 깊고 뜨거운 것인지 미처 몰랐는데 이제와서야 새삼스럽게 느껴졌고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다.
(어머니는 얼마나 고생하실까. 아니 집 떠난 아들 걱정으로 아마 가슴속에 재가 쌓도록 고심하실거야. 이제라도 집으로 돌아가 는 것이 좋지 않을까.)

돌아가자면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었다. 북한에 끌려가 정치범수용소에 가거나 죽는 것, 이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남조선 대사관에 찾아갔다는 것과 리마야와 결혼한 문제를 숨기고, 탈출당시 러시아의 민주주의 정치를 지지하고 북조선 정치를 비방한 문제는 끝까지 부인하면 된다. 이렇게 되는 경우 기껏해서 3~4년 노동교화소에 가게 된다.

(이 방법이 좋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도는 없지 않은가. 아니야, 돌아갈 수는 없어. 패배자의 비참한 꼴이 되어 가지고 어떻게 집으로 찾아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어떻게 할까?)

나는 빨리 결론을 내려야 했다. 경찰 측에서는 신분을 밝히라고 심하게 독촉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운명에 닥쳐올 시련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아무러한 마음 속의 준비도 없이 신분을 밝히면 실로 허무하고 맹랑한 운명의 종말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마음 속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좁은 감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안 돼, 마음이 약해져서는 절대로 안 돼. 한번 결심하고 시작한 남행길을 끝까지 걸어야 해. 이러한 각오를 굽히지 않고 방법을 찾을 때만이 인생을 값있게 살 수 있는 거야.)
나는 두 주먹으로 마음 속의 동요를 털어 버리듯이 허공을 내리쳤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탈출, 탈출이 성공 못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려야 해. 목숨을 끊는 다면 김일성, 김정일에게 조선청년들은 결코 맹목적인 독재체제의 노예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이렇게 결심이 서고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심문에서 신분을 밝히리라 마음먹고 나는 담배를 붙여 물었다. 벌써 아침 일과가 시작되어 옆 감방들에서 화장실로 드나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세수를 하고 심문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찾을 때가 되었는데 왜 찾지 않을까.)
나는 좁은 감방 안을 맴돌며 지겹게 담배만 피웠다.

구류장으로

오전 11시쯤 되었을까. 감방문이 열리며 간수가 소리쳤다.

『김, 나와.』

감방에서 나서는데 경찰 두 명이 나에게 달려들어 팔을 뒤로 비틀어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차에 태우는 것이었다.
나는 호송경찰에게 여기가 어딘가고 묻자 쁘라꾸롤에 왔다는 것이다.
쁘라꾸롤이란 북조선식대로 말하면 안전위원회 위원장 격이다. 북조선에는 각 도, 시, 군에 안전위원회가 있는데 위원장은 당책임 비서이다.
경찰이 나를 끌고 가서 내가 노어를 모른다고 하자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문건에 포장을 찍었다. 그런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심문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다. 2월 23일. 오전 10시쯤 되었을까. 간수가 나오라고 한다. 나는 심문이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은근히 기쁜 마음으로 감방에서 나서는데 난데없이 옆방에 있던 죄인들과 같이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것이었다. 수갑은 매 사람 따로 채우지 않고 다섯 명을 같이 연결하여 채웠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옆에 서 있는 죄인에게 왜 이러는 가고 묻자 잠불(도소재지격)로 호송한다는 것이다.
까파데우에서 잠불까지는 90km인데 우리를 태운 호송차 뒤로 까만 볼가 승용차 한대가 뒤따랐다. 자세히 보니 윅또르가 자가용차에 마야를 태우고 따라오는 것이었다.
마야는 달리는 차에서 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손수건으로 계속 눈물을 씻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고마운 생각, 미안한 생각 그리고 그녀에 대한 야릇한 연민의 정이 살아났다.

차는 어느덧 도시의 변두리에 있는 감옥소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이 온 4명의 죄인은 감옥소에 넘겨주고 나는 어디론가 또 차에 태워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후에 알고 보니 나를 데려온 곳은 죄인을 취급하는 곳이 아니고 증명서(공민증) 없는 사람들을 붙잡아다 한달 기한으로 구류시키고 신분을 확인한 다음 신분증을 발급해 주는 곳이었다. 감방에 들어와 보니 까파따우 감방보다는 훨씬 나았다.
우선 감방의 크기가 거의 두 배나 크고 공기도 건조하였고 세수할 수 있는 수도물과 하수도로 된 변기도 있었고 공기창도 크게 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