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전 북한 벌목노동자)

남조선 비누 소동

하루는 나는 상품을 구입할 목적으로 신우르갈로 갔다. 어느 한 식료품 상점에 들어가보니 난데없이 비누가 많았다.
나는 얼른 비누 한 지함을 샀다. 당시 러시아에 상품이 고갈되면서 우리 사람들에게 상품을 제대로 팔지 않았으므로 러시아인에게 돈을 더 주고 샀다.
나는 조국에 있을 때 비누가 없어서 어머니가 양잿물에 정어리기름을 섞어서 쓰던 생각을 하니 마음이 흐뭇하여 발걸음도 가벼이 버스(북조선 벌목장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하며 소련 상품 같지 않은데 어느 나라 상품인가고 물었다.
얼결에 상표를 본 나는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흠칫 놀랐다. 다시 쳐다보니 분명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써 있다.
나는 급히 상표를 감추느라고 하였지만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드는 통에 할 수 없이 내보였다.
"아니, 이거. 남조선 상품인 것 같아."
그러자 사람들은 저마다 쳐다보며 한마디씩 했다.
"여, 큰일나기 전에 도로 갔다 물리는게 좋아."

며칠 전 토요 강연회에서 선전비서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의 주체조선. 영웅조선의 노동 계급들이 더러운 남조선 괴뢰들의 상품에 손을 대는 것을 씻을 수 없는 수치스런 행동이다. 러시아에 남조선 괴뢰들의 상품이 나들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 괴뢰들의 반사회적 모략 선전이다.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현정세의 요구에 맞게 혁명적 경각심을 높이고 오직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 원쑤들의 온갖 파괴 암해책동을 단호히 짓부수고 사회주의 완전 승리를 이룩하겠다는 굳은 각오와 신념을 가져야만 한다."
버스에는 한 두 명도 아니고 상버소 간부들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피할 길이 없었다. 이때 앞쪽에서 특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동무는 어디서 왔어. 상표나 보고 살 노릇이지 그게 뭐야. 내다 버리라. 비누와 정치적 생명을 바꾸겠어!"
그렇다. 정치적 생명과 바꿀 수 없다. 북조선에서는 정치적 생명을 잃은 사람은 개와 같은 신세이다.
나는 지함을 들고 밖에 나가 길바닥에 둘러메쳤다.
비누에도 사상이 있다는 김일성의 전사답게… 그리고는 운전수보고 깔아뭉개라고 소리쳤다.
운전수는 깔아뭉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비누는 형체도 없이 납작하게 되었다.
러시아인들이 거지같은 북조선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누를 만든 남조선의 노동자들이여!
용서하시라.
그러나 용서하지 마시라!
당신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노동의 열매를
깔아뭉개라고 호령하는 독재자들을.

나는 지나간 일을 생각하며 혼자서 웃었다.
"아니, 자네 뭐가 좋아서 혼자 웃나?"
"할머니 노래들이 재미있군요. 난생 처음으로 재미있는 노래를 듣는 데요."
"응, 노래들이 모두 좋은 것들이야. 나는 혼자서 적적할 때마다 듣곤 하는데 마음이 좋아지곤 하지. 그런데 북조선에는 그런 노래들이 없는 것 같아."
"허 참, 할머니 북조선에서는 이런 유행가들은 들을 수도 부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