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전 북한 벌목노동자)

다시 하바로프스크로

아닌 밤중에 나는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하여 혼자 살고 있는 쎄르게이 가시어머니 집으로 찾아 들어갔다.
"아니 이게 누군가. 어떻게 이렇게....." 남조선으로 가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어디가서 굶 어 죽지나 않았는지 계속 걱정하였는데 이렇게 왔구만. 빨리 들어오라구. 그래 어디서 이렇게 오는 길인가. 어이구 세상에 쯔쯔....."
할머니는 놀랍고 반가운 김에 옷을 빌려주고 밥을 끓이고 야단이었다. 할머니가 나를 이렇게 반겨 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한달 정도 방황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쳐버린 나는 할머니의 정성에 가슴 짜릿한 사랑을 느끼며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어떻게 된 일인가. 여기 하바로프스크는 온통 북조선 사람들 천지인데 어쩌자고 여기로 돌아왔나."
결심하고 떠났던 길을 되돌아 온 것이 부끄러웠다.
"할머니 오랫동안 열차를 타고 왔더니 피곤하군요. 좀 자고 일어나서 얘기하지요."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아침이었다. 할머니가 나를 급히 흔들어 깨웠다. 나는 얼결에 자리를 차고 후다닥 일어났다.
"이 사람아, 누가 찾아왔어. 빨리 일어나라구."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누가 왔어요."
"그걸 어떻게 알겠나. 혹시 북조선 사람들이 우리집에 자주 다녔는데 그들이 아닌지. 오, 빨리 이 밑으로 들어가라구."
할머니는 황급히 식료품을 넣어두는 지하실 문을 열었다. 나는 미처 옷도 입지 못하고 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희미한 전등불이 비치는 지하실은 숨이 헉 막히도록 곰팡내가 풍기고 바닥에 물이 차있고 어느 한 구석에선가 벌레가 살아있는 듯, 쥐가 다니는 듯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온 몸이 써늘해지는 것 같아 움크리고 사다리 층계에 앉아서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이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소리를 들어보니 여러 명이 온 것 같았다.
무슨 말을 주고받는 듯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성난 듯한 할머니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분명 나를 잡으러 왔구나. 혹시 역에서부터 나를 미행하지 않았을까.) 머리카락이 곤두섰다.(어떻게 할까. 여기서는 빠져나갈 길도 없는데.) 금방 지하실 문을 열고 뒷덜미를 잡을 것 같아 맨 발로 바닥에 내려섰다. 물이 발목까지 잠겼다.
지하실 맨 끝까지 가보니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맥을 놓고 잠잔 것이 얼마나 후회되었는지 모른다. 주위를 두루 살펴보니 호미자루가 눈에 띄었다. 반항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호미자루를 잡았다.

이때 지하실 문이 벌컥 열리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아, 빨리 나오라구."
(아 더러운 늙은 마귀. 제 입으로 나오라구 소리치다니.)
늙은이한테 얼리었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원통하고 분하여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아뜯었다. 또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람아, 뭘 하나. 빨리 나오라구. 이젠 됐어, 다 돌아갔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돌아가다니.....)
`아니 이 사람이 거긴 왜 들어갔나. 맨발로 거기가 어디라고..., 빨리나와 발을 씻으라 구."
나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호미자루를 틀어쥐고 문 어귀로 나갔다.
"할머니 누가왔어요."
"우리 손자 녀석이 제 동무들을 데리고 왔댔어. 나는 너무 놀라서 그 녀석을 막 욕해서 쫓아버렸네."
그 말을 듣자 호미자루가 맥없이 떨어졌다.
첨벙. 물방울이 튀면서 다리를 적셨다. 그제서야 나는 쥐와 벌레들이 득실거리는 차디찬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등골이 오싹 해졌다.
지하실에서 나와 발을 씻고 있는데 할머니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오늘은 맥이 풀려 아무 일도 할 것 같지 않아. 다 준비해 놓았으니 제 손으로 식사하라 구."
그리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 역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이 생각, 저 생각하는데 할머니가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 모서리에 앉아 하염없이 나를 내려다 보았다.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고여 있다. 고향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자네 말하지 않아도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만하네. 자네 어머니가 알면 속이 타서 아마 죽을 거야."
내 손등으로 할머니의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오래간만에 고향의 따스한 어머니 품에 안긴 것 같아 격해지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할머니 나는 할 수 없이 여기로 돌아오면서도 할머니가 저를 반가워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였는데 ....., 정말 고마워요."
"이 사람아, 날씨도 추워졌지. 자네 옷도 변변히 입지 못했지. 그러니 딴 생각말고 겨울이 지날 때까지 우리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구. 나도 늙은 게 혼자 살다보니 자네에게 겨울 솜옷 한 벌 사줄 형편이 못되네."
"고마와요. 그런데 할머니 남조선에는 누가 있습니까."
"수원군에 윤정순이라고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있네."

할머니의 지난날

할머니는 자기의 피눈물나는 과거사를 들려주었다. 수원군에서 한 가정의 3형제 중 맏딸로 태어났다. 해방 전 몹시 빈곤하게 살던 할머니의 가정에서는 기둥같이 믿고 살던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 혼자 세 자식을 먹여 살리기 너무 힘들어 11살 난 할머니를 북쪽에 있는 먼 친척에게 주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생이별하고 모진 고역살이를 겪다가 나이도 채 들기 전에 남편을 만났고 남편을 따라 중국으로 다시 이민했다. 중국으로 건너온 후 아들, 딸 두 자식이 생겼는데 남편은 가족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가 버렸다. 그후 할머니는 어린 두 자식을 데리고 또다시 소련의 원동 땅으로 흘러 들어왔다. 지금 남조선에는 여동생 하나가 있고 남동생은 사망하였다며 한번 만나 보지도 못한 남동생 일이 제일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자네 남조선으로 갈 생각은 참 잘했네. 한국방송공사에서 나에게 동생을 찾아주고 나 같은 게 뭐라고 설 명절에는 신년장까지 보내주곤 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늙은 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뭔가 좀 보답할 생각도 있는데 궁리가 떠오르질 않네. 글도 변변히 쓰지 못하니 인사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지."

나는 할머니가 얼마나 기구한 운명을 살아왔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할머니 내 이제 기어이 남조선으로 가겠어요. 남조선에 가면 할머니의 동생도 만나보고, 팔뚝에 힘이 뻗치고 심장에 피가 한동이씩 끓는 젊은놈이 가자구나 하면 못 할 일이 있어요. 그런데 할머니 여기 시장에 중국 장사꾼들이 많던데 그들을 좀 소개해 줄 수 없어요? 좋은 사람 한 두 명 친해가지고 그들을 통해서 중국을 거쳐 남조선으로 가던가. 아니면 다른 한가지 길은 몽골로 가던가. 라디오를 들으니 몽골 대통령이 한국도 방문하고 한국에서는 몽골에 원조를 주었다는데 몽골을 통해서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할머니는 아직 젊어서 철없이 덤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글세 중국에는 조선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 갈 수 있다 치고 몽골에는 어떻게 가겠나. 말도 모르지. 아는 사람도 없지. 괜히 덤비지 말고 잘 생각해 보라구" 하고는 나가서 차를 마시자고 하며 일어섰다.
차를 마시며 할머니의 기색을 살펴보니 모진 고생의 흔적인 듯 주름살이 많은 얼굴에 나에 대한 걱정으로 더 늙어 보이는 것 같았다.
"할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힘든대로 시장에 나가 중국사람들을 좀 데려 오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숨어있어 가지고는 아무 일도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과 사귀고 친교도 맺고 도움도 받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도 주고 그러노라면 무슨 방도가 서겠지요."
할머니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여기로 사람을 데려오자니 어쩐지 속이 떨리네. 나는 지금 앉아 있는 것만도 힘들어. 금시 누가 올 것 같은 게...."

바로 이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제기랄 범이 제 소리를 하면 온다더니.) 나는 황급히 지하실로 뛰어 들어갔다.
한참 후 할머니가 지하실 문을 열고 옆집 러시아 영감이 가스통을 빌리러 왔다갔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머리가 아픈 듯 한참 손으로 싸쥐고 있었다.
"좋아. 내 먼저 몽골 사람들을 만나 보겠어."

남조선 상품

할머니는 나에게 잠이 오지 않으면 노래나 들으라고 녹음기와 테이프를 가져다 주고는 부엌 에서 설거지를 하였다.
녹음기는 휴대용으로 작은 것인데 참으로 맵시있게 만들어 졌다. 나는 대뜸 아는 체를 했다.
"일본제로군요. 그 쪽발이들이 뭘 만드는 걸 보면 깜찍한 것들이야."
그러자 할머니는 웃으며
"그건 남조선 녹음기야."
상표를 보니 정말 남조선 상품이었다. 남조선 경제가 발전했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이렇게 질 좋은 녹음기는 처음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만져보고 테이프를 끼우고 녹음을 틀었다.
노래들은 대체로 얼음이 녹아내리는 듯, 가슴을 간지럽히는 유행가들이다. 저절로 흥이 난 나는 침대에 누워 콧노래로 따라 불렀다.
노래들 중에서도 "아름다운 서울, 서울에서 살렵니다."라는 노래가 제일 듣기 좋았다. 가 사도 곡도 좋지만 낭만에 넘쳐 활달하게 부르는 가수 또한 명가수였다. 노래를 듣노라니 지나간 일들이 영화 화면처럼 떠올랐다.

1990년 아른 봄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소연방의 개방, 개혁 정치에 따라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을 둘러싸고 있던 철의 장막은 물거품 마냥 녹아 내리기 시작했고 마약과도 같은 자유세계의 진한 향기는 공산독재하에서 자유바람에 굶주린 자들의 폐부를 간지럽히면서 들뜨게도 만들고 두려움에 망설이게도 하였다.
정세변화에 맞추어 날쌘 한국 기업체들은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자기들의 상품을 굶주린 러시아인들에게 들이밀었다. 한편 북한의 독재자들은 때가 늦었다. 아마 김일성이 몸이 너무 비대하여 동작이 굼뜬 모양이다. 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망하는 것과 우리 노동자들이 한국에 대해 환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에 많이 퍼져있는 우리 노동자들은 이제 한국의 강대함과 발전정도를 알게 되었다. 그 어떤 선전보도 수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통하여 한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기 시작했다.
때늦게 정신을 차린 김일성은 엉기적거리며 호령을 내렸다. 그의 비대한 체격에 맞게 목소리 또한 호랑이의 울음소리와도 같아 즉시로 그의 어용나팔수들은 우리 재러 임업노동자들에게 더러운 남조선 괴뢰들의 상품에 손을 대지 못하게 대대적인 선전을 벌였다.
하루는 나는 상품을 구입할 목적으로 신우프갈로 갔다. 어느 한 식료품 상점에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비누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