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호
(전 북한 벌목노동자)

작 별

김일성. 김일성이라는 존재가 도대체 뭐길래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지 저절로 화가 치밀어 올라 쎄르게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이제 김일성이 죽으면 돈을 주어서라도 한달 동안 잔치를 차리겠네.』
쎄르게이는 웃으며 그때 자기도 잊지말고 꼭 청해 달라고 하면서 북조선 사람들은 왜 김일성 김정일을 그냥 놔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북조선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옹호, 보위하자는 술어가 하나의 대명사처럼 사용되는데 이따금 방송에서 방송원이 그 구호를 목청껏 외치면 영리한 강아지들까지 덩달아 꼬리를 흔들며 같이 곡조를 맞추어 짖어댄다고 말했다.
쎄르게이는 좋다고 웃어대면서 자기가 총으로 그들을 쏘아 죽이면 훈장을 주겠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에게 훈장뿐 아니라 김일성 대신 북조선의 대통령 자리에 앉혀 주겠다고 말하자 그는 당장 가겠다고 덤벼서 또 다시 웃어댔다.

그러노라니 어느덧 차시간이 되어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
『뱃심을 든든히 가지라고, 맥을 놓으면 안 돼. 그리고 돈이 떨어지면 굶지말고 어디서 도적질해서라도 먹어야해. 나는 며칠 안되었지만 자네 배짱이 마음에 들어. 우리 꼭 다시 만나자구.』
그리고는 러시아식대로 굳게 포옹하고 살뜰히 입을 맞추어 주는 것이었다.
『고맙네. 돌아가기 전에 자네 장모와 처에게 일이 모두 잘 되었다고 말하라구. 여자들이 걱정하면 일이 잘 안되는 법이야.』
나는 돌아서 열차로 돌아갔다.
밖에서 쎄르게이가 주먹을 쳐들어 보인다. 나 역시… 건투를… 하고 주먹을 쳐들었다.
기적소리 울린다.
열차는 출발하였다. 마치도 새로운 운명의 길을 걷기 시작한 나의 첫 출발을 알리는 듯 기적소리는 가슴속에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질 줄 몰랐다.

사랑하는 어머니
집 떠난 이 아들 걱정으로
사립문 가에서 울지 마시고 마음 좋게 가지세요.
오늘은 내 비록 그대들의 두 어깨에
무거운 짐을 실었어도
내일은 그 집에 날개가 돋혀
아늑한 꽃밭으로 그대들을 싣고 가리.

그대들이여.
들어 보시라.
세계는 민주의 함성 요란타.
대지는 민주의 아침 노을 불탄다.
기다려다오.
조금만 참아다오.
나도 그 영광의 대오, 민주의 함성과 함께…

사랑하는 아들 청석아.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너의 어린 가슴에
불행과 고통을 안겨주는 한이 있어도
정의로운 그 영광의 대오.
민주의 함성과 더불어 나는 영생하리!

타슈켄트의 고려인들

모스크바를 떠난지 3일만에 타슈켄트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무덥고 공기는 건조한 느낌이 들었고, 사람들 역시 모두 조선사람 비슷하게 생겨서 누가 조선인이고 누가 우즈베크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먼저 시장으로 찾아갔다. 아무데 가나 조선인 교포들은 김치장사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꾸일육이라고 한 농민시장에 찾아가니 정말로 많은 조선인 교포할머니들이 조선말로 주고받으며 김치를 팔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김에 조선말로 인사를 하고 김치를 하나 사들고 이것저것 물었다. 나이는 60세 이상인 듯한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말씨가 다른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어데서 왔는가고 물었다. 내가 북조선에서 왔다고 하자 할머니는 반가와 하면서 무슨 일로 왔는가고 물었다.
나는 좀 볼일이 있어서 왔다며
『처음 오다보니 잠자리도 불편하고 뭘 좀 알아보자고 해도 힘들군요. 할머니 혹시 집에 자리가 좀 있으면 이틀만 묵어 갈 수 없습니까?』
하고 묻자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좀 있으면 영감이 오는데 한 번 말해 보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저기 시장을 돌아보고 다시 찾아갔는데 할머니는 사정이 있어 그렇게 못하겠다며 딱 잡아떼는 것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옆에서 김치장사를 하던 교포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꼴이 좋지 못한 생각이 떠올랐다. 왜 이럴까… 나는 모욕을 당한 듯 너무도 부끄러워 대충 인사를 하고 급히 자리를 떴다.

내가 시장을 막 나서려는데 교포 한 사람이 나를 붙들고 좀 도와달라고 러시아어 절반 조선말 절반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돌아보니 그는 한 손에 쌀자루를 쥐고 한 손에 남새를 비롯한 부식물을 들었는데 쌀자루를 좀 메달라는 것이다.
얼결에 나는 그를 보고
『어디까지 가는지 제가 들어다 들이지요.』
라고 말하자 그는 말씨가 다른 나를 빤히 쳐다보며 어데서 왔는가고 물었다. 나는 또다시 모욕당할까봐 잠시 망설이다 북조선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미안해하며
『이거 참 안됐소. 나는 여기서 사는 고려 사람인줄 알고….』
하면서 우물쭈물 하는 것이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여기서 사는 고려 사람이나 조선에서 사는 고려 사람이나 다 같지요. 사양말고 제가 메다 드리지요.』
하고는 쌀자루를 냉큼 둘러메고 어디로 가는지 가자고 하였다. 버스 정류소에 나오자 그는 이제 버스를 타면 된다며 담배 한 대 권하는 것이다.
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그가 무슨 일로 왔는가고 물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이 나갔다.
『장사를 좀 할까 왔는데 말도 잘 통하지 않지, 잠자리도 온전치 못하지. 그래서 이렇게 다니며 거처할만한 곳을 찾던 중입니다.』
그러자 그는 지금 여관들도 시원치 못하고 특히 조선 사람들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들거라고 하며 누추하지만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51세였는데 처와는 이혼하고 15살짜리 어린 딸을 데리고 살았는데 여름에는 우크라이나에 가서 수박, 참외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집에서 화투놀이나 하면서 산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는 분명 나를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보다도 장사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의 돈주머니를 바라보고 데려왔다고 생각했다.

당시 타슈켄트 역시 소련의 다른 도시들처럼 중국 교포상인들이 장사로 많이 쓸러 들었는데 그는 중국상인들을 집에서 재우고 그들에게 돈을 받아먹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중국 사람들이 돈이 많다느니, 어느 때 누구는 돈을 얼마 주고 월 선불하였다느니 하면서 한참 엮어댔다.
나는 아무래도 그에게 불행한 나의 신세를 솔직히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저녁 식사 후 말하려고 했으나 돈을 기대하고 있는 그 에게 차마 말할 수 없어 그냥 잠들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그에게 타슈켄트에 오게된 사연을 이야기하고 어디서 일할 만한 곳이 없는가고 물었다. 북조선에서 도주했다는 말을 들은 그는 대번에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여기서는 위험하기 때문에 살 수 없다느니, 북조선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모두 북조선에서 체포해 갔다느니 하면서 빨리 딴 곳으로 자리를 옮기라는 것이다. 나는 도랑물처럼 얕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룻밤 자고난 숙박비를 물고 일어서면서 물었다.
『여기 조선인 꼴호즈(집단농장)들이 많다는데 주소를 좀 알려 주실 수 없습니까?』
그는 꼴호즈 이름들을 적어주었다. 김병하 꼴호즈(협동조합), 레니쓰까야 꼴호즈, 빨리따지역 꼴호즈, 우즈베쓰꺄야 꼴호즈 등 6개의 꼴호즈 이름들을 적었다.

꼴호즈 순례

나는 먼저 김병하 꼴호즈를 찾아갔다.
꼴호즈에 들어선 나는 처음 한동안 어리둥절하였다. 북한의 농촌처럼 어지럽고 그야말로 촌 냄새가 확 풍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을의 소도로와 집마당까지 모두 시멘트로 포장하고 집집마다 앞마당에는 포도 넝쿨이 우거지고 매 가정마다 큰 단층 주택들이다. 북한의 농촌 전경과는 대비할 바 없이 부유한 살림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절로 어깨가 처지는 것 같았다.
꼴호즈 사무실이라고 생각되는 큰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집은 사무실이 아니라 꼴호즈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여관이었다. 내가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등뒤에서 어디로 들어가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조선인 젊은 여인이 행주치마를 두른 채 올롱하게 쳐다보며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인사하고 회장이 조선 사람이냐고 물었다.
여인은 회장은 우즈베크인이고 부회장이 조선 사람인데 부회장이 지금 남조선에 가고 없다며 어디서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북조선에서 왔다고 대답하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일을 할까하고 찾아 왔는데 받아주겠는지… 회장이 조선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러자 여인은 희죽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순간 당황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고 물었다.
『우리 꼴호즈에 북조선에서 온 사람 두 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잡혀가고 한 명은 어디로 피신했는데 지금 어디서 사는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도 처음에 일자리를 찾았지요.』
그 말을 들으니 저절로 한숨이 나갔다.
(후- 이렇게 개값도 안되는 김일성을 위대한 인간으로 칭송해 온 내가 어리석지. 이제 어디가서 어떻게 산단 말인가. 실로 그는 위대한 인물이야. 우리가 못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무데 가서나 살 수 없게도 하는 특출한 축지법을 쓰는 것 같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녀가 또 물었다.
『앞에 달고 다니는 초상휘장을 어떻게 했어요. 도망치면서 버렸어요.』
나는 입이 쓰거워 말하고 싶지 않았으나 대충 대답했다.
『뜯어서 개를 주었는데 흠, 흠 냄새를 맡더니 버리고 그냥 가더군요. 그럼 나는 가보겠어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는 기어코 식사를 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식사로는 국수를 들여왔다.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여인은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물었다.
북조선에는 먹을 게 없다던데 사실인가. 고기를 먹어보기 힘들다던데 정말인가. 등 등.

다음 나는 우즈베쓰까야 꼴호즈로 찾아갔는데 역시 아무러한 성과도 없이 돌아섰다. 하루 종일 이렇게 헤매다노니 날이 저물었다. 이젠 또 잠자리가 걱정이다. 어디 가서 잘까. 갈 데가 없어 할 수 없이 역 대합실로 찾아갔다. 그런데 역 대합실은 안전한 곳이 못 되었다. 경찰들이 계속 순찰하면서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증명서 검열도 하고 데려가기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밖에서 왔다 갔다 하며 서성거리다 비디오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거기가 제격이었다. 경찰들의 감시도 피할 수 있고 돈만 내면 밤새껏 구경하면서 새벽 5시까지 앉아있었다. 나는 위생실에서 세수를 하고 차 한잔 마신 다음 또 살길을 찾아 떠났다.

이번에는 빨리따 지역 꼴호즈를 찾아갔다. 사무실에 가보니 회장도, 부회장도 없었다. 오전 한결을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오후 4시경에야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인사를 하고 북조선에서 왔다고 하자 그는 공식인다운 태도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참 반갑습니다. 앉으십시오. 작년에 북조선의 초청을 받고 평양을 방문하였는데 대접도 잘 받고 구경도 잘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솔직하게 말했다.
『부회장동지. 저는 북조선에서 도망쳐 나왔는데 여기 저기 다니며 알아보니 이 꼴호즈에 조선인들이 많고 사는 것도 괜찮다고 하여 왔는데 좀 도와주실 수 없습니까. 저에게는 지금 아무러한 증명서도 없는데 조선인들이 사는 곳이면 꽤 의지하여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될 것 같습니다. 우리 꼴호즈에 당신과 같은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북조선에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여기 경찰들이 허용하지 않습니다. 숨어가면서 일할 수 있겠지만 그러다 잡히면 북조선과의 관계상 문제도 있고 하여 구원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 진실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부회장동지 잘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한 가지 물어볼 것 이 있는데 여기 다른 꼴호즈들도 다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레니쓰게야 꼴호즈가 있는데 거기에 한 번 가 보십시오. 회장이 조선 사람인데 이런 일에 경험도 있고, 또 무슨 방법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마침 나도 그 방향으로 갈 일이 있는데 함께 갑시다.』
나는 그의 차를 타고 레닌쓰게야 꼴호즈로 찾아갔다. 부회장은 나에게 방향을 가르쳐주고 어디론가 떠나가 버렸다.

사무실로 막 들어서려는데 한 사람이 마주 나오기에 회장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고 물었다. 마침 그는 자기가 회장이라 고 하면서 무슨 일인가고 물었다. 찾아온 사연을 대충 이야기하는 데 그는 내 말을 다 듣지 않고도 알만하니 여기서 서성거리지 말고 딴 데로 가라는 것이었다. 내가 좀 불쾌한 기색을 짓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우리 꼴호즈에 북한 내무원들이 와 있소. 얼마 전에 당신과 같은 사람이 여기로 와서 일했는데, 북조선에서 알고 찾으려 왔는데 다행히 그는 딴 곳으로 피신했소.』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만 같고 빨리따 지역 부회장의 소행이 괘씸했다. 그는 분명 이런 내용을 알고 나같은 사람의 처지를 보여주려고 나를 여기로 데려 온 것 같았다. 회장은 나에게 덤비지 말고 조심하라고 이르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나 역시 더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돈도 물지 않는 나의 훌륭한 거처지 타슈켄트역으로 돌아왔다.

진눈깨비 속에서

이젠 어떻게 할까?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세어보니 1600루불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주머니 돈까지 떨어지면 정말 길가의 거지 신세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금새 온몸에 맥이 풀려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눈까풀이 저절로 스스로 내리감겼다.
바람이 분다.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진눈깨비가 내린다.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이렇게 추운데 입지도 못하고 내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비틀거리며 방향없이 이리저리 가고 있다. 길가던 남녀 로시아인들이 『에이 더러워, 저리 비켜』 하며 막 밀친다. 나는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졌다. 차가 마주온다. 일어서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차는 나를 깔아뭉개듯이 그냥 달려온다. 10m 5m 삐-익 급제 동한다. 그런데 차는 서지 않고 그냥 나를 덮친다. 아-악 깨 보니 꿈이다.
온몸에 식은땀이 내뱉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어둠에 잠겼고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자유롭게 자기 행동을 한다. 허탈감으로 머리가 아팠다.
내가 왜 이럴까. 그렇지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 뭘 좀 먹고 머리를 식혀야 해.

카페로 들어간 나는 커피, 칼바스, 흘레브, 우유를 사서, 먹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다 먹었다. 카페에서 나오는데 꾀죄죄한 늙은이가 손을 내밀었다. 돈을 비는 것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래도 아직 너보다는 낫구나. 주머니를 뒤져보니 20전짜리 잔돈이 있어 그의 손에 쥐여주고 위생실에 들어가 찬물에 세수를 하니 정신이 좀 들었다.
그날도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어떻게 할까. 어디로 갈 까. 다시 돌아갈까. 아니야 죽으면 죽었지 돌아갈 수는 없어. 그럼 어떻게 할까. 옳지 나는 갑자기 좋은 수가 생겼다. 하바로프스크로 돌아가서 중국 상인들을 사귀고 그들의 도움을 받자.
그러나 나는 다시 도리질했다. 하바로프스크는 위험해. 북조선의 원동개발의 기본 거주지인 하바로프스크는 온통 북조선 사람 천지다.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로 갈까. 나는 아무데건 가야 했다.

역 대합실로 들어가 소련 철도 약도를 쳐다보았다. 타슈켄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르쓰라는 도시가 눈에 떴다. 나는 무작정 아르쓰로 떠났다. 4시간만에 아르쓰에 도착한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조선인 교포들을 찾았으나 그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고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나는 조급해졌다.

어디로 가볼까. 어떻게 할까. 나는 또다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 보았다. 다행히 15살나 보이는 남자애가 한 집을 가리키며 김이라는 조선인이 산다는 것이다. 그집으로 다가간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난데없이 러시아 여인이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여인에게 김씨 집이냐고 묻자 자기 남편이 김씨인 데 그는 출장가고 없다는 것이다.
맥이 탁 풀렸다. 후- 겨우 찾은 김이 출장가다니. 그 집에서 나온 나는 땅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문득 북한에서 당 학습회나 강연회에서 당과 조국을 배반한 자들은 개보다도 못하며 참다운 삶과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배우던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아니야. 아니야. 맥을 놓으면 안 돼. 맥을 놓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어. 나는 조국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 조국을 위한 참다운 길 남행길을 걷는 거야.
탈출하여 수기를 쓰고 있는 오늘까지 남행길은 내 마음 속의 기둥이었다. 조국으로 가는 길, 남행길이라는 하나의 의지가 없었다면 나는 시련을 이겨내지 못했으리라. 그 후 나는 하바로프스크로 돌아왔다. 하바로프스크로 돌아오는 길은 10여일이나 걸렸다. 물론 그 기간 아슬아슬한 위험의 고비를 몇 차례 겪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