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행길 ① – 김호

 

김호
(전 북한 벌목노동자)

이국 땅에 흘린 피

저녁 7시쯤 되었을까. 감방문 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간수가 나더러 나오라고 한다. 웬일일까. 저녁에는 찾을 수 없는데 …. 나가보니 웬 낯선 조선인 한 명과 러시아인 한 명, 그리고 감옥소 경찰 두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낯선 조선 사람이 조선말로 나에게 물었다.

『앉으시오. 북조선공민 김호지요?』

말투를 보니 조선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 그래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하바로프스크 경찰서 상급 지도원 김와실리요, 내가 당신을 호송하려고 왔소.』

그는 키가 크고 잘 생긴 축인데 말투는 건방지고 어딘가 모르게 틀을 차리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서 그를 본 기억이 났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하바로프스크 체크도민 러시아 경찰서 수사과 책임지도원이었다. 그는 사할린에서 태어난 조선인 교포다. 들리는 말이 그의 부모들은 남조선 출신이라고 한다. 그는 체크도민 경찰서에서 근무하면서 북조선 안전부 사업을 잘 도와주고 있었고 그들에게서 선물도 받고 명절 때면 초청도 받는다는 말들이, 많이 돌아 벌목장 우리 노동자들은 은근히 그를 피하였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나를 데리러 온 것이다.

『나를 언제 호송하게 됩니까?』
『내일 아침 7시 비행기로 가게 되었어요.』
『그럼 당신에게 두 가지 요구 조건을 제기하겠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뭐요?』
『첫째는 오늘 저녁에 마야를 만나는 것이고, 둘째는 여기 경찰들에게 내가 법에 어긋나는 아무러한 죄도 없다는 것을 당신이 법관으로서 증인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잡혀가면 끝인데 그런 게 필요 있어? 그리고 나는 좀 자야겠어.』

나는 그의 거만한 태도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 참기 어려웠다.

『당신이 만약 그 요구 조건을 들어 주지 않으면 나를 순조롭게 데리고 가기가 힘들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는 나를 한참 쏘아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순조롭지 못하면 어쩔 셈이야.』
『뛰던가, 아니면 최후 발악이라도 해야지요.』
『흥, 총으로 쏘면 어떻게 된다는 걸 알아?』
『알지요, 내가 바라던대로 되지요.』

그러자 그는 나를 무사히 데리고 가는 것이 자기 임무라고 생각했던지 얼르기 시작했다.

『김선생은 그런 생각을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야 해요. 방법은 있지요. 당신이 러시아법을 위반한 것으로 하고 러시아 재판을 받고 러시아 감옥으로 가면 되지요.』

그의 말이 맞았다. 북조선 벌목장에서 그러한 사건이 몇 번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야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하고 카자흐스탄 경찰들이 나를 큰 죄인으로 생각하는데 그들에게 옳은 인식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감옥소 경찰들도 역시 나에 대하여 알고 싶었던지 그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 죄도 없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아깝다고 혀를 차고 나와 마야를 두고 사랑을 주제로 한 인도 영화의 주인공처럼 묘사하면서 떠나기 전에 마야를 만나게 하자고 하였다.

이렇게되자 김와실리는 자기가 직접 마야를 데려오겠다고 나갔고 나는 감방으로 돌아와 소지품을 정리하고 칼을 몸에 깊숙이 감추었다. 그 칼은 나와 한 감방에 있던 러시아인이 흘레브(러시아 빵), 칼바스(러시아소시지)를 썰어 먹으려고 몰래 가지고 들어온 것인데 내가 감추어 두었던 것이다. 나는 그 칼을 거의 한달 동안 몸에 깊숙이 감추고 있었고 그 러시아인은 칼이 없어진 것으로 하여 은근히 고민하고 있었다. 만약 경찰들이 그가 칼을 가지고 감방에 들어 왔다는 것을 알면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그 칼을 다시 꺼내어 만지고 또 만졌다. (내가 혹시 실수하면 어쩌나…. 대담해야 해. 북조선으로 절대로 끌려가면 안 돼. 두 손으로 힘껏 찌르고 위로 쭉 올려 째야 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간수가 와서 소지품을 다 준비해 가지고 나오라는 것이었다. 아침에 떠나는데 왜 벌써 다 준비하고 나 가느냐고 하자 그는 나와 마야를 생각해서 아침까지 사무실 한 칸을 내줄테니 마야와 같이 있으라는 것이었다.

면회실에 들어서자 기다리던 마야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소리내며 울었다. 나는 쾌활하게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

『아니 잡혀가면 죽는다면서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어요.』
『운다고 풀릴 문제도 아닌데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라고 우는 것보다 웃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러자 마야는 정색해 가지고 모스크바 남조선 대사관에 연락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나는 맥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느덧 아침 6시가 되었다. 경찰들이 와서 시간이 되었으니 비행장으로 나가자고 하였다. 드디어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김와실리가 나에게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마야가 가슴 아파할 것 같아 수갑은 채우지 않겠는데 비행장까지 조용히 나갑시다.』

우리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으로 내려서면서 곧 바로 나가면 현관 출입문이고 양옆으로 긴 복도로 되어 있다. 현관 출입문 앞에는 호송차가 발동을 걸어 놓은 채 세워져 있었다. 나는 1층에 내려서면서 현관 출입문으로가 아니라 옆으로 돌아서 복도로 뚜벅뚜벅 걸었다.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것을 경찰들도 알았던지 부러 말리지 않았다.
약 3~4m 복도를 따라 걸었다. 나는 칼을 뽑아 들었다. 하나- 두울- 세엣! 실패다. 온 몸에 식은땀이 쭉 내뱄다. 뒤에서 김와실리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김 선생, 이젠 시간이 되었어요. 늦으면 비행기를 못 타요. 그만하고 나갑시다.』

나는 그냥 복도를 따라 걸었다. 다시 한 번, 하나- 둘 - 셋! 아 또 실수다. 내가 왜 이럴까. 눈을 딱 감았다. 다시 한 번, 하나- 두울- 셋! 제기랄 또 실수다. 이상한 생각 이 들었던지 김와실리가 급히 따라왔다. 바로 등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손이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순간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흠칫 놀라며 악- 하고 소리쳤다.
퍽- 칼이 뱃가죽을 뚫고 들이 박혔다. 그 순간 또 다시 그 무엇에 놀란 것처럼 아-악 하며 칼을 위로 쭉 올려 당겼다. 어느 정도 뱃가죽이 찢어지면서 칼이 쭉 빠져 나왔다. 비틀거 리다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예상 못 했던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경찰들의 다급한 외침소리가 들렸다. 마야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나에게로 다가오다가 내 손에 쥐여져 있는 피묻은 칼을 보더니 악 소리치며 쓰러진 내 위에 푹 고꾸라졌다. 나는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마야를 흔들었다.

『마야, 마야, 아니, 왜 이래.』

마야는 정신이 좀 들었던지 급히 내 몸을 여기저기 만져보며 물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예요. 무슨 짓을 했어요. 빨리 말해요. 예, 빨리.』

나는 마야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어. 마야, 고마워.』

너무도 당황한 경찰들은 어쩔바를 모르고 온통 뛰어다닌다.
나는 김와실리를 찾았다.
구급차를 부르려고 달려갔던 김와실리가 급히 달려왔다.

『김와실리, 미안해요. 나는 아무래도 갈 것 같지 못해요. 후 - 그러니 돌아가면 김일성에게- 내- 인사를 전해주세요. 그리고 내가 김일성이 죽으면 한 달 동안 큰 잔치를 차리고 싶어했다고 전해주세요.』

나는 그를 보며 더없이 만족한 사람처럼 웃음을 지었다. 이상하게도 생각했던 바와 같이 아프지 않았고 다만 잠자고 싶었다. 구급차가 달려왔고 나는 경찰들과 마야, 의사들과 함께 담가(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태워졌다. 차가 한참 달릴 때 나는 잠들어 버렸다. 누군가 자꾸 흔들어 깨운다. 갑자기 콧마루가 찡해지며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화가 났다. (이것들은 왜 자지 못하게 할까.) 자지 못하게 알코올 솜뭉치를 코에 가져다 댄 것 같았다. 차가 멈춰서고 나는 담가에 실려 내리면서 잠들어 버렸다. 꿈을 꾸었다. 나는 그때 그 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꿈이었다. 처음 내가 탈출하였을 때 하바로프스크에서 나를 도와준 할머니의 집에서 한국방송공사에서 보내온 책을 보았는데 그 내용이 꿈속에 나타났다. 그 책은 미국의 의학박사가 쓴 책을 국문으로 번역한 것인데 사람이 육체에서 영혼으로, 영혼에서 다시 육체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내 꿈속에 나타난 것은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이 영혼에서 아무런 장애도, 구속도 받지 않고 공중으로 떠다니다 자기를 치료하는 의사들을 내려다보고 웃고 있었다는 책의 내용이었다.

『기분이 참 좋은데. 저 사람들은 바로 그 책에서처럼 수술하고 치료를 하는 거야. 야! 좋구나. 내가 이렇게 좋아하다 죽지 않을까. 응, 그래. 알만해. 책에서 죽은 사람이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곳으로 날아다녔다고 했지. 나도 그렇게 안될까?』

나는 그때 꿈속에서 본 책의 내용이 참으로 재미있었다. 꿈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온 천지가 캄캄해지면서 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정신을 차린 후에 울고 있는 마야에게 처음으로 한 꿈 이야기였다. 그럼 내가 왜, 무엇 때문에 할복이라는 끔찍한 짓을 하게 되었는지 한 번 돌이켜 보기로 하자.

벌목장 탈출

내가 북조선의 독재정치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여름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때 나는 자유 외출하여 하바로프스크에 와서 정시하라고 하는 조선인 교포 할아버지를 알게 되어 그의 집에서 이틀 동안 유숙하면서 그를 통하여 북조선의 김일성은 자기의 본명이 아니며 원래 진짜 김일성은 1930년대 초에 조선 사람들 속에 널리 알려진 공산주의 투사라고 하면서 원래 김일성이 죽은 다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김일성의 이름을 가로채어 자기를 김일성이라고 자처하였으며, 그의 아들 김정일이도 북조선에서 는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의 고향은 소련의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아무르스크 강변이고 당시 그의 소련 이름을 유라라고 불렀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이 소련에 많다고 하였다.

나는 처음에 그 말을 듣고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이도 많으신 분이 젊은 사람 앞에서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가?』고 하면서 그 집에서 하룻밤 더 자려고 계획하였던 일정을 바꾸어 여관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 후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나는 북조선은 독재정치이며 인간의 초보적인 자유도 보장되지 않는 신격화된 사회, 폐쇄화된 사회라는 것을 알았어도 김일성이 자기의 독재를 위해 희생된 투사의 이름까지 가로채어 인민을 기만하는 파렴치한 인간이라는 것은 몰랐다.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도 북조선에서는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하면서 백두산 일대를 대로천 박물관을 건설하였는데 거기에 소비된 자금은 아마 내 키를 넘을 것이다. 나는 김정일의 고향이 소련의 아무르스크 강변이라는 말을 들은지는 오래됐으나 그것은 남조선에서 북조선을 헐뜯기 위한 악선전이라고 생각했다. 백두산 일대에 가보면 김정일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를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부터 나의 사상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 같다. 마치도 온실에서 곱게 피어난 한 떨기의 꽃송이가 찬바람 부는 들가에서 당장 시들어 버리듯이….

1991. 8. 23. 일이다.

나는 저녁에 친구들과 함께 3년간 처와 가족을 떠나 징용살이를 하다보니 고이고 쌓인 가족에 대한 달콤한 정, 냉동기와 텔레비전 몇 대를 사가지고 조국에 돌아가 야매 가격으로 팔면 돈벌이가 잘 될 것이라는 야릇한 생각, 친구들 호상간 오는정, 가는정 찰찰 넘치게 술 몇 잔 맛있게 마시고 있었다.
친구들은 술 몇 잔씩 마시고 기분들이 좋아지자 돌아가는 정세를 놓고 말을 주고받았는데 기본은 소련방의 민주화 노선에 따라 변화된 세계적 흐름이었다.

나는 그때 기분도 좋은 김에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이번 8월 군사정변은 세계정세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실시되느냐, 아니면 공산독재가 실시되느냐하는 중요한 계기였는데 인민들의 거센 항거로 하여 쿠테타는 실패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개방, 개혁 정치를 해야하며 민주주의가 실시돼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그 날 술판이 끝난 다음 나는 자기의 실수를 크게 느꼈고 어딘가 모르게 무서운 생각에 사로 잡혔다.

아닌게 아니라 다음날 아침에 벌써 당위원회의 호출을 받았다. 나는 당위원회에 가서 아무 말도 한 것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그러나 당위원회 종합 지도원은 시간을 줄테니 잘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노골적으로 돈을 가져다 바치라는 소리나 같았다. 내가 만약 조국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그 즉시로 어떻게 처형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시베리아 벌목장에서는 간부들이 돈을 받아먹고 소위 죄인들에 대한 문건을 작성하는데 성한 사람을 정신병자로도 만들고 충실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도 만든다. 나는 많은 생각을 하였으나 비굴하게 돈을 먹이고 살아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때 나는 더 지체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단호한 결심을 내렸다. 뛰자. 탈출하자. 그리하여 바로 그날(8월 24일) 체크도민-하바로프스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치 금방 누군가 뒷덜미를 잡는 듯한 조바심으로 오돌오돌 떨면서….

8월 25일 6시 30분, 하바로크스크 역에 도착한 나는 난처하였다. 어디로 갈 것인가. 탈출할 생각만 하였지 구체적인 목표도 계획도 없이 떠나고 보니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이기만 하였다. 나는 두 시간 가량 역 주변을 돌면서 생각을 정리하였다. 우선 목표를 설정해야 했는데 그 목표란 뚜렷한 것이었다.
남조선, 남조선 밖에 더 갈 곳이 없었다. 남조선으로 정치 망명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이미 고르바쵸프 대통령의 개방 개혁 정치로하여 아득하게 멀어 보이던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간 냉전의 종말은 일시에 태풍마냥 세계를 휩쓸고 마치도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소련의 수도이며 세계적인 대도시인 모스크바에 남조선 대사관이 자리를 척 잡고 있는 때다.

그런데 모스크바는 어떻게 가고 남조선 대사관은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던 나는 일전에 만나 본 일이 있는 조선인 교포 정시하 할아버지가 남조선에 친척 방문으로 갔다 온 일이 있다고 하던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나는 버스를 타고 그 노인의 집으로 찾아 갔다.
당시 노인은 꽃장사를 하면서 살았는데 장마당으로 막 나서려 던 찰나에 내가 들어섰다. 내가 인사를 하자 노인은 들어오라고 하면서도 별로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였다. 아마 전번에(1년 전) 좋지 않은 말 몇 마디 한 것으로 하여 노여움을 사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하든 노인의 도움으로 남조선 대사관으로 가야 했다.

『자네 어떻게 되어 다시 왔나?』

나는 양해부터 구했다.

『할아버지, 작년에 있었던 일은 양해하여 주십시오. 저는 할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였고 또 할아버지와 같은 분이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김일성의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여 연구해 보았는데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정말 북조선의 독재자들이 얼마나 파렴치하고 우리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얼마나 무참히 짓밟고 있는가를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남조선으로 망명하려고 뛰쳐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새삼스럽게 나를 다시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남조선으로 가면야 좋기야 좋지, 그런데 그게 헐한 일이 아니야. 자네 이제 잡히기만 하면 끝이야. 그리고 북조선에 있는 자네 부모 형제들은 어떻게 하나? 들리는 말이 그들도 모두 잘못된다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내가 그렇게도 고심하던 문제가 현실로 닥쳐왔음을 피부로 느꼈다. 이젠 정말 온 가족 친척들의 불행과 고통의 장본인으로 된 것이다. 열차를 타고 오면서도 줄창 그 생각 때문에 골머리가 아팠는데 처음으로 남에게서 그 말을 직접 듣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할아버지, 됐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성공 할 수 없어요.』

그러자 노인은 『됐네, 진정하라구. 밤잠도 제대로 못자고 쉬지도 못했을텐데 좀 쉬라구. 내 이제 시장에 나가 뭘 좀 알아보고 꽃도 좀 팔고 점심시간이면 돌아오겠네.』하고는 노친을 불러 식사도 시키고 잠자리도 깔아 주라고 당부하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