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북한생활 30년 ① 이재근

나의 북한생활 30년 ①

다음은 납북어부 출신 이재근씨가 월간조선사에서 간행한 『엽기공화국 30년 체험』을 간추린 글로, 필자의 출판사의 허가를 받아 싣는다.

이 재 근
(납북어부 출신 탈북자)

북녘땅에서의 첫사랑 최일화

1972년 10월 25일.

한 번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갈 뻔 한 적도 있었다. 지형학 훈련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날의 목적지는 사리원 중암산. 도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도에 표시해 놓은대로 논, 구릉지, 야산 등을 통과해야 하는 훈련이었다.

중화군을 지나 황주군을 향해 동쪽으로 30리쯤 가고 있는데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다. 훈련 규칙에는 민가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 엄금이었다. 하지만 설마 누가 이 곳을 지나가랴, 잠시 쉬웠다 가려고 그늘을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을 가니 독립가옥이 한 채 나타났다. 집도 허름하고 주변도 볼품 없었으나 그 집 옆에 아름드리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는 것이 마음에 들어 그 아래서 잠시 쉬려고 그 곳을 목표로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그런데 그 나무 앞에는 논이 가로막고 있어서 나무에 다가가려면 부득이 다 허물어져 가는 그 오두막집 마당을 지나가야만 했다.

오두막에 들어가 주인을 찾았더니 남루한 옷차림의 여자가 나왔다. 갸름한 얼굴은 깨끗하고 귀티가 나 보였으나 수심이 가득했다.

“실례지만 중앙당 정치학교에서 훈련나온 학생인데 땀도 좀 거두고 점심이나 먹고 가려고 들렀습니다.”

“우리집은 간부들이 오는 집이 아닙니다. 우리집은 처단자 집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화를 당합니다.”

그녀는 쌀쌀한 말투로 대답을 하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슬그머니 화가 나서 문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여보시오.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지나가는 길손이 찾아와서 사정을 하는데 그렇게 냉정할 수가 있는 거요? 그러지 말고 물이나 시원하게 한 그릇 얻어 먹읍시다.”

배낭을 짊어진 채 나는 마당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방 안에서 찬물 한 그릇을 손에 들고 나왔다.

“이 집은 방 안에 샘이 있는 모양이지요?”

“아니야요. 집 뒤에 샘이 있어서 거기서 떠온 겁니다.”

나는 몹시 갈증이 나던 차에 물을 달게 들이키고 나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고향이 남쪽인데 1970년에 이 곳에 와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배를 타고 있었는데 인민군들이 붙잡아와서는 배는 그만 타고 훈련을 열심히 하여 조국을 통일하자며 고향에 돌려보내 주지 않아서 여기에 남게 되었소.”

내가 남쪽에서 왔다는 말에 그제야 그녀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남과 북 양쪽에 피해를 입은 집입니다. 광복 후에는 아버지가 장사를 해서 생활은 비교적 풍족했어요. 그런데 6·25 전쟁이 나자 아버지는 치안대에 가담하였고, 국군이 후퇴하면서 아버지도 그들을 따라 38선을 넘다가 인민군 패잔병들과 교전을 하게 되었지요. 그 통에 아버지는 국군을 놓치고 혼자가 되어 황해도 연탄군에 가서 일도 하고 지냈습니다. 정전(停戰)이 된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보위부에서 아버지를 제방에 세워 놓고 총살을 했어요. 오빠는 국군이 쳐들어왔을 때 그들에게 처형되었지요. 아버지는 북에서 죽이고 오빠는 남에서 죽였으니 양쪽에 다 한을 남긴 것이지요.”

슬픈 과거사를 늘어놓으며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동정심이 물밀 듯 솟구쳤다.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어머니는 병석에 누워 있는데 오늘 내일 합니다. 보위부에서 추방하려고 몇 번이나 찾아왔다가 어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까 그냥 갔어요. 제가 농장에서 일을 해서 겨우 입에 풀칠은 하고 있는데 리당(협동농장)과 안전부(경찰), 보위부에서 계속 방해 책동을 놓기 때문에 시집도 못 가고 있어요.”

말을 마치고 나서 그녀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 녀가 지어 주는 점심을 맛있게 얻어먹은 후 가지고 있던 통조림이며 사탕, 설탕, 과자, 그리고 한 되쯤 남은 쌀도 그녀에게 몽땅 털어 주었다. 떠나면서 앞으로 내가 또 이 집을 찾아와도 좋은가 물어 보았더니 그녀는 언제든지 오면 받들어 모시겠다고 하며 또 울었다. 울지 말고 반드시 돌아오겠으니 나를 꼭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그 집을 떠나왔다.

목적지에 오니 대원들은 벌써 오래 전에 도착했으나 내가 오지 않아서 여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날 저녁은 늦어서 나는 밥도 못 하고 조장이 해놓은 밥을 얻어 먹었다.

훈련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후에도 오직 그녀 생각만 났다. 그녀의 삶이 너무나 측은하게 느껴졌다. 옛날에는 남북 양쪽 군대에게 피해를 입었고, 지금은 리당과 보위부에서 계속 천대를 받고 있다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들은 이제 모두 죽고 없는데, 왜 제삼자에게 그 잘못을 추궁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최일화.
병든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
신발이 없어서 깁고 또 기워서 완전히 검게 되어 버린 군대 하족을 신고서 다소곳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수줍게 미소 짓던 그녀.

훈련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나는 정치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한달이란 세월이 흘렀다. 최일화를 만난 이후부터는 그녀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당장이라도 달려가고픈 마음에 견딜 수가 없었다. 만약 그녀에게 다녀온 사실을 학교에서 알게 되는 날에는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가고도 남을 조건들이 수두룩했다.

지난 주 토요일 밤에 2호 초대소 조장이 아내가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평양 김종태 전기기관차 공장(필자 注:평양시 서성구역에 위치하고 있고, 전기기관차·내연기관차·전동차·궤도전차·객차를 전문으로 생산하고 있다) 옆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몰래 찾아간 사건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일요일이 되어서야 그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총비상이 걸렸다. 그를 찾아서 그의 집에 가보았더니 그는 웃으면서 아들 본 것을 자랑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를 데리고 학교로 돌아온 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그는 대남공작에도 두번 이상 참가한데다 공로도 많을 뿐더러 그만한 공작원 한명을 양성하자면 많은 당 자금이 든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냥 처벌하지 않기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나는 공로도 없고 말썽만 부렸으니 그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황주군에 있는 최일화의 집을 다시 찾기로 결심했다.

토요일 오후, 같은 호실 대원들 몰래 배낭 속에 들어있던 모래를 쏟아버리고 사회에서 필요한 시날(군대용 하족), 사탕, 과자, 학습장, 군복 등을 배낭에 가득 채워 넣고 밤 10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훈련을 하자는 조장의 지시에 따라 대원들은 모두 각반을 차고 권총을 휴대하는 등 준비에 열중하고 있는 틈을 타서 나는 재빨리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혼자 대문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곧장 동쪽으로 내달았다. 얼마쯤 가자 철조망이 나왔고, 무사히 철조망을 넘어 용성 담배공장 정문을 통과했다. 그 곳에서 1km 남짓 갔더니 무인지경이 나타났다. 땅바닥에 배를 착 붙이고 엎드린채 지나가는 차가 없나 하고 지켜보았다. 잠시 후 자동차 소리가 나더니 짐차(트럭) 한 대가 통과하는데 ‘황남’이라는 번호판이 붙어 있었다. 무조건 뛰어가서 잽싸게 차 꽁무니에 매달렸다. 중앙당 정치학교에서 배운 것을 써먹을 때도 있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차는 검문소를 통과하여 평양 시내로 질주했다. 검문소를 하나만 더 통과하면 황주군까지는 무사히 갈 수 있었다. 검문소가 가까워지면서 나는 풍(필자 注:비바람이나 햇볕, 추위 따위를 막기 위해 둘러치는 천으로 만든 물건) 밑으로 들어가 궤짝 옆에 몸을 바짝 붙이고 드러누었다. 차가 멈췄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숨을 죽인 채 몸을 궤짝에 더욱 밀착시켰다. 이 차는 신의주에 다녀오는 길에 안주에 들러 화학제품을 싣고 해주로 가는 길이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다행히 검문소에서는 차 주위만을 한 바퀴 빙 둘러본 후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중화군을 지나고 다시 황주군에 들어서 황주역을 통과하자 서쪽으로 가는 철다리 밑 도로가 보였다. 나는 얼른 차에서 뛰어내려 철다리를 통과한 후 30여리를 빠르게 걸어 한시간 만에 최일화의 집에 다다랐다. 외로이 서 있는 그 집 옆에는 그녀 생각에 가슴 설레며 잠 못 이룰 때마다 떠올리곤 했던 아름드리 고목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넘었다. 문에 다가가 가만히 노크를 했다. 순간, 방에 등불이 켜지는가 싶더니 방문을 열고 그녀가 뛰어나오는 길로 내 품 속으로 들어와 안겼다. 얼마 만이던가. 나는 그녀를 힘껏 포옹했다. 그녀의 가쁜 숨소리가 가슴을 타고 전신에 퍼지며 내 젊은 피를 끓게 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