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한에서 영어교사였다”

“나는 북한에서 영어교사였다”

 

 

김 경 옥(가명)
2003년 4월 탈북, 2008년 1월 한국 입국

가정 형편 및 학교생활

나의 고향은 함경북도 무산군이다. 현재 북한에는 부모님이 계신다. 부모님 두 분 다 직업 군인이셨다. 형제는 4남매인데, 형제들도 다 직업군인이다. 나는 결혼하여 북에 남편과 아들이 있는데, 북에 두고 온 아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나는 북한에서 영어 교사(교원)를 하였다. 고등중학교 1학년 처음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영어 배우기가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어 배우는 것이 취미였던 것 같다. 배우는 것만큼 성적도 좋았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사범대학 영어과에 입학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당시에는 대학 등록금은 무료였고 학생들에게 일정액의 장학금도 주었다. 장학금은 한 달에 15원 정도 주었는데, 뛰어난 학생에게는 더 주기도 했다. 등록금은 무료였다고 하지만 학교에서 기숙사를 꾸려야 한다는 등의 명목으로 돈을 종종 걷어갔다. 돈을 걷어 갈 때 김일성 방침이라고 못 박으니 안낼 수가 없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다. 아침, 점심, 저녁도 학교에서 제공해 주는데 89년도인가 90년도부터는 죽을 줄 때가 많았다. 또, 안내 방송으로 오늘 점심은 나가서 사먹으라는 방송도 나왔는데, 아마 실질적 경제난은 1990년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내가 다닌 영어과는 노어과와 더불어 국가에서 중시하는 학과였다. 당시 북한이 러시아와 관계가 좋아서 노어과를 중시했지만 영어과는 미국과의 전쟁, 그리고 남한과의 통일을 염두에 두고 영어를 알아야한다는 목적으로 중시했다. 영어를 배우고 있었지만 카세트 리시버를 통해 녹음된 외국인들의 대화를 들을 뿐, 외국인이 직접 하는 강의는 없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제 13차 세계청년축전이 있었는데, 통역원을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지원하고 싶었지만 통역원을 하려면 키가 160cm 이상이여야 한다는 얘기에 지원할 수 없었다. 

북한에서는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학교로 배치된다. 나도 1991년에 대학 졸업 후 바로 배치되어 고등중학교에서 영어선생으로 일하게 시작했다. 그 때 당시, 첫 월급이 100원 정도 이었는데, 혼자서 생활하기도 정말 빠듯한 돈이었다. 옷은 부모님께서 사주셨고 저축은 생각도 못했다. 50명 정도의 아이들이 한 학급에서 공부하는데, 교과서는 턱없이 부족해 보통 위 학년 아이들이 쓰던 것을 물려받는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나라에서 주는 교과서는 10명 당 2권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교과서 질도 좋지 않았다. 검은 종이에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글씨를 쓰다보면 그냥 쉽게 헤지기 일쑤였다. 별다른 교재 없이 교과서로만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대학을 목표로, 특히 영어과를 목표로 하는 아이들만 영어 공부에 관심을 갖는다.

북한의 학제는 11년제 의무 교육이다. 유치원 2년, 인민학교(소학교) 4년, 고등중학교 6년, 대학 ? 전문학교 이렇게 학제가 구성되어 있다. 대학이나 전문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친다. 50점까지는 대학에, 30점은 전문학교를 가게 한다. 그 아래는 탈락이다. 남한과는 학제 차이가 있다. 전문학교를 가서 졸업을 하면 바로 대학에 진학이 가능하다. 현재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에 학교가 실력제가 아니라 출세를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학교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인민학교와 중학교는 45분 강의이다. 45분 안에는 교수학이 있다. 교수학이 무엇이냐 하면, 교육 전 필수과정이 김정일 말씀으로 시작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가 이렇게 교시하셨습니다." 라고 읊고 시작하여야 한다. 그것으로 시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격적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은 한 학급에 반도 채 되지 않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라에서 배급이 나오지 않아 선생님들도 살기 바빠서 한 달에 열흘 정도만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나도 가르치는 것 외에 농작도 하였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꼬마계획 등 여러 가지 학교에 내라고 하는 것들이 많았고 또 그것들을 내지 못해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꼬마계획 중 토끼 가죽을 내라고 하는데, 보통은 장마당에서 사서 학교에다가 제출한다. 먹고 살기 바쁜데 토끼가죽 살 돈이 어디 있겠는가?

1995년까지 교사생활을 했다. 이후 남편과 이혼하고 친척집에 와서 살다가 돈을 벌고자 탈북을 결심했다. 2003년도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하였다. 탈북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중국에서 호구(주민등록증)가 없는 삶은 정말 힘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 6개월간 중국에서 노력하였다. 북에서는 선생님을 하였지만 중국에서는 가르치는 직업을 할 수는 없었고 돈이 필요해 가르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들을 하였다. 식당, 밭일, 아이보기 등 다양한 일을 하였다.

질의응답

고난의 행군 때 정부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북한의 티비 채널은 조선중앙텔레비전 하나다. 평일에는 오후 3시에서 오후10시까지 주말에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방송한다. 점심시간 3시간이 있었다. 티비에서는 모든 생필품 등을 김일성이 주었다고 선전한다. 한국이라는 말도 몰랐다. 남한을 굶어죽는 남조선이라고만 알았다. 미국 놈들이 나쁘구나, 미국 놈들이 잘못하여 북조선이 살기 힘들다는 교육을 받고 그렇게 생각하였다. 언론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그 말을 믿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나 지도자가 잘못한다는 인식을 할 수 없다.

북한에는 원어민 교사가 있는지, 연수가 있는지, 교재를 만드는 과정은 어떠한가?
너무 달라서 설명하기 힘들다. 북한은 문법정도는 배운다. 영어로 이야기 하고 듣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세 나라를 거치면서 영어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태국을 거쳐서 오려니 영어를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 태국에서 외국인과의 대화를 통해 문법이 맞다는 생각만 했었다. 알아듣기는 하는데 말을 할 수 없었다. 같은 영어지만 발음차이가 커 외국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미국식 영어, 영국식 영어가 아닌 북한 에서만 있는 영어 같다. 영어는 중학교를 올라가면 그림을 놓고 읽게 한다. 그 수업을 11시간 하면 영어에 대한 감이 가면 발음 기호를 4시간정도 배운다. 문법은 남한과 차이가 없는데 회화가 많이 다르다.

영화를 보면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신분증 없이 생활하는 것을 봤는데, 무엇이 힘들었는지?
중국에 가면 여자는 남자에게 팔려간다. 이렇게 팔려 가면 남편의 나이와 상관없이 결혼생활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공안에 넘기겠다고 협박을 한다.
나는 34세 때 주방모집이 있어 지원했는데 일자리가 없어 청소를 하기로 하였다. 월급은 중국 사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돈을 벌 수 있어 고마웠다. 그러다 공안의 눈을 피해 살수 없게 되어 흑룡강 농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 먹고 살기 위해 아이를 봐 주었다. 중국 사람들은 도박을 좋아하여 삼삼오오 모여 마작을 하였는데, 동네 사람들이 마작을 하면 아이들을 봐주고, 밭일, 밥 준비를 다 해주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였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임금을 달라고 이야기를 하지도 못하였다. 왜냐하면 나가라고 하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번은 중국 공안에게 중국 사람들이 신고해서 붙잡혀 가기도 하였다. 북송되기 전에 도망쳐 살았다. 북송되면 죽는다. 탈북 이유가 정치적인 이유는 아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나왔지만 처벌형식은 그렇지 않다. 처벌이 너무 가혹하다.

평양 천동설로 알고 있는데 북한 외에 다른 나라가 있다는 것을 지리로 가르치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책에는 200여개의 나라가 있다고 교육한다. 그러나 다 평양을 바라보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조선 인민공화국이라고 교육한다. 평양이 세계에서 제일 발전되었다고 생각하게 교육하고 있다. 내용을 보자면 평양만 전기가 있다고 교육하고, 타국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교육한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알려준다.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이며 먹고 살기 힘들다고 교육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김정일 김일성이 주식을 준다고 교육을 받아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고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김일성동지 혁명역사라는 과목이 있다. 김일성 생애 전반에 관한 내용이며 그것을 세세히 외워야 하고 하루에 한 번씩 자신의 잘못한 점을 혁명역사에 기반을 두어 이야기 하여야 한다. 이런 것이 생활총화다.

탈북청소년들은 남한생활 적응을 어려워 하면서, 차라리 북한에 있을 걸 하는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선생님의 남한생활에 만족하시는지?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남한에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국사회에서 하루하루 지내며 보니 문화적으로 본인이 뒤떨어져 있고 적응하기 힘들다. 임수경이라는 대학생을 통해 대한민국을 알았다. 북한에서는 임수경을 한국 사람의 모델로 본다. 북한이 좋아 오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북한에서는 한국 남자를 개새끼라고 한다. 거짓말만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도 처음에는 한국 남자를 개새끼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남한사람들에게는 매너가 있다.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잘사는 사람들의 생활만 본다. 그러면서 내 생활에 대해서 자격지심을 느낀다. 어른도 그런데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위축도 들고 '우리부모님은 왜 저렇게 살지 못하나,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북한서 주체사상에 대한 학습을 받고 또, 교육을 하셨는데 현재는 김일성 김정일라고 하신다. 믿음의 대상이나 생각이 바뀌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북한에 계신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중국에서 생활을 할 때 바뀌었다. 처음 중국에서 사람들이 김일성이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 때는 나에게만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아직 김일성에 대해서는 크게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다 체제에 대해서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한국에 와서부터다. 한국사회는 드라마로 접하였다. 생각해 보면 드라마는 극적인 것이 많다. 중국, 제 3국을 거치고, 국정원을 거치면서 많은 녹화물과 자료들(드라마)을 보면서 북한의 체제가 잘못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사람들이 김일성을 죽인 것이 김정일이라는 말을 들었다. 북한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수단을 이용해서 빨리 인식을 깨고, 교육받은 세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인간답게 자유로운 세계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북한을 대한민국처럼 자유롭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도록 도와 달라.

크로싱을 보면 주인공 아이가 브로커를 통해서 탈북하였는데 그런 경우가 특별한 경우인지, 모두 가능한 건지, 금액은 얼마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크로싱에 묘사되어 있는 것은 북한의 현실이다. 간추려진 것이 많기는 하지만 현실적이다. 더 한 일도 많다. 사례를 들자면 중국에는 탈북자가 많다. 대사관을 들어 갈 때 비용은 많이 들지 않지만 목숨을 걸고 들어간다. 탈북을 감행 할 때는 죽는 약을 들고 시도한다. 북송되면 죽기 때문이다. 탈북자를 구출하여 남한으로 오는데 몇 백만 원이면 된다. 선교하는 분들을 통하면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나는 2003년 4월에 북에서 떠났다. 한국으로 가려는데 안내하는 사람이 초행길이어서 모르고 국경수비대 문 앞에 갔었다. 그래서 체포되었고, 죽으려고 했는데 돈을 써서 탈출했다. 외부에 도움을 받았었는데, 4명을 구하는데 중국 돈 2만원이 들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300만 원 정도이다. 

탈북하면 가족들이 불이익을 받는지?
내가 탈북하고 중국에 있을 때 알고 있는 사람을 통해 가족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이를 보위부에서 알고 가족들이 보위부에서 취조를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한 번은 언니가 보위부에서 동생이 탈북했냐며 취조를 받았는데, 언니가 부인하자 내가 보낸 편지를 보여주면서 사실대로 털어놓으라고 했다. 편지를 보낼 때는 돈도 함께 보냈는데, 보위부원이 언니한테 계속 이렇게 편지를 보내면 봐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가정에 탈북자가 있으면,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강제 추방된다. 내 가족이 추방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자식이 공부를 잘해도 딱지가 붙어서 공부를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강의에 앞서서 고민을 많이 하였다. 얼굴이 북한에 넘어가면 가족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로 인해 통일이 앞당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강의를 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두만강 주변에 철조망을 치고 있다. 이런 돈으로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에게 왜 쓰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현재 북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자랐지만 철조망을 치고 하는 일들이 김정일이 북한 사람들의 뒷다리를 잡는 격이다. 자유가 없는 나라가 북한이다.

한에서는 탁아소가 잘 되어 있고 체제 교육이 잘 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평양을 제외한 곳에서 주체사상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와 실제 탈북과정을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
배속에서부터 체제교육을 받는다. 현재도 체제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돈이 있다면 탈북이 가능하다.
북한에서는 자원봉사가 없다. 먹고 살기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모여서 탈북동포를 도와주려 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기회가 있다면 자원봉사자들에게 도움되는 일들을 하고 싶다. 또한 북한 주민들이 빨리 북한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유를 누리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