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잘못된 꿈 ②

잘못된 꿈 ②

증언자: 김정우

어린 시절 밀수를 하며 보안원의 꿈을 키운 김정우님. 갖은 노력 끝에 보안원이 되었지만, 다른 이들의 자유를 도와주다 발각되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하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김정우님의 이야기입니다.

인민 보안서 경비대에 입대하다

경찰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엄마가 제 꿈을 이뤄주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주었습니다. 양강도에 보안국 정치학교라고 보안원들을 양성하는 학교가 있습니다. 뇌물을 써서 그 학교에 있는 이발사가 되었다가 또 뇌물을 써서 학교 식당 책임자가 되셨습니다. 북한에서는 먹을 것이 중요하니까 식당 책임자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리고 한 끼에 밥 먹는 학생들이 300명 정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먹이면 쌀이 매일 조금씩 남아서 집에 가져올 수도 있었습니다. 저도 제 나름대로 밀수를 해서 돈을 벌고, 엄마도 일을 하니 그때부터 먹고 사는 것이 좀 괜찮아졌습니다. 제 꿈은 경찰이었지만 이 시기에는 아직 밀수하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구루빠가 나오면 숨어다니고, 만약 잡히면 엄마가 또 뇌물써서 빠져나오게 하고 그런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북한도 미성년자는 형사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어린애들을 보호시설에 넣었다가 나이가 다 차면 그때 처형을 하던가 하는데, 저는 엄마 때문에 보호시설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학교에 바로 입학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에 인민 보안서 경비대라고 한국말로 하면 의경인데, 여기서 복무하면 추천받아서 경찰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여기 입대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계 6촌까지 50년대 월남한 자, 탈북자, 행방불명자, 재일교포가 있으면 제외되고, 토대가 좋아야 입대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가난했지만 토대는 좋았습니다. 빨치산 줄기는 아니었지만, 일단 조부가 빈농에서 시작했고, 대대로 머슴살이만 해서 토대가 깨끗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본 계층이었습니다. 그래서 휘발유 100kg과 북한돈 7,000원을 고이고 입대할 수 있었습니다. 휘발유 100kg은 북한돈 8,000원 정도입니다. 총 15,000원 정도를 바치고 들어간 것입니다. 그때가 2000년도였습니다. 북한 사회는 이렇게 무조건 돈을 고여야만(뇌물을 바치다의 북한말) 돌아가는 사회입니다.

어머니의 노력

그렇게 힘들게 인민 보안서 경비대에 입대를 했습니다. 북한은 군대 생활을 13년이나 하고, 군대 갔다가 죽거나 명예군인이라고 다쳐서 오는 일이 많기 떄문에 입대를 위해 떠날 때 열차 앞에서 부모님이 배웅하는데 거의 울음바다입니다. 당연히 군대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지요. 저희 어머니도 제가 함경북도로 가니 마음이 너무 아팠던 것 같습니다. 열차타고 들어갈 때 보니 어머니께서 엄청나게 울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내가 밀수해서 뇌물주고 남은 돈 이만원정도를 어머니 손에 쥐어주면서 “내가 이제 벌지도 못하고 하니까 엄마가 아껴서 써”라는 말을 하면서 헤어졌습니다. 그랬더니 그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몽땅 다 뇌물로 사용해서 저를 양강도에서 복무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럭저럭 양강도 제 동네에서 군 생활에 적응하며 지냈지만, 경찰학교에 들어가려면 또 다른 난관이 있었습니다. 경찰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담당 보안원, 담당 보안소, 인민반장, 동당비서, 학교 담임 교사의 추천 서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학창시절 가정이 형편이 어려워 꽃제비를 치고 다녔기 때문에 추천 서명을 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단 좋으신 저희 어머니께서 손을 쓰셔서 추천 서명을 모두 받을 수 있었습니다(계속).

삽화 돈을 고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