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잘못된 꿈 ①

잘못된 꿈 

​ 증언자: 김정우

어린 시절 밀수를 하며 보안원의 꿈을 키운 김정우님. 갖은 노력 끝에 보안원이 되었지만, 다른 이들의 자유를 도와주다 발각되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하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김정우님의 이야기입니다.

꽃제비 생활

저는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나 살았고,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12살 때인 1994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서 저와 연년생 형을 기르셨습니다. 그런데 엄마도 심장병이 있는 환자셔서 형하고 둘이서 너무 힘들게 살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꽃제비하고 돌아다니고, 형님은 양강도 체육단에서 축구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바로 고난의 행군 시기가 와서 배급이 나오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체육단은 계속 배급을 줬습니다. 형이 받아오는 한 명분 배급을 가지고 우리 세 식구가 살았습니다. 형님은 죽 먹고 나가서 하루 종일 뛰어다녀야 되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저는 이때 집을 나와 혼자 꽃제비 치면서 떠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열차 타고 다니면서 도둑질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도둑질하다가 잡혀서 매도 맞고, 역전대 앞에서 자다가 잡혀서 꽃제비 상무에 들어 갔다 탈출하고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당연히 학교는 다니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무료 교육인데, 일단은 내가 떠돌이 생활을 했고, 학교에서 가지고 오라는 것들을 준비할 여력이 되질 않았습니다. 양강도 쪽은 겨울에 굉장히 춥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학교에서 나무 한 단씩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데, 지금 집 아궁에다 지필 나무도 없는데 학교에 가지고 갈 나무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밀수를 시작하다

그러다가 16살 때부터 삶이 조금이 나아졌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행동이 좀 빠릿빠릿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른들이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중국으로 밀수하는 어른들이 미리 군대에 다 뇌물을 고이고서는 나한테 돈을 주고 중국에 가서 뭐를 사오라고 시켰습니다. 짐꾼처럼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었습니다. 보통 북한에서 동, 니켈 등 금속 같은 것을 갖고 중국으로 가고, 중국에서는 담배, 사카린, 중고 흑색 티비 등을 가지고 북한으로 왔습니다. 그 당시 북한에서 사카린이 유행할 때여서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이런 심부름을 계속 하다보니까 밀수에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있습니다. 그러다 17살 때부터 제 스스로 밀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심부름을 하다보니 자연적으로 저도 돈이 조금 생겨서 이 돈으로 구리 2-3kg을 사다가 어른들 짐에 제 짐도 넣어서 다녔습니다. 점점 돈을 많이 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군부대 승용차 운전병들한테 돈을 고이고, 밤에 그 차를 끌고 가서 짐을 넘기고 받을 정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밀수를 하다가 잠복해 있는 중국 공안들이 갑자기 나와서 우리를 체포하려고 하면 밀수를 하던 사람들이 다 도망가고, 도망가는 제 뒤에서 총을 막 쏘고, 총알을 피하면서 또 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장마철에는 중국으로 넘어갈 때는 괜찮았는데, 밤새 비가 오니까 새벽에 다시 넘어갈 때는 물이 엄청 불어나서 그걸 모르고 들어갔다가 1,000m 아래로 떠내려 가기도 했습니다. 정말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이렇게 힘겹게 밀수를 하면서 군대 경비대들한테 미리 돈을 좀 고여서 물건을 가지고 와도 보안원들한테 걸리면 또 돈을 줘야 했습니다. 밤잠 못 자고 열심히 움직여서 밀수를 하다가 보안원한테 걸리면, 그 자리에서 물건의 반을 빼앗겼습니다. 그게 너무 억울했습니다. 이런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보안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계속).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힘들게 살았던 어린 시절